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가고 우울증 지금 우리 사회는…

쉽게 낫지 않는 ‘마음의 감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마음의 감기’ 우울증이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 우울증은 불시에 찾아와 사람의 마음을 좀먹는다. 남녀노소도 가리지 않는다. 문제는 우울증과 극단적 선택이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우울증, 이른바 우울장애는 의욕 저하와 우울감으로 인해 신체와 정신에 증상이 나타나면서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질환이다. 감정·생각·신체상태·행동에 변화를 야기하기 때문에 개인의 전반적인 삶에 영향을 미친다. 

2주 이상
우울감 호소

일시적으로 ‘우울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우울증은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로 해결하기 쉽지 않다. 우울증이 발병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치료와 투약을 받아야 한다. 전문가의 조언에 따르면 우울감이 상당 정도 해소되고 발병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문제는 우울증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우울증 환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의지가 부족하다’ ‘나약하다’ 등 우울증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몰고 가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우울증 환자는 발병 사실을 숨기고 전문가 치료를 꺼리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는 ‘2021년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신장애의 유병률과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 현황을 파악한다는 취지에서 진행된 조사였다.


2001년 이후 5년 주기로 진행된 이번 조사는 지난해 5번째를 맞았다. 보건복지부는 전국 만 18세 이상 79세 이하 성인 5511명(가구당 1명)을 대상으로,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주관해 서울대와 한국갤럽 조사연구소가 3개월간 실시했다. 

그 결과 지난 1년 동안 알코올 사용 장애, 니코틴 사용 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사람은 전체 국민의 8.5%로 나타났다. 약 355만명이다. 평생 유병률로 범위를 넓히면 27.8%에 달한다. 성인 4명 가운데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것. 

이 중 우울장애 1년 유병률은 전체 1.7%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에서 정의한 우울장애는 ‘2주 이상 거의 매일 우울한 기분, 흥미 상실, 식욕·수면 변화, 피로, 자살 생각 등으로 일생생활이나 작업상 곤란을 겪는 경우’다. 남자 1.1%, 여자 2.4%로 여자가 남자보다 2배 넘게 높았다.

코로나19 사태로 감염병과 함께 우울증이 창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적 모임과 외부 활동이 제한되면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의 비율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코로나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코로나19+blue)’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실제 지난해 5월 대한신경과학회가 공개한 2020년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2020년 우울증 유병률은 36.8%로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았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후 한국인 10명 중 4명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통계가 나온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우울증 유병률이 2배 이상 늘어났지만 한국 수준에는 못 미쳤다. 

발병률 높은데 치료율 낮아
숨겨진 우울증 환자 많을 듯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우울증 유병률이 5배나 폭증했다는 전남대병원 연구팀의 연구 결과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연구팀은 코로나 감염력이 없는 일반인 1492명과 대학병원 간호사 646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코로나 발생 이전 우울증 평균 유병률인 4%대보다 5배가량 높은 수치인 20.9%로 나타났다. 

전남대병원 연구팀에 따르면 코로나 블루는 ▲경제적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가 높은 경우 ▲정신질환을 치료 중인 경우 청년층에서 증가한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심각한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통계를 통해 드러난 셈이다. 

문제는 우울증 환자 가운데 전문가를 찾는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데 있다.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는 평생 정신건강 문제로 전문가(의사 등)에게 상담 또는 치료를 받는 이른바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 비율이 12.1%에 불과했다.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2016년까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다 지난해 감소했다. 코로나 사태의 영향으로 보인다. 1년 단위로 좁히면 7.2% 수준이다. 미국 43.1%(2015년), 캐나다 46.5%(2014년) 호주 34.9%(2009년)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그나마 우울장애의 경우 그 비율이 28.2%로 나타났다. 우울장애를 겪는 환자 10명 중 3명 정도는 전문가를 찾는다는 뜻이다. 역으로 말하면 나머지 70%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혼자 우울장애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도 된다.

