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돌아온 불사조' 박주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

“걱정 마쇼잉∼ 호남 홀대 없응께”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불사조’가 돌아왔다.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직 제의를 전격 수락했다. 호남 4선 의원이 보수 진영 대통령 취임식을 총괄하게 되는 진풍경이 예고됐다. 아울러 박 위원장은 윤석열정부 초대 국무총리 하마평에도 올라 있다. 한편으로는 어색해 보이기도 하는 중용(설)의 연속. 많은 이가 박 위원장의 이력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다.

박주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은 1949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이름난 수재였다. 보성남초등학교, 보성중학교, 광주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1974년, 서울대 법대 졸업 후 응시한 사법시험(16회)에서도 수석으로 합격했다.

출세 가도
돌연 암초

이후 검사의 길을 걷게 된 그는 일명 ‘특수통’으로 승승장구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검찰 내에서는 호남 출신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순전히 ‘개인기’로 불리한 여건들을 이겨냈다.

영남 출신 일색이었던 대통령·검찰 수뇌부 아래에서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2·3과장, 서울지방검찰청 특수 1·2부장 등 검찰 요직을 두루 지냈다. 이때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외화 밀반출 사건, 손성훈 비리 사건 등 당대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 처리했다.

1997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15대 대선에 얽혀 있던 ‘김대중 후보 비자금 의혹’의 수사 유보를 건의했다.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발탁되는 계기가 됐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실 법무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직책은 향후 검사장 승진·검찰총장 후보군 부상 등이 사실상 보장되는 최고 요직으로 꼽혔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박 위원장을 “나와 역사를 함께 쓸 사람”이라고 칭할 정도로 신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5년간 순항하던 그의 출세 가도에도 암초가 나타났다. 1999년 벌어진 ‘옷 로비 의혹 사건’에서 공문서 유출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청와대에서 쫓기듯 나와야 했다. 이후 해당 혐의는 치열한 법정 다툼 끝에 무죄가 선고됐다.

이듬해인 2000년에는 ‘명예 회복’을 명분으로 정계 입문을 선언,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하지만 그의 정치인생은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제16대 총선에서 보성‧화순 지역구 공천을 신청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결국 첫 선거부터 탈당 후 무소속으로 나서는 모험을 감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무소속임에도 불구하고 득표율 59.92%를 기록하면서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선 후에는 다시 새천년민주당으로 복당했다.

정계 입문 뒤에도 ‘친정’인 검찰과의 악연은 계속 이어졌다. 검찰 수사로 정치생명에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다.

초선 의원 임기 막바지이던 2004년, 검찰은 나라종금 뇌물수수와 현대건설 비자금 혐의 2가지를 묶어 박 위원장을 또다시 구속 기소한다. 당시 그는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와 “차라리 정치를 그만두라고 하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악재는 다시 이어졌다. 그가 구속돼있던 때, 지역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보성군은 고흥군에, 화순군은 나주시로 병합됐다. 박 위원장은 고향인 보성이 포함된 고흥·보성 지역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옥중 출마까지 감행했지만, 그는 결국 17대 총선에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낙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두 혐의는 훗날 모두 무죄 판결이 났다. 나라종금 뇌물수수 혐의는 같은 해 11월, 현대 건설 비자금 혐의는 2005년 5월 확정됐다.

결백이 입증된 날, 박 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의 서울 동교동 자택을 찾아 위로를 구했다고 전해진다. 정치적 부담을 털어낸 후에는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민주당에 복당하는 등 재기를 준비했다. 그러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에 출마한다.

처음에는 전남도지사 예비후보로 선거를 준비했다. 그러다 한화갑 당시 당 대표의 의중에 따라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전략공천됐다. 본선에서는 7.7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낙선했다.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에 이은 3위였다.

호남 괄시 
이겨냈다?

그는 18대 총선에서 새 출발을 알렸다. 줄곧 출마해오던 ‘고향’ 보성을 떠나 통합민주당 후보로 광주광역시 동구에 출마했다. 광주 동구는 금남로와 충장로 등 광주 중심가를 포함한 지역구로, 예전부터 ‘호남 정치 1번지’로 불려왔다.

