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특집인터뷰① 대선판 씹어먹은 '무야홍' 홍준표

“윤석열 의혹, 당이 나서지 마라”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정치권에 ‘홍준표 돌풍’이 불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바짝 붙은 무서운 기세에 야권의 대선 판도가 바뀔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요시사>는 추석특집으로 그의 상승세를 집중 조명했다.

26년 정치 인생. 그의 예상대로였다.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은 추석 전후로 윤석열 전 총장을 앞서는 ‘골든크로스(지지율 역전 현상)’를 약속했고, 그 약속은 현실이 됐다.

홍 의원은 ‘무야홍(무조건 야권후보는 홍준표)’ ‘돌돌홍(돌고 돌아 홍준표)’ 등의 신조어를 남기며 남다른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선거는 기세라고 했다. 2021년 추석은 홍 의원이 역전극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홍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고발 사주 의혹’으로 하락세를 타고 있는 윤 전 총장을 두고 “후보가 확정되고 난 뒤에 그 후보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면 (당이)막는 것이지, 경선 기간 중 특정후보를 위해 당이 나서는 것은 난센스”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갑자기 떠밀려 나온 사람과 다르다”며 관록에 걸맞은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은 홍 의원과의 일문일답.

-‘대선 재수생’이다. 20대 대선에 출마를 선택한 이유는.

▲무상 포퓰리즘이 판치는 나라가 돼가고 있다. 오늘만 살 것처럼 거위의 배를 가르고, 청년과 미래세대에게 빚더미를 물려주는 퍼주기 대한민국이 돼서는 안 된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이 나라를 바로잡아 정상 국가로 만들고자 한다. 선진국 시대를 열어 국제사회에서 선진국 대접을 받는 나라, 풍요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


-문재인정부에 대한 평가는. 

▲문정부는 5년 동안 대한민국이 70년간 이뤄놨던 모든 체제를 허물어뜨렸다. 정치·경제·사회·문화·외교·대북 정책이 모두 그렇다. 나라를 정상 국가로 만들고, 선진국 시대를 열기 위해서라도 정권은 교체돼야 한다. 그리고 선진국 시대의 원년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에 걸맞은 국정 대개혁이 시급하다.

-최근 홍 의원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확장성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결실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2040세대 지지층이 돌아섰다. 우리 당은 지금까지 5060세대와 영남을 지지 기반으로 선거를 치러왔다. 하지만 저는 전략을 달리 했다. 반대 진영, 젊은 층과 소통하기 위해 2년 이상 노력했다. 26년간 정치하면서 이미 털릴 건 다 털렸다. 이제 더 털릴 것이 없는 ‘무결점’ 후보기도 하다.

-추석 전에 ‘골든크로스’를 장담했다.

▲이미 ‘골든크로스’가 일어난 여론조사 결과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골든크로스를 추석 전후로 예상했는데 조금 일찍 왔다. 현재 추세라면 추석 이후 윤 전 검찰총장을 압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30세대의 지지율이 눈에 띈다. 


 ▲2030세대는 문정부에서 꿈을 잃은 계층이 됐다. 그 꿈을 다시 꾸게 해줄 사람을 찾다 보니 정책적인 측면이나 비전을 가진 사람이 저 홍준표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유튜브 채널인 홍카콜라TV에서 청년 콘서트, 직장인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 제 생각을 적극적으로 알려왔다. 그러다 보니 2030세대에서 ‘무야홍(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이라는 신조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무야홍의 뜻이 ‘무적 야권후보 홍준표’로 바뀌었다.

-이들을 공략할 관련된 공약도 준비했나.

▲공정한 제도 아래서 실력으로 클 수 있도록 입시 제도를 혁파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로스쿨, 의전원, 국립외교원 등 음서제도를 폐지한 후 사법고시, 외무고시를 부활시킬 것이다. 모병제와 지원병제 전환 검토 등 군 공약들도 준비돼있다. 서민 자녀들이 계층 간 도약할 수 있도록 희망의 사다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호남 지역에서도 지지율 두각을 보인다. 일각에서는 ‘역선택’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오는데.