대한신경과학회에서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우울증 유병률이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치료 접근성이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대한신경과학회는 “한국은 세계에서 우울증 치료를 가장 받기 어려운 나라”라며 “우울증 치료의 접근성은 외국의 20분의 1로 최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악화된 상황

지난해 9월 대한신경과학회가 내놓은 또 다른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우울증 치료율(인구 1000명당 항우울제 사용량)은 OECD 국가 중 라트비아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2013년 OECD 국가 중 가장 낮았던 한국의 우울증 치료율이 6년 뒤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대한신경과학회는 SSRI(선택적 세르토닌 재흡수 억제제) 항우울제 사용량이 세계 최저 수준인 게 영향을 미쳤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정신과를 제외한 다른 진료과 의사들의 SSRI 항우울제 처방을 제한하고 있다. 2002년 3월 급여기준 고시 개정 이후 비정신과 의사의 경우 SSRI를 60일 이상 처방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 혹은 받지 않는 우울증 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연예인이 극단적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할 때 ‘평소 고인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주변 사람에게 우울하다는 말을 자주 꺼냈다’ 등의 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울증 환자의 자살률은 일반 자살률에 비해 4배가량 높다는 통계도 있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용욱·예방의학과 조민우 교수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100만명 이상의 진료 빅데이터(2002~2013년)를 활용해 우울증 집단의 자살률이 정상 집단과 비교해 높다고 발표했다.

남성이거나 나이가 많을수록 자살 위험은 각각 2.5배, 1.5배 높았다. 


조민우 서울아산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전체 표본 집단 대비 우울증으로 새로 진단되는 환자의 비율은 매년 비슷했지만 전체 유병률은 계속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나 우울증이 잘 치료되지 않고 만성화되는 경향을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숨겨진 우울증 환자가 많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극단적 표현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가능성이 높은 이른바 ‘자살 고위험군’이 매년 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다다른지 오래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다. 자살로만 1만3195명이 사망했다. 하루 평균 36.1명 수준이다. 전년 대비 4.4% 감소한 수치지만 국가 간 비교하면 내용은 처참하다. 

OECD 국가 간 연령표준화 자살률을 보면 한국은 23.5명으로 OECD 38개국 평균인 10.9명의 2배가 넘는다. 비교 대상 국가 중 자살률이 20명대인 국가는 한국과 리투아니아(21.6명)가 유일하다. 연령표준화 자살률은 국가 간 연령구조 차이를 제거한 표준화 사망률 개념이다. 

자살은 2020년 기준 한국인의 사망 원인 중 5위다. 암‧심장질환‧폐렴‧뇌혈관 질환에 이어 전체 사망의 4.3%를 차지한다. 당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간질환, 고혈압, 패혈증으로 죽는 사람보다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비율이 더 높다. 

자살률
부동 1위


질병이 아니라 외부요인에 의한 사망 중에서는 압도적이다. 외부요인으로 사망한 인구는 10만명 당 51.5명인데, 그중 25.7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운수사고는 7.7명, 추락사고는 5.2명으로 격차가 있다. 

심각한 부분은 40대 이상에서 자살률이 감소한 반면 10~30대에서 증가했다는 점이다. 특히 20대 자살률은 19.2명에서 21.7명으로 12.8%나 급등했다. 10대도 5.9명에서 6.5명으로 9.4% 늘었다. 이 같은 증가 추세는 20대 여성 자살률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16.6명에서 19.3명으로 16.5%나 늘었다. 10대 남성 자살률이 5.5%에서 18.8% 늘어난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실제 자살은 10~30대 사망 원인 중 압도적 1위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성인의 10.7%는 평생 한 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고, 2.5%는 자살을 계획, 1.7%는 실제 시도했다. 1년 단위로 좁히면 성인의 1.3%가 한 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고, 0.5%가 자살을 계획했으며 0.1%가 자살을 시도했다.

해당 통계에서도 드러나는 부분은 자살을 생각한 사람의 56.8%, 자살 계획자의 83.3%, 자살 시도자의 71.3%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장애를 경험했다는 점이다. 

