한국타이어-노조 그날 몸싸움의 진실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7.14 10:40:45
  • 호수 13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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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폭행이냐 쌍방폭행이냐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한국타이어와 노동조합 간 ‘싸움’을 위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싸움에서 누가 이길지 모르겠지만, 모양새는 영 좋지 않다. 한국타이어는 몸싸움에서 사측 관리자가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지만, 노동조합은 ‘쌍방폭행’이었다고 말한다.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시점에 <일요시사>는 사건 동영상을 입수했다.

‘한국 타이어 점유율 1위’ ‘대형 차량 시장 점유율 1위’는 한국타이어 앤테크놀로지㈜(이하 한국타이어)의 명성이다. 세계 타이어 업계에서는 2020년 기준 콘티넨탈과 스미토모에 이어 세계 6위를 차지했다. 매출의 85%는 해외에서 얻고 있으며, 자체 판매 대리점 채널인 티스테이션을 운영한다.

계속되는 
산업재해

한국타이어 본사는 경기도 성남시에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타이어 공장은 대전에 있어 사실상 대전의 향토기업이다. 국내생산기지 한 곳인 공장과 R&D센터인 테크노돔이 대전에 있고, 나머지 국내생산기지는 금산공장이다. 금산도 대전 생활권인 충청남도 금산군에 위치해, 한국타이어가 대전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매우 크다. 

지역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도 크다. 한국타이어는 대전의 장애인과 저소득층, 소외계층 및 사회복지시설 등에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도 무료급식소·이웃사랑 성금·벽화 그리기 봉사활동 등을 진행해 다양한 사회 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타이어의 외부 이미지는 좋지만, 내부 실정은 그렇지 않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동안 395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다쳤다. 이는 한국타이어가 노동청에 제출한 ‘산업재해 조사표’에 기술된 내용이다.


정확히는 3.5일에 1명씩, 대전공장에서 노동자들은 산업재해를 입었다. 휴업 예상 일수가 30일 넘는 산재 피해 노동자는 154명이나 됐다. 재해 때문에 발생한 휴업일이 60일인 사람은 38명, 90일이 넘는 경우도 73명이었다. 하루에 3명 이상 다친 날도 13일이나 됐다.

특히 금산공장 컨베이어벨트 사망사고와 대전공장 타이어 성형기 사망사고처럼 원통 기계와 컨베이어 같은 설비에 작업 중 ‘끼임’으로 발생한 산업재해는 43건에 달했다.

영상에 찍힌 얼굴 때리는 장면 있지만…
쌓이고 쌓인 묵은 갈등 고스란히 노출

당시 양진권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노동안전부장은 “진짜 운이 좋으면 다치는 거고, 운이 없으면 사망으로 이어지는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게 투자하라고 계속 사측에 이야기했는데도 사망사고가 난 다음에서야 뒤늦게 투자하는 모양새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한국타이어에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번엔 사내에서 몸싸움 사태까지 벌어졌다. 

전국금속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오전 5시40분경 대전공장 구내식당에 모인 노동조합 간부는 ‘한국타이어 구내식당 음식 질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실시했다. 이 캠페인은 현장 노동자가 이용하는 구내식당의 식단에 채소밖에 없어, 식단 개선을 요구한다는 취지였다.

캠페인 중 노동조합 간부인 김용성 한국타이어 지회장이 현장 노동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던 때였다. 이때 한국타이어 관계자가 캠페인 중이던 김 지회장을 찾아왔고, 관계자는 노동조합의 캠페인을 방해했다.


당시 한국타이어 관계자가 김 지회장에게 “노동조합이 LTR 설비기(타이어 만드는 기계)에 몰려와 갑자기 비상버튼을 눌러 설비를 중단시켰는데, 대체 왜 그런 것이냐”고 따졌다. 한국타이어 관계자가 계속 따지자 몸싸움이 시작됐다.

