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개구리소년 30주기 ①30년 아이들 쫓은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회장

“불안감 조성 위해 희생됐다”

아이는 열세 살, 아버지는 마흔세 살. 아이는 열세 살, 아버지는 일흔세 살. 아이는 평생 열세 살인데 아버지만 나이를 먹었다. 세월이 하얗게 내린 머리카락, 깊게 패인 주름은 아이 잃은 부모의 슬픔이 남긴 흔적. 1991년 3월26일 ‘도룡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선 아이들은 30년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린다. [편집자 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회장은 개구리소년 사건을 계기로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그의 인생은 개구리소년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 아이들의 흔적을 쫓아 유가족과 동행한 30년 세월은 나주봉 회장을 개구리소년 사건의 또 다른 ‘산 증인’으로 만들었다.
 

▲ 지난 13일,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회장이 &lt;일요시사&gt;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고성준 기자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이하 전미찾모)’ 회장은 매년 2~3월이 가장 바쁘다. 3월26일 개구리소년 추모제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추도사를 쓰느라 머리를 싸매는 것도 이 시기다. 매번 추모제 하루 전날 먼저 대구로 내려가 현장을 살핀다. 20여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해온 일이다.

매년 3월26일
추모제 준비

나 회장은 올해로 66세. 그중 무려 30년을 개구리소년 사건을 쫓는 데 쏟았다. 1991년 7월 인천 월미도에서 아이들을 찾던 개구리소년 유가족과 처음 만나 현재까지 연을 이어왔다. ▲아버지들이 트럭으로 전국을 수색할 때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됐을 때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을 때 등 개구리소년 사건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 회장은 유가족 곁을 지켰다.

강원도 홍천 산골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모친이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뜨면서 동생들을 돌보는 일은 전적으로 그의 몫이 됐다. 아버지가 일을 나간 사이 동생들을 씻기고 먹이고 입히느라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15세 때 강원도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17세 때 이모의 소개로 인천의 중국집에서 일하다 서울로 오게 됐다.

잘 먹지도 못하고 몸을 혹사하던 중 덜컥 폐결핵에 걸렸다. 기침을 하다 피를 쏟아냈다. 나 회장은 당시 먹었던 약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카나마이신과 마이임부톨. 모두 결핵치료제로 사용되는 약이다. 먹는 건 부실한 데다 독한 약을 먹다 보니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주변 동료들도 그를 멀리했다.

“몸은 아프고 일도 못하고, 삶의 의미가 없었어요. 사이나라고 있어요, 일명 청산가리. 시골에서 꿩 잡고 이러는 데 쓰는 거. 예전에는 약국에서도 그걸 팔았다고. 그래서 그거를 사서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정하고 있었지. 근데 그때 시장에 갔다가 점쟁이를 봤어요. 쌀 뿌리고 엽전 던지고. 그중 한 사람 앞에 앉았죠.”

점쟁이는 그를 보자마자 대뜸 “달밤에 원숭이가 곡을 한다. 뗏장 이불을 덮을 운수”라고 말했다. 뗏장은 ‘흙이 붙어 있는 상태로 뿌리째 떠낸 잔디의 조각’을 의미한다. 무덤을 파랗게 만들기 위해 덮는 ‘떼’를 뜻하기도 한다.

인천 월미도에서 각설이 공연하다
전단지 나눠주던 유가족 처음 만나

점쟁이는 나 회장이 죽을 운수라고 말해준 것이다. 안 그래도 죽을 마음을 먹고 있던 그에게 점쟁이의 말은 치명타였다. 

소주 두 병과 쥐포 한 마리, 사이나 한 조각을 들고 무작정 한강다리를 걸었다. 추운 겨울 차도 없고 가로등 불빛도 희미하던 거리를 걸으며 소주 병나발을 불었다. 사이나를 삼킬 만큼의 소주만 남기고 전부 마셔버린 그는 한참 동안 강물을 바라봤다. 이미 약해진 몸에 술을 들이 붓다 보니 금세 취기가 올랐다. 
 

