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권 레이스 막전막후

사공은 많은데 선장이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오는 6월에 있을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자중지란에 빠졌다. 당권을 두고 중진 의원들은 연일 신경전인데, 초선들이 이를 견제하며 당권에 나섰다. 국민의당 합당을 두고 지분 싸움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4·7 재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국민의힘 내부가 연일 뒤숭숭하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을 떠난 후 당권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경쟁이 과열되면서다.

축제 분위기
승자의 저주?

오는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는 당 대표는 당의 대선 승리를 이끌 중차대한 임무를 맡는다. 당권에 공식적인 출마 의사를 밝힌 의원은 홍문표 의원(충남 홍성군예산군)과 윤영석 의원(경남 양산시갑)이다(지난 16일 기준). 이외에도 조경태(부산 사하을)·주호영(대구 수성갑)·권영세(서울 용산)등이 거론되고 있다.

유력 주자로 예상됐던 정진석 의원(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은 지난 16일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분열이 아닌 통합의 기치를 위해 물러서겠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재보궐선거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아 야권 승리에 일조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원외에서는 김무성, 나경원 전 의원이 물망에 올랐다. 특히 나 전 의원의 경우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당의 전폭적인 지지와 조직력을 보였다는 평가다.


이들이 저마다 기지개를 펼 준비를 하는 가운데, 당내에서는 주호영 당 대표 권한대행을 두고 때 아닌 파장이 일기도 했다. 주 권한대행이 사퇴를 차일피일 미루면서다. 그가 전당대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일정을 결정하는 것은 “경기에 나설 선수가 룰을 정하는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던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사퇴를 미루는 주 권한대행의 ‘저의’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합당으로 성과를 세우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논란에 주 권한대행은 “사익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며 맞섰다.

주 권한대행은 ‘선 통합론’에 힘을 싣었다. 합당 이후 지도체제를 또 논의하는 번거로움을 덜자는 심산으로 읽힌다. 당권 유력 주자로 꼽히는 중진들 역시 국민의당과 합당에는 전원 찬성했다.

축제 분위기도 잠시…자중지란
국민의당 합당은? 지분 문제도

정진석 의원은 “합당이 곧 자강”이라며 대통합으로 단일대오를 구축하자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당의 공식 결정기구인 비대위의 불만이 터졌다. 주 권한대행이 비대위와 논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일부 비대위원은 “(합당 여부는)차기 지도부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 권한대행의 거취부터 결정하라”는 압박도 있었다고 한다.

신속한 화학적 결합을 강조했던 주 권한대행과 달리 국민의당은 신중한 입장이다. 국민의당은 국민의힘 지도부가 제시한 ‘개별 입당’에는 선을 그었다. 정당 간의 가치 통합이 중요하다는 그간의 입장을 강조했다.


국민의당 권은희 원내대표는 “야권 통합은 개개인의 의원을 통해 이뤄지는 게 아니라 국민의당이 표방하고 있는 중도와 실용의 가치를 함께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국민의당은 시도당에 합당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또다시 ‘샅바 싸움’에 들어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신설 합당이냐, 흡수 합당이냐 등 세부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 신설 합당의 경우 당명, 로고, 정강정책 등을 바꾸기 위한 긴 진통이 필요하다. 지역위원장 등과 같이 지분 협상 문제도 있다.

논란이 계속되자, 주 권한대행은 지난 16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따라서 2주 이내에 새 원내대표 선거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새 당 대표·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일정과 방식은 오는 26일 새 원내대표 선출에 따라 논의가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호영 사퇴
포스트 김은?

현재까지는 권성동(4선‧강원강릉), 김기현(4선‧울산남구을), 김태흠(3선‧충남보령서천), 유의동 의원(3선‧경기 평택을) 등이 출마 의지를 드러냈다. 원내대표‧정책위의장 분리 선출로 규정을 바꾸면서 이번 경선은 러닝메이트 없이 원내대표 독자 경선으로 진행돼 초반부터 분위기가 치열하다.

일각에서는 당내 신인들이 당권에 나서야 한다는 ‘초선 역할론’이 제기된다. 보궐선거 승리의 기세를 몰아가기 위해서는 계파에서 자유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에 이탈한 중도층의 지지를 받고 이번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 극우와 손절하고, 중도층을 섭렵한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다. 마찬가지로 내년 대선을 위해 새로운 인물이 나서야 승산이 있다는 논리다.

