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고 밀리는 백중세 검찰 왕좌게임 내막

한동훈이 찜한 윤석열 라인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임기가 전 정부와 현 정부에 걸쳐 있던 검찰총장이 스스로 물러났다. 이제 검찰총장 임명권은 새 대통령의 손에 쥐어졌다. 검수완박으로 초토화된 검찰을 이끌 차기 검찰총장은 누가 될까. 파격과 안정, 대통령 앞에 두 가지 선택지가 놓였다.

초라한 퇴장이었다. 김오수 전 검찰총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검찰을 떠났다. 당초 법정 임기 2년을 채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벽을 넘지 못했다. 김 전 총장의 운명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처리 과정에 휩쓸렸다. 그는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추진이 본격화했던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했다. 

2년 법정 임기
절반 못 채워

검수완박 저지를 위해 문재인 전 대통령에 면담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자 사표를 던진 것이다. 

그러자 문 전 대통령은 이튿날(18일) 김 전 총장의 사표를 반려한 뒤 면담을 진행했다. 당시 면담에서 문 전 대통령은 ‘임기를 지키면서 국회와의 소통에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김 전 총장에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총장은 사의를 철회하고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여야 원내대표가 박병석 국회의장이 내놓은 중재안에 합의하자 재차 사의를 표명했다. 문 전 대통령이 지난 6일, 김 전 총장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검찰총장 자리는 공석이 됐다. 박성진 대검 차장검사와 전국 고검장들의 사표는 반려됐다. 


박경미 전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김 총장의) 사표를 한 차례 반려했으나 김 총장이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뜻에서 재차 사의를 밝혀왔다”며 “이제는 더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 돼 사의를 수용한 것”이라고 전했다. 

김 전 총장은 “임기가 있는 검찰총장인데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떠나게 돼서 국민 여러분과 검찰 구성원 여러분께 죄송하다. 또 한편으로는 많은 성원과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감사드린다”며 “검찰이 어렵지만 저력이 있으니 이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해내리라 믿는다”고 말하고 청사를 떠났다. 

지난해 6월 취임한 김 전 총장의 임기는 내년 6월까지였다. 2년 임기 중 1년도 채우지 못한 셈이다. 김 전 총장은 검찰 구성원 사이에서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사의를 표명한 김 전 총장이 퇴임식을 희망했으나 검찰 내부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별도의 행사 없이 떠난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특히 취임 때부터 따라붙은 ‘정치적 중립성’ 논란은 끝까지 떼어내지 못했다. 김 전 총장은 문재인정부에서 22개월 동안 법무부 차관을 맡았고, 감사원 감사위원 등에 거론되는 등 핵심인물로 중용됐다. 

퇴임식도 못하고 짐 싸
조직 내부 싸늘한 시선

검복을 벗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김 전 총장은 ‘검찰총장 0순위’로 꼽혔던 이성윤 서울고검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에 피의자로 적시되면서 ‘문정부 마지막 검찰총장’ 카드로 급부상했다. 

청와대는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기수 역전’을 감행하면서까지 김 전 총장을 검찰총장으로 지명했다. 김 전 총장은 사법연수원 20기로 전임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23기)보다 3기수 높다. 당시 청와대는 “김 후보자가 적극적 소통으로 검찰 조직을 안정화시키는 한편 검찰개혁의 시대적 소임을 다할 것을 기대한다”고 지명 배경을 밝혔다. 


검찰 안팎에서 김 전 총장이 문정부의 ‘방탄 총장’이 되리라는 우려가 나왔다. 앞서 김 전 총장은 법무부 차관 시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와 관련해 별도의 특별수사팀을 만드는 방안을 제안해 검찰 내부의 반발을 산 바 있다. 

박하영 전 성남지청 차장검사의 돌연 사직으로 불거진 ‘성남FC 후원금 수사 무마 의혹’에 김 전 총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성남FC 후원금 사건은 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이 성남시장으로 재임하던 2015~2017년 기업 6곳(두산건설·네이버·농협·분당차병원·현대백화점·알파돔시티 등)으로부터 성남FC 후원금 및 광고비 명목으로 160억여원으로 받고 그 대가로 특혜를 제공했다는 내용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9월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송치됐다. 경찰이 무혐의로 결론지은 것을 고발인이 이의신청서를 제출한 끝에 검찰로 넘어간 것이다. 문제가 불거진 부분은 수사 과정이다. 수사팀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박은정 성남지청장이 이를 뭉갰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문정부 꽃길
뒤통수 맞아?

여기에 성남지청 수사팀이 지난해 6~7월 네이버 등 기업들의 성남FC 후원금에 대한 FIU 금융자료를 요청한 부분을 두고 김 전 총장이 박 지청장에 전화로 “다시 검토해보라”고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전 총장과 박 지청장은 이 문제로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고발당한 상태다.

