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개구리소년 30주기 ③사건 지휘한 강력과장의 편지

“누가 죽인 게 아닙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991년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이 일어난 지 올해로 꼭 30주기가 됐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 ‘옛말’에 따르면 벌써 3번이나 바뀌었을 만큼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사건의 당사자도, 주변인도 모두 지쳤다. 유가족의 ‘최후 보루’였던 경찰은 그때 뭘 했을까.
 

▲ 김용판 당시 대구경찰서장 ⓒ

아이들을 찾기 위해 트럭을 타고 전국을 헤매던 개구리소년 5명의 아버지들은 3년6개월 만에 생업으로 돌아갔다. 사라진 아이만을 바라보기엔 남은 가족의 고통이 컸다. 아버지들은 트럭 수색을 마치면서 경찰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믿었는데…

우철원군의 아버지 우종우씨는 “남은 가족들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기자들을 모아서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제 남아있는 가족을 위해서 생업에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 아이들 찾는 것은 경찰 당신들 몫이다. 당신들이 이제 아이들 찾아줘’ 하고 부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개구리소년 사건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다. 우리나라 3대 미제사건으로 불렸던 ‘화성연쇄 살인사건’이나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과 비교하면 사건의 윤곽조차 희미한 실정이다. 이춘재라는 진범이 잡힌 화성 사건이나 유력 용의자가 존재했던 이형호군 사건과 달리 ‘진상규명’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사건을 끝내 놓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히 당시 경찰의 부실수사를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크다.


개구리소년 사건에서 크게 두 번의 진상규명 기회가 경찰에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91년 3월26일 아이들이 실종된 후 초기 수색 단계, 2002년 9월26일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직후 발굴 단계. 두 번 모두 초동수사 단계였다. 

당시 경찰의 초동수사는 2019년 10월 대구지방경찰청을 상대로 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언급됐다. 개구리소년 사건이 일어난 지 28년이 지난 시점에도 질타를 받을 만큼 당시 경찰의 초동수사가 부실했던 것. 유가족들은 실종에서 살인으로 사건의 성격이 바뀌는 과정에서 경찰의 부실한 수사가 진상규명을 방해했다고 여겼다. 

우종우씨는 “경찰은 아이들 실종 이후 와룡산 수색 과정에서 실제 아이들이 묻혀있던 지점(세방골)은 수색하지 않았다. 왜 그곳을 빼놓고 수색했는지 모르겠다”며 “유골 발굴 과정에서도 삽과 곡괭이로 파헤치면서 증거를 보존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유가족 제기한 국가 상대 소송
경찰 입장 대변한 보조참가인

실제 와룡산 세방골에서 발견된 5구의 유골 가운데 마지막으로 나온 김영규군의 유골을 제외한 4구는 불과 몇 시간 만에 발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경찰이 아이들의 실종 원인과 사망원인을 ‘단순 가출’ ‘저체온증’ 등으로 언급한 부분은 성급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유골 발견 직후 아이들의 사인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당시 대구달서경찰서장이었던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5명의 아이들이 길을 잃고 헤매다 탈진, 산 중턱 구릉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기온이 떨어지는 바람에 저체온 현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2005년 8월 개구리소년 유가족과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전미찾모)은 국가를 상대로 4억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2002년 9월 당시 경찰의 마구잡이식 시신 발굴로 사건을 해결할 만한 단서들이 훼손됐고 경찰이 단순가출로 가정, 저체온증으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 유족들이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개구리소년 유가족들은 1·2·3심에서 전부 패소했다.

법원은 “경찰의 수사 및 유골 발굴 과정에서 위법한 사항이 없다”고 판결했다. 개구리소년 유가족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경찰의 초동수사가 위법하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당시 재판에서 눈에 띄는 점은 ‘피고 보조참가인’의 존재였다. 보조참가인은 소송 당사자의 한 편을 승소시키기 위해 제3자가 소송행위에 참가하는 것을 말한다. 원고나 피고의 지위는 아니지만 소송 결과에 있어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지는 제3자에 한해 허용된다. 

개구리소년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김모씨는 1심부터 피고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했다. 김씨는 소송 과정에서 국가의 입장, 좀 더 구체적으로는 경찰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씨는 “김씨는 경찰의 입장에서 진술한 인물”이라며 “법원 엘리베이터에서 ‘왜 그렇게 진술하느냐’고 다툰 기억도 있다”고 전했다. 

<일요시사>는 당시 김씨가 개구리소년 유가족에게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를 단독 입수했다. 2007년 10월31일자로 ‘김현도(김영규군의 아버지)씨 외 부모님 여러분들’에게 보낸 A4용지 2장 분량의 편지다. 2007년 10월2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판결이 나고 일주일 뒤에 보낸 것으로 보인다. 

‘개구리소년 부모님들에게 보내는 글’로 시작하는 편지에서 김씨는 자신을 ‘1991년 사건 발생 초동수사 당시 대구시경 강력과장이었고, 또 이번 서울법원에서 있었던 손해배상청구사건에서 피고의 보조참가인이었던 김○○’ 이라고 소개했다. 

28년 지나도 초동수사 비판 나와
수색·유골 발굴 과정 ‘마구잡이’

그는 ‘제가 부모님들에게 죄송하게 여기는 단 한 가지는 그 아동들의 시신을 곧바로 찾아주지 못했던 것뿐입니다’라며 ‘시신을 곧바로 발견했더라면 사망원인이 타살인지, 자연사인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고, 15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런 법정 쟁송까지는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경찰이 수색 대상 지역에서 개구리소년 아이들의 유골 발견 지점인 계곡을 제외했다고 적었다. 아이들이 집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깊은 산까지 갔으리라고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 

그러면서도 김씨는 아이들의 사망원인이 ‘저체온증’이라고 주장했다.
 

▲ 와룡산 일대를 수색 중인 경찰 병력

그는 ‘아동들은 절대 범인에 의해 피살된 것이 아닙니다. 그때 그 철부지한 아동들이 용돈 몇 푼을 마련하려고 일기예보도 모르고 그 험준한 사격장 탄착지점에서 탄환을 수집하던 중 때마침 들이닥친 폭풍우를 피하려고 그 계곡에서 서로 옹기종지 붙어 끌어안고 있다가 그만 한기가 들어 꼼짝 못하고 모두 사망한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경찰의 주장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개구리소년 아이들은 실종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해 매장됐다는 추정이 나온다. 초등학생의 치아 구조가 약 6개월 간격으로 변화한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실종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 

아이들의 실종 당일 대구 와룡산의 최저기온은 3.3도, 최고기온은 12.3도였다. 비가 오긴 했지만 강우량은 5.7㎜에 불과했다. 또 고속도로와 민가의 불빛을 충분히 볼 수 있었던 위치라는 분석도 제기된 바 있다. 아이들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배경이다.

김씨는 일부 아이들의 두개골에 남은 흔적은 11년6개월 묻혀있는 동안 홍수 때 떠내려온 크고 작은 돌덩이가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의가 뒤로 묶여 있고, 하의도 묶여 있던 김영규군의 옷가지 역시 사망 직전 비를 맞고 추위에 떨던 아이들이 스스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답답함만…

그러면서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고 위안하는 마음으로(유골이 발견된) 계곡 현장에서 5명이 함께 따뜻하게 덮을 수 있는 이불과 뜨거운 쌀밥, 소고깃국 한 그릇을 제물로 해 다시 천도제를 지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부터는 모든 악몽에서 벗어나 생업에 열중하시고 내내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편지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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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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