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수술방’ 이중행보 내막

‘이랬다 저랬다’ 줏대 없는 잣대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은 과거 검사장을 지냈고 퇴직 후 변호사를 했던 인물이다. 최근 유 의원이 과거 유령수술로 사망사고를 낸 병원 변호를 맡으며, 범인 은닉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유령수술 피해자 고 권대희씨 사건의 변호를 맡아 이중적인 행보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유령수술’이란 수술실에서 환자에게 수술하기로 약속했던 집도의가 아닌 다른 의사나 간호사, 심지어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이 수술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에 따라 피해 환자들은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관련법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처음은
의사 편

유 의원은 과거 중앙지방검찰청 차장 검사와 창원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지낸 전관이다. 검찰을 떠난 뒤엔 2017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유 의원이 개업한 이듬해 파주의 한 병원에서는 사흘 사이에 잇따라 환자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리 수술로 의료사고가 발생해 한 명은 수술 직후, 다른 한 명은 수술 후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사망했다.

알고 보니 해당 병원에서는 과거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돼 면허가 취소된 의사가 수술을 집도한 것이다. 병원 기록에는 남 원장이라는 이름으로 수술했다고 기록돼있다.


실제 수술은 병원의 행정원장을 맡고 있던 김 원장이 수술을 진행했다. 또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수술을 진행했다는 내부 주장도 있었다. 

병원은 자체적으로 대책 회의를 열어 김 행정원장과 의료기기 업체 직원의 수술 행위를 인정한 바 있다. 해당 사건은 크게 이슈화됐고, 결국 병원은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병원 측은 업무정지가 적절치 않다며 환자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파주보건소와 문서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병원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이 있었고,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의 검찰 고발장 제출까지 있었으나 3년이 지난 현재도 1심 판결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해당 병원은 여전히 영업을 진행 중이다. 

병원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상황에 대해 조언해 줄 힘 있는 전관을 필요로 하는 과정에서 유 의원을 선택했다.

유령수술 사망 피의병원 변호 맡아
이후 유령의사 피해 환자와 법정 서

유 의원은 해당 병원의 법률 대리인으로 임명되면서 병원 관계자에게 실제 수술을 한 사람 대신 정식 의사가 수술한 것처럼 꾸미라고 지시했다. 녹취에 따르면 유 의원은 자신이 오랫 동안 수사해보니 바 병원은 쉽게 압수수색을 하지 않아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자신했다.


또 한 사람만 뒤집어쓰면 사고를 낸 의사는 무혐의까지 가능하다고도 했다. 유 의원은 해당 대화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논란이 불거지자 병원의 법률 자문역을 사임했다.

유 의원은 녹취에 대해 자신은 조언만 한 것이지 변론 자체를 하지 않았고, 수임료를 다시 돌려줬기 때문에 관여를 하지 않은 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임 5개월 뒤, 유 의원은 또 다른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지난 2016년 안면윤곽 수술을 받다가 과다출혈로 사망한 고 권대희씨 사망사건이다. 대리 수술로 사망사건을 낸 의사들을 변호했던 행보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 것이다.

권씨의 사망사건을 수임하며 유 의원은 가족에게 많은 조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사망한 권씨는 전역 후 모은 돈으로 하루 한 끼만 먹어가며 모은 돈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상담 때 들은 말과 달리 집도의가 뼈만 절개하고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6개월 차 의사가 수술을 진행하는 등 총체적 부실 속에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집도를 맡기로 했던 의사는 한 번에 3개의 수술을 진행하고 있었고, 권씨 상태가 위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제대로 돌보는 이가 없었다. 충격적인 것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는 간호조무사 혼자 권씨를 지혈했다는 것. 

이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자 권씨를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해당 병원 소속이 아닌 의사가 들어와 의료행위를 관여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이번엔
환자 편

유가족 측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통해 4억3000만원을 지급받았으나 검찰이 의료법을 어긴 정황을 파악하고도 의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고 기소해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유 의원이 해당 사건을 접하고 사건을 수임한 것은 지난 2019년 4월이다. 경찰이 2018년 10월에 무면허 의료행위 및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이후다.

2년 동안 경찰 수사에도 진전 없이 검찰로 넘어간 뒤 6개월 간 기소되지 않자, 권씨 유족 측도 전관의 힘이 필요했다. 유족은 유 의원에게 무면허 의료행위 및 의무 기록지 허위기재 등의 혐의를 검찰이 묵과하지 않도록 도움을 구할 필요성을 느꼈다.

유 의원은 변호사 수임료로만 수천만원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수임료는 권씨의 학비로 지불됐다.


하지만 유 의원을 선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에는 진전이 없었고 사건은 반 년이 넘어서야 재판으로 넘어갔다. 사건이 송치된 지 400여일이나 지난 뒤였다. 유 의원에게 도움을 구했던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가 빠져 있었다.

사건은 양상은 유족들이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권씨의 어머니는 유 의원이 과거 유령수술과 관련해 병원 관계자에게 조작을 지시한 의혹이 있는데, 이후 아들의 사건을 맡은 것에 대해 충격적이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사건 담당 검사가 1년 넘게 지연시키다 검사가 무면허 행위를 불기소한 것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었다. 유족들은 당시 유 의원이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돈만 받고 방관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전관의 힘이 부족했던 탓일까. 해당 병원은 민사 소송과 관련해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의료과실 부분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가족은 사건 이후 5년이 지난 지금도 소송 중이다.

