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타석 '자충수' 민주당, 박근혜 살린 내막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9.04 09: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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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횡재…박근혜만 누워서 떡 먹게 생겼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경선룰 갈등, 과거사, 공천헌금 등으로 잔뜩 움츠렸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활짝 기지개를 펴는 모양새다. 반면 박 후보를 향해 연일 십자포화를 쏟아 부으며 기세등등하던 민주통합당은 각종 악재로 바짝 엎드렸다. 이대로라면 지난 2007대선의 악몽이 재현될 판이다. 불과 대선을 3개월여 앞두고 양당의 전세가 단숨에 역전된 사연은 무엇일까?

“민주 경선 망했다!” “박근혜에 정권 바쳐라!” “이장 선거만도 못하다!”
지난달 26일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두 번째 경선 현장투표가 진행된 울산 종하체육관은 '비문재인(비문) 후보' 지지자들의 항의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고성이 난무했고 일부에선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막장 경선
물 건너간 흥행

전날 첫 경선지인 제주에서 경선 모바일투표 문제로 파행이 빚어져 비문 후보들이 시스템 개선을 요구했음에도 울산 대의원 현장투표가 강행되자 벌어진 소동이었다. 이후 경선불참까지 거론하던 비문 후보들이 속속 경선에 복귀하면서 사태는 진정됐지만 민주당이 대선 정국에서 반전의 카드로 기대했던 순회경선의 흥행은 이미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푸념이 당내에서 쏟아져 나왔다.

한 민주당 지지자는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대해 '박근혜 추대식'이라며 비판을 쏟아내던 민주당이 이런 '막장 경선'을 연출할지는 몰랐다"며 "정말 실망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민주당의 악재는 이게 다가 아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날 민주당 공천헌금 수사착수 뉴스가 터져 나왔다. '친노무현(친노)' 계열의 인터넷 방송인 <라디오 21>의 양경숙 편성제작총괄본부장이 지난 4·11 총선 때 민주당의 공천을 희망하는 인사들로부터 약 40여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었다. 금액만 놓고 따진다면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태의 열배가 넘는다.


양 본부장은 총선 전후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3000통이 넘는 문자와 전화를 주고받은 수상한 정황까지 밝혀졌다. 민주당은 돈을 낸 사람 모두가 비례 1차 심사도 통과하지 못했다며 선 긋기에 나섰지만 수천만원이 친노 진영의 일부 인사에게 송금되었다는 의혹도 있다. 일단 검찰의 칼끝은 박 원내대표는 물론 당내 친노 인사들까지 노리고 있는 모양새다. 4·11 총선 이후 민주당내 최대 계파는 '친노'다. 이번 사건에 친노인사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민주당은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민주당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 역시 대표적 친노인 문재인 후보다.

경선 파행에 공천헌금까지 덮쳐 점입가경
'대권 코앞' 민주 잇단 악재에 신난 새누리

정치권에선 연이어 터진 민주당의 대형악재를 놓고 "궁지에 몰렸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누워서 대권을 떠먹게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 경선 흥행참패와 공천헌금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 하고 있던 박 후보로서는 민주당의 이번 '자살골'이 무척이나 고마울 수밖에 없다.

또 위와 같은 문제로 박 후보를 향해 연일 총공세를 펼쳤던 민주당이었던 만큼 더 큰 역풍은 불가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도 민주당의 '악재'이자 박 후보의 '호재'는 계속 이어졌다. 지난달 30일에는 민주당이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파기하는 쪽으로 사실상 가닥을 잡았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박 후보로서는 대선정국을 앞두고 통진당이 혁신에 성공해 야권연대가 지속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해왔었다. 불과 일주일 사이 박 후보의 고민거리들이 모두 해결된 것이다. 이로써 선거판세는 박 후보 쪽으로 기울게 됐다는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게다가 최근 이어지고 있는 한일 갈등과 무디스 한국 신용등급 'Aa3' 상향 등의 정부 호재는 보너스다.

신난 박근혜
정부 호재까지

전문가들은 박 후보가 이처럼 대선정국의 기선을 잡게 된 이유는 유독 민주당의 돌발악재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정국에서 민주당의 총체적인 문제점들이 드러남으로써 박 후보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갈등해결 능력이다. 일례로 이번 대선경선과정에서 새누리와 민주 양당 모두 갈등을 겪었지만 새누리당은 어떻게든 결론이 났다. 그리고 그 경선룰에 불만이 있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이재오·정몽준 의원은 경선불참을 선택했다. 이들은 이후 진행된 경선에 지지를 표명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훼방을 놓지는 않았다.

