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달항아리' 서도식

한 줄기 빛을 찾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금속을 재단하고 두드려서 둥글고 깊숙한 형태를 만드는 동안 내 삶을 유지해왔던 이러저러한 기억이 그 속에 차곡차곡 다져진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망치질에 의해서 새겨지는 금속 주름은 지구의 중력만큼 강력하고 자연스럽다.” 서도식, 작가노트 중.

서울 종로구 소재 갤러리밈에서 서도식 작가의 개인전 ‘Find your light’를 준비했다. 이번 전시는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이사장인 서도식의 10번째 개인전이다.

백자대호

서도식은 40여년 동안 이어온 제작과 교육 활동의 책무를 내려놓고, 형태 짓기의 소박한 근원으로 돌아가기 위한 연작 작업에 돌입했다. 백자대호 형태의 항아리 연작은 항암치료로 무너진 근육 대신 몸에 배인 숙련된 동작에 의지해 달항아리를 망치로 단조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번 전시에서 서도식은 망치를 붓 삼아 금속 판재 위를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행위의 흔적으로 채우는 부조 형식의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그동안 신념처럼 고수해 왔던 철저한 계획과 정교한 디테일의 수공기술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스스로 경계를 허물고자 한 실천의 결과물이다. 

서도식은 이번 전시에 출품한 전체 작품 19점 중 10점을 ‘달항아리’ 작품으로 채웠다. 순백의 넉넉함과 소박함, 비정형의 둥근 멋, 무미 등의 특정을 갖고 있는 달항아리는 기물 이상의 대상이다. 모든 치장과 기교를 버려 넉넉하게 비어있는 데서 발현되는 아름다움이다. 


붓 대신 망치로 두드려
기억·인연 새기는 작업

그동안 여러 작가가 자신만의 감각으로 달항아리를 재해석했다. 서도식에게 항아리는 오랜 시간 투병생활을 거친 끝에 한쪽 눈의 시력을 잃어가면서 선택한 마지막 과제다. 깊고 어두운 고통의 터널에서 회생의 기도로 만난 존재이기도 하다. 

서도식은 작업 과정에서 생명의 기운을 그윽하게 품고 있는 달항아리의 따뜻함을 느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달가량. 서도식은 작품 완성 후에 언제나 후련함과 기쁨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했다. 

서도식은 지난해부터 은과 황동 소재의 판재를 망치로 단조한 백자대호 형태의 항아리 작업을 펼쳐왔다. 차갑고 견고한 물성의 금속을 부드럽고 따뜻한 볼륨으로 구축해가는 과정을 자신의 삶과 자연의 기억을 겹겹의 사유로 담아내는 작업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형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망치의 흔적은 지난 시간의 기억과 인연으로 표면에 새겨진다. 겹겹이 차곡차곡 새겨진 흔적으로 인해 항아리는 곧 기억과 상념의 집합체가 된다”고 덧붙였다.  

서도식은 은항아리 일부에 투명 옻칠을 덧입히는 시도로, 일반 안료로는 드러낼 수 없는 오묘한 깊이감과 다채로운 색감을 뽑아냈다.

투병생활 중 선택한 마지막 과제
깊은 울림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


정영목 미술평론가는 “다양한 재료와 재질을 구사하고 실험하면서 보다 자유롭게 확장된 개념과 영역으로 금속공예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그 태도의 의미가 돋보인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에서 서도식은 9점의 항아리 부조 작품을 출품했다. 그는 붓이나 연필 같은 드로잉 도구 대신 망치를 사용해 화면 가운데를 볼록하게 쳐올려 부조 형식의 작품을 완성했다. 

서도식은 “금속판재 위에서 반짝이며 어지럽게 튀어 오르는 망치의 터치가 어느덧 둥그스름한 달과 별로 새겨진다. 윤곽 정리와 채색을 완료하고 나면 그것이 만들어내는 빛이 달빛처럼 부드럽게 드러난다. 이 순간 나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갤러리밈 관계자는 “40여년간 금속공예 작업에 매진해온 서도식 작가는 금속공예야말로 인간의 사유와 감성을 밀도 있게 응축해낼 수 있는 예술장르라는 점에 주목해 다양하고 도전적인 작업을 펼쳐왔다”고 말했다. 

부조 작품

이어 “건강의 고비를 겪어내는 과정에서 항아리의 모나지 않은 자연스러운 미감이 작가를 이끌었다. 둥근 항아리의 깊고 고요한 울림을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보내고 싶은 소망을 품어본다. 여기에 팍팍하고 꽉 찬 현대인의 삶에서 저마다 한 줄기 빛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도 더해본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다음 달 30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서도식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명예교수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이사장

▲개인전
‘Fine your light’ 갤러리밈(2022)
‘Find your light’ 유중아트센터(2021)
‘Landscape’ 갤러리 모이소 디자인하우스(2020)
‘On the road’ Gallery Royal(2018)
‘Combine Craft’ 목인갤러리(2010)
‘온고의 시정’ 목인갤러리(2006)
‘서도식 램프전’ 十玄門 갤러리(2003)
‘서도식 램프전’ 크라프트하우스(2001) 외 다수

▲수상
제12회 동아공예대전 동아공예상 수상(1984)
대한민국 공예대전 특선(1988~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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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