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특별인터뷰③ 종교계 큰어른의 나라 걱정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내가 아프면 상대도 아픕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바야흐로 갈등의 시대다. 남북·동서·남녀·세대·빈부 등 어느 하나 갈라지지 않은 곳이 없다. 역설적으로 통합이 요구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동안 국민통합에 앞장서왔던 종교의 역할에 의문부호가 붙는다. <일요시사>가 추석을 맞아 종교계 큰어른,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을 만나 그 해법을 청했다. 

오후 6시20분. 전남 구례 소재의 화엄사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운고각으로 모여들었다. 저마다 자리를 잡은 사람들 사이로 북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범종각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땅거미가 느릿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한낮의 땡볕이 무색하게 서늘한 바람이 스쳤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화엄사의 저녁 모습이었다. 

19교구 본사
50여개 말사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 품은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25교구 중 19번째 교구다. 정확한 명칭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지리산 대화엄사’. 전남 구례군에 위치한 우리나라 대표 사찰 중 한 곳이다.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고승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만 1400~1500년에 이르는 ‘천년 고찰’이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보제루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돌면 화엄사의 가람 배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 보제루 정면으로 대웅전이, 좌측으로 각황전이 우뚝 서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는 대웅전이 가장 큰 건물인 경우가 많은데, 화엄사에서는 각황전이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국보67호로 지정돼있는 각황전은 국내 최대 목조 건물이다. 원래 이름은 장육전이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사라졌다가 조선 숙종 때 재건했다. 각황전이라는 이름도 숙종이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황전 뒤편으로 난 108계단을 오르면 역시 국보(35호)로 지정된 4사자 3층석탑이 나온다. 4사자 3층석탑은 현재 보수 중으로 추석 명절 이후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은 이 108계단 너머를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꼽았다. 덕문 스님은 “그곳에서 2년 정도 살 기회가 있었다. 화엄사를 가장 대변하는 곳”이라며 “바깥에는 태풍이 불어도 그 공간만큼은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다. 화엄사에서 가장 고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달 15일 오전 화엄사 삼전에서 덕문 스님을 만났다. 덕문 스님은 2017년 4월 화엄사 주지로 취임한 이후 올해 3월 재임에 성공했다. 여수·순천·곡성·광양·구례 등 전남 동부권 다섯 지역을 관장하는 교구이면서 50여개의 말사를 관리하는 화엄사의 교구장으로 5년째 활동 중이다. 

“이전에 계셨던 선배 스님들이 도량을 잘 가꿔주셨고, 이미 많은 부분을 일궈내셨기 때문에 저는 그저 숟가락 하나 얹는 정도였습니다. 다만 현재 불교를 포함한 종교가 국민에게 얼마나 신뢰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있었습니다. 화엄사가 국민은 물론 지역민과 불자들에게 다가가도록 할 수 있는가에 가장 초점을 맞췄습니다.”

물질과 과학의 시대
사라진 종교의 역할

취임식을 문화재 학술행사로 대체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문화재 활용 부분에 있어서는 관심이 남다르다. 과거에는 정부 차원에서 문화재를 관리하고 보존하는 데만 힘을 쏟았다. 하지만 이젠 문화재를 통한 대중의 마음 정화와 치유가 필요하다는 고민을 가지고 토론을 벌였다. 

계절마다 여러 이벤트를 열어 대중과의 접촉면을 늘려간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화엄사는 올해 ‘홍매화·들매화 휴대폰 카메라 사진 콘테스트’(3월), ‘요가대축제’(6월), ‘모기장 영화 음악회’(7월) 등의 행사를 연달아 열었다. 코로나19로 법회 등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행사가 줄어들자 야외에서 대중을 만나는 자리를 만든 것.