▲역선택 때문이 아니라 지역 맞춤 정책 때문이다. 광주 전남에서는 무안국제공항을 관문공항으로 만들어 이 일대에 첨단산업을 유치하겠다는 정책을 제시했다. 전북에서는 이 지역의 희망인 새만금사업을 민간 주도의 홍콩식 개발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제시했다. 

무서운 상승세 호남·청년 사로잡다
‘윤 또 이겼다’ 대역전극 판도 급변

-호남 지역과의 인연도 회자되고 있다.

▲1980년 6월부터 1년간 전북 부안에서 군 복무를 했다. ‘전북 사위’(홍 의원의 부인 이순삼씨는 고향이 전북 부안)라는 별명도 알려져 있다. 또 광주지검 검사(1991년 3월~1992년 7월) 시절 조폭 소탕에 나선 일화도 있다. 이 때문에 지금도 ‘광주의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호남 분들이 우리 당에는 거부감이 있어도 저에게는 거부감이 덜한 편이다. 야권 후보가 된다면 이번 대선에서 호남 득표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

-대선후보로 나서면서 7대 국정개혁 과제를 발표했다. 

▲지난달 17일 출마선언을 통해 G7 선진국 시대를 위한 국가 정상화와 국정 대개혁의 7대 과제를 발표했다. 정치 행정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자 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천명하고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선진국형 경제시스템을 갖출 것이다.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다. 세금 나눠먹기인 공무원과 공공 부문 일자리가 아니라 민간 일자리 창출에 우선 순위를 두겠다. 문정부에서 무너진 공정을 바로 세우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 아울러 선진국 사법 체계 구축과 외교 안보 기조를 확 바꾸겠다. 

-특히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면. 


▲경제를 활성화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다. 문정부가 코로나19 방역 ‘쇼’를 하면서 국민과 자영업자 등 모든 경제 주체들을 옥죄인 지 1년6개월이 지났다. 이제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경제 주체들이 다 무너지고 있다. 이걸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업이 제일 우선시 돼야 한다고 본다.

-지역구의원, 경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공약은.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하늘’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바로 4대 관문공항이다. 1960~1970년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고속도로였다면 21세기 경제발전 원동력은 하늘이다. 수도권은 인천공항으로 가고, 광주·전남은 무안, 부산·울산·경남은 가덕으로, 충청과 대구·경북은 묶어서 TK 신공항으로 가야 한다.

현재 여객과 물류 98%가 인천공항으로 나간다. 그렇다 보니 수도권 집중 현상이 있을 수밖에 없다. 4대 관문공항을 만들어 지역 균형발전을 꾀하고자 한다. 4대 관문공항으로 대한민국 산업을 재배치할 것이다. 

-예상되는 효과는.    

▲공항을 만들면 인프라가 갖춰진다. 기업이 지방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권역별 관문공항 주변에 첨단 기업들이 모이면 산업 재배치를 유도할 수 있다. 공항 근처는 저렴한 공장 부지니 부담도 없다. 유럽 직항로 등을 이용해 물류 부담 없이 신속하게 수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기업이 모이면 근로자들이 모이고, 지역대학과 해당 기업의 산학 연계를 도모할 수 있다. 자연스레 지역 인재들이 서울로 떠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대권후보로서 본인의 경쟁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야 후보를 통틀어서 국정 경험이 가장 풍부하다. 나라를 통치할 준비가 돼있다. 지난 4년 동안 내 나라를 선진국 시대의 원년이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정책 등 모든 면을 준비했다. 저의 국정철학과 국가운영의 기본 이념은 좌우 이념을 넘어선 국익 우선주의다.

국익 우선과 국민 중심의 나라 경영으로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을 것이다. 전 국민통합을 이뤄 선진국 시대를 열 수 있는 검증된 든든한 후보다. 갑자기 떠밀려 나온 사람하고는 다르다고 감히 자부한다.    

-이준석 대표가 헌정 사상 최초로 ‘30대 당 대표’에 당선됐다. 

