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 소통령 레이스 관전포인트

첫 걸음 떼기도 전에 아귀다툼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가 결정됐다. 다만 시작부터 단일화 걸림돌에 가로막힌 모양새다.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교통정리의 귀추가 주목된다.
 

▲ (사진 왼쪽부터)박영선(더불어민주당)·안철수(국민의당)·오세훈(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사진공동취재단

대한민국 수도와 1000만 시민을 이끄는 ‘소통령’은 누가 될까. 여야는 경선을 통해 후보자를 확정하는 등 각자 채비를 마쳤다. 본격적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선거전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천만 수도
사수하라!”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후보는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다. 박 부호는 지난 1일 경선에서 70%에 가까운 득표율로 후보 타이틀을 가뿐히 거머쥐었다.

박 후보의 상대는 우상호 의원이었다. 박 후보는 대세론을 탔지만 승리를 예단할 수 없었다. 우 의원의 탄탄한 당내 기반 때문이었다. 경선은 권리당원 투표 50%와 일반 선거인단 투표 50%로 진행된 만큼 우 의원은 반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우 의원은 의원직까지 내걸으며 배수진을 친 상황이었다.

반면 박 후보는 ‘비문 정치인’ 꼬리표를 달고 가야 했다. 박 후보는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지지하면서 비문으로 분류된 바 있다. 물론 문재인정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입각했지만 한계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결과는 30.44% 대 69.56%. 박 후보의 압승이었다. 박 후보는 이날 수락 연설에서 “저 박영선이 여러분의 소중한 뜻을 받들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바람을 변화의 에너지로 만드는 서울시장이 되겠다”며 소회를 밝혔다.

서울시장에만 세 번째 도전하는 박 후보는 일찌감치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선거전 준비에 나섰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걸림돌이 솟아나왔다. 박 후보는 범 진보진영과 단일화 협상을 진행 중이다. 앞서 박 후보는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과의 단일화를 지난 2일 합의했다.

이들은 TV토론, 정책 선호도 조사, 현장방문, 여론조사 등을 거치기로 했다. 후보 공약 선호도 조사 역시 동반된다. 이들이 제시한 공약 가운데 선호도가 높은 정책은 단일 후보 공약을 내세우는 방식이다.

여야 서울시장 후보자 확정
단일화 질질…늦으면 이달 말

단일화 방식은 100% 국민 여론조사로, 결과 발표는 8일로 못 박았다. 선거법에 따르면 현직 국회의원이 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선거 한 달 전 직에서 물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박 후보와 조 의원의 단일화 과정은 비교적 순탄했다. 하지만 열린민주당의 경우는 결이 달랐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을 자처하는 열린민주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비례대표 3번까지 당선된 바 있다. 차례로 강민정·김진애·최강욱 의원으로, 친문(친 문재인) 성향이 짙다. 사실상 자매정당과 다름없는 곳에서 변수가 발생한 셈이다.

열린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김진애 의원이다. 김 의원은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면서도 시한을 8일에 두지 않았다. 김 의원은 의원직 사퇴라는 강수를 뒀고, 단일화 시점은 이번 달 말까지 미뤄졌다.


김 의원은 박 후보와 조 의원이 단일화 합의를 발표했던 날 기자회견을 열고 “단일화 성사를 위해 국회의원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두 당이 함께 승리하기 위해서는 충실한 단일화 방식이 필요하며 “그 과정을 서울시민들이 흥미진진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박성원 기자

김 의원은 기자회견 이후 기자들에게 “민주당에서 8일까지 모든 걸 끝내자고 하는데, 저는 열흘 정도의 성실한 단일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10년 전 박영선·박원순 단일화 당시에도 열흘이 걸렸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박 후보와 최소 3번의 스탠딩 토론, 자유토론, 1:1 토론을 민주당에 제안했다.

이는 박 후보에게 부담일 공산이 크다. 시작 전부터 열린민주당이 찬물을 끼얹는 겪인 데다가 단일화가 지연될수록 여권 분열로 여겨지면서 본선 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당이 엇박자를 내는 사이 야권에서 단일화를 먼저 성공시킨다면 컨벤션 효과를 빼앗기게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그래서인지 민주당 안팎에서는 김 의원을 두고 ‘몽니를 부린다’는 표현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의원직 사퇴
부정적 영향

김 의원의 의원직 사퇴 역시 민주당에 악재로 다가올 공산이 크다. 열린민주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비례대표 3번까지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김 의원이 의원직을 내려놓으면서 지난해 당선되지 못했던 비례대표 4번이 의원직을 승계 받을 전망이다. 주인공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다.

