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박빙 대선’ 이재명에게 듣는다

“잘 알고 잘해야 대통령감”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정치인들의 속만큼 알 수 없는 게 없다. 대변인이나 보좌관이 잘못 전달할 때도 있고, 언론이 잘못 해석해 보도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본인에게 직접 들어봐야 한다. <일요시사>는 대선을 코앞에 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속을 제대로 알기 위해 그에게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코로나19 위기와 동유럽의 전쟁 위기, 연이어 터져 나오는 후보 리스크 속에서 대한민국의 2022년 대선은 혼란스러운 국면에 빠져 있다. 요즘 대선판은 대선후보들에 대한 생산적인 뉴스보다는 무의미한 마타도어와 어지러운 국제정세 뉴스에 얼룩져있고, 심지어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는 ‘남는 게 없는’ 말들만 쏟아지고 있다.

연이은 충격적인 뉴스에 유권자들은 강제로 ‘알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 향후 5년을 책임질 대통령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새도 없이 국민들은 귀중한 하루하루를 무의미한 뉴스에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후보 본인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은 투표하기 전 이뤄져야 할 필수요소다.

<일요시사>는 잠시나마 국민들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본인’의 뜻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 후보에게 각종 현안과 일자리, 저출산, 청년, 부동산정책에 대해서 물었다. 다음은 이 후보와의 일문일답. 

-‘나는 OOO 대선후보다’라고 스스로를 정의해주세요.

▲‘실력을 인정받아 이 자리까지 온 유능한 대선후보’라 자임하고 싶습니다. 저, 이재명은 오로지 실력과 진정성만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국민께 검증받은 인물입니다. 소년공에서 인권변호사, 시장, 도지사를 거치면서 실력과 진정성을 검증받았습니다. 


제가 처음 성남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는 어르신들이 저를 좋아하지 않아서 동네 경로당에 들어가지도 못했었는데, 재선 때는 어르신들이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더불어민주당에 투표했다. 이재명이 일을 잘해”라고 하시며 칭찬해주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역대급 가족 리스크 대선’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두 후보 모두 가족 이슈로 국민께 실망과 혼란을 드린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모든 것은 다 제 불찰이며, 이번을 계기로 저와 가족, 주변까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겠습니다. 국민 앞에 송구스럽고 백번이라도 사죄하겠습니다. 

잘못된 것은 시정하고, 책임질 것이 있다면 책임지고, 잘못 알려진 부분은 적극 소명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국민 여러분께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한 가지는 저는 이제까지 공적 업무를 수행하면서 권력을 남용하거나, 사적인 감정에 치우쳐 판단을 그르친 적은 없다는 점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국민께서 판단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저 국민께 더 다가가고, 국민의 다양한 현장 목소리를 경청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더 많은 국민의 마음을 듣고, 아픔을 보듬고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적 모습으로 ‘일하는 것 보니, 호감이다’ ‘믿음이 간다’의 신뢰를 드리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특검 도입은 아직 찬성하시나요? 지금이라도 특검을 도입해서 대통령이 되신 후에라도 공정하게 수사받으실 건가요?


▲신속하게 특검하자는 일관된 입장을 내왔고,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현재 유불리 따지며 시간 끌기하는 것은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입니다. 저와 민주당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건 없이, 성역 없이, 지체 없이, 3무(無) 특검이 필요하다고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국민 의혹 해소를 위해서라도 대장동 사건 시작인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수사’를 포함한 특검이 필요합니다. 한편 최근 윤석열 후보가 50억 클럽 당사자인 곽상도 전 의원의 구속을 두고 ‘편파 수사’ 의혹을 제기한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검찰을 압박해 제대로 된 수사를 막고 진실을 숨기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선의 승패와 상관없이 재수사나 특검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후보는 국가 운명을 책임질 사람이고, 후보를 포함한 그 측근, 가족들의 범죄 혐의는 전부 명명백백하게 규명되어야 할 것입니다.단 승자와 패자, 모두가 제대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며, 당선인에겐 면죄부를 주고, 선거의 패자를 보복하는 식의 수사나 특검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호남 지지율 부진의 원인은 무엇이며 해결방안은 있으신가요?

