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6인 현미경 검증 ⑭친구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9.07 1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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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치열한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와 야권 4인(문재인·김두관·손학규·정세균),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원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세세히 검증하고 있다. 앞서 출생과 정치입문·병역·정치권 지지기반·배우자·재산·화법·학력·롤모델·취미·별명·저서까지 살펴본데 이어 열네 번째로 그들의 '친구'를 살펴봤다.

가족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면 친구는 자신이 직접 선택한 가족이다. 사회 속에서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기에 피로 맺어진 자신의 가족보다 어쩌면 자신을 더 많이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는 제2의 자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선을 3개월 여 앞둔 지금, 후보들의 '친구'를 살펴본다면 그들의 숨겨진 진면목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박근혜 <고 최태민 목사>

"힘들 때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준 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주변에 '2인자' 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 없다. 당 대표 시절부터 지금까지 핵심 측근들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흔히 말하는 2인자를 두진 않았다.

이는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측근이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저격당한 사건과 박 전 대통령의 서거 후 그의 측근들이 돌변한 모습에 대한 박 후보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때문에 박 후보는 그 후로 '친구'라고 할 만한 인물을 만들지 못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과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인연은 있지만 친구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다만 박 후보와 가장 친분이 두터웠던 인물을 꼽으라면 고 최태민 목사를 꼽을 수 있다. 최 목사는 박 후보의 사생활과 관련해 가장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다.

박 후보와 최 목사의 관계에 대해 정치권에선 여러 가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박 후보는 최 목사에 대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힘들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바로설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최 목사가 1974년 육영수 사망 직후 박 후보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박 후보는 다음해 최 목사를 청와대로 불러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최 목사는 박 후보의 외부 활동을 적극 권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 목사는 1975년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시키고 총재에 취임한다. 박 후보는 명예총재로 추대 됐다. 박 후보가 모친의 사망이라는 큰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최 목사는 박 후보 곁에서 큰 힘이 되어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 목사는 1994년 사망 전까지 사기·횡령·권력형 이권개입 등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최 목사와 관련한) 의혹이 많이 제기됐지만 제가 아는 한 실체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며 “앞으로 실체가 나온다면 잘못되고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지금은 실체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 가지라도 사실이었다면 내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겠나? 최 목사가 이런 비리가 있다고 공격하고 저와 연결해 '주변사람이 나쁘니까 (제가) 뭘 잘못했다'는 식으로 공격하는데 이는 음해성 네거티브"라고 일축했다.


문재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소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와의 우정에 대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말했다. 또 "나는 대통령 자격이 있다. 문재인을 친구로 두었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문 후보를 극찬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 후보는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으나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이 좌절됐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온 문 후보는 법무법인 부산에 합류하게 되면서 노 전 대통령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이 인연을 계기로 30년 가까이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문 후보는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지냈으나,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문 후보는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네팔 산행 도중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해 변호인단을 꾸렸으며,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다.

한편 노 전 대통령과 문 후보의 지나친 친분은 오해를 낳기도 했다. 문 후보는 야당인 한나라당으로부터 '왕수석'으로 불리며 "왕수석인 문재인 수석의 월권과 청와대의 시스템 경시로 인해 국정 원칙이 파괴됐다"는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문 후보는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해내는 업무 스타일을 보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참여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한 17명 중 문 후보의 경남고등학교 동문은 한 명도 없었는데 문 후보는 아예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동창인 고위 공직자가 문 후보의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으며,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단 한차례의 식사나 환담 자리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문 후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손학규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고문>

"민주화 운동의 평생동지" 

손학규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는 지난 7월31일 열린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의 대선 후보 지지 결정을 위한 투표에서 예상 밖의 1등을 차지했다. 특히 손 후보에게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기도 했다. 민평련은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고문을 따르는 민주통합당 의원과 자치단체장·원외위원장의 모임이다. 민주당내에서 '친노' 다음으로 많은 의원들이 속해 있다. 손 후보의 예상 밖 1위에는 김 고문과의 친분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손 후보와 김 고문은 고교·대학 동창이자 민주화운동의 동지이다. 두 사람은 경기도가 고향인 47년생 동갑내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손 후보가 시흥에서 김 고문이 소사(지금의 부천)에서 태어났다. 또 다른 공통점은 두 사람의 부친 모두 교장선생이었던 점.

손 후보의 부친은 불의의 차량전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고, 김 고문의 부친은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강제 해직된 뒤 심장판막증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두 사람의 모친이 각기 어려운 집안 살림을 책임진 바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러한 공통점 때문인지 두 사람은 가장 절친한 사이가 됐다. 손 후보는 대학에 들어간 후로는 김 고문과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서울대 삼총사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손 후보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자당에 입당해 1993년 초선의원이 된 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까지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다. 이 때문에 손 후보는 김 고문에게 늘 마음의 빚이 있었다.

민평련 주최 대선후보 초청 간담회에서도 손 후보는 이 같은 심경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손 후보는 "이 손학규가 한나라당에 간 것에 대해서는 (김근태 고문이) 못내, 아마 용서 안 했을지도 모른다"며 "김 고문이 마지막으로 '손학규 좋은 사람인데...' 하고 뒷말을 잇지 못하고 돌아가신데 대한 죗값을 갚고자 나왔다"고 출마의 변을 대신했다.