말싸움이 어떻게 시작됐든, 몸싸움을 시작한 건 노동조합 쪽이었다. 노동조합 관계자는 사측 관계자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정강이를 가격당한 사측 관계자는 김 지회장의 뺨을 두 번 때렸다. 그 후 직원들이 달려들어 다급하게 싸움을 말렸지만, 몸싸움과 언성이 너무 높아 더 많은 직원들이 붙어 뜯어말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타이어는 사건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20일 <한국공장 소식지>를 통해 해당 싸움이 벌어진 사태에 관해 전했다. 이 소식지는 정기 발행물이 아닌, 사내에 전달사항이 있을 때 한국타이어 홍보팀에서 작성해 배포하고 있다.

외부에선 사회 공헌
현장은 끝없는 사고

소식지 제목은 ‘아직도 이런 일이? 폭력으로 얼룩진 무법천지 현장,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였다. 소식지에는 19일 있었던 싸움이 ‘무자비한 폭행’이었다고 전했다.

소식지는 “노동조합이 근거도 없이 LTR 설비기의 비상버튼을 눌러서 설비를 중단시켰다. 사측 관계자의 질문에 근거를 내밀지 못했고, 적반하장으로 사측 관계자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말도  안 되는 만행을 저질렀다”며 “갑작스러운 폭행에 반사적으로 방어했지만, 여기에 악의를 품고 다수의 금속노동조합원이 자리를 피하는 사측 관계자를 따라가 추가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것도 모자라 화단으로 몰아 집단으로 넘어뜨려 밟으며, 말리거나 채증하던 다른 관계자까지도 무자비한 폭행을 자행해 상해를 입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정녕 이 상황이 회사 안에서 벌어진 일이 맞는가? 팀장, 관리자, 동료, 선후배도 아닌 사람에 대한 정상적인 인식이 없는 무법천지를 사원 여러분은 상상이나 되는가? 이 모습이 정상적인 조합 활동인가? 회사는 법과 절차에 따라 관련자 및 가해자에 대해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 어떤 것을 감수해서라도 가벼이 넘어가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소식지에는 사진 두 장도 함께 첨부돼있었다. 다수의 노동조합원 뒷모습이 실린 사진으로,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는 근거로 제시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싸움 동영상은 한국타이어 입장과는 전혀 달랐다. 해당 싸움은 명백한 쌍방폭행으로 보였다. 적어도 동영상에는 한국타이어 측의 ‘집단으로 넘어뜨려 밟았다’와 ‘무자비한 폭행’의 흔적이 담겨있지 않았다.

오히려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설명처럼 ‘관계자가 김 지회장의 뺨을 두 번 때린’ 장면이 명확하게 남아있다. 1분가량 되는 짧은 동영상의 맨 앞부분에는 한국타이어 관계자가 김 지회장을 향해 주먹을 날린 듯 보였고, 김 지회장의 얼굴이 뒤로 젖혀졌다.

캠페인 도중 
갑자기 와서…

이어 한 번 더 한국타이어 관계자가 오른손으로 김 지회장의 얼굴을 가격했다.


그 뒤 영상에는 직원이 몰려들어 급하게 싸움을 말리고 있었다. “한국타이어 관계자가 노동조합 간부의 얼굴을 때렸다”고 소리치는 장면도 여러 차례 보였다.

그야말로 개싸움이었다. 유니폼을 제외하고 보면 영락없이 술에 취해서 싸우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싸우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근본적인 문제는 앞서 한국타이어에서 발행한 <한국공장 소식지>를 통해 언급됐듯이 ‘LTR 설비기’ 때문이었다. 한국타이어는 소식지에서 “노동조합이 근거도 없이 LTR 설비기의 비상버튼을 눌러서 설비를 중단시켰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동영상 의견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은 반대되는 의견이었다. 해당 LTR 설비기는 2020년에 안전 방호 장치가 고장 나서, 성형 공정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적 있다. 당시 특별근로 감독과 안전보건진단이 제시한 ▲작업 중지 ▲시정명령 ▲개선 계획을 실시했다.