덕문 스님은 코로나19로 집단 우울증에 빠진 국민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어떤 곳을 가도 환하게 웃는 사람보다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됐다. 지하철만 타도 고개를 든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 공간(화엄사)에서 국민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했는데, 호응이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화엄사 광주 빛고을 포교원 건립도 마찬가지다. 덕문 스님은 임기 시작과 동시에 광주에 포교원을 짓기 시작했다. 광역도시면서 공용 지역인 광주에 포교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열망은 30년 전부터 있었지만 현실 여건상 이루지 못했다가 덕문 스님 취임 이후 시작해 현재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포교원은 불자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24시간 열려 있는 곳이기 때문에 밤에라도 문득 마음속에 어려움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가서 기도하고 참선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싶을 때 들어줄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곳이 포교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도심 속에 있는 불교 사랑방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19년 4월 말사인 천은사의 입장료를 폐지하는 데 화엄사 교구장으로서 결단을 내린 부분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천은사가 자리한 지리산은 1967년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됐다. 당시 정부는 천은사 소유의 토지를 군사작전 도로로 만들어 사용했다. 이후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관광객 유치 명목으로 벽소령관광도로 개발이 시작됐다. 

천은사는 문화재 보호를 명목으로 입장료를 받게 됐는데,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지리산을 찾는 방문객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천은사 입장료 문제는 불교계뿐만 아니라 지역민들과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온 만큼 일종의 숙원이었다. 덕문 스님은 천은사 주지 종효 스님, 관계기관 등과 논의 끝에 천은사 입장료 폐지를 이끌어냈다. 지난 3월에는 이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야외 행사

“국가에는 여전히 할 말이 있지만 국민이 불편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사찰의 존재 의의는 국민입니다. 국민을 위해서, 국민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찰이 가난해지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으로 결정을 내리게 됐습니다. 현재 주변을 잘 정돈하고 여건을 만들었더니 천은사뿐만 아니라 화엄사도 더 많이 찾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화엄사에서 시행 중인 승가복지 시스템도 정착 단계에 이르렀다. 5년 전 덕문스님은 ‘출가부터 열반까지’를 약속으로 내걸었다. 스님들의 교육, 의료, 연금, 주거까지 책임지는 승가복지 체계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한 것. 그 약속은 현재 종단 내 모범사례로 꼽힐 만큼 안정된 상태다. 

“표현은 ‘승가복지’라고 하고 있지만 저는 ‘기본’을 마련해 드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들은 중병에 걸리면 곡기를 줄이고 주변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일찍 떠납니다. 몸이 건강했더라면 더 많은 깨달음을 얻어서 많은 국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건강을 해쳐 떠나는 스님들을 보면서 승가복지의 기틀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덕문 스님은 스스로를 ‘흉악한 사판승’으로 표현했다. 사판승은 주로 잡역에 종사해 사찰을 유지하는 데 힘쓰는 스님을 말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절에서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스님이다. 참선을 통해 수행에 정진하는 이판승과 구분된다.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뜻하는 사자성어 ‘이판사판’이 여기에서 유래됐다. 

덕문 스님은 수행에 정진하는 스님들, 이른바 이판승에게서 ‘우리나라 불교의 희망’을 보고 있었다. 그는 “수행을 하려는 스님들, ‘내가 이 절에 살겠습니다’하고 대기하는 스님들이 몇 년씩 밀려 있다. 그 정도로 아직 수행하고자 하는, 수행을 갈구하는 모습들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런 모습에서 우리나라 불교의 희망이 있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덕문 스님의 지난 5년은 ‘대중 속으로’라는 말로 요약된다. ‘구례군’ 하면 화엄사, ‘지리산’ 하면 화엄사를 떠올렸던 옛날의 영광이 사라지고 어느 새 ‘잊혀가는’ 처지가 된 사찰을 재부흥시키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시간이었다. 화엄사를 활짝 열고 대중을 품어 종교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덕문 스님은 세상의 풍파에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불교의 본래 목적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남북은 물론 동서·세대·남녀·빈부 등 갈등이 갈등을 낳는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인 화합을 실천하기 위해 화엄사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공업중생
일체유심조

또 물질과 과학이 종교를 대신하는 시대에 사찰의 역할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전제돼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불교에서 중생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사바 세계라고 합니다. 인류 역사를 되짚어보면 하루라도 조용한 때가 있었던가 싶어요.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고 감염병도 돌았고요. 우리나라 같이 작은 나라에서도 남북이 갈려 있고 동서가 화합하지 못하며 빈부 갈등과 세대 갈등 등 많은 갈등이 존재할 것이라고 봅니다.”