▲ ▲▲ <일요시사>와 인터뷰 중인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회장 ⓒ고성준 기자

“사이나를 손에 꼭 쥐고 시커먼 강물만 보고 있었죠. 춥고 무섭고 눈물은 줄줄 나고. 술은 계속 오르고. 그런데 그 시커먼 강물 여울 속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이더라고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우리 엄마. 그 자리에서 바닥에 얼굴을 묻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정신을 차렸더니 먼동이 뿌옇게 오르더라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다시 터덜터덜 걸어서 병원에 갔지.”

이후 그를 가엾게 여긴 약사가 치료를 도와주면서 폐결핵은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3년을 꼬박 앓고 나서야 완치가 된 그는 서울 청량리에 자리 잡았다. 그때가 1980년 5월, 그의 나이 26세 때였다. 노점으로 생계를 이어가려 했지만 단속이 심해지면서 연이은 실패를 맛봤다. 결국 각설이 분장을 하고 춤추면서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일에 뛰어들었다. 1991년 7월, 그가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 때라고 말한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폐결핵 걸려
자살 생각도

“인천 월미도에 갔던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3명이 한 팀이어서 돌아가면서 쉬고 있는데 저쪽에서 ‘우리 아이들을 찾아주세요’ 이런 소리가 들리고 40대 정도 된 남자들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어요. 그때는 온 바닥에 껌이 그렇게 많았는데, 어떤 여자가 그 전단지로 자기 하이힐에 붙은 껌을 떼는 거예요. 아니, 그걸 보는데 마음이 좀 이상했어요.”

1991년 3월26일 개구리소년 사건이 일어나고 아버지들은 트럭을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7월 땡볕 아래 다섯 아버지들이 아이를 찾아달라고 전단지를 돌리는 모습이 나 회장 눈에는 그렇게 안쓰러웠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들에게 다가가 전단지를 나눠주겠다며 한 묶음을 받아왔다.

이것이 바로 개구리소년 아버지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개구리소년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버지들과 전단지를 나눠주는 각설이에게로 취재 요청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이후 나 회장과 아버지들은 청량리역에서 다시 만났다.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상황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함께 각설이 공연을 하던 사람들은 하나둘 그를 떠나갔다. 

나 회장은 그때부터 아예 대구로 내려가 아버지들과 동행했다. ‘청량리 털보 각설이’로 불렸던 나 회장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 회장이 각설이 공연을 통해 모금한 돈과 사회 각계의 후원으로 개구리소년 사건의 현상금이 마련됐다. 당시 개구리소년 전단지에 적혀있던 4200만원이라는 액수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사무실 내부에 실종 전단들이 빼곡히 붙여져 있다. ⓒ고성준 기자

“읍 단위는 빼고 군 단위 이상의 마을은 다 가봤어요. 혹시나 새우잡이배 같은 데 팔려 갔을까봐 작은 섬에도 들어가서 찾아봤죠. 그 사이에도 시장통 같은 사람 많은 곳에 가서 공연도 하고요. 다들 먹고 살기 힘든 때라 아버지들도 넉넉지가 않았어요. 어떻게든 벌어야 했죠.”

그렇게 3년6개월 동안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나 회장과 아버지들은 남은 가족들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트럭은 폐차를 해야 할 정도로 낡은 상태였다. 나 회장도 서울 청량리로 돌아와 다시 노점을 차렸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라면 노점 리어카에 실종아동의 전단지가 항상 비치돼있었다는 점. 

노점 리어카에
전단지 붙이고


“개구리소년을 찾으러 다니는 동안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님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그분들이 주신 전단지를 하나둘 받아 왔습니다. 그걸 노점 리어카에 붙였어요. 시민들이 그걸 보고 제보를 해주시더라고요. ‘어디에 봉사를 하러 갔는데 아이를 봤다’ 이렇게. 그럼 또 안 갈 수가 없는 거예요.”

