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56초 만에’ 사라진 자립정착금의 비밀

나라가 주는 돈 보육원이 빼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당사자도 모르게 계좌에서 250만원이 빠져나갔다. 입출금 간격은 불과 56초. 18세 고아 박민우씨의 자립정착금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8년 뒤에야 들춰본 거래내역서에는 ‘영락보린원’이라는 낯익은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가 5세 때부터 14년 동안 집으로 여긴 곳, 보육원이었다.

 

▲ (사진 왼쪽)영락보린원에서 용산구청에 제출한 자립정착금 집행 내역 문서와 (가운데)영락보린원에서 박민우씨 계좌로 넣은 자립정착금 입금내역서, (오른쪽)박민우씨가 떼본 당시 거래내역서

부모를 여의거나 부모에게 버림받아 몸 붙일 곳 없는 아이. 고아의 사전적 의미다. 최근에는 ‘보호 대상 아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또는 보호자가 아동을 학대하는 경우 등 그 보호자가 아동을 양육하기에 적당하지 않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는 경우의 아동’(아동복지법 3조 4호)으로 그 범위도 확대됐다.

고아 대부분
아동 시설로

보호 대상 아동(이하 보호아동)은 보건복지부 현황 파악 기준 2000년 9058명, 2010년 8590명, 2019년 4047명 등 20여년간 감소 추세를 보였다. 보호아동의 절반 이상은 부모의 학대‧빈곤‧실직 등의 이유로 집을 떠나야 했다. 2019년 기준 그 비율은 71%(2865명)에 이른다. 이들은 아동 양육시설과 위탁가정 등에 맡겨졌다. 

2019년 전체 보호아동 가운데 67.6%(2739명)이 아동 양육시설 등 아동 복지시설에서 보호 조치를 받았다. 2020년 1월 기준 서울 17개구에서 운영 중인 아동 복지시설은 30개에 이른다. 시립 민간위탁시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36개까지 늘어난다. 해당 시설들에 보호아동 2283명이 머무르고 있다. 

보호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퇴소해야 한다. 이른바 ‘보호 종료’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사람에게 보호 종료라는 딱지를 붙이는 경우는 고아밖에 없다”며 “고아들은 시설 입소 과정에서 이미 부모로부터의 보호가 끝났고, 시설에서 나가는 순간 국가로부터의 보호도 끝난다”고 말했다. 


아동복지법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호아동의 위탁보호 종료 또는 아동 복지시설 퇴소 이후의 자립을 지원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보호 종료 아동의 주거비 등을 지원하기 위한 ‘자립정착금’ 지급이다. 지자체별로 상이하지만 보호 종료 아동 1인당 300만~500만원이 지급된다. 십수년간 시설에 머물다가 사회로 나가게 된 보호종료 아동에게 국가가 쥐어주는 나름의 ‘목돈’인 셈이다.  

비영리 공익재단인 ‘아름다운 재단’에서 조사한 <2014년 자립정착금 사용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1981년 아동복지법의 전면 개정 이후 2000년까지 보호 종료 아동에 대한 자립비용 지급의 근거가 명시됐다. 국가와 지자체가 나눠 부담하던 자립정착금은 2005년 지방이양사업으로 전환되면서 지자체에서 관리하고 있다. 

고아들 자립 위해 지원
구경도 못해보고 증발

서울시의 경우 보호 종료 아동의 수에 따라 자립정착금을 자치구에 교부한다. 그러면 자치구에서 자립정착금을 신청한 보호 종료 아동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전까지는 자치구-시설-보호 종료 아동 순으로 전달됐던 자립정착금은 2019년 이후 자치구에서 보호 종료 아동의 통장에 직접 넣어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보호아동들이 자립정착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조윤환 대표는 “고아들이 자립정착금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고아 출신인 나도 2001년 퇴소 때까지 자립정착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주변에서 자립정착금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용산구 소재 영락보린원에서 2001년 퇴소한 박민우씨도 마찬가지였다. 영락보린원(당시 신의주 보린원)은 1939년 한경직 목사가 신의주 제2교회에서 설립한 아동 양육시설이다. 사회복지법인 영락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아동 복지사업의 일환이다. 34명의 직원들이 54명의 보호아동들을 돌보고 있다. 


4~5세 때 영락보린원에 입소한 민우씨는 만18세인 2001년 11월14일 영락보린원에서 나왔다. 퇴소 당시 민우씨에게 주어진 건 117만원가량 들어있던 자신 명의의 통장과 도장이었다. 자립생활관으로 거처를 옮긴 민우씨는 이 돈을 쪼개고 아껴서 사용했지만 2002년 5월 잔고가 바닥났다. 
 

