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립’ 경찰병원 허술한 주사약 관리 실태

생명이 달렸는데 대충 느슨하게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국립’이라는 두 글자에는 숙명이 담겼다. 나라가 세우고 세금으로 운영하는 만큼, 더 철저하고 더 ‘잘’해야만 한다. 그리고 병원은 본디 철저한 곳. 사람들이 국립병원을 특히 신뢰하는 이유는 이 ‘덧칠’된 철저함에 있다. 하지만 경찰병원은 그 믿음을 저버렸다. 그리고 그 대가는 애먼 환자들의 몫이다.

경찰병원(이하 병원)은 서울 송파구에 있는 국립종합병원이다. 개원 이후 계속해서 규모를 키워오면서 이제는 병상 500개에 달하는 대형 병원이 됐다. 주로 경찰관·의경·소방관들이 이용하지만, 민간인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늦어도 1시간
부실한 조제

국립병원인 만큼, 의료진 대부분은 공무원이다. 현재 전문의 73명과 간호사 243명이 일반직·일반임기제·전문임기제 공무원 등으로 근무 중이다.

또 이곳은 책임운영기관이다. 책임운영기관이란 정부 조직 가운데 정책 집행과 행정 서비스 전달을 담당하는 행정 기관을 가리킨다. 일반 행정 기관과 달리 운영 과정에서 폭넓은 자율성을 보장받지만, 운영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고 해서 넓은 자율성이 ‘느슨함’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자율성을 넓히는 것은 효율을 높이기 위함이지, ‘대충’에 대한 면죄부를 받는 게 아니다. 


하지만 경찰병원 의료진은 이를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병원 내부에서 “의료진 편의와 환자 안전을 맞바꾼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병원 안에서 의료법 및 규정 위반이 상습적으로 반복된다”는 내부 고발을 접했다. 제보자 A씨는 “의료진이 환자 안전보다 자신들의 편의를 우선한다”고 주장했다. A씨 설명에 따르면 의료진이 관행적으로 주사용 약물과 멸균 드레싱(테가덤) 사용수칙을 어기는 탓에, 환자들의 2차 감염 가능성이 커졌다.

본래 주사용 약물은 환자에게 투여하기 직전에 조제하는 게 원칙이다. 식염수에 약물 일정량을 섞고 주사기에 넣는 일련의 과정 전부를 마치면 지체 없이, 늦어도 1시간 이내에는 투여를 시작해야 한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다. 이를 미리 만들어둘 경우, 세균 오염 및 증식·주사제 변질·주사액 유출로 인한 약물 함량 미달 등이 우려된다. 

하루 사용할 모든 약물 일괄 조제?
최대 7~8시간 상온 방치 의혹 제기

환자 안전에 직결된 문제다 보니, 정부도 각종 지침·수칙에서 이 원칙을 수차례 강조했다. 5년 전 보건복지부는 부령인 <의료법 시행규칙>에 ‘일회용 주사기에 주입된 주사제는 지체 없이 환자에게 사용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지난해 제작한 <주사 감염예방 안전 가이드라인>에도 같은 지침을 담았다.

2019년 질병관리청(당시 본부)과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가 공동 발간한 <의료관련감염 표준예방지침>에도 ‘환자에게 투여하기 직전에 주사기에 약물을 준비하며, 준비된 약물은 가능한 한 빨리 늦어도 1시간 이내에 투여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병원 간호사들은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A씨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출근 직후에 그날 사용할 모든 약물을 일괄 조제하고 본 업무에 들어간다. 3교대인 병원 근무 시스템을 고려할 때, 약물과 주사가 최대 7~8시간 동안 상온에 방치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A씨는 “위반사항을 처음 인지한 때가 지난해 말”이라며 “이 관행은 이번 달까지도 계속 이어져왔다”고 설명했다.