사의 표명 이후에는 김 전 총장이 이른바 ‘박병석 중재안’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혹이 검찰 내부에서 제기됐다. 당시 의혹은 김 전 총장을 바라보는 검찰 내부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전 총장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중재안의 ‘중’자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변명으로 일관한 간담회”라는 싸늘한 반응이 쏟아졌다. 앞서 사의를 표명한 당일인 지난달 22일 출근 과정에서 나온 “국민이나 국회, 여론이 원치 않는 수사는 하지 않는 게 필요할지 모른다는 판단을 해 본다”는 발언도 뭇매를 맞았다.

검찰 내부에서는 김 전 총장에 대해 ‘무능하다’ ‘중요할 때마다 목소리를 내는 시기를 놓쳤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김 전 총장은 검찰 내부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 채 쓸쓸하게 퇴장했다. 문정부에서 고위공직자 후보로 여러 차례 하마평에 올랐던 그가 문정부의 핵심 정책 때문에 물러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검수완박
조직 초토화

김 전 총장의 퇴장으로 차기 검찰총장 임명권은 윤 대통령의 손에 쥐어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장관 임명이 확실시 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호흡을 맞출 검찰총장 인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차기 검찰총장은 검수완박 법안으로 어수선한 검찰 조직을 다잡는 한편, 윤석열정부 첫 검찰인사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검찰 독립성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가장 신경 쓰이는 인선 작업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현재 검찰은 박성진 대검 차장검사가 총장 직무대행을 맡아 이끌고 있다. 박 차장검사는 검수완박 법안에 반대해 사표를 제출했지만 문 전 대통령이 반려한 바 있다. 현재 재차 사의를 밝힌 상태다. 

다만 윤 대통령이 박 차장검사의 사표를 단기간 내에 수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박 차장검사가 검찰을 떠날 경우 지도부 공백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박 차장검사는 차기 검찰총장이 정해질 때까지는 계속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높다.

차기 검찰총장은 한 후보자(27기)보다 기수가 높은 24~26기 사이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물들은 한 후보자보다 기수가 높다. 현직 검찰 고위 간부 가운데 여환섭 대전고검장(24기)과 김후곤 대구지검장(25기), 이두봉 인천지검장(25기), 박찬호 광주지검장(26기), 이원석 제주지검장(27기)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여 고검장은 과거 윤 대통령과 대검 중앙수사부에서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의 수사단장을 맡기도 했다. 김 지검장은 비윤석열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최근 검수완박 법안으로 검찰이 뒤숭숭한 상황에서 리더십을 인정받은 분위기다. 

‘윤의 남자들’ 하마평
인선 절차 최소 한 달

이두봉 지검장과 박 지검장, 이원석 지검장은 모두 윤석열 라인으로 꼽힌다. 이두봉 지검장은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할 당시 1차장검사로 호흡을 맞췄다. 대전지검장 시절에는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을 수사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기소하는 등 성과를 낸 바 있다. 


박 지검장은 윤 대통령의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2차장검사로 발탁됐다. 국정원 댓글 사건 재수사, 국군 기무사 세월호 유족 사찰 등 박근혜정부 적폐수사를 맡았다. 이원석 지검장은 윤 대통령과 2007년 삼성 비자금·로비 사건을 함께 맡았으며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무렵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재직했다. 

검찰 외부에서는 대검 차장검사를 지낸 조남관(24기) 전 법무연수원장, 서울고검 차장검사 출신 조상준 변호사(26기) 등이 거론된다. 조 전 차장검사는 2006년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수사 때 윤 대통령과 함께 일했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한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에 지명한 것처럼 파격 인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장 윤 대통령도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지명 당시 ‘파격’이라는 여론이 있었다. 특히 검찰총장에 발탁될 때는 당시 문무일(18기) 검찰총장보다 5기수나 아래였고,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고검장을 거치지 않은 검찰총장이기도 했다.

차기 검찰총장 앞에는 현안이 산적해 있다. 오는 9월부터 검수완박 법안이 시행되는 만큼 새로운 형사사법체계에서 검찰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검찰 조직의 안정화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크다. 

차기 검찰총장 인선은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심사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인선 절차에 돌입한다 해도 최소 한 달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파격이냐
안정이냐

법무부 장관은 ▲대검 검사급 이상 재직했거나 사회적 신망이 높은 사람 ▲법무부 검찰국장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호사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변호사 자격이 없는 각계 전문가 3명 등 9명으로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한다. 추천위는 3명 이상의 후보군을 추천하는데, 이 가운데 법무부 장관이 1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하면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를 거쳐 임명된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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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