▲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고성준 기자

자립생활관에 내야 할 월세 등을 벌기 위해 민우씨는 닥치는대로 일해야 했다.

민우씨는 “그 당시 한 푼, 한 푼이 정말 소중했다. 몇 만원의 월세가 없어 자립생활관에서 쫓겨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올해로 39세가 된 민우씨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기 그지없다. 코로나19 시국과 겹쳐 월세 30만원을 마련하는 것조차 빠듯하다. 

지자체에서
자립 지원

민우씨가 자립정착금에 대해 알게 된 건 올해 초였다. 2002년부터 20년 가까이 친분을 유지해온 조윤환 대표와 대화하던 중 자립정착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 민우씨는 조 대표에게 영락보린원으로부터 자립정착금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 대표가 그 길로 영락보린원에 확인 작업을 시작했다. 

몇 차례의 실랑이 끝에 영락보린원은 ‘보내시는 분’ 영락보린원, ‘받으시는 분’ 박민우로 250만원이 입금된 입금내역서를 조 대표에게 공개했다. 우리은행 후암동 지점에서 2002년 3월28일 오전 10시13분에 거래된 내역이었다.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한 돈이 계좌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민우씨는 신분증을 가지고 은행을 찾았다. 

하지만 민우씨 계좌의 잔고는 862원뿐이었다. 민우씨와 조 대표는 거래내역 확인을 위해 ‘예금거래 실적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증명서에는 2002년 3월28일 10시13분38초에 ‘영락보린원’ 이름으로 250만원이 현금으로 입금된 흔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 돈은 입금된 지 불과 56초 만인 2002년 3월28일 10시14분34초에 ‘자기앞수표’로 몽땅 빠져나갔다. 입출금은 같은 은행 지점에서 일어났다.

민우씨의 계좌에 250만원이 입금됐다 채 1분도 안 돼 돈이 출금된 것이다. 이 돈은 민우씨의 자립정착금이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영락보린원의 ‘2002년 아동복지시설 자립정착금 집행 보고’에 따르면 영락보린원은 2002년 6월4일 ‘2002년 아동복지시설 퇴소아동 자립정착금을 아래와 같이 집행했기에 그 결과를 보고합니다’라는 내용의 문서를 용산구청에 보냈다.

영락보린원은 민우씨를 포함한 보호종료 아동 6명에 자립정착금을 250만~300만원씩 집행했다고 기재했다. 집행일자는 2002년 3월28일, 2002년 6월3일 등이다. 그러면서 영락보린원은 ‘무통장 입금증 사본 6매’를 첨부했다. 조 대표가 민우씨의 자립정착금 지급 여부를 문의했을 당시 영락보린원이 공개한 입금내역서로 추정된다. 

영락보린원의 ‘누군가’가 은행을 찾아 민우씨의 계좌에 250만원을 넣었다가 바로 다시 뽑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영락보린원에서 용산구청에 제출할 입금내역서를 뽑기 위해 형식상 민우씨의 계좌로 돈을 보낸 게 아니냐는 해석도 뒤따른다.

시청‧구청
나 몰라라?


다시 말해 민우씨의 자립정착금이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김병삼 영락보린원 원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영락보린원 이름으로 민우씨 계좌에 250만원을 입금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통장을 본인(박민우씨)이 갖고 있는데 어떻게 돈을 빼 가냐”면서 “기자님이 제 통장에서 돈을 빼 갈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누가 돈을 출금했는지는 모르지만 통장이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로 경찰과 논의 중에 있고,(박민우씨 등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그 당시 근무한 직원은 현재 아무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박민우씨는)자립생활관으로 전원된 것”이라고 말했다. 영락보린원에서 퇴소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보건복지부 아동권리과 직원에 따르면 자립생활관은 시설을 퇴소한 아동이 입소하는 곳이다. 실제 자립생활관 입소를 위해서는 보호가 종료됐다는 내용의 증명서가 필요하다. 해당 직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전원은 시설에서 시설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시설에서 자립생활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은 전원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김병삼 원장의 설명과 배치되는 부분이다.

사회복지법인 영락사회복지재단 신동원 사무처장은 “책임질 일이 있으면 당연히 책임져야겠지만, 아무런 근거 없이 뭘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식적인 확인 없이는 법인에서 돈이나 보상 등을 해주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공식적인 확인을 위해 수사 의뢰를 할 생각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민원인 측에서 그렇게 한다면 응하겠다”고 밝혔다. 


