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개구리소년 30주기 ①30년 아이들 쫓은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회장

“불안감 조성 위해 희생됐다”

아이는 열세 살, 아버지는 마흔세 살. 아이는 열세 살, 아버지는 일흔세 살. 아이는 평생 열세 살인데 아버지만 나이를 먹었다. 세월이 하얗게 내린 머리카락, 깊게 패인 주름은 아이 잃은 부모의 슬픔이 남긴 흔적. 1991년 3월26일 ‘도룡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선 아이들은 30년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린다. [편집자 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회장은 개구리소년 사건을 계기로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그의 인생은 개구리소년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 아이들의 흔적을 쫓아 유가족과 동행한 30년 세월은 나주봉 회장을 개구리소년 사건의 또 다른 ‘산 증인’으로 만들었다.
 

▲ 지난 13일,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회장이 &lt;일요시사&gt;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고성준 기자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이하 전미찾모)’ 회장은 매년 2~3월이 가장 바쁘다. 3월26일 개구리소년 추모제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추도사를 쓰느라 머리를 싸매는 것도 이 시기다. 매번 추모제 하루 전날 먼저 대구로 내려가 현장을 살핀다. 20여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해온 일이다.

매년 3월26일
추모제 준비

나 회장은 올해로 66세. 그중 무려 30년을 개구리소년 사건을 쫓는 데 쏟았다. 1991년 7월 인천 월미도에서 아이들을 찾던 개구리소년 유가족과 처음 만나 현재까지 연을 이어왔다. ▲아버지들이 트럭으로 전국을 수색할 때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됐을 때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을 때 등 개구리소년 사건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 회장은 유가족 곁을 지켰다.

강원도 홍천 산골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모친이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뜨면서 동생들을 돌보는 일은 전적으로 그의 몫이 됐다. 아버지가 일을 나간 사이 동생들을 씻기고 먹이고 입히느라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15세 때 강원도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17세 때 이모의 소개로 인천의 중국집에서 일하다 서울로 오게 됐다.

잘 먹지도 못하고 몸을 혹사하던 중 덜컥 폐결핵에 걸렸다. 기침을 하다 피를 쏟아냈다. 나 회장은 당시 먹었던 약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카나마이신과 마이임부톨. 모두 결핵치료제로 사용되는 약이다. 먹는 건 부실한 데다 독한 약을 먹다 보니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주변 동료들도 그를 멀리했다.

“몸은 아프고 일도 못하고, 삶의 의미가 없었어요. 사이나라고 있어요, 일명 청산가리. 시골에서 꿩 잡고 이러는 데 쓰는 거. 예전에는 약국에서도 그걸 팔았다고. 그래서 그거를 사서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정하고 있었지. 근데 그때 시장에 갔다가 점쟁이를 봤어요. 쌀 뿌리고 엽전 던지고. 그중 한 사람 앞에 앉았죠.”

점쟁이는 그를 보자마자 대뜸 “달밤에 원숭이가 곡을 한다. 뗏장 이불을 덮을 운수”라고 말했다. 뗏장은 ‘흙이 붙어 있는 상태로 뿌리째 떠낸 잔디의 조각’을 의미한다. 무덤을 파랗게 만들기 위해 덮는 ‘떼’를 뜻하기도 한다.

인천 월미도에서 각설이 공연하다
전단지 나눠주던 유가족 처음 만나

점쟁이는 나 회장이 죽을 운수라고 말해준 것이다. 안 그래도 죽을 마음을 먹고 있던 그에게 점쟁이의 말은 치명타였다. 

소주 두 병과 쥐포 한 마리, 사이나 한 조각을 들고 무작정 한강다리를 걸었다. 추운 겨울 차도 없고 가로등 불빛도 희미하던 거리를 걸으며 소주 병나발을 불었다. 사이나를 삼킬 만큼의 소주만 남기고 전부 마셔버린 그는 한참 동안 강물을 바라봤다. 이미 약해진 몸에 술을 들이 붓다 보니 금세 취기가 올랐다. 
 