나 회장이 지금까지 전국의 고아원, 기도원 등을 뒤져 찾아낸 실종아동은 수백여명에 이른다. 나 회장이 실종아동을 찾아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폭행 전과도 잔뜩 쌓였다. 누군가는 훈장이라고 추켜세우지만 나 회장은 창피한 기록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2001년 서울시민대상과 함께 받은 상금 300만원으로 지금의 전미찾모 사무실을 만들었다. 나 회장이 시화공장에 직접 찾아가 짜온 컨테이너는 2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청량리역 2번 출구 쪽에 놓인 노란 컨테이너 벽면은 실종아동들의 전단지로 빼곡하다. 실종아동 부모들, 실종아동 문제를 개선하겠다던 정치인들, 경찰, 동네 주민 등이 전미찾모를 드나들었다. 
 

▲ 개구리소년 30주기 추모비

정신없이 바쁜 나날 중에도 나 회장은 개구리소년 사건을 잊지 못했다. 나 회장은 지난 2~3월 3번에 걸쳐 진행된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개구리소년 사건에 대해 ‘정말 아이러니하다’ ‘이상한 사건’ ‘의문 투성이’ 등이라고 표현했다.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유가족 이상으로 훤히 꿰고 있지만 끝내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모습이었다. 

실제 사망원인 등에 있어서는 나 회장과 유가족의 생각이 다르기도 하다. 나 회장은 정치적 상황이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적 불안감 조성을 위해 개구리소년 사건을 만들어냈다는 의견이다.

반면 우철원군의 아버지 우종우씨는 아이들이 봐서는 안 될 무언가를 봤고, 그래서 죽임을 당했다고 보고 있다. 


실종아동들 대부로 인생 바뀌어
고아원·기도원서 수백명 찾아내

30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같은 상황을 보고 들은 나 회장과 유가족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만큼 개구리소년 사건에 의문점이 많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나 회장은 개구리소년 사건을 놓을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큰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사회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개구리소년 추모비 건립을 추진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유가족들은 당초 추모비 건립을 반대했다고 한다. ‘아직도 개구리소년 사건에 매달려 있느냐’ ‘지들(아이들)이 산에 가서 죽은 거 아니냐’는 등 유가족과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말이 쏟아질까 두려웠다.

하지만 나 회장은 오래 전부터 개구리소년 추모비 건립을 밀어붙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혀 가고 있는 개구리소년 사건이 추모비 건립으로 다시 주목받을 수 있다고 여긴 것. 나 회장은 지난달 27일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대구 와룡산 세방골과 추모비 건립 예정 장소를 찾아 묵념하고 소주를 뿌렸다. 2001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김철규(김종식군 아버지)씨도 추모했다.

김씨는 아들의 유골을 보지 못했다. 
 

▲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사무실 전경 ⓒ고성준 기자

“철원아, 호연아, 영규야, 찬인아, 종식아. 너희가 땅속에 오랜 세월 묻혀 있다 뭍으로 나왔는데, (그동안)너희들 이름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이제 며칠 후면 너희 5명의 이름을 새겨 넣은 아담한 추모비를 마련할 것이다. 그동안 어두운 곳에서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만 이제부터 너희들의 이름을 알리고 범행의 실체가 밝혀지는 그날까지 너희들 아버지와 아저씨가 열심히 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도와주거라. 그리고 종식이 아버지, 우리 지켜봐 주시고 당신 몫까지 우리가 힘을 합쳐서 범인을 꼭 잡아서 처벌하는 그런 시간이 되도록 만들어 주세요.”

나 회장은 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개구리소년 사건을 쫓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제 인생에서 개구리소년 사건을 빼면 나주봉 자체가 사라지는 겁니다. 명확한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계속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개구리소년 사건의 범인을 향해서도 말을 남겼다. 