청소년으로 범위를 좁히면 적나라한 현실이 드러난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5일 ‘2022년 청소년 통계’ 자료를 발표했다. 그 결과 2020년 9~24세 청소년 사망자 가운데 절반은 극단적 선택으로 숨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2011년부터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극단적 선택이었는데 그 비율이 50%를 넘긴 것이다. 조사 사상 처음이다. 

2020년 기준 청소년 사망자 수는 전년보다 2.3% 감소한 1909명이다. 하지만 사망 원인인 고의적 자해(자살)가 957명(50.1%)에 이르렀다. 33.7%에서 50.1%로 17%p 이상 크게 증가한 것이다. 

최근 5년 새 35.8%→37.1%→41.0%→44.9%→50.1%로 늘어났다. 1000명 가까운 청소년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뒤로 하는 상황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울감을 호소하는 청소년의 비율도 늘었다. 중·고등학생 26.8%는 최근 1년 내 우울감을 경험했고, 고등학생 27.7%, 중학생 25.9%가 1년 내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여학생(31.4%)이 남학생(22.4%)보다 우울감 경험률이 높았다. 2019년 28.2%에서 2020년 25.2%로 떨어졌지만 다시 늘어났다. 

10대 사망자 절반 극단적 선택
조사 이후 처음으로 50% 넘어

스트레스에 노출된 청소년의 비율도 다시 증가했다. 중·고등학생의 38.8%는 평상시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 비율은 2019년 39.9%에서 2020년 34.2%까지 떨어졌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다시 늘었다. 스트레스 인지율은 고등학생(41.2%), 중학생(36.4%) 순으로 높았고, 여학생(45.6%)이 남학생(32.3%)보다 스트레스에 취약했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나타나는 노인 우울증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6월 ‘2020년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0년 3월부터 9개월에 걸쳐 노인의 가족 및 사회적 관계, 건강 및 기능상태 등을 조사한 결과다. 전국 969개 조사 구의 거주 노인 1만97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진행했다. 

우울 증상을 보이는 비율은 2008년 30.8%에서 2017년 21.1%, 2020년 13.5%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우울 증상을 보이는 남자 노인은 10.9%, 여자 노인은 15.5%로 여성에서 평균을 웃돌았다. 65~69세 8.4%, 85세 이상 24.0%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우울 증상이 심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 전문가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노인의 비율이 줄고 있다는 통계가 있지만 한국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절대적인 수에 있어서는 적은 숫자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젊은 층에 비해 정신과를 찾는 비율이 낮은 노인세대의 특성상 숨겨져 있는 우울증 환자의 비율이 상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인 자살률과 빈곤률은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자살률이 높아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노인 자살률이 전체 자살률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노인 우울증과 자살률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이미 10년 넘게 나오고 있는 말이지만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OECD 1위인 한국의 자살률을 낮춘다는 취지를 내세운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가 창립됐다. 대한신경과학회, 대한가정의학회·의사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대한노인의학회, 대한마취통증의학과의사회 등이 힘을 모았다.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에 따르면 지난 26일 창립된 학회 초대 회장으로 홍승봉 교수(삼성서울병원 신경과)가 선출됐다. 부회장에는 강재헌 교수(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김재유 원장(산부인과), 김한수 원장(내과), 박학수 원장(마취통증의학과), 신동진 교수(가천의대길병원 신경과)가 뽑혔다.

학회는 인구 10명당 24.6명인 OECD 1위 자살률을 OECD 평균인 11.3명 수준으로 낮춘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의 OECD 최저인 우울증 치료 접근성(4%)도 50% 이상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10년 넘게
특단의 대책

홍 회장은 “한국 국민이 어디서나 우울증을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자살 예방에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모든 의사의 책임이며 사명”이라면서 “우울증 환자들이 숨지 않고 주위에 쉽게 알리고 도움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중등도 이상 우울증 치료율은 11.2%에 불과한 반면 미국의 우울증 치료율은 66.3%”라며 “이것이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미국의 자살률이 한국보다 훨씬 낮은 주요 이유”라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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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