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리포트 - 그들이 궁금하다’ ④그들은 어디로?

혈세로 먹여주고 재워준다

[일요시사 사회팀] 박호민 기자 = 김일곤 살인사건이 조명을 받고 있는 가운데 살인범에 대한 법적인 잣대가 너무 느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형량, 시효, 사형미집행 등을 두고 적절성 논란이 부각되면서 법의 개정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1일 수원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양철한)는 수원 광교산 몽둥이 살해범 신모(47)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신모씨는 지난 2월 광교산 등산객 B씨에게 아무 이유 없이 이른바 ‘묻지마 폭력’을 휘둘러 숨지게 만든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느슨한 잣대
 
검찰은 신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신씨가 과거부터 정신분열증을 앓아왔고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벌였다는 점을 참작해 극형을 내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며 징역 20년 형을 선고했다.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살해범에 대한 처벌이 관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심신미약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해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법원은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형량을 감해 주기도 한다. 형법 10조2항에 따르면 심신미약 판단에는 전문가의 판단이 중요하지만 결정적으로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법원의 평가가 객관성을 담보로 하고 있는지 여부는 의문이다.
 
심신미약은 형량을 줄일 수 있는 ‘마법’과 같다는 것을 살해범들도 잘 아는 모습이다. 최근 흉악스러운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른 범인들이 잇달아 심식미약을 이유로 항소를 제기하는 추세다. 지난해 12월 70대 할머니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여행용 가방에 담아 유기한 유모씨도, 지난해 4월 ‘김해여고생’을 잔혹하게 살해한 이모씨와 허모씨도 각각 심신미약을 이유로 최근 항소를 했다.
 

최근에는 심신미약에 대한 인식이 나빠 형량이 줄어드는 일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이 나올 때마다 시민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 심신미약 및 심신상실로 인한 감형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법조계에서는 피고인이 정신병, 술 등의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이 줄어드는 것은 어렵다고 보고 있지만, 국민들은 멀쩡한 범죄자가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 가능성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분노하고 있다.
 
자수로 인한 살인죄 형량 감형도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살인에 대한 형량은 통상 20∼30년에서 최고 사형까지 선고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자수의 경우 잔혹한 수법에도 불구하고 형량이 12년 수준에서 정해진다.
 
사람 죽이고 ‘호의호식 감방생활’
보통 20∼30년형…자수시 10년대
 
따라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형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05년 5월 평소 연모하던 직장후배를 납치해 잔혹하게 살해한 A씨는 자수를 통해 형량이 12년 선고되면서 솜방망이 처벌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실제 살인범이 형량을 낮추기 위해 자수를 하려다 적발된 사례가 있다. 2007년 최모씨는 유통회사에 금품을 훔치러 들어갔다 잠에서 깬 주인을 살해했다. 그는 이후 자신의 형량을 낮추기 위해 경찰에 살인형량을 묻다 적발됐다.
 
 
법원이 살인범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내려도 논란은 남아있다. 사형이 선고돼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 마지막 해인 1997년 12월 23명에 대해서 사형을 집행한 이후 18년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알제리, 카메룬, 남아공, 케냐, 러시아, 몽고, 모로코, 튀니지 등 10년 이상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국제인권단체 엠네스티가 인정한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다.
 
하지만 최근 잔혹한 수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사형 집행에 대한 논란은 꾸준히 일고 있다. 사형제 집행은 대통령의 재가가 나지 않으면 집행되지 않는다. 김영삼 정부 이후 실질적 사형 폐지국가가 되자 이후 대통령들은 사형제 집행을 미루는 모습이었다. 굳이 논란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흉악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사형 집행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추세다. 특히, 사형수가 교도소에 수감되면 노역활동도 하지 않고, 특식까지 챙겨먹는다는 사실이 일반인들에게까지 알려지면서 국민의 세금을 사형수를 먹여 살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다만,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주장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사형집행에 대한 의견 대립은 계속될 전망이다.
 
국민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져 살인범에 대한 법이 개정된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는 살인 공소시효가 15년이었다. 즉, 살인을 저지른 후 15년동안 법망을 피해나가면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떠들고 다녀도 법적인 제재 수단이 전무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살인범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결국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긴 ‘태완이 법’이 지난 7월31일 발효되면서 지난 2005년 8월 이후 발생한 미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사라졌다.
 
끝까지 간다
 
경찰은 살인사건 공소시효 폐지로 미제로 남은 살인사건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발생한 지 5년이 넘은 살인사건은 지방경찰청의 미제사건 전담팀이 넘겨받아 수사한다. 5년 더 수사하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수사 중지 여부를 심의할 계획이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제 살인사건은?
 
국내 살인 사건 검거율은 높은 편이다. 96.5% 수준으로, 이는 미국(75.9%), 영국(81.0%)보다 높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 못한 5년 이상 장기 미제 살인사건은 256건에 달한다.
 
지역별로 충청권에서는 2001년 12월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강도 살인사건’과 2006년 대덕구 송촌동 ‘택시기사 살인사건’, 2013년 ‘보은 콩나물밥 독극물 사건’ 등이 미제로 남았다. 전라남도에서는 ‘나주 간호사 알몸 살해사건(2000년 8월)’,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해사건(2001년 2월)’, ‘광주 내방동 임산부 살해사건(2001년 9월)’, ‘대인동 식당주인 살해사건(2008년 10월)’, ‘목포 여대생 살해사건(2010년 10월)’ 등이다.
 
한편, ‘태완이법’이 발효됐지만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건들은 영구미제로 남아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브가 된 ‘화성 연쇄살인사건’, 실종된 지 11년 만에 유골로 발견된 대구 ‘개구리소년’ 사건, 영화 ‘그놈 목소리’의 ‘이형호(당시 9세) 유괴·살인사건’ 등 이른바 3대 미제사건은 영원히 법적인 처벌을 할 수가 없다. 아이러니하게 ‘태완이법’을 만든 태완이 살인 사건도 1999년에 발생해 공소시효가 지나면서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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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