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맡긴' 캠핑카 구매자의 한숨

만든 놈, 판 놈, 개조한 놈 ‘한통속’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지난달 불거진 아리아모빌 사태(<일요시사> 1365호 ‘캠핑카 아리아모빌’ 먹튀 사태 전말)로 캠핑카 업계의 어두운 단면이 세간에 알려졌다. 영세 업체가 대부분인 캠핑카 업계 특성 탓에 고객 보호체계가 미진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A씨도 최근 이 사실을 통감했다. 캠핑카 개조 업체에 이어 제조사 ‘르노’까지 책임을 회피하자, A씨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A씨가 캠핑카를 구매한 것은 지난해 7월. 평소 차에 관심이 많았던 A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사실 출고 전부터 캠핑카 업계의 ‘그림자’를 알고는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런데도 A씨는 결국 출고를 강행했다. 그는 차량 제조사의 이름값과 판매사 직함에 대한 믿음을 ‘출고의 변’으로 들었다.

책임 회피

A씨는 “원래 차에 관심이 많아서 외제차를 여러 대 가지고 있다. 캠핑카 업계 사정도 대충 알고 있었다”며 “그래서 더 꼼꼼히 알아보고 결정했다. 르노가 만든 베이스 차량을 르노 공식 딜러사인 B사가 개조해 판매한다고 하니 문제없을 것이라 여겼다”고 말했다.

A씨의 캠핑카는 르노의 ‘마스터’ 차량을 개조해 만들어졌다. B사는 당초 3인승 밴으로 생산된 2019년식 차량을 가져와 판매하고 있었다. 남은 재고 일부를 처리하기 위해 캠핑카 판매 자회사를 설립하고, 개조‧정비 업체 C사와 협업했다.

A씨 차량은 2019년 11월 생산됐다. 생산한 지 1년8개월 만에 판매되다 보니, 소모품 노후화 우려가 자연히 따라왔다. B사는 계약 당시 A씨에게 “연식이 지나긴 했어도 운행은 전혀 하지 않은 차량”이라며 “배터리 등의 소모품은 새 제품으로 모두 교환한 뒤 출고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소모품 교환은 없었다. B사의 거짓말은 출고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겨울날, 돌연 차량 시동이 꺼지면서 들통났다. A씨는 점검을 위해 찾은 정비소에서 “배터리 수명이 35% 정도 남았다. 배터리를 교체한 흔적이 없다”는 소견을 들었다.

이외에도 A씨 차량에는 갖은 잔고장이 뒤따랐다. 배터리에 연결한 전선 일부가 까맣게 탄 채로 발견되기도 했고, 하부 엔진 떨림‧오디오 불량 현상이 잇따라 확인됐다. 올해 초에는 앞유리에 저절로 금이 가기도 했다. 

A씨는 마스터 차랑 동호회 등에서 비슷한 피해사례를 파악했다. 이를 기반으로 하자 책임 소재를 나름대로 구분했다. 배터리가 탄 것은 개조 과정의 문제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C사에 문의하고, 앞유리에 금이 간 것은 제조사의 귀책일 확률이 높다고 보고 르노에 문의하는 식이었다.

앞유리 금 가고 전선 타도
하자 생겨도 모두 ‘외면’

하지만 그 어느 곳 하나 시원하게 ‘책임’을 인정하는 곳이 없었다. 르노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무상 교체를 거절했고, B사와 C사는 서로 책임을 돌리기 바빴다.

A씨는 앞유리를 교체하기 위해 르노 서비스센터에 방문했다. 서비스센터에서도 “외부요인으로 인한 파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1차 진단을 내렸다. 이에 A씨는 무상 교체를 요구했지만, 회의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서비스센터 측은 “본사에 무상교환 여부를 문의하면 앞유리에 붙은 블랙박스를 문제삼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당 블랙박스가 ‘허가되지 않은 부착물’로 간주돼 파손 책임을 오히려 A씨에게 물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다른 지점에서도 비슷한 견해를 냈다. 


A씨는 분통을 터트렸다. 그 블랙박스는 B사에서 구매한 ‘옵션’이었기 때문이다. 공식 딜러사에서 단 블랙박스가 무허가 부착물이라는 게 납득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상수리 가능 여부를 문의해달라고 요청했다. ‘B사에서 구매한 블랙박스’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며칠 뒤 본사 방침이 전해졌다. 예상대로 “무상수리 불가”였다.

A씨는 블랙박스를 판매한 B사와 이를 부착한 C사에게 항의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저 양사가 벌이고 있는 책임 공방의 안건이 하나 더 늘어났을 뿐이었다.

B사는 각종 결함에 대한 책임을 계속 부인했다. “판 것은 우리지만, 만들고 고친 것은 우리가 아니니 그쪽에 문의하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앞유리에 대해서도 “왜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버텼다. B사는 “배터리값만 보상해주겠다”고 했다.

C사는 “애초에 협업 계약 때부터 우리는 차량 개조와 개조 부분에 대한 A/S, 이 두 가지만 맡기로 했다”며 “모든 책임은 B사에서 지기로 했으니 그쪽과 해결하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폭탄 돌리기’는 결국 A씨가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뒤에야 일단락됐다. B사는 “배터리 교환 및 관련 부대비용을 제공하고, 앞유리 무상 교체 요구가 관철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태도를 일부 바꿨다.

A씨는 B사가 알려준 르노 서비스센터 지점으로 차를 보냈다. 이때 들어간 탁송비는 A씨가 내야 했다. 이 지점에서는 “무상 교체가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후 앞유리 교체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두 달간 매달려온 일이 이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구나.” A씨는 속이 후련하면서도 허탈했다고 고백했다. 또 “르노 측의 일관성 없는 AS 규정에도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각자 책임 돌리기 급급 
업계 ‘고질병’ 해결책은?

르노 측은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르노 관계자는 “‘공식 딜러사’라고 해도 결국 허가를 받고 차를 판매하는 법인일 뿐, 별다른 추가 권한이 있는 곳은 아니다”라며 “르노는 이들이 독단적으로 판매하는 물품들을 공식 제품으로 인정한 바 없으며, 그 물품들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도 대신 책임지지 않는다. 이는 딜러 개인의 책임”라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찾은 서비스센터 중 2번째와 3번째 지점이 마스터를 수리할 만한 시설이 갖춰진 곳이었다”며 “두 지점에서 조언을 구한 전문가가 달랐고, 유리 파손과 블랙박스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들의 견해가 서로 달랐던 것이 ‘입장을 뒤집었다’는 오해를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르노 측 설명을 전해 들은 A씨는 “그게 이렇게 결과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며 “단순히 전문가 판정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본사 차원에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전문가들이 그 기준에 따라 공통된 판단을 내리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한편 B사는 배터리와 앞유리 외의 결함에 대해서는 여전히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본사 A/S 지침과 부딪히는 블랙박스 판매 행위에 대한 환불도, 사과도 거부하는 중이다.

이에 관해서는 캠핑카 업계의 ‘고질병’이 또 도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A씨의 사례 역시 영세 업체의 비전문·비체계가 고스란히 고객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라는 것.

A씨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A씨는 B사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개선 시급

A씨는 “돈 몇 푼이 아쉬워서 이렇게까지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당연히 누려야 할 고객의 권리가 이들의 ‘주먹구구식 운영’에 묻혀서는 안 된다”며 “이들이 강제로라도 책임을 다하게 해 이 같은 문제에 무감각한 업계를 일깨우는 게 목표”라고 힘줘 말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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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