정치권
네 탓만

결국 권씨의 어머니가 소장으로 있는 환자권익연구소와 의료범죄 척결 단체 닥터벤데타는 지난 3일, 경찰청 수사본부에 유 의원을 고발했다. 이들 단체는 유 의원이 사법질서를 훼손했다는 점, 가해자와 피해자 측의 소송대리를 수임한 사실에 대해 ‘도덕적 일탈행위’로 간주해 고발했다고 밝혔다. 


형법에 따르면 죄를 지은 사람의 죄를 은닉하려는 시도는 징역 또는 벌금형이 처해질 수 있다. 이 같은 논란에 더불어민주당 의원 모임 처럼회는 “유 의원이 대리 수술 사망사건을 덮기 위해 내놓은 수법은 증거인멸, 범인 은닉 등 사건 은폐 행위가 총 망라돼있다”고 비판했다. 

이후 유 의원은 21대 총선에 출마해 자신의 고향 강원도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현재는 국민의힘 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으로 있으면서 환자보호3법(수술실 CCTV 설치, 의사면허 규제 강화법안, 행정처분 의료인 공개 법안)중 의사면허 규제 강화 부분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던 바 있다.

환자보호3법 문제는 비단, 여·야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에도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폐기됐던 관련 법들은 올해 다시 발의됐으나 아직 계류 중이다. 

여당에서는 야당 탓을, 야당에서는 여당 탓을 하고 있다. 여당이 발의했지만 여당 역시 수술실의 입구에만 CCTV 설치를 의무화하자는 입장이다.

그동안 수술실 내 CCTV 설치법은 유령수술 같은 행위를 막기 위해 수술실 안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필요에 의해 지속적으로 언급됐다. 그러나 이 같은 환자의 권익이 보호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협은 반대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달 30일 임기를 마친 최대집 전 의협 회장은 2016년 CCTV 설치법과 관련해 막말과 욕설을 섞어 강력하게 반발한 바 있다. 적극적인 의료행위에 방해되고, 환자와 의료 관계자의 사생활과 비밀이 현저히 침해된다며 우려했다. 하지만 수술실 안의 CCTV 설치 의무화는 국민 다수가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입성한 후엔…
환자 보호 3법 반대

우리나라는 건강과 진료를 다루는 의사의 업무 특성상 의료행위를 하다가 과실치사상죄로 금고 이상을 선고받아도 면허취소가 되지 않고 있다. 현재 관련법에선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사의 면허취소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유령의사를 막자는 취지로 행정처분 의료인을 공개하자는 법안이지만 의사단체 중 일부가 반발 중이다. 의무 기록상 수술을 진행한 의사는 환자가 상담하거나 얼굴을 맞댄 의사다. 

유령의사로 인한 피해자 수는 2019년 기준 약 30명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정확하게 집계하고 있는 곳은 없다. 이마저도 유령의사들의 양심선언에 의해서 밝혀진 환자들이다. 

환자는 자신을 마취하면 누가 환자를 수술하는 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권씨의 사건처럼 CCTV 영상이 없었다면 잘잘못을 따지거나 사고 자체가 세상에 알려지기는 더욱 힘들었을 것이라고 여론은 지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행법상 의사가 환자에게 몸을 대는 것 자체가 상해죄가 될 수 있지만, 환자에게 승낙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위법성이 사라진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을 집도하는 의사에게 환자가 의료행위를 하는 데 동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환자가 집도의에게만 동의한 것이므로 유령의사가 수술 등의 행위로 사고가 나면 상해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비판한다.

과거 유 의원이 보였던 행보에 대해 실제 변론하지 않았다고 해서 법적, 윤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 유 의원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서 유가족 측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위 공무원의 출마를 제한하는 이른바 황운하법(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대한변호사협회 역시 유 의원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몇몇 변호사에 의해서만 진정 접수가 이뤄졌다.

적절한 조치
이뤄질까?

대한변협회 관계자는 “현재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만 존재하기 때문에 입장 발표는 시기상조”라며 “지방 변호사회 조사위원회의 결정을 받으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 의원 사무실 관계자는 “(유 의원은)개인 일정으로 연결이 어렵다”며 “사무실에도 전달한 입장이 없어 밝힐 사항이 없다”고 전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수술실 CCTV 갑론을박

진료환경 위축 vs 환자의 권리

수술실에서의 CCTV 설치는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수술실 내 CCTV를 설치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이를 두고 반대론자와 찬성론자들은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권대희씨의 사망 당일 CCTV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더욱 갑론을박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반대론자들은 우선적으로 진료 환경의 위축을 꼽는데 진료나 수술이 안정된 상황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CCTV를 도입한다면 집도하는 의사가 위축돼 오히려 의료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해석이다.

또 나체로 수술을 받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사생활 침해가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환자의 민감한 부위 등이 영상에 담길 수 있다는 것.

반대론자들은 그와 더불어 CCTV 설치가 의사에 대한 신뢰성을 저하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CCTV 설치로 인해 의료행위를 하는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 감시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논리다.

OECD에 소속된 국가 중 수술실 내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한 곳이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의료인들의 행위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수술했는지, 어떤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에 파악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CCTV를 설치함으로써 유령의사 등에 대한 부정 의료행위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환자는 마취 등이 이뤄지기 때문에 수술 정보를 얻는 데 있어 의료인과 환자 사이에서 정보적 비대칭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과거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은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동폐기됐던 바 있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들이 통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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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