▲ ▲▲ <일요시사>와 인터뷰 중인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회장 ⓒ고성준 기자

“사이나를 손에 꼭 쥐고 시커먼 강물만 보고 있었죠. 춥고 무섭고 눈물은 줄줄 나고. 술은 계속 오르고. 그런데 그 시커먼 강물 여울 속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이더라고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우리 엄마. 그 자리에서 바닥에 얼굴을 묻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정신을 차렸더니 먼동이 뿌옇게 오르더라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다시 터덜터덜 걸어서 병원에 갔지.”

이후 그를 가엾게 여긴 약사가 치료를 도와주면서 폐결핵은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3년을 꼬박 앓고 나서야 완치가 된 그는 서울 청량리에 자리 잡았다. 그때가 1980년 5월, 그의 나이 26세 때였다. 노점으로 생계를 이어가려 했지만 단속이 심해지면서 연이은 실패를 맛봤다. 결국 각설이 분장을 하고 춤추면서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일에 뛰어들었다. 1991년 7월, 그가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 때라고 말한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폐결핵 걸려
자살 생각도

“인천 월미도에 갔던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3명이 한 팀이어서 돌아가면서 쉬고 있는데 저쪽에서 ‘우리 아이들을 찾아주세요’ 이런 소리가 들리고 40대 정도 된 남자들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어요. 그때는 온 바닥에 껌이 그렇게 많았는데, 어떤 여자가 그 전단지로 자기 하이힐에 붙은 껌을 떼는 거예요. 아니, 그걸 보는데 마음이 좀 이상했어요.”

1991년 3월26일 개구리소년 사건이 일어나고 아버지들은 트럭을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7월 땡볕 아래 다섯 아버지들이 아이를 찾아달라고 전단지를 돌리는 모습이 나 회장 눈에는 그렇게 안쓰러웠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들에게 다가가 전단지를 나눠주겠다며 한 묶음을 받아왔다.

이것이 바로 개구리소년 아버지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개구리소년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버지들과 전단지를 나눠주는 각설이에게로 취재 요청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이후 나 회장과 아버지들은 청량리역에서 다시 만났다.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상황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함께 각설이 공연을 하던 사람들은 하나둘 그를 떠나갔다. 

나 회장은 그때부터 아예 대구로 내려가 아버지들과 동행했다. ‘청량리 털보 각설이’로 불렸던 나 회장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 회장이 각설이 공연을 통해 모금한 돈과 사회 각계의 후원으로 개구리소년 사건의 현상금이 마련됐다. 당시 개구리소년 전단지에 적혀있던 4200만원이라는 액수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사무실 내부에 실종 전단들이 빼곡히 붙여져 있다. ⓒ고성준 기자

“읍 단위는 빼고 군 단위 이상의 마을은 다 가봤어요. 혹시나 새우잡이배 같은 데 팔려 갔을까봐 작은 섬에도 들어가서 찾아봤죠. 그 사이에도 시장통 같은 사람 많은 곳에 가서 공연도 하고요. 다들 먹고 살기 힘든 때라 아버지들도 넉넉지가 않았어요. 어떻게든 벌어야 했죠.”

그렇게 3년6개월 동안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나 회장과 아버지들은 남은 가족들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트럭은 폐차를 해야 할 정도로 낡은 상태였다. 나 회장도 서울 청량리로 돌아와 다시 노점을 차렸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라면 노점 리어카에 실종아동의 전단지가 항상 비치돼있었다는 점. 

노점 리어카에
전단지 붙이고


“개구리소년을 찾으러 다니는 동안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님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그분들이 주신 전단지를 하나둘 받아 왔습니다. 그걸 노점 리어카에 붙였어요. 시민들이 그걸 보고 제보를 해주시더라고요. ‘어디에 봉사를 하러 갔는데 아이를 봤다’ 이렇게. 그럼 또 안 갈 수가 없는 거예요.”

나 회장이 지금까지 전국의 고아원, 기도원 등을 뒤져 찾아낸 실종아동은 수백여명에 이른다. 나 회장이 실종아동을 찾아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폭행 전과도 잔뜩 쌓였다. 누군가는 훈장이라고 추켜세우지만 나 회장은 창피한 기록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2001년 서울시민대상과 함께 받은 상금 300만원으로 지금의 전미찾모 사무실을 만들었다. 나 회장이 시화공장에 직접 찾아가 짜온 컨테이너는 2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청량리역 2번 출구 쪽에 놓인 노란 컨테이너 벽면은 실종아동들의 전단지로 빼곡하다. 실종아동 부모들, 실종아동 문제를 개선하겠다던 정치인들, 경찰, 동네 주민 등이 전미찾모를 드나들었다. 
 