영락보린원서 입금한 내역 확인
“통장이 그 자리 있었던 것” 해명

자립정착금을 교부하고 집행하는 서울시청과 용산구청에서는 현재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서울시청 여성가족정책실 가족담당관 아동복지팀 직원은 “너무 오래전 일이라 심증은 있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다는 점에서 확실히 뭐라 말씀드리긴 어렵다”면서 “서울시는 자립정착금을 교부할 뿐 관리‧감독은 자치구가 맡고 있기 때문에 개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용산구청 어르신청소년과 아동보호팀 직원 역시 “영락보린원과 민원인 양 측이 해결할 문제”라고 전했다. 이어 “구청은 자립정착금을 시설에 제대로 분배했고, 또 증빙서류도 제대로 받았다”며 “자립정착금을 받지 못했다는 민원인이 나와 사실 좀 난감한 부분이 있다”고 언급했다. 

서울시청과 용산구청은 영락보린원을 대상으로 한 자립정착금 전수조사 결과를 언급했다. “용산구청에서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서울시청) “문제는 발견할 수 없었다”(용산구청) 등이다. 전수조사는 영락보린원이 2002년부터 최근까지의 자립정착금 관련 서류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조 대표는 “시청이나 구청에서 말하는 전수조사는 ‘입금내역서’를 바탕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민우도 정상적인 입금내역서는 있다”며 “퇴소한 고아들을 상대로 연락을 취해 자립정착금 수령 여부를 따져보는 게 진정한 전수조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국 보육원을 대상으로 자립정착금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동복지법상 미성년자 고아들의 후견인은 아동 양육시설의 원장이다. 고아들에게는 친부모나 마찬가지다. 원장은 고아들의 통장을 개설하고 해지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민우씨 역시 퇴소 당시 통장을 받을 때까지 해당 계좌의 존재를 몰랐다고 주장했다. 

입금내역서로만
전수조사 했다?