▲지난 번 당 대표 경선에서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 중 이 대표를 지지한 분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선거함을 열어보니 이 대표가 당선됐다. MZ세대의 반란이었고, 이 반란으로 출발해 나중에 60대 이상까지도 따라오게 만들었다. 

-이 대표에 대한 평가는.

▲30대 후반의 젊은 당 대표이자 정치 경력도 10년 밖에 되지 않은 이 대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논하는 것은 구시대의 잣대라고 본다. 당원들과 국민들이 젊은 당 대표를 만든 것은 우리 당에게 젊은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당 대표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이 대표의 방식으로 장을 이끌어 나가는 게 오히려 정권 재창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발 사주 의혹 “당이 나서는 건 난센스” 
보수의 노무현 “난 털릴 것 없는 무결점”

-여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윤 전 총장에 대한 평가는.

▲상대 후보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26년간 검찰 사무를 하신 분이 날치기 공부를 해서 대통령 업무를 맡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최근 정치권에 터진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건에 대한 의견은.

▲이 의혹을 두고 어느 후보의 유불리를 떠나서 당에 무슨 피해가 올까, 우리 당이 휩쓸려 들어가는 경우가 생길까 걱정이다. 특정 후보와 관련된 사건에 당이 휩쓸리면 곤란하다. 당이 적절히 잘 대처해야 한다. 후보 진영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이 나설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후보가 확정되고 난 후에 그 후보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면 당이 막는 것이지, 경선 기간 중 특정 후보를 위해 당이 나서는 것은 난센스다. 후보 개인 진영의 문제니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고, 김웅 의원을 통해 진실을 밝히도록 해야 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평가는.

▲대통령이 되려면 최소한의 인성과 자질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분이 뱉어 놓은 말들을 보면 인성과 자질에 문제가 좀 있다. 수신제가(修身齊家)가 안 되는데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가 되겠는가. 특히 무상 포퓰리즘과 똑같은 기본 시리즈로 국민들을 현혹하는 것을 보고 ‘경기도의 차베스’라는 생각이 든다.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에게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선수가 심판을 따르라고 할 때는 심판의 공정성이 전제돼야 한다. 심판이 특정 선수의 편을 들고 있을 때 다른 선수들이 할 일은 그 심판을 기피하거나 그 경기를 보이콧 할 수 있다. 공정성만 회복하면 그 누구도 심판의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이미 끝난 게임의 룰을 다시 특정 선수를 위해 고치겠다고 하는 심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나.  

-최근 화두가 된 언론중재법에 대한 입장은.

▲청와대 앞에서 ‘언론중재법 개악, 중단해주십시오’라는 팻말을 들고 1인 시위까지 했다. 민주당 대선을 위해서라도, 문재인 대통령 퇴임 후 안전을 위해서라도 언론 악법을 중단해야 할 때다. 언론중재법에서 논의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원래 영미법 계통에서 통용되는 손해배상 제도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륙법 계통에서는 맞지 않다. 지난 2010년 재벌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거나 침탈할 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발의해 도입한 적이 있다. 이런 제도를 언론에 적용시킨다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봉쇄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적극 반대한다. 

-윤희숙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확산되면서 대권후보들 역시 부동산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 대선주자들 가운데 처음으로 ‘대선주자 모두 부동산 검증을 하자’고 제안했다. 대권후보들은 당연히 부동산 검증을 거쳐야 한다.

-봉하마을에서 ‘2002년 노무현처럼’이라는 문장을 방명록에 남겼다. 홍 의원님께 노 전 대통령의 의미는.

▲진보에 노무현이 있었다면 보수에는 홍준표가 있다. 2002년 노무현 후보처럼 국회의원들이 곁에 없어도 뚜벅뚜벅 내 길을 갈 것이다. 당원과 국민만 보고 묵묵히 내 길을 갈 것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그 같은 문장을 남겼다.

-추석을 맞이해 <일요시사> 구독자 분들에게 덕담 부탁드린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국민들이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위기에 아주 강합니다. 머지않아 이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민족 대명절인 한가위를 맞아 <일요시사> 구독자 여러분들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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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