A씨는 이 병원 응급실에서도 비슷한 규정 위반 사례를 발견했다. 응급실에서는 멸균 드레싱 ‘테가덤’을 사용한다. 환부에 직접 부착되는 테가덤은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의료품이다. 한 박스에 담겨도 개별 멸균 포장이 돼있는 이유다. 테가덤은 세균 오염을 막기 위해 사용 직전에 포장을 제거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의료진 편의를 위해 미리 개별 포장을 벗겨뒀다가 사용한다는 주장이다. A씨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병원 의료진은 현행법과 의료수칙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특히 이들은 국립병원 소속 공무원이다. 누구보다도 정부 지침에 충실히 따라야 할 이들이, 외려 앞장서 지침을 어긴 셈이다.

더구나 이로 인해 2차 감염이라도 발생한다면, 환자에 따라 ‘치명타’로 작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조제 약물을 오랫동안 상온 보관할수록 오염 가능성이 커진다”며 “병원 환경에서는(약물이) 포도상구균을 비롯한 다양한 세균에 오염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빈도가 높다고 볼 수는 없다.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면서도 “만약 오염된 약물이 주입되면 환자 상태에 따라 발열부터 심하면 쇼크까지 올 수 있다”고 부연했다.

2차 감염되면… 
“심하면 쇼크”

그 빈도보다도 중요한 것은 병을 고치러 왔다가 도리어 병을 얻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그 ‘만에 하나’의 심각성이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말 경찰병원에 공문을 보내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경찰병원은 이틀 만에 서면 답변을 보내왔다.

병원은 주사용 약물 사용수칙 위반 의혹에 대해 “질병관리청의 의료관련감염 표준예방지침·식품의약품안전처의 주사제 안전사용 가이드라인에 따라 엄격한 관리하에 약물을 투여하고 있다”고 답했다.

테가덤에 대해서는 “의료 소모품 관리는 병원의 업무표준관리지침 및 의료기구 관리지침·기구 세척·소독·멸균지침에 따라 의료품을 관리하고 있다”며 “직원 필수 교육으로 매년 1회 이상 감염관리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병원의 관리 소홀 책임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앞선 답변과 같이 병원은 환자의 빠른 쾌유를 위해 최선의 진료서비스를 목표로 모든 의료진이 노력하고 있다”고 에둘러 부정했다. 이어 ‘관할 보건소 등으로부터 의료 규정 위반에 관련된 별도의 제재나 지도를 받은 바 있는지’ 묻자 “없다”고 일축했다.


병원은 답변서에서 제기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병원 측 답변 대부분이 거짓이라는 정황이 여럿 포착됐다. <일요시사>는 병원 내부에서 촬영된 사진을 여럿 확보했다. 이들은 각각 병원 측 해명을 반박할 수 있을만한 증거를 담고 있었다.

‘사진 1’ 속 주사제에는 제각각 숫자가 적혀있다. 이는 해당 주사제가 투여될 시간을 의미한다. 예컨대 ‘4P’라고 적혀있는 주사제는 ‘오후 4시’ 투여 예정이다. 크게 그려진 십자가는 식염수와 약물 혼합(+)을 마쳤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사진 속 주사제들은 이미 모두 혼합된 채 보관 중인 것인데, 오후 4시와 11시 투여 예정인 주사제는 ‘1시간 규정’을 준수했다면 함께 존재할 수 없다.

사진이 찍힌 시각은 오후 3시21분. 4시 주사제는 문제없다고 치더라도, 11시 주사제는 원칙보다 6시간30분 이상 일찍 조제됐다. 규정에 따르면 무균 시설 내 제조 등 엄격한 조제 절차를 거치더라도, 보관 가능 시간은 최대 6시간이다.

해명 적당히
책임은 회피


심지어 ‘엄격한 조제’가 이뤄졌는지도 미지수다. 우려대로 미리 조제된 주사제 일부가 유출된 사례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사진 중 하나에서 주사기는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고, 새어 나온 주사제는 바닥에 흘러 있었다. A씨 주장대로 주사제는 미리 조제되고 있었고, 관리도 부실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병원 측의 테가덤 해명도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 ‘사진 2’에선 개별 포장이 모두 벗겨진 채 쌓여있는 테가덤 뭉치를 확인할 수 있다. 또 그 위에 ‘깐 것’이라고 적힌 것은, 의료진이 의도적으로 껍질을 벗겨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는 의혹에 힘을 싣는다. 