조 대표는 “매년 사회로 나오는 고아의 수가 2500~2600명 수준이다. 많은 수 같지만 지자체별로 나눠보면 얼마 되지 않는다. 자립정착금을 지원하고 고아들에게 전화 한 통만 해도 수령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휴대폰이 없어 연락이 어렵다면 고아들이 직접 수령하게끔 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수사할 수 없다는 걸 안다”면서도 “하지만 경찰에서 사실규명 작업은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립정착금은 퇴소하는 고아들에게 목숨줄이나 다름없다. 시설에서 벼룩의 간을 빼먹는 짓을 할 수 없도록 국가가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을 앞두고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대권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후보가 또 한 번 판결대에 서야 할 상황에 놓인 것. 그 후보로서는 지난 대선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리스크를 떨칠 기회이면서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대법원이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오는 6월3일 조기 대선이 열린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각 당은 최종 대선후보를 뽑기 위한 레이스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컷오프를 거쳐 8명의 후보를 추린 후 1차 경선서 4명을 뽑았다. 2차 경선서 과반 득표자 여부에 따라 추가 경선을 진행해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민주당은 3명의 후보가 4개 권역을 돌며 지난 27일, 이재명 전 대표가 대선후보로 결정됐다. 압도적 1위 제동 걸리나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악의 악재를 짊어진 상태다. 조기 대선의 책임 소재가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지워진 상황이라 내부가 혼란스럽다. 실제 후보 간에도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최종 1인이 결정되는 다음 달 3일까지 후보 간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민주당은 ‘1극 독주’ 상황이다. 이 전 대표가 경선 지역마다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였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득표율보다 높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경쟁자로 나선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은 한 자릿수 득표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지난 27일 마지막 경선서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다자 대결, 양자 대결서도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어떤 후보와 붙어도 15%~20%p 차이로 넉넉하게 앞선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재수 끝에 대권을 잡는 데 성공한 문재인 전 대통령 때와 오버랩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시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표현이 선거를 지배했듯, 이번 대선은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 유권자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이냐, 아니냐’로 흘러가던 선거 구도에 대법원이라는 변수가 던져졌다.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처음 불거져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려 있던 ‘사법 리스크’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중에서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다시 한번 판결대 위에 올랐다. 이 전 대표는 20대 대선 과정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과 경기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로 판결했다. 항소심 유죄, 무죄로 뒤집어 김명수 체제서 7대 5로 회생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지난달 26일에 나왔다. 이후 헌재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이 전 대표의 대선 행보를 막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나왔다. 공직선거법 재판은 1심은 기소 후 6개월, 2·3심은 3개월 이내에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6·3·3 규정에 따라 대법원 판결은 대선 이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전 대표의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에 회부하면서 상황이 미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오전,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오경미·권영준·엄상필·박영재 대법관으로 구성된 2부에 배당했다. 주심은 박영재 대법관이 맡았다. 그러나 곧이어 해당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전합은 ▲소부서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기존 대법 판례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소부서 재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의 상황에 올리게 된다. 사건이 전합에 회부되면서 조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재판 업무를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 회피를 신청한 노태악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이 최종 판결 선고를 포함해 심리 및 판단을 하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노 대법관은 이해 충돌을 우려해 전합으로부터 빠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사건을 전합에 회부하고 첫 기일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 24일에도 기일을 잡았다. 대법원이 사건 심리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판결 선고 시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시에 이 전 대표 앞에도 몇 가지 경우의 수가 놓이게 됐다. 먼저 대법원이 상고 기각을 하는 경우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대법원이 기각하면 공직선거법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된다. 이 전 대표의 대선 가도에 정말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어지는 셈이다. 변수 등장 경우의 수 반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는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한다고 해서 바로 형이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확정 판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대선 전에 최종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 경우에는 이 전 대표의 대선후보 자격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파기자판’ 가능성도 나온다. 파기자판은 상급심 재판부가 하급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대법원이 판결을 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보수 진영 등에서 대선 전까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두고 파기자판 가능성을 거론했던 바 있다. 대법원이 벌금 100만원 이상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이 전 대표는 피선거권 박탈로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에 대한 법리해석을 따지는 법률심에 해당하며, 징역 10년 이하의 형이 선고된 사건에 대해선 양형을 판단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는 파기자판 가능성은 작게 보고 있다. 대법원이 심리를 서두르는 것과는 별개로 선고가 대선 이후에 나면 헌법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점화될 전망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5년 만에 평행이론? 여기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소추’에 대한 해석이다. 기소로 봐야 하는지, 기소와 재판을 합쳐서 봐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 또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재판 정지 여부도 맞물려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행보를 경계하는 듯한 모양새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이 전 대표는 우리 당 대선 (경선) 후보기도 하지만 선고 결과에 따라 우리 당이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건이라 당 차원의 입장 표명이 불가피하다”면서 “(대법원의)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의원은 “대법원이 국민 참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전 대표의 운명이 또다시 대법원의 결정에 달렸다는 점이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 전 대법원의 판결로 ‘기사회생’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전 대표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2년 6월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기소됐다. 또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서 ‘친형을 강제 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도 받았다. 1심과 2심 모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허위 사실 공표에 대해서는 판결이 엇갈렸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였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량으로 대법원서 확정되면 이 전 대표는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지사직은 물론 대선 가도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판이었다. 조희대 체제도 12명이 판결 이례적 속도전 대선 전에? 대법원은 이 전 대표의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 판결에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11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12명 대법관의 의견은 7(무죄) 대 5(유죄)로 갈렸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7명의 대법관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상대 후보자의 공격적 질문에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취지의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표현”이라고 봤다. 적극적으로 반대 사실을 공표했다거나 전체 진술을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반면 박상옥 전 대법관 등 5명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방해할 정도로 왜곡됐다면서 유죄 취지의 반대 의견을 냈다. 상대방 후보의 질문이 즉흥적인 것도 아니었고 이 전 대표도 답변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당시 판결이 낳은 후폭풍이다. 7대 5 판결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권순일 전 대법관의 행보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는 재판 거래 의혹으로 번졌다. 특히 화천대유 실소유주로 알려진 김만배씨가 대법원 선고를 전후해 여러 차례 권 전 대법관의 집무실을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확산됐다. 여기에 권 전 대법관은 퇴직 이후 2020년 1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하며 등록 없이 변호사로 활동한 혐의도 받았다. 이 기간 그는 1억50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또 대장동 개발업자들로부터 거액을 받거나 약속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지목된 6명 가운데 1명이기도 하다. 2표 차로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이 전 대표는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결국 2022년 대선서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지긴 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없었다면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할 뻔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 이 전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고비마다 또 한 번? 문제는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린 모래주머니다. 이 전 대표는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에서 공직선거법 사건만 확정 판결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대법원이라는 산만 넘으면 이 전 대표 앞에는 ‘꽃길’만 깔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건 대법원에 달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