박 위원장은 선거운동 당시 “광주시장과 동구청장, 지역 당원 5000명이 광주 동구로 와달라고 요청했다”며 “처음에는 주저하고 사양했지만 광주 동구의 낙후된 모습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라진 동구의 빛을 반드시 되살려놓겠다”고 출마의 변을 전했다.

그는 이곳에서 88.74%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며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당대 최고 득표율이었다. 여세를 몰아 당 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며 정치적 입지를 쌓았다.

19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 출마를 준비했지만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민주통합당이 19대 총선에서 광주 동구 지역구에 무공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때 광주 동구에서 발생했던 ‘불법 선거인단 모집’ 사건의 여파였다. 

민주통합당 선거운동원으로 알려진 조모씨가 2012년 2월26일 선거인단 대리 모집 의혹으로 선관위 조사를 받던 도중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광주지검은 민주통합당 국민경선을 앞두고 사조직을 결성, 활동한 혐의로 동구 구의원과 통장 여러 명을 구속하기도 했다. 

지역구 현직 의원이었던 박 위원장도 수사망에 올랐다. 검찰은 그를 선거 사조직 운용·사전선거운동 혐의 등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사법고시 수석 출신…호남 4선 중진
4번 구속 4번 무죄 파란만장 정치역경


금품·동원 선거 논란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민주당 지도부는 진상조사단 파견·동구 전략공천 지역구 선언 등 비판 여론 진화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고육지책으로 ‘무공천’ 방침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박 위원장이 이에 반발해 탈당·무소속 출마하면서 내홍은 더욱 확산됐다. 당시 민주통합당을 탈당하고 광주 동구에 출마한 후보만 3명에 달했고, 다른 진보 정당 후보들도 가세하면서 범진보진영 후보들의 각축장이 됐다.

혼전 상황에서, 현직 의원이라는 강점을 살린 박 위원장이 결국 당선됐다. 18대 총선에서 전국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던 박 위원장은 19대 총선에서 전국 당선인 중 최저 득표율(31.55%)을 기록했다.

당선 후에도 위기는 계속됐다. 박 위원장은 ‘불법 선거인단 모집’ 사건으로 열린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 중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돼 구속됐다가 선고 후 석방되는 고초도 겪었다.

연말에는 무소속 의원 신분으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 지지 의사를 발표하려다 자신의 지지자 30여명에게 끌려가 갇혀 기자회견을 열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1년이 넘는 법정 다툼 끝에, 대부분의 혐의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다만 동장들에 대한 지지 호소 부분만 죄가 인정돼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으며 의원직은 지켜냈다.


박 위원장은 판결 직후 ‘판결에 대한 소회’라는 입장을 내고 그간 겪어온 심적 고통을 토로했다. 그는 총 5번의 기소돼 4번 구속됐고, 구속된 사건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불사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는 입장문에 “그동안 ‘4번 구속, 4번 무죄’를 경험했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정치 역경이었다”며 “상상할 수 없고 유례가 없는 동서고금 전후무후한 법살(法殺)이었다”고 적었다.

이후에는 전보다 순탄한 정치활동을 이어왔다. 통합신당 창당을 추진하다 국민의당으로 통합한 뒤, 최고위원 지명·20대 총선 당선(광주 동·남 을, 54.7%) 등을 시작으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제20대 전반기 국회부의장을 역임했고, 국민의당 대선 예비후보로 나서 예비경선을 통과하기도 했다. 본선에서는 안철수 후보의 독주체제 아래에서 3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지만 대선 패배 이후 비상대책위원장에 선출되는 등 중진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2018년 2월, 바른미래당 창당에 합류해 유승민 전 의원과 공동대표를 맡은 것을 마지막으로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4개월 뒤 치러진 제7회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바른미래당 해체 후 호남 다선 의원들과 민생당을 창당했지만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21대 총선에 출마해 낙선했다. 당의 좁은 입지와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내분 등이 패인으로 지목됐다.

‘친정’ 검찰
인연과 악연

박 위원장이 다시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낸 건 지난해 말부터다. 박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또 다른 호남 4선 의원인 김동철 전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함께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 공개 지지선언에 나섰다.