“보건소 제재·지도를 받은 바 없다”는 병원 답변도 사실과 다르다. <일요시사>는 송파구 보건소가 지난 1월 작성한 민원 답변서를 확보했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송파구 보건소 의약과는 지난 1월5일 병원 현장 점검에 나섰고, 현장에서는 명확한 위반 사실을 찾지 못했다.

다만 보건소는 병원 측에 “해당 민원이 발생하는 사례가 없도록 관리에 더욱 철저를 기하라”는 취지의 행정지도를 남긴 바 있다.

<일요시사>는 이 같은 반박자료를 첨부해, 병원 측에 답변을 재차 요구했다. 하지만 이틀 만에 대답이 돌아왔던 이전과는 달리, 병원은 메일을 확인한 지 나흘이 지났음에도 묵묵부답이었다. 병원 관계자를 채근하자 “아직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며 “우리 역시 관련 부서에서 전해 들은 게 딱히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사람 잡는’ 관행이 이어진 기간은 확인된 것만 반년이다. 이마저도 현재 진행형이다. 애꿎은 피해자들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그동안 이 관행을 끊어낼 방법이 정말 없었을까.

A씨는 “보건소에 이어 구청에도 위반 사실을 알려봤지만, 달라지는 게 없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일요시사>가 입수한 것과 유사한 자료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이를 보건소와 송파구청에 넘겼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이들은 병원에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이들이 내세운 이유는 당황스럽게도 ‘증거 부족’이었다.

의료진 편의 위해 의료법 위반 의혹
일단 발뺌했지만…위반 정황들 발견

<일요시사>는 A씨가 보건소와 구청으로부터 받은 답변서를 확인했다. 보건소는 “의료법 등 법령 위반에 대한 처분은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 집행으로, 접수된 내용과 그 증거자료를 근거로 담당 공무원이 현장 상황을 점검한 뒤 구체적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처분할 수 있는 것”이라며 “요청에 따라 현장 점검을 실시했지만, 명확하고 구체적인 위반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출한 사진만으로는 행정처분이 어렵다”고 부연했다. 송파구청은 보건소 답변을 그대로 인용하기만 했다. 구청이 따로 취한 조치는 전무했다.

A씨는 “보건소와 구청 측에 ‘사진 속 약물이 실제로 존재한 바 있는지, 담당자는 누구인지까지 알려줄 수 있다’고 밝혔다”며 “실존 여부를 확인하는 만큼 확실한 게 어디 있겠느냐. 그럼에도 ‘증거가 부족하다’며 조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니 지켜보는 사람 속이 다 타 들어갔다”고 토로했다.

이어 “증거가 뻔히 있는 상황인데, 한 번 만에 잡지 못했다면 몇 번쯤 더 살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국립병원 입원 환자들 생명이 달린 문제일 수도 있는데, 저렇게 미온적으로 대충 시늉만 하고 마는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들의 도덕적 해이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만약 관련 의료사고가 터지면 환자는 ‘삼중고’에 빠진다. 환자는 원래 아픈 곳을 살피는 동시에 2차 감염까지 치료해야 하고, 또 이 가운데 2차 감염 책임이 병원에 있다는 사실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잘못은 의료진이 하고, 부담은 환자가 지는 불합리한 구조다.

게다가 의료진 과실 입증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천신만고 끝에 법적 다툼으로 들어가도, 환자가 승리할 확률은 단 1%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의료 과실로 제기된 소송은 총 6300여건으로 이 가운데 의료진 과실이 명백하게 인정된 건은 단 64건뿐이다.

환자 1명이 ‘상처뿐인 승리’를 거머쥘 때, 다른 환자 99명은 분루를 삼키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법도, 국가도 이들을 굽어살피지 않는다.

보건소·구청 
수수방관 한몫

A씨는 “이 일은 시작부터 끝까지 공무원들의 사명감 부족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의료진 공무원들이 투철하게 규정을 지켰다면, 혹은 보건소나 구청 공무원들이 조금만 더 면밀히 살펴봤다면 이렇게까지 될 일이 아니었다”며 “이들 사이에 만연한 안일함이 환자들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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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