서병수 의원(부산 진구갑)은 당권 불출마 선언과 함께 “‘산업화 시대정신을 대표했던 세대’가 물러서지 않는다면 젊은 세대들이 두 걸음 앞서가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세대교체론에 가장 빠르게 화답한 이는 김웅 의원(서울 송파갑)이다. 김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초선 의원총회에서 출마 의사를 타진, ‘사즉생’의 각오로 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당내 지역구 의원 중 유일한 호남 출신 인물로, 개혁에 앞장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중진들에 대한 초선들의 견제라는 시선도 있다. 출마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중진의 무대로 여겨졌던 당 대표 선거에 초선이 도전장을 내민 것 자체가 사실상 파격이다.

반면 정치 경험이 부족한 초선이 당 대표가 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젊고 참신한 인물이 나서 개혁의 ‘마중물’이 되겠다는 게 초선 역할론의 명분이지만, 대선이 코앞이다. 그만큼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고, 어느 때보다 조직력과 장악력이 필요할 때다.

하지만 56명의 초선들은 계파가 생기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분위기다. 조직력에서 벌써부터 밀리는 그림이다. 윤창현 의원은 “초선이라는 이유로 초선을 지지한다는 계파적 관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쪽으로 정리됐다. 우리 입장은 계파를 만드는 것이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내 기반의 약한 점도 치명적인 한계다. 이들이 당의 뼈대 깊은 중진들의 지원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현재 서병수, 정진석 의원을 제외하고는 ‘중진 불출마론’에 동조하는 움직임도 미미한 상황이다.

6월 전당대회
관전포인트는?

외곽에서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이들을 지원 사격하고 있다. 오히려 초선 의원이 차기 당 대표가 되는 것이 당을 위한 길이라는 입장이다. 이는 김 전 위원장의 ‘자강론’과도 맞닿아 있다. 실체가 없는 야권 대통합이 아닌 당의 쇄신과 개혁을 우선시하란 것이다. 사실상 보란 듯이 중진들을 ‘물 먹인’ 셈이다.

이로 인해 당 내에서는 범야권 대통합에 반감을 갖는 이들이 힘을 받고 있다. 주로 초선 의원들과 일부 비대위원들이다. 이들은 정권교체만을 위한 화학적 결합을 반대한다. 이에는 이재오·홍준표·김무성·김문수 등 기성 보수의 세력화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숨어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9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에 대해 ‘아사리판’이라며 맹비난했다. 임기 내내 참아왔던 김 전 위원장이 분노가 터진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전 위원장은 당의 수장이지만, 외부자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내부자들이 그의 정당성을 저격했다.

김 위원장은 단독 플레이어다. 당내 세력이 없다. 그 틈을 비집고 ‘좌파 2중대’ 등의 날선 비판이 계속됐고, 보수 원로들이 나서 사퇴를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실제 당권을 두고 김 전 위원장에 대한 중진들의 견제는 상당했다. 김 전 위원장 면전에서 ‘언제 나가냐’던 중진의 모욕적 일화도 있다. 김 전 위원장은 당시 “잘난 사람들이 많아 더 있을 수가 없었다”며 “당 대표하고 싶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라고 당 분위기를 전했다.

당을 승리로 이끈 주역의 폭탄 발언에 중진들은 당혹스럽다. 권영세 의원은 “마시던 물에 침을 뱉고 돌아서는 것은 훌륭한 분이 할 행동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의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다.

일각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다시 ‘킹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만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돕겠다는 의미다. 김 전 위원장은 의미 없는 만남에 시간을 투자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는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 출마한 초선
중진에 ‘견제구’

그렇게 해서 부상한 것이 ‘제3지대론’이다. 최근 금태섭 전 의원은 신당 창당을 구상 중에 있다. 대선주자 1위를 달리는 윤 전 총장이 합류한다면, 그야말로 ‘강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확실한 구심점이 필요하다. 그 때 김 전 위원장이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은 “제 3지대론은 없다”고 수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불안함이 감지된다.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윤 전 총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내부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자신이 그토록 부정했던 제3지대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당을 흔들려는 것 같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 권한대행은 김 전 위원장의 예측을 두고 “상황이 있고 복잡해 입당 여부를 미리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짚었다.

전당대회에서는 여론조사 반영 비율이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새 지도부 선출에 당심이 아닌 민심을 더 많이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윤 전 장관, 안 대표 등의 영입과 외연 확장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 대표 경선의 일반 여론조사 비율을 30%에서 50~100%로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당원·선거인단 비율은 현재의 70%에서 0~50%로 줄어들게 된다. 하태경 의원은 100% 국민 전당대회로 당 대표를 선출하자는 파격적 제의도 했다.

중진 용퇴론
초선 역할론

다만 전당대회는 당원들의 의사가 중요한 만큼 여론조사 비중을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당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당원의 의견을 최소화하자는 것은 명분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여론조사 비율을 높이자는 주장은 사실상 조직력을 갖춘 영남권 중진에 대한 견제구가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5선의 조경태 의원은 “국민 여론조사 100%로 하자는 것은 당원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