그래서 손 후보 캠프 측은 민평련의 결정을 "쇼킹한 사건"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손 후보의 진심을 민평련이 받아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김 고문은 군부 정권에 항거한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로서 제15~17대 국회의원, 노무현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등을 지냈다.

 

김두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

"40년 지기 절친" 

김두관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은 무려 40년 지기 절친이다.

신 전 위원장은 김 후보와 남해중학교와 남해종고를 함께 다녔다. 그후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신 전 위원장은 병장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1984년 한국일보사 견습기자 시험을 거쳐 영어신문 <코리아타임스>에서 기자로 만 23년 근무하다 2007년 3월 퇴사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일보사 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냈으며, 2003년 1월부터 2007년 2월까지 4년1개월 동안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냈다. 김 후보가 남해군수 등을 지내는 동안에는 고향발전과 정치 현안 등에 대해 비교적 대화를 많이 나눈 친구 중의 한 사람이다. 최근에는 김 후보의 출판기념회 행사에 참여하는 등 사실상 김 후보의 대권행보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는 평가다.


신 전 위원장은 김 후보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김두관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교에 남아 자율학습을 할 형편도 되지 못했다. 바로 집에 돌아가 낮에 미뤄 둔 농사일을 하고, 소를 비롯한 가축을 먹이는 일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했다. 그래서 김두관과 나는 우리 스스로를 그야말로 '신토불이 촌놈'이라 부른다"며 "지금 돌이켜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충족되는 것이 없는 초중고등학교 시절이었지만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고 어려움 속에도 꿈을 키운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그는 "김두관은 어린시절 축구와 씨름을 특히 잘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다. 용기와 배짱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길러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린 시절 대자연을 뛰놀며 기른 김 후보의 호연지기는 대통령으로서 꼭 갖춰야할 덕목"이라고 말했다.

 

정세균 <조기준 수원대 교수>

"친구라서 지지하는 거 아닙니다" 

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의 친구 조기준 수원대 교수는 현재 정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의 정책자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 후보와 조 교수는 대학동창 사이다. 조 교수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1975년에 졸업하고 그 해 한국은행에 입행, 33년 동안 근무했다.

한국은행 재직 시 2003년에는 참여정부 인수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참여해 금융정책 골격을 수립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조 교수는 "친구니 당연히 지지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분은 자신에게 물어보기 바란다"며 "대학동창이라고 아무나, 무조건 지지하게 되느냐고. 오히려 잘 알기에 반대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음을 잘 아시지 않는가"라고 되묻는다.

그는 특히 정 후보가 지난 1997년 한보 비리 당시 재경위 소속 의원 중 유일하게 돈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당시 정 후보는 인터뷰를 통해 '내가 받지 않았다 해서 돈을 받은 다른 의원보다 더 청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을 받은 의원들은 어떤 면에서는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현재 우리나라 정치풍토의 희생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돈을 받은 국회의원들을 매도하기 보다는 많은 돈이 필요한 정치풍토를 바로 잡는 일'이라고 말했는데 진정 큰 인물이라고 느꼈다"며 "그 날 이후 나는 친구 정세균을 인생의 큰 스승으로 존경하고 '추종'하게 되었다"고 회고 했다.


안철수<시골의사 박경철>  

"두 사람의 아름다운 동행"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경철 안동 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의 인연은 지난 2009년 청춘 콘서트를 함께 진행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처음엔 전혀 일면식도 없던 두 사람이지만 취업난에 허덕이는 지방대생들의 기를 살려줘야겠다는 뜻에서 의기투합했다.

멘토 삼고 싶은 인물 1위. 2030세대 창의성 롤모델 1위를 차지한 안 원장과 개인 투자자들이 만나고 싶은 금융인, 우리나라 트위터 영향력 1위인 박 원장의 만남은 처음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에는 4개월간 5만여 명의 관객을 불러 모을 정도였다.

이 두 사람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다 의사 출신이면서 의사와 결혼했으며 '시골의사'란 닉네임을 갖고 있는 주식 투자의 귀재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든 의사 출신 CEO로 변신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박 원장(48)은 안 원장(50)보다 두 살이 어리지만 이러한 공통점을 바탕으로 두 사람은 동갑내기들보다 더 죽이 잘 맞는 '절친'으로 거듭났다.

둘은 특히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서로를 완벽하게 신뢰하게 됐다고 말한다. 박 원장은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어떤가요?'라고 묻기보다 '이렇죠?'라고 대화할 정도로 마음이나 가치관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후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박 원장은 이때부터 안 원장과 다소 거리를 뒀다. 올해 들어선 아예 외국에 나갔다 들어오길 반복하고 있다. 박 원장은 '이민 가버렸다'는 얘기가 돌 정도로 외국에 있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고 한다. "'안철수가 사람 관리 못해서 박경철이도 떠나버렸다'고 소문날까 봐 그랬다"는 거다. 하지만 박 원장이 안 원장의 든든한 지원군임에는 변함이 없다.

한편 박 원장은 의사이자 칼럼니스트, 주식투자전문가, 방송인이다. 1990년대부터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주식 사이트에 글을 올려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란 책으로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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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