“물질과 과학이 종교를 대신하는 시대가 되면서 가장 먼저 나타난 게 바로 개인주의, 이기주의입니다. 또 마치 다음 생이 없는 것처럼 인생을 막 사는 모습도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업중생’ 즉 업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코로나19로 ‘내가 아프면 상대방도 아플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것처럼 한 나라, 한 국민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덕문 스님은 ‘큰스님’ 원효대사의 화쟁사상을 첫손에 꼽았다. 화쟁사상은 논쟁을 화합으로 바꾸려는 불교 교리를 말한다. 우리나라 불교의 저변에 깔린 가장 핵심적인 사상이다.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을수록 대화와 소통으로 통합을 꾀하는 화쟁 사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어떻게 마음을 서로 공유하고 나눌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서로 만족의 정도를 낮추면 화합이 쉬워질 텐데 자기만족은 낮추려고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이기적인 생각을 갖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모두가 종교‧사회‧국가 등 모든 부분에서 화쟁 사상을 중심으로 화합된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지난 3월 화엄사는 교구 본사 중에서는 최초로 미얀마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우리도 1980년대 군사정권을 딛고 민주화를 이뤄냈습니다. 미얀마 역시 우리나라의 군사정권 시절처럼 아픔을 겪고 있는 상태입니다. 미얀마가 현재 상황을 잘 극복해 우리나라처럼 민주화가 꽃피웠으면 합니다. 희망을 갖고 지지하며 또 성원합니다.”

대중의 신뢰 회복해야
정치인 진정성 중요해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인사들을 향한 당부도 전했다.

덕문 스님은 “나는 정치하는 사람에게 매번 물어본다. ‘정말 국민을 대변하고 그런 자세로 있는지’ ‘(국민 위에)군림하거나 부리고 있진 않은지’ 일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진정성이라 여긴다. 우리 국민도 진정성을 찾아내는 것이 선택의 중요한 덕목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덕문 스님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는 국민에게 ‘화엄 사상’을 전파하는 것이다. <화엄경>의 중심 사상은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뜻하는 ‘일체유심조’다. 다시 말해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원효대사에게 깨달음을 안겼다는 ‘해골물’ 이야기와 함께 자주 인용된다.

“지금처럼 과학과 물질이 만능인 시대에 가장 필요한 부분은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의지처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가장 허해지는 부분은 마음일 것이고,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조금만 잃으면 안 좋은 선택을 하잖아요. 그 이유가 마음의 허함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화엄 사상을 통해 국민의 마음 만족도가 충족되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엄사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10월의 첫 삼일, 화엄사가 다시 한 번 대중 속으로 뛰어든다. 화엄사의 사계절 행사 중 가장 큰 축제인 ‘화엄문화대축제’가 다음달 1일부터 3일까지 열리는 것.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열리지 못했다. 올해는 규모를 줄이거나 그래도 어려우면 비대면으로라도 반드시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첫째 날에는 ‘걷기 박사’ 성기홍 박사가 주도하는 트래킹 행사가 열린다. 트래킹 코스는 ‘어머니의 길’로 명명했다. 어머니처럼 포근하고, 어머니처럼 쓰다듬어주고, 어머니처럼 언제든지 위로 받을 수 있는 화엄숲길을 국민들에게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둘째 날에는 국보 301호인 화엄사 영산회괘불탱이 공개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괘불로, 역사적·미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원본은 1년에 딱 한 번 괘불제를 통해 공개된다.

덕문 스님은 “야외에 걸괘 그림을 걸고 부처님을 모시고 하는 법회를 ‘야단법석’이라고 한다. 그 야단법석을 괘불제를 통해 진행해 보려 한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마지막 날에는 화엄사의 정신세계를 담은 영성 음악제가 열린다. 이날 순천 송광사에서 화엄사를 거쳐 실상사를 넘어 법보사찰 해인사, 불보사찰 통도사까지 22일의 여정을 진행 중인 순례단이 들를 예정이다. 

마음의
의지처

“화엄사 보제루 편액(현판)을 보면 ‘화장(華藏)’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꽃처럼 향기로운 마음을 품고 있다’는 뜻입니다. 화엄사에서 오시는 모든 분이 늘 향기롭고 마음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리산을 바라보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또 스님들이 수행에 정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간절한 마음을 기원하셨으면 합니다. 또 화엄사를 그런 향기 가득한 사찰로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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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