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재계 빅5’ 미래 먹거리 대해부

가지각색 방법 달라도 ‘혁신’ 한 길서 만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재계 ‘빅5’가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고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잔뜩 움츠렸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를 재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엿보인다.
 

▲ 삼성전자 서초 사옥 ⓒ고성준 기자

재계는 어느 때보다 험한 길을 걷고 있다. 코로나19로 흔들린 세계 경제와 보호무역 기조 등 쉽지 않은 경영 여건이 지속되면서 돌파구를 찾는 일조차 쉽지 않은 분위기다. 저성장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국내 대표 기업들의 생존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포스트 코로나
청사진 누가?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를 비롯해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전장용 반도체, 바이오 신사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주도한다는 청사진을 내건 상태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도 반도체 초격차를 위한 연구개발(R&D), 시설 등에 대한 투자도 지속적으로 집행하며 끊임없는 도전에 나설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으로 역대 최대인 15조 9000억원의 R&D 투자를 집행했고, 국내 특허 4974건, 미국 특허 6321건 등을 취득했다.

지난해 전체 시설투자비는 약 35조 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첨단 공정 전환과 반도체·디스플레이 증설 투자 등 주력 사업 경쟁력 강화에 전력을 다할 예정이다. 


인수합병에 적극 나설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이미 투자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해외 시스템반도체기업 인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대상 기업으로는 NXP(네덜란드), 텍사스인스트루먼트(미국), 르네사스(일본), 인피니온(독일),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스위스) 등이 꼽힌다. 

시스템반도체기업들이 삼성전자의 인수합병 대상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9년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 계획 때문이다.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 1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체 개발역량뿐 아니라 인수합병 등 외부자원을 활용하는 성장방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총수 공백이 뼈아픈 상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 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음으로써, 2022년 7월까지는 경영 참여에 일정부분 제약이 걸렸다.

기지개 준비하는 바쁜 나날
모빌리티 혁명 주도권 어디로

장기간의 총수 부재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오너 부재는 곧 신사업 진출과 빠른 의사 결정 지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규모 투자나 굵직한 인수·합병(M&A) 등도 상당기간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글로벌 완성차업계의 화두가 된 ‘모빌리티 혁명’을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최근 완성차 시장에서는 가솔린·디젤 등 내연기관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전기차와 수소전기차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형국이다. 현대차그룹은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해 사업 범위를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품과 서비스로 확장하고 미래 기술 개발과 사업모델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다.
 

▲ 현대자동차 사옥 ⓒ박성원 기자

모빌리티 전략에 발맞춰 계열사 사업 재편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20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첫 빅딜이었던 미국 로봇전문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에서 현대차와 함께 주체로 나선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가 그룹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그룹의 핵심사업인 전기차, 수소연료, 신사업 등을 키워드로 대대적인 계열사의 사업 재편과 지배구조 재정립이 예상된다.

그간 내연기관 위주의 부품을 담당했던 현대모비스는 향후 자율주행과 전기차 등 미래 모빌리티에 특화된 부품 기술개발 및 물류 플랫폼 구축의 중추역할을 맡는다. 현대모비스는 이미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매니지먼트시스템 개발을 완료했으며, 구동모터, 감속기, 컨트롤러, 인버터, 컨버터를 통합한 파워트레인을 설계해 공급할 예정이다.

패러다임 변화
선제적 대응

현대글로비스는 로보틱스를 활용한 물류사업과 중고차 시장 등으로 사업 영역을 대폭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당시 현대글로비스와의 연계를 통해 로보틱스를 활용한 ▲현장 자동화·전동화 ▲스마트 물류 사업 등을 추진한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 육성을 위한 대외적 투자도 수행한다. 지난 1일 현대차그룹은 ‘제로원 2호 펀드’를 설립해 혁신 기술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갖춘 스타트업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산업은행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미래 모빌리티 분야 유망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협업하기로 했다.

제로원은 창의적 인재를 위한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현대차그룹이 2018년부터 진행한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이다. 당시 제로원과 함께 결성된 제로원 1호 펀드는 미래 가치를 지닌 신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해 대내외 시장 환경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제로원 2호 펀드는 총 745억원 규모로 조성됐다.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180억원, 120억원을 출자했고, 현대차증권도 50억원을 투자했다. 투자 대상은 미래 모빌리티, 친환경차, AI, 커넥티드카를 비롯한 미래 신사업 분야의 유망 스타트업이다.
 

