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지부지’ 김건희 수사 맹탕 현주소

안 했나? 못 했나? 이대로 묻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통과되면서 검찰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동안 멈춰있던 대장동, 기획사정, 월성 원전 의혹 등 문재인정부 사건들에 대한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일가 관련 사건들에 대해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겠다”는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는 ‘이례적’ 판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가 받는 대표적인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연루 ▲허위 학력·경력 ▲모친 잔고증명서 위조 공모 등이다. 검찰과 경찰은 해당 의혹들을 수년간 수사하면서 김 여사를 한 번도 소환조사하지 않았다. 김 여사가 받는 모든 의혹이 무혐의 처분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피의자 신분
봐주기 수순?

송경호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조만간 김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처리할 방침이다. 검찰은 수사 개시 2년이 지난 현재까지 김 여사에 대해 서면조사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2부(부장검사 조주연)는 지난 1월 말부터 윤 대통령의 임기 시작 전 김 여사를 소환 조사할 방침이었다. 당시 이정수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수사팀의 의견을 존중하자고 했으나 결과를 보고받은 김태훈 4차장 검사가 김 여사의 무혐의 처분에 반대해 결정이 보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검찰은 지난해 12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전문 시세 조종꾼(주가조작 선수) 이모씨, 투자자문사와 증권사 전·현직 직원 등 8명을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2009년 12월3일부터 2012년 12월7일까지 3년간 91명 명의의 157개 계좌를 이용해 가장·통정매매, 고가·허위 매수 등 이상매매 주문 7804회를 제출해 1661만주(654억원 상당)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주가를 상승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김 여사는 이 기간 도이치모터스 주식 146만주, 50억원어치를 거래했다.

검찰은 이후 전체 이상 거래내역을 담은 수사기록을 법원에 제출했고 이 가운데 김 여사가 DS·대신·미래에셋 등 증권사 계좌를 통해 수십차례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매한 기록도 포함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김 여사가 사건에 깊게 연루된 정황이 짙어졌음에도 소환조사를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도이치 주가조작
허위 학력·경력

잔고증명서 위조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를 통해 김씨가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유의미한 진술을 확보하지 못해 어떤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정하지 못해 섣불리 소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김씨는 투자자가 아닌 ‘전주’로 보는 것이 옳다. 현재 영부인이 된 만큼 정치적 부담감이 대선 때보다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특수통 출신의 변호사도 “시세조종에 대한 혐의가 구체화되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을 것”이라며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사실상 무혐의로 끝났다고 보는 게 맞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수사팀은 김 여사를 주가조작 공범으로 의율 하기는 어렵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에 김 여사의 계좌가 사용된 건 맞지만, 이 자체로 김 여사가 주가조작 범행을 공모했다고 보기에는 연결고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통상 주가조작 범행 수사에서 전주를 처벌하는 핵심은 ‘공모’ 여부인데, 입증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주가조작 ‘선수’로 활동한 피의자는 대부분 기소되지만 돈과 계좌를 제공한 ‘전주’가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가 드문 이유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작전에 동원된 계좌는 157개, 계좌주는 91명으로 김 여사가 유일한 전주였던 것도 아니다.

특히 공모 입증의 열쇠를 쥔 권 전 회장 측이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도 김 여사의 무혐의 처분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권 회장 측은 올 초 첫 공판에서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주가조작을 총괄했을 권 회장이 혐의를 부인하는 마당에 전주로 분류되는 김 여사의 처벌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게 수사팀 대다수의 의견이다.

서면조사만…
사건 끝내기

중앙지검 내부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취임 당시 공정성을 강조한 송 지검장을 바라보는 형사부 검사들의 불만이 상당한 분위기다. 최근 수도권 재경지검에 지난 정부에서 검찰 수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을 보좌하며 ‘조국 수사’ 등을 벌이다가 추미애 전 장관 시절 뿔뿔이 좌천된 ‘특수통’들이 요직을 꿰찬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지검 한 관계자는 “살아있는 권력이 된 김 여사와 윤석열정부에 대한 수사가 어려워졌다는 게 내부 분위기”라며 “검찰 인사에 대해 형사·공판부 검사들의 불만이 많은 상황에서 송 지검장의 김 여사 사건 처리에 따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나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지검장은 대표적인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때 특수2부장을, 윤 대통령이 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2019년엔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중앙지검 3차장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지휘했다.