범인 본다면
“꼭 알려주길”

“혹시라도 범인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우리 아이들을 왜 죽여야 했는지, 그 이유라도 알려 주십시오.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겠습니다. 공소시효가 이미 끝났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섯 아버지들 가운데 한 분은 돌아가셨고 세 분은 병석에 누워 있고 이제 활동하시는 분은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분들이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꼭 알려 주십시오. 정말 답답하고 울분이 터집니다. 꼭 좀 알려 주십시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구리소년 30주기 추모제 ‘추모비 공개된다’

오는 26일 대구 와룡산 선원공원에서 ‘개구리소년 추모제 및 기원비 제막식’이 열린다.

3.5m(가로)×1.3m(세로)×2m(높이)의 화강석 재질로 제작된 조형물은 ‘엄마의 품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감싸주는 포근함, 보호막, 안식처’ 등을 상징한다.

꽃바구니 안의 꽃송이 5개는 개구리소년 5명을 의미한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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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천조국’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라는 반응이 거듭되는 모양새다. 되짚어 보면 이제 와 말이 안 된다고 하기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조롱과 웃음이 난무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상보다 더 파격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임기 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행했다. 그 공약이 ‘미치광이’ ‘사이코’ 등의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져도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외부 자극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그 행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의 경찰’로 각국 상황에 관여했던 때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관세 부과에서 비롯된 통상 전쟁과 국제 질서 유지를 내세운 타국에 대한 물리적 개입이다. 두 사안 모두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라면 생각은 해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당장 전 세계의 지도자가 반발할 테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겪어야 할 정치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했고 또 하려 하고 있다. 모두가 ‘설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 소유로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시기에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기’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와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는 서로 수천%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관세 부과로 흔들더니 그린란드로 공포 조장 과거 FTA 체결로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 0%를 유지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협상한 일본의 관세 부과율을 기본으로 깔고 조율이 이뤄졌다.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관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전 세계가 통상 전쟁의 여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영토 확장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해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언급했지만 속내는 석유라는 말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제1의 석유 매장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차지하게 되면 세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개편에 나설 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은 물론 산유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자체를 통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 지형을 ‘친미’ 또는 친미 우호 세력으로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가에서는 공산 정권을 유지 중인 쿠바가 다음 표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에도 마이웨이 베네수엘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란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의 섬으로 한반도보다 9배나 큰 섬이다. 인구가 6만여명에 불과하고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라 가치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아래에 묻힌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정학적으로도 좋은 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과거 미국정부는 그린란드를 사기 위해 돈을 제시한 적도 있고,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반발, 무엇보다 그린란드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골적인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상 이유를 들었다. 그린란드를 지킬 수 있는 건 미국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그린란드에 묻혀 있는 자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압송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승리’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면서 극대화됐다. 협상의 기술 자유자재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에 참여 중인 국가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유럽 간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대서양 질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무력 충돌 가능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폐하면서 상황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실제 그의 발언 이후 미국 증시 등은 오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집단 반발, 금융시장 동요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발 후퇴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계속 가다간 나토의 내부 분열은 물론 유럽의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취하는 ‘협상의 기술’을 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협상 기술을 사용해 왔다. 과도한 관세 부과, SNS 사용 등이 그 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어 광물 자원 노리고 장악 시도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을 뿐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 자체가 꺾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진행한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 병합의 당위성을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전략 요충지’이며 ‘북미 대륙의 일부,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예측불가의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우리나라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미국과의 관계인 만큼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후 관리를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 가입 초청장을 60여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의 평화지만 속내는 국제연합(UN) 등을 대체할 다자간 기구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서방 및 친서방 국가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20일 “미국 측 초청에 따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평화위원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제나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임기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일으킨 풍파는 엄청나다. 앞으로 불어닥칠 태풍의 크기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20일 정오까지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