▲ 개구리소년 30주기 추모비

정신없이 바쁜 나날 중에도 나 회장은 개구리소년 사건을 잊지 못했다. 나 회장은 지난 2~3월 3번에 걸쳐 진행된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개구리소년 사건에 대해 ‘정말 아이러니하다’ ‘이상한 사건’ ‘의문 투성이’ 등이라고 표현했다.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유가족 이상으로 훤히 꿰고 있지만 끝내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모습이었다. 

실제 사망원인 등에 있어서는 나 회장과 유가족의 생각이 다르기도 하다. 나 회장은 정치적 상황이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적 불안감 조성을 위해 개구리소년 사건을 만들어냈다는 의견이다.

반면 우철원군의 아버지 우종우씨는 아이들이 봐서는 안 될 무언가를 봤고, 그래서 죽임을 당했다고 보고 있다. 


실종아동들 대부로 인생 바뀌어
고아원·기도원서 수백명 찾아내

30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같은 상황을 보고 들은 나 회장과 유가족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만큼 개구리소년 사건에 의문점이 많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나 회장은 개구리소년 사건을 놓을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큰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사회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개구리소년 추모비 건립을 추진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유가족들은 당초 추모비 건립을 반대했다고 한다. ‘아직도 개구리소년 사건에 매달려 있느냐’ ‘지들(아이들)이 산에 가서 죽은 거 아니냐’는 등 유가족과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말이 쏟아질까 두려웠다.

하지만 나 회장은 오래 전부터 개구리소년 추모비 건립을 밀어붙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혀 가고 있는 개구리소년 사건이 추모비 건립으로 다시 주목받을 수 있다고 여긴 것. 나 회장은 지난달 27일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대구 와룡산 세방골과 추모비 건립 예정 장소를 찾아 묵념하고 소주를 뿌렸다. 2001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김철규(김종식군 아버지)씨도 추모했다.

김씨는 아들의 유골을 보지 못했다. 
 

▲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사무실 전경 ⓒ고성준 기자

“철원아, 호연아, 영규야, 찬인아, 종식아. 너희가 땅속에 오랜 세월 묻혀 있다 뭍으로 나왔는데, (그동안)너희들 이름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이제 며칠 후면 너희 5명의 이름을 새겨 넣은 아담한 추모비를 마련할 것이다. 그동안 어두운 곳에서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만 이제부터 너희들의 이름을 알리고 범행의 실체가 밝혀지는 그날까지 너희들 아버지와 아저씨가 열심히 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도와주거라. 그리고 종식이 아버지, 우리 지켜봐 주시고 당신 몫까지 우리가 힘을 합쳐서 범인을 꼭 잡아서 처벌하는 그런 시간이 되도록 만들어 주세요.”

나 회장은 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개구리소년 사건을 쫓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제 인생에서 개구리소년 사건을 빼면 나주봉 자체가 사라지는 겁니다. 명확한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계속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개구리소년 사건의 범인을 향해서도 말을 남겼다. 

범인 본다면
“꼭 알려주길”

“혹시라도 범인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우리 아이들을 왜 죽여야 했는지, 그 이유라도 알려 주십시오.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겠습니다. 공소시효가 이미 끝났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섯 아버지들 가운데 한 분은 돌아가셨고 세 분은 병석에 누워 있고 이제 활동하시는 분은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분들이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꼭 알려 주십시오. 정말 답답하고 울분이 터집니다. 꼭 좀 알려 주십시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구리소년 30주기 추모제 ‘추모비 공개된다’

오는 26일 대구 와룡산 선원공원에서 ‘개구리소년 추모제 및 기원비 제막식’이 열린다.

3.5m(가로)×1.3m(세로)×2m(높이)의 화강석 재질로 제작된 조형물은 ‘엄마의 품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감싸주는 포근함, 보호막, 안식처’ 등을 상징한다.

꽃바구니 안의 꽃송이 5개는 개구리소년 5명을 의미한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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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