김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도 도이치모터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월 도이치모터스 SNS에 기록된 문화 후원 내역과 코바나컨텐츠의 행사 협찬 내역 등을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민주당은 도이치모터스가 2018년 3월14일 공식 SNS에 올린 게시물에서 2010년 ‘미스 사이공’을 시작으로 ‘샤갈전’ ‘마크 리브’ ‘반 고흐 인 파리’ ‘고갱’ ‘점핑 위드 러브전’ ‘마크 로스코’ ‘르 코르뷔지에’ 등의 행사에 후원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 행사는 모두 김 여사가 대표로 있는 코바나컨텐츠에서 개최한 것이다.

민주당은 도이치모터스의 행사 후원과 주가조작 수사 간 연계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민주당 측은 “도이치모터스의 후원이 진행됐던 기간 주가조작에 대한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은 2009년부터 2012년 사이 이뤄졌고 2013년 경찰이 이에 대한 내사까지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가 윤 후보가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지난해가 돼서야 권 전 회장을 비롯한 5명이 구속 기소되는 등 총 9명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안 대응 TF의 김병기 단장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 한창이던 2010년~2012년 윤 대통령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등을 지냈다”며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이후 권 회장이 일사천리로 구속 기소됐음에도 김건희씨는 여전히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코바나컨텐츠의 부당 협찬 의혹을 수사한 검찰은 김 여사에 대해 또 무혐의 처분했다. 코바나컨텐츠가 2016년 12월6일부터 3월26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한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전’에 삼성카드 등 19개 기업이 부당 협찬을 했다는 게 고발 내용의 골자다.

고발인인 황희석 변호사는 지난해 9월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청탁금지법 위반·뇌물수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코바나컨텐츠에 협찬한 기업들이 윤 대통령 혹은 동료 검사들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해당 전시회에 협찬금을 지급한 회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나 내사가 진행되고 있었는지 등을 조사해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부당하게 협찬금을 수령했는지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황 변호사는 주장했다.

검찰 수사팀은 1년3개월 동안의 수사 과정에서 협찬 기업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한편, 김 여사에 대한 서면조사도 진행했지만 윤 대통령과 김 여사 등 피고발인들에게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전고검 검사로 국정 농단 특검팀에 파견돼있던 윤 대통령의 신분을 고려할 때 해당 협찬이 공무원 직무상 받은 금품으로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김 여사의 어머니인 최은순씨는 지난해 12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검찰은 ▲2020년 3월 최씨를 동업자인 안모씨와 공모해 2013년 1~8월 4차례에 거쳐 총 349억원 상당의 신안상호저축은행 명의 잔고증명서(사문서) 위조 ▲위조 잔고증명서를 법원에 제출함에 따른 사문서 행사 ▲부동산을 차명으로 소유해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최씨를 재판에 넘겼다.


일반인이라면…
고심하는 검찰

최씨는 재판 과정에서 사문서 위조 혐의만 인정했고 ▲사문서 행사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최씨는 사문서 행사 혐의를 두고 ‘동업자 안씨가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2013년 8월7일 관련 재판에 위조한 잔고증명서 1건(100억 원 상당)을 제출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잔고증명서를 제출하면서 함께 법원에 제출했던 최씨 명의 사실확인서에 최씨가 직접 서명날인한 점 등에 비추어 최씨가 안씨와 공모했다고 봄이 옳다”고 판단했다.

최씨는 경기도 성남시 도촌동 부동산 차명 소유 혐의도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씨 부탁을 받고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김모씨와 도촌동 부동산 매매계약을 중개했던 이모씨 모두 해당 부동산의 실소유자가 최씨라고 증언했고, 최씨와 그의 아들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부동산 관련 대출금을 변제한 점 등을 지적하면서 최씨가 도촌동 부동산을 소유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 최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놀라운 것은 해당 재판에서 김 여사가 여러 번 언급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건 관련 인물들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최씨의 부탁을 받고 잔고증명서를 위조한)김씨는 2010년경 서울대 EMBA 과정에서 김건희를 알게 됐고, 2012년경 김건희의 전시회를 통해 최은순을 우연하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검경, 대질·소환조사 없이 무혐의
“정황 짙다” 지적 불구 불기소 무게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은 김 여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사세행은 “최씨가 허위 잔고 증명서를 김 여사의 회사 감사에게 부탁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고 이런 상황을 사전에 인지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3월 김 여사에게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사세행은 이 처분에 불복해 이의를 신청했고 경찰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했다.