▲ SK서린빌딩 ⓒ고성준 기자

특히 그린뉴딜로 점점 중요해지는 친환경 모빌리티 생태계에 기여 가능한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투자해 성장을 이끈다는 계획이다.

SK그룹은 기업경영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도입하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룹 네 지주회사인 SK(주)를 중심으로 핵심 계열사들이 첨단소재·그린·바이오·디지털 등 4대 핵심 사업의 실행을 본격화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소재 사업을 담당하는 첨단소재 투자센터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 시장의 빠른 성장에 선제적인 대응을 위함이다. 전문 인력 영입과 핵심 기술 기업 중심의 투자를 통해 고부가가치 첨단소재 중심 포트폴리오 강화에 주력할 예정이다.

그린 투자센터는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절감 사업모델 등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 사업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소비 트렌드 중 하나인 지속가능 대체식품(Alternative Food) 사업과 리사이클링, 이산화탄소 포집·활용 영역의 신기술과 혁신적 사업을 지속해서 발굴할 예정이다.

총수 앞장
체질 개선


바이오 투자센터는 신약 개발과 원료의약품위탁생산(CMO)을 두 축으로 합성신약에서 바이오신약까지 아우르는 사업 역량 확보에 나선다. 미국 바이오기업 로이반트와 진행 중인 표적 단백질 분해 신약 등 혁신신약 사업도 강화한다.

디지털 투자센터는 AI, 자율주행 등 이머징테크 시장을 공략하고, 친환경 모빌리티 사업을 확장한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운영사와 초저온 콜드체인 회사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한다.

SK㈜는 다양한 외부 파트너들의 자본, 기술, 투자 역량 등을 적극적으로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적시에 투자를 회수해 투자 성과를 극대화하고 실현 수익은 미래 성장 사업에 재투자하는 투자 선순환 체계를 공고히 해 나갈 방침이다.
 

▲ LG그룹 본사

LG그룹은 총수를 중심으로 체질 개선에 분주한 모습이다. LG그룹은 2018년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동시에 적자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는 작업에 나섰다.

가전·화학 등 주력 사업 외에 인공지능(AI), 로봇, 전장, 전기차 배터리 등을 그룹의 새로운 핵심 사업으로 삼고 투자를 확대 중이다. 이 과정에서 과감한 도전을 기반으로 하는 구광모 회장의 ‘뉴 LG’ 구상이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핵심 캐시카우인 LG전자는 최근 글로벌 기업들과의 합작법인 설립, 사내 프로젝트의 사외벤처 분사 및 스타트업 인수·합병 등을 통해 미래사업 준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신사업은 곧 ‘생존 싸움’
M&A·설비투자 처지면 끝장

사내 프로젝트를 사외벤처로 분사해 신사업 동력을 확보하기도 했다. LG전자 임직원의 아이디어가 기반이 된 이번 사외벤처는 비대면 방식의 뉴 노멀 시대에 맞춰, 온라인에서 소비자 체형에 맞는 최적의 의류 사이즈와 핏을 찾아주는 패션 플랫폼을 운영하게 된다.

신사업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던 롯데그룹은 전기차 배터리 등에서의 성과가 필요한 시점이다.

롯데정밀화학은 지난해 9월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프라이빗에쿼티가 두산솔루스 인수를 위해 설립하는 펀드에 290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앞서 스카이레이크는 두산솔루스 지분 52.9%를 6986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롯데정밀화학은 재무적투자자 형태로 두산솔루스 지분 인수에 참여한다.

두산솔루스는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 소재로 쓰이는 동박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기술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 롯데월드 타워 ⓒ고성준 기자

롯데 계열사들은 그동안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롯데알미늄은 지난해 2월부터 1100억원을 투자해 헝가리에 배터리 양극박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중이다. 올 상반기 완공하면 국내 주요 배터리 업체에 소재를 공급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과의 제휴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정의선 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전격 면담을 하고 미래차 소재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정의선 회장이 자동차 내외장재 신소재를 개발해온 경기도 의왕 롯데케미칼 첨단 소재 사업장을 직접 찾아 신동빈 회장과 회동한 만큼 미래차 소재 분야에서 성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따로, 같이
합종연횡

재계 관계자는 “올해도 어려운 경제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이른 시일에 신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을 갖고 있다”며 “기업들의 성과가 국내 경기에 영향을 주는 만큼, 따뜻한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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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