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범죄 TF 변호사들 줄사퇴 카드 꺼내든 이유

“수장 자르니 나갈 수밖에”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서지현 전 검사의 사표가 수리된 지 보름이 지났다. 20년 공직생활을 마친 그는 법무부나 검찰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서 전 검사의 소식을 듣고 사퇴한 디지털성범죄 태스크포스(TF) 위원들은 여전히 법무부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서지현 전 검사의 ‘전대복귀’ 형식의 좌천성 인사와 재빠른 사표 수리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일요시사>는 익명을 요구한 전직 TF 위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동훈 체제’ 법무부의 디지털성범죄 대처 의지를 들어봤다.

법무부 직원들은 ‘한동훈 체제’에 빠르게 적응 중이다. 검찰권 강화를 목표로 하는 윤석열정부 기조에 맞게 과거 탈피에 나섰다. 그러나 문재인정부서 요직을 거친 검사들과 파견 업무를 수행 중이던 직원들에게는 적응 기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디지털성범죄 TF 위원 대부분은 이 같은 법무부의 인사에 사퇴 카드를 꺼내 들었다.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2차 가해가 지속되고 있다.

▲재판에서 보인 태도를 생각하면 참으로 구차하고 파렴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법원에서 디지털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형량을 정할 때 이러한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태도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반성문 100번 제출했다고 ‘진지한 반성’을 했다며 감형해서는 안 된다는 게 증명된 것 아닌가.

▲형사처벌이 진정한 반성을 이끌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진정한 반성은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 형사재판의 구조에서 피해자는 대체로 소외된다. 특히 피고인이 자백하면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다며 양형 감경 사유로 삼아준다.

그 결과 N번방 사건에서도 함께 방에 있었던 일반 가담자들은 아동 성 착취물 시청 및 소지죄로 대체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이들의 주된 양형 감경 사유는 진지한 반성이었다. 디지털 성범죄뿐만 아니라 성범죄 전반에서 양형 감경 사유에서 형이 선고되는 비율이 양형 가중 사유에서 형이 선고되는 비율의 10배 정도 된다.


피해자에게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진지한 반성은 결국 형식적 반성이 되기 쉽고 2차 가해로도 쉽게 연결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성범죄 태스크포스(TF) 위원들이 사퇴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가 있나? 단지 서지현 전 검사에 대한 편파 인사 때문인가?

▲서 전 검사 인사 조치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다른 문제는 없었다. 서 전 검사가 사실상 위원회 실무의 총괄책임자이고 위원은 전원 민간전문가로 비상근인 상태에서 위원회 어느 누구와도 상의 없이 법무부 장관 취임 직전에 그 실무 총괄책임자를 법무부에서 나가라고 한 것은 사실상 위원회 업무를 마비시키는 것과 같다.

전문·자문위원 22명 중 17명 대거 사의 표명
남은 기간 세 달도…실제적 성과·활동 여러워

물론 다른 후임이 올 수도 있었겠지만 임기가 3개월 남은 상태에서 누가 후임으로 오더라도 인수인계와 기존 논의에 대한 이해도 등에서 종전처럼 활동하기 어려울 것으로 대다수 위원이 봤다. 실제로 누가 후임으로 올 것인지 알려주거나 향후 일정 및 계획에 대한 어떤 공유도 없었다.

-실제 법무부에 파견 업무를 수행한 검사와 수사관들도 서 전 검사에 대한 인사가 납득하기 힘든 인사라고 하는데 일각에서는 “한동훈 지시”라는 말이 있다.

▲정기인사 시점도 아니고 위원회 활동종료 시점도 아닌, 단지 새로운 법무부 장관 임명이 임박한 시점에 이뤄진 갑작스러운 인사 조치라 그런 추측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갑자기 언론 보도를 보고 서 전 검사가 복귀명령을 받아 더 이상 일을 못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황당했다.우리 일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없는 것 같아 형식적으로 존속할 이유도 없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이렇게 새 장관 취임 직전에 말 그대로 짐 쌀 시간도 주지 않고 복귀명령을 내린 것은 이례적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위원회 사무처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데 여러 정부부처에서 파견온 공무원들을 복귀시킬 때 그런 식으로 복귀시킨 적은 없었다.