김 여사의 과거 허위 학력·경력 기재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도 검찰처럼 사건을 무혐의 처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소환 없이 서면으로만 조사를 진행하면서 ‘무혐의를 전제로 한 조사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지난달 23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김 여사에 대한 서면조사 방침을 밝히면서 “서면조사가 무혐의를 전제로 하는 건 아니다. 내용을 받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김 여사 허위경력 혐의를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김 여사 변호인 측과 조율한 뒤 서면조사서를 발송했다고 전했다.

최 청장은 “대학 관계자 입장도 다 조사했고 서면조사 단계가 됐다고 생각해서 질의서를 보냈다. 성급하게 한 건 아니다”라며 “제반 상황을 고려해서 했다고 이해해달라”고 부연했다.

앞서 지난해 12월23일 사립학교 개혁과 비리 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사학개혁국본),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김 여사에 대해 “시간강사와 겸임교수로 강의한 한림성심대, 서일대, 수원여대, 안양대, 국민대에 제출한 이력서에 20개에 달하는 허위사실을 기재했다”며 사기와 사문서 위조 및 동행사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김 여사는 이에 같은 달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과 학업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제 잘못이 있었다.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다”며 일부 의혹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했다.

남은 한 사건
마지막 기회?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한다고 하더라도 김 여사를 처벌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여사에게 적용 가능한 혐의로 형법상 사문서 등의 위조·변조, 업무방해가 꼽히는데, 두 혐의 모두 공소시효가 7년이기 때문이다. 수원여대 겸임교수 관련 의혹은 2007년으로 이미 10년도 훌쩍 넘은 일이고, 안양대 관련 의혹도 이력서 작성일이 2013년 6월이라 김씨는 1년 차이로 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건희 녹취 소송 현주소

김건희 여사가 지난 대선 기간에 <서울의소리> 측을 상대로 낸 1억원 손해배상 소송 사건이 조정에 회부됐다.

지난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01단독 김익환 부장판사는 지난달 24일 김건희 여사가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 및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를 상대로 낸 1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조정 회부 결정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보다는 합의를 통한 해결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할 경우, 재량 권한으로 해당 사건을 조정에 회부할 수 있다.

첫 조정기일은 오는 24일로 잡혔다.

김 여사 측은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지난 1월 <서울의소리>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서울의소리>가 유튜브에 올린 김 여사와 이 기자 간 통화 내용 중 법원이 공개를 허용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는 이유였다.

서울서부지법은 김 여사의 MBC 상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 김 여사가 연관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관련 발언과 일부 사적이거나 감정적인 발언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어 서울중앙지법은 김 여사가 열린공감TV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또 서울남부지법은 김 여사가 <서울의소리>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모두 일부 인용 결정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은 서울서부지법의 판단과는 달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 수사 중 사안에 대한 발언도 보도가 가능하다고 봤다.

<서울의소리> 측 변호인은 언론에 “<서울의소리> 상대 가처분 결정에서 방송을 해도 된다고 한 범위 내에서 방송했다”고 밝혔다.

반면 김 여사 측 변호인은 “<서울의소리> 상대 가처분 결정은 녹음파일 공개 이후 나왔다”고 반박했다.

<서울의소리>가 공개한 녹음파일은 MBC 보도 관련 가처분 결정에서 허용하지 않는 내용이 담긴 것이 분명하고, 이때는 <서울의소리> 상대 가처분 결정도 나지 않았던 시기라는 주장이다.
김 여사 측 변호인은 가처분 결정과 무관하게 해당 녹음파일을 공개한 데 따라 김 여사의 인격권 등이 침해됐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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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