▲최근 호남에서 민주당에 실망하신 분들이 계신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민주당 후보가 더 잘해나가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겸허히 그 뜻을 받들어 민주당의 후보답게 ‘잘하기 경쟁’으로 더욱 열심히 정책을 알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호남 민심은 ‘묻지마식 지지’가 아닌 ‘전략적 선택’을 하시는 것이 특징입니다. 역대 대선후보자에 대한 지지율을 보면, 대선 직전까지 고민하신 뒤에, 마지막에 꼭 필요한 선택을 해주셨습니다. 호남 유권자들은 대선에서 항상 시대정신에 부합한 후보를 지지해주셨습니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공정’과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권자들께서는 시대정신에 부합한 후보가 누구인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호남 유권자들께 호남정신을 계승해 좋은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실현해 갈 수 있는 인물은 저, 이재명뿐임을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가상화폐 시장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피할 수 없다면 앞서가야 합니다. 최근 가상화폐 투자시장의 거래액이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계속 내버려둔다면 가상자산 투자자 피해가 속출하고 블록체인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등 사회적·경제적 손실이 우려됩니다.  

따라서, 합리적인 법 제도를 발 빠르게 마련하고 공정한 거래 질서를 견고하게 구축해야 합니다. 가상화폐 공개와 증권형 가상자산 발행 허용을 검토하고, 다양한 가상자산이 만들어지고 투자될 수 있도록 디지털 자산 생태계를 구축하겠습니다.

-과세 문제는?


▲과세 문제는 과세 결정이 아니라 준비 여부가 중요합니다. 가상자산을 무형자산으로 봐야 할지, 해외거래소를 통한 거래 부대비용은 어떻게 인정해야 할지 등 아직 논의할 사안이 많이 있습니다. 이에 가상자산 과세를 1년 늦추고, 투자자 보호 방안을 마련해 실행하고자 합니다. 손실을 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손실을 5년간 이월 공제하고, 투자수익의 5000만원까지 비과세하겠습니다.

-일자리 창출을 ‘공정’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이유는?

▲불공정한 산업생태계 공정화를 말씀드린 것은 우리나라 일자리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불공정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고용을 촉진하지 못하는 문제만 해결해도 일자리를 많이 늘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발생하는 불공정은 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등으로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을 악화시시키며 발생합니다.

그 결과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돼 저임금의 노동환경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관계가 공정해지면, 중소기업의 경영실적이 좋아지고, 당연히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도 올라가며, 대기업에 버금가는 근로 환경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이러면 중소기업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공공 일자리만으로는 일자리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당연히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할 것입니다.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면 규제는 과감히 혁파할 것입니다. 

“공정 바로서야 일자리 창출”
“내가 바로 청년들의 들러리”


-저출산의 주된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출산의 악순환은 지금 세대보다 미래세대가 더 행복하고 잘살 것이라는 희망이 있을 때 비로소 끝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출생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출산을 장려하고, 육아의 부담을 줄이는 정책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래에 희망을 준다면 결혼을 미루거나 아이 낳기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자 뺏기 놀이가 아니라 의자 수를 늘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장의 회복과 기회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저는 아래와 같은 정책을 통해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에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출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은 대책은 있습니까?

▲먼저 ‘청년기본소득’을 통해 적은 돈이지만 청년들이 학업과 자기계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여유를 확보해주겠습니다. 그렇게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자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청년기본주택’은 내 집을 갖고 싶은 청년들의 꿈을 실현시킬 것입니다. 나아가 생애 최초 주택 구입 시 주식담보대출(LTV) 90%를 통해서 내집 마련의 꿈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또, 대부분 청년의 경우 현재 소득이 적기 때문에 대출 규제에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래 소득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개선해 누구나 자기 집을 가질 수 있게 하겠습니다.

-사법시험 일부 부활은 어떤 배경에서 나온 걸까요?

▲대학을 나오지 않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도록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사법시험을 통해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판사나 검사,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대학 4년 졸업 후 다시 3년 과정의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해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만 합니다.

대학 및 로스쿨 7년 등록금만 해도 평균 7000만원에서 많게는 9000만원 이상이 들어 일반 서민들과 경제적 약자는 법조인이 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시대착오적 발상이란 법조계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반론하실 건가요?