반면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로 경선 중간에 불참을 선언했다. 모바일투표방식은 민주당 후보들이 경선 전에 이미 합의한 사항이다. 후보 본인들이 사전에 합의한 만큼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됐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은 대선주자 본인들이 져야하는 게 맞다. 그러나 민주당 비문 3인방은 당 지도부와 문 후보를 싸잡아 비판하는데만 열을 올렸다.

정해진 규칙과 룰에 의해 결론이 났을 때 그 결론에 불만이 있더라도 조직원 모두가 따라가는 것, 그것이 바로 질서다. 질서가 없는 정당에서는 조직력을 기대할 수 없고 조직력이 없는 정당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 이번 대선경선 파행은 민주당의 한계를 보여준 단적인 사건이었다. 한 정치전문가는 "박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불통' '독선' 등의 비판을 받았다면 문 후보는 '지도력의 부재'를 드러냈다"며 "이번 민주당경선사태를 계기로 경선 과정에서 박 후보가 보여준 '불통'이 오히려 뛰어난 리더십으로 재평가되고 있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불통'
문재인 '무능'

민주당의 두 번째 문제는 이슈 선점의 실패다.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정책은 없고 반대만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일부 민주당 인사들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책도 없고 자존심도 없다"는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이슈선점에 실패한 후 민주당 스스로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새누리당과의 무리한 정책 차별성을 꾀하다보니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정권에서 추진한 제주해군기지건설, 한미 FTA 등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게 되면서 말 바꾸기 논란까지 겪어야 했다.

이슈선점의 중요성은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당시 야권은 '무상급식'이라는 이슈를 선점하면서 전국적으로 돌풍을 일으킨데 이어 구 한나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으로 여겨졌던 강원도와 경상남도 일부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특히 무상급식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교육감 선거에서는 인천을 제외한 수도권, 호남 전 지역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되는 결과를 얻어냈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대선정국에서 '경제 민주화' 이슈를 새누리당에 빼앗긴 것이 가장 뼈 아플 것"이라며 "하루 빨리 민주당이 새로운 이슈를 생산해 정국 주도권을 되찾아 오지 못한다면 대선승리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민, "이대로라면 2007년 악몽 재현" 발만 동동
새, '손 안대고 코 푼다'…정부 호재 '보너스'

세 번째 문제는 민주당의 쇄신 노력 부족이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그동안 당의 위기를 '깜짝 쇄신카드'를 통해 비교적 잘 극복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후보는 지난 2004년 불법 대선자금 모금으로 불거진 차떼기당 오명을 씻어 내기 위해 당사를 헌납하고 천막 당사로 이주하는가 하면, 지난 2월에는 4·11 총선을 앞두고 전당대회 돈 봉투사건과 선관위 디도스 공격사건 등으로 벼랑 끝에 서있던 당을 15년 만의 '당명 개정'이라는 파격적인 쇄신카드로 구해내기도 했다. 또 본격적인 대선행보에 돌입한 이후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 참배, 전태일 재단 방문, 안대희 전 대법관 기용 등으로 이미지 쇄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행보가 진정성 논란을 겪고 있긴 하지만 컨벤션 효과만큼은 분명히 누렸다는 평가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그동안 마땅한 쇄신카드를 선보이지 못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요즘 민주당의 불임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며 "모두가 위기라고 말하는데 당 지도부만 느긋한 것 같다. 지난 4·11 총선에서 패배한 후 확실한 쇄신카드가 있어야 했지만 대응이 늦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지사 후보 단일화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에게 패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못했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도 후보를 내지 못한다면 민주당은 명실상부 '불임정당'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게 된다.


불임정당 오명
쇄신카드 꺼내라

마지막으로 한 정치전문가는 "일각에선 박 후보의 경선승리를 놓고 '상처뿐인 승리'라고 깎아 내렸는데 박 후보는 상처는 입었어도 경선에서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민주당의 경선은 다 같이 죽자는 식인 것 같아 걱정 된다"며 "심지어 박 후보는 노 전 대통령 껴안기에 나섰는데 '리틀 노무현'이라고 불리는 김두관 경선 후보가 모바일투표에 대한 불만으로 '친노 세력'을 운운하며 비판하는 것을 보곤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이런 식으로 경선에서 승리한들 얻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민주당이 총체적 난국에 빠진 현 상황을 즉시하고 발 빠른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불임정당의 오명을 벗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는 18대 대선에서 박 후보에게 대권을 직접 갖다 바치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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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