당시 한국타이어는 개선을 위해 애쓰는 듯 보였지만 곧 예전 방식으로 돌아갔다.

몸싸움이 있었던 지난달 19일 오전, 노동조합은 LTR 설비기의 사고 발생 위험이 높다고 판단해 작업 중지를 요구했고, 노동조합 간부는 사고 발생의 위험과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비상버튼을 눌러 기계의 문제점을 확인했다. 


이 일은 모두 ‘한국타이어 구내식당 음식 질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하기 직후 있었던 일이다. 결국 한국타이어 관계자와 노동조합 간부가 몸싸움을 한 이유는 LTR 설비기를 멈춰, 공장이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노동조합은 “회사 소식지는 마치 노동조합이 강제로 설비를 중지시키고 설비 가동을 막은 것처럼 사실관계를 왜곡했다. 한국타이어가 해당 공정에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고, 사고 위험이 없다면 LTR 설비기를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오전에 LTR 설비기를 가동하지 않다가 오후에 가동한 것은 한국타이어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유 없이 기계를 멈췄다”
“사고 위험으로 멈춘 것뿐”

안타까운 사실은 해당 공사장에서 결국 현장 작업자가 다쳤다는 점이다. 지난달 26일 새벽 1시40분경 멀티롤(반제품 된 타이어에 부위별로 압력을 가하는 기계)에 현장 작업자의 손이 말려들어가는 협착사고가 벌어졌다. 이 는 해당 설비에 대한 점검과 개선을 했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

해당 LTR 설비기는 고용노동청에 시정지시서를 받은 상황이다. 시정지시 내용은 “센서가 작동하지 않아 끼임 위험이 있는 LTR 설비기 1103호기 2차 드럼 및 이와 동일한 위험이 있는 LTR 설비기에 대해 근로자 접근 시 센서에 의해 멈출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이다.

이어 “수동모드는 고무 접착작업 등 작업상 불가피할 경우를 제외하고 최소화하고, 개선방안 마련 시 근로자의 의견을 성실히 청취할 것”이라며 오는 15일까지 LTR 설비기 수리도 덧붙였다.

몸싸움을 했던 당시 있었던 노동조합 관계자는 기자에게 “몸싸움했던 사측 관계자가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그런데 캠페인 중에 갑자기 찾아와서 ‘왜 설비를 세웠느냐’고 다짜고짜 반말을 했다”며 “정강이를 차긴 했는데, 맞진 않았고 김 지회장은 뺨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후 사측 관계자가 도망쳤고, 우리는 항의했다. ‘한국 공장 소식지’의 사진은 영상 속 사진 일부를 캡처해서 사용한 것이지, 노동조합이 집단으로 때린 일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노동조합과 교섭이 잘되지 않는 것 때문에 일을 벌인 것 아닌지 의심된다”며 “노동조합 측에서도 맞고소를 접수하려 한다. 그런데 한국타이어 측은 이미 김앤장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전했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금속노동조합 노동자 10명 정도가 한국타이어 사무직 3~4명을 집단 폭행했다. 일단 다친 분은 그날 입원했고, 지금은 퇴원한 상황으로 전치 2주 정도가 나왔다”며 “지난달 30일 폭행과 업무방해로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말했다.

쌍방 맞고소
법정 싸움으로

이어 “업무방해는 LTR 설비기 비상버튼을 누른 것 때문이다. 이 버튼은 정말 위급한 상황에 누르는 것”이라며 “당시 위급 상황도 아니었는데 왜 눌렀는지는 모른다”고 부연했다. 노동조합의 ‘집단적 폭행이 아니었다’는 의견에 대해 관계자는 “증거자료가 있다. 고소는 물리력을 행사한 사람 8명을 모두 했다”고 전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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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