그는 지지선언문에서 “공정과 정의, 상식은 우리 두 사람과 윤 후보가 만나는 지점”이라며 “정파를 떠나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고 본다.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우리가 국민의힘 소속 윤 후보를 선택한 것은 그가 참된 공정과 정의를 실현할 유일한 후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국민의힘 선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전면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당시 대선후보)을 도왔다. 선대위 동서화합미래위원장도 겸임하며 윤 당선인이 호남 민심 소구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지난 1월 선대위가 해체된 이후에도 광주·전남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윤 당선인을 계속 지원해왔다. 당선 이후에는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윤 당선인이 지난 14일, 직접 연락해 “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혜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브리핑에서 “박 위원장은 워낙 수많은 정치 역정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을 바꾸는 데 헌신적인 역할을 해왔다. 정의롭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완성하기 위해 국정 통합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은 윤석열정부의 가치와 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며 “취임식 준비 위원장으로서 윤 당선인의 가치와 철학을 국민에게 전달하기에 가장 적임자”라고 인선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박 위원장은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임명 비화를 밝혔다. 그는 “처음에는 완곡히 사양했는데 재차 요청해 수락했다”며 “윤정부 출범부터 앞으로 끝날 때까지 성공하기 위해서는 조금의 밀알의 역할이라도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보수진영 대통령 취임식 총괄 진풍경
국무총리 등 차기 정부 역할론 ‘솔솔’

박 위원장은 임명 직후부터 위원회 구성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그는 같은 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담당부처인 행정안전부로부터 연락이 오면 완벽한 취임식과 취임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탁월한 위원들을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박 위원장 설명에 따르면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는 위원 8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위원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전례를 살펴보고 학계, 관계, 일반 국민 대표들을 망라해 대한민국 미래 비전을 담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과 경륜을 가진 분에게 기회를 드릴 생각”이라고 답했다.

또 박 위원장은 5·18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취임사에 포함할지 실무진과 논의할 예정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 16일 <해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윤 당선인은 5·18정신이 그동안 헌법 전문에도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수차례 광주 정신을 강조해왔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대통령 취임사에서 5·18정신이 명시적으로 언급된 적은 없다. 논의가 구체화된다면 윤 당선인은 취임사에서 5·18정신을 언급한 최초의 대통령이 되는 셈이다. 만약 실현될 경우, 국민 통합을 논하며 ‘5·18정신을 계승한다’ 정도로 짧게 언급될 것이라는 게 주된 관측이다.

정계 일각에서는 박 위원장이 호남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관련 논의가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박 위원장 역할론은 인수위원회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이 차기 정부 초대 국무총리 하마평에도 오르내리고 있다. 다만 인수위원회 측은 아직 국무총리 인선과 관련해 어떤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박 위원장 역시 “전달받은 바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지난 16일 KBS라디오 <최강욱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크게 기대하거나 바라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내가 바란다고 오는 것도 아니고, 국민이 평가해주셔야만이 가능할 수 있는 일”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인수위까지?
총리직까지? 

정치인생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화려하게 재기해왔던 ‘불사조’ 박 위원장. 21대 총선 낙선의 수모를 딛고 또다시 국내 정치 한복판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과연 그의 이번 여정은 어디까지일까. 그 종착지가 인수위원회일지, 국무총리실일지 온 정계가 주목하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인수위 호남 인사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안에는 박주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 외에도 호남 인사들이 여럿 포진돼있다.

대표적으로는 김동철 전 의원,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포럼 이사장 등이 있다.

김 전 의원은 광주 광산구에서만 내리 4선을 쌓은 호남 중진 인사로 지난해 10월, 박 위원장과 함께 윤 당선인 공개 지지를 선언한 바 있다.

인수위에서는 윤 당선인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부위원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국민의힘 소속 의원 중 유일하게 호남(전라북도 남원시·임실·순창군)에 지역구를 둔 인사다.

제21대 총선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지난해 12월 윤 당선인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고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인수위에서는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에 임명됐다.

장 이사장은 국민의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정무비서관을 지낸 동교동계 핵심 인사다. 전라남도 고흥 출신으로, 그간 ‘DJ 적자’라고 불려왔다. 

그는 대선 기간 중 윤 당선인에게 거침없이 ‘쓴소리’를 해온 것으로 전해지며 인수위에서는 정무특보를 맡았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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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