▲법조인 양성 시스템을 로스쿨, 그것도 야간이나 온라인 로스쿨도 없이 주간에만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이 오히려 시대착오적 발상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로스쿨 제도를 두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로스쿨을 나오지 않더라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2030 계층이 이번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후보님의 어떤 점이 청년들에게 매력적일까요?

▲지금 우리 2030세대는 특정 진영논리에 따르지 않고, 사안에 따라 선택을 달리하는 ‘실용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좌우, 진보·보수 가리지 않는 ‘실용주의자’입니다. 진영을 떠나서 좋은 정책, 실력 있는 인사라면 함께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저의 실력과 실적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제가 윤 후보님을 포함한 다른 후보님들보다 2030 세대에 더 어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대리인’입니다. 따라서 국민이 원하는 ‘더 나은 삶’을 만들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제가 가진 민생 해결에 대한 책임감은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경험하면서 더욱 커졌습니다. 제가 가진 실력과 추진력으로 2030의 어려움과 민생 문제를 해결해나가겠습니다. 

“호남 유권자들을 믿는다”
“내 집 마련 기간 1/10로”

-청년들의 선대위 참여가 사실상 ‘들러리’가 아니냐는 평가가 있는데, 어떻게 반론하실 건가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립니다. 오히려 ‘제가 청년들의 들러리’입니다. 선대위 청년들은 ‘스스로’를 위한 선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청년세대를 포함한 모든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요, 대리인일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청년 선대위는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청년 선대위의 대표적 역할은 시민(청년)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 뜻을 받들어 후보의 공약으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소확행 공약 중 하나였던 ‘탈모치료약의 건강보험 적용 확대’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공약은 청년 선대위가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리스너 프로젝트’라는 프로그램에서 출발한 공약입니다. 많은 분이 필요성을 공감해주셨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청년 선대위는 이재명을 잘 활용하고 있고, 이재명은 청년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로서의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당선되시면 청년들을 어떻게 정부에 참여시키실 건가요?

▲제가 청년일 때도 기성세대가 당시의 청년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 단절 현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세상을 지향하는지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기후위기, 저출생과 고령화, 산업전환 등 다가오는 다양한 문제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미래세대에게 결정권을 맡기는 것이 더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청년은 직접 정책에 참여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청년들이 정부 곳곳에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습니다. 

정책설계, 예산편성, 집행까지 청년이 직접 관여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청년정책을 담당하는 수석비서관 및 청년 특임장관을 임명하겠습니다. 범정부 청년정책 총괄 컨트롤타워인 국무총리 산하에는 청년정책조정위원회의를 둬 청년위원을 확대하겠습니다.

또 각 부처 ‘청년예산 총액배분 자율 편성’ 보장하고, 청년 당사자가 이끌어가는 청년의회를 상설하겠습니다. 국민참여예산에 청년참여예산 쿼터제 도입 등을 도입해 청년 정책에 대한 결정과 집행 과정에 청년들의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평균 월급 기준, 내 집 마련 기간이 취직 후 20년에서 30년이라고 합니다. 후보님은 내 집 마련을 몇 년까지 단축시킬 수 있으신가요?

▲‘몇 년 단축’이라는 말보다, 주택 공급을 확실하게 늘려 내가 살아갈 집을 마련하는 데 부담을 덜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말씀 드립니다. 주택 마련은 시장상황과 연계되기 때문에 언제까지 집을 마련할 수 있다고 단순하게 단정 지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몇 가지 정책으로 그 기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동산 정책 발표를 통해, 전국에 총 311만호의 주택을 신속히 공급하고, 인근 시세의 절반 정도인 반값 아파트 공급, 개인 선호와 부담 능력에 맞는 다양한 주택을 공급할 것을 약속드렸습니다.

박근혜정부의 공급가격 기준을 조성원가 수준으로 다시 환원한다면 반값 아파트 공급도 가능할 것입니다. 집 값의 절반을 차지하는 토지 가격 부담을 줄인다면 훨씬 저렴한 주택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 계획들이 모두 이뤄진다면, 최대 기존 기간의 1/10 정도 수준까지는 단축시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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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