-서 전 검사가 사실상 좌천을 당했다고 해도 TF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있지 않나?

▲갑작스레 서 전 검사에 대한 인사 조치가 이뤄진 것이므로, TF로서는 남은 임기 동안 실제적인 활동을 하기 어려워졌다. 고작 임기가 3개월 남은 TF의 핵심 담당 검사 활동조차 보장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 검사가 떠난 이후 TF가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지 않겠나.

▲서 전 검사처럼 성인지 감수성을 갖추고 형사 절차 전반을 꿰고 있는 검사가 드물다. 후임이 누가 오든 이 역할을 잘하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했다. 위원 다수의 생각이 그랬다.

-윤석열 캠프는 지난해 12월 권력형·디지털 성범죄에 적극 대처하고 범죄 피해자를 보호·지원하는 원스톱 통합 전담기관 신설을 공약했다. 그러나 사실상 말뿐인 공약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렇다. 디지털 성범죄에 주로 대응하는 부처가 현재 법무부, 여성가족부다. 그런데 윤석열 캠프는 이미 여성가족부는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고, 서 전 검사에 대한 인사 조치를 통해 법무부 내 디지털 성범죄 TF의 활동은 막아버렸다.

디지털 성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윤석열 캠프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상태서 여성 유권자를 위한 형식적인 공약 한두 개라도 만들어야 하니 내세운 공약이 아닐까 싶다.

▲우리 위원회는 사실 법무부 내부의 위원회고 권고안을 내는 정도의 권한밖에 없다. 그래서 이 권고안들을 실현시키는 것은 법원, 검찰, 경찰, 여러 정부부처에서 함께 협의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다. 우리 위원회가 무력화되었다고 해서 그 공약이 당연히 무산된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고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할 일은 많다.

정말 잘하고자 한다면 디지털 성범죄 대응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상설 조직을 예산과 인력을 들여 만드는 것이 맞다. 현재 국가가 영상물 삭제를 지원할 의무가 있는데 범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그 지원 기관의 인력만으로는 너무 힘들다고 들었다.

서지현 전 검사 “짐 쌀 시간도 안 줘”
TF 아닌 정부 차원 전담기구 만들어야

수사기관도 삭제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결국 영상물을 찾고 삭제하는 것도 1차적으로는 피해자들의 몫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해자들은 삭제했다고 주장하고 법원에서는 실제 삭제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지 않고도 삭제한 듯하다는 이유로 감경 사유로 삼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다만 그나마 권고안을 잘 내고 있던 법무부 소속의 위원회조차 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관리하기는커녕 일방적인 인사를 내는 마당에 제대로 된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법무부가 성범죄 대응과 관련한 새로운 기구 설치와 법 제정 등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디지털 성범죄 및 아동 대상 성범죄 등을 담당하는 전담기구를 오래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상의 성범죄 수법은 점차 진화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에 재빠르게 대응하면서 피해자 지원 등도 통합적으로 실시하는 전담기구가 필요하다. 참고로 TF 권고안 중에서도 피해자를 지원하는 통합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현재 권고안 중에는 60여개의 법률 제개정안이 포함돼있으므로 의지만 있다면 정부입법으로 추진할 수도 있다. 그런데 법무부는 전통적으로(?)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이 많다 보니 성인지 감수성은 부족한 반면 기존 법체계를 지나치게 중시하고 새로운 현상에 대한 대응과 아이디어 면에서는 적응이 느리다. 그런 측면이 범죄 척결에 장애가 된다는 평가가 있어왔다.

우리 위원회 권고안의 법률제·개정안을 보고도 분명히 법무부가 기존 법체계 등을 이유로 반대할 수도 있다. 자꾸 모든 자리를 검사들에게 부여하려 하지 말고 민간에서 새로운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채용해서 새로운 범죄 유형 등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피해자들의 고통이 멈추지 않는다. 잘하길 바란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