김 전 대변인은 과거 청와대 대변인 시절 ‘흑석동 부동산 논란’으로 사퇴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18년 7월 주택 전세금과 아내 퇴직금 등으로 서울 동작구 흑석9구역 대지와 상가 주택을 25억7000만원에 매입했다.

이후 2019년 3월 부동산 투기 논란이 일자 아내의 결정이었다고 해명하고 청와대 대변인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김 전 대변인은 2019년 12월 흑석동 집을 34억5000만원에 매각해 1년5개월 만에 8억8000만원의 차익을 남겼다. 이에 ‘흑석 선생’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김 의원의 결단이 민주당의 서울시장 선거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김 전 대변인에 대한 비판의 화살이 오롯이 열린민주당으로 쏠리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으로도 향하기 때문이다. 야권에서는 김 전 대변인의 복귀를 두고 ‘친문의 밥그릇 나눠 먹기’라며 비판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4일 서울시장 후보 경선 결과를 발표했다. 승자는 오세훈 후보로 41.64%를 기록했다. 2위 나경원 후보는 36.31%에 그쳤다.
 

▲ 나경원 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 ⓒ고성준 기자

오 후보는 이날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국민의 지상명령을 받들어 단일화의 힘으로, 국민 여러분의 힘으로, 교두보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내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오 후보는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굳게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분열된 상태에서의 선거는 스스로 패배를 자초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오 후보는 구설에 휘말렸던 ‘조건부 출마’에 대해서도 야권 단일화의 연장선으로 봐달라고 주문했다. 앞서 오 후보는 안 후보가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는다면 출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 후보는 “야권 분열에서는 선거를 치르지 않겠다는 나름의 결단”이라며 “기존의 정치 문법과는 조금 다른 접근이었지만 그 충정, 단일화 순간까지 조금도 흔들림 없이 이어가겠다”고 해명했다.

2번이냐
4번이냐

오 후보의 경선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안 후보도 화답했다. 이날 안 후보는 “(오 후보와) 가급적 빨리 만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무소속 금태섭 서울시장 후보와의 ‘제3지대’ 단일화에서 승리한 상태다. 야권 판이 어느 정도 정리된 만큼 이들의 단일화에 이목이 집중된다.

하지만 양 측의 힘겨루기는 당분간 지속될 모양새다. 이른바 숫자 논란으로 불리는 ‘2번이냐, 4번이냐’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견이 좁혀진 곳은 없다. 국민의힘 뿐만 아니라 오 후보와 안 후보 모두 마찬가지다.

안 후보는 야권 단일화 완주 의지를 피력하면서도 ‘기호 4번 출마’를 고수하고 있다. 안 후보는 지난 2일 CBS라디오 <김종대의 뉴스업>에 출연, “기호 3번 정의당이 후보를 안 낸다. 기호 2번이든 4번이든 야권 단일후보는 (투표용지에서) 두 번째”라며 “(기호 4번 출마로) 국민의힘 지지자들과 민주당은 싫은데 국민의힘을 선택 못 하는 분들 양쪽 힘을 결집시켜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후보직 양보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안 후보는 “그런 일은 결코 없다”며 “경선을 하면 누가 뽑히더라도 깨끗하게 승복하고 내가 단일후보가 못 돼도 단일후보를 도와서 당선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후보직을 양보한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 ⓒ고성준 기자

그는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문항에 ‘본선 경쟁력’이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후보는 “왜 단일후보를 뽑느냐. 본선에서 이기려고 하는 것”이라며 “시민들이 생각하는 상식 수준에서 결정하면 복잡할 게 아니고 오히려 개인이나 개별 당의 유불리에서 따지면 국민과 시민들이 등을 돌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적합도’가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 후보의 4번 출마 역시 평가절하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안 후보가 4번 출마를 고수한다는 입장을 밝힌 뒤인 지난 4일 “기호 2번 국민의힘이냐, 기호 4번 국민의당이냐를 강조했을 때, 과연 4번 가지고서 선거를 이기겠다고 확신할 수 있나”라고 날을 세웠다.

여, 몽니 부린다는 비판…왜?
야, 계속되는 2·4번 딜레마

이어 “무슨 생각으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제3의 후보라는 사람을 데리고 단일화를 하고, 그렇게 된다고 하면 선거를 이기지 못한다는 게 기본적 내 생각”이라며 “현재 나타나는 지지율이란 건 진짜 지지율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안 후보와 당장 단일화를 추진하겠다는 오 후보의 행보 역시 예단하기 어렵다. 앞서 오 후보는 안 후보가 기호 2번으로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오 후보는 경선이 치러지기 하루 전인 지난 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야권 단일화 후보는 누구든) 가능하면 기호 2번을 달고 출마하는 것이 득표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 혼자 시정을 이끄는 것이 아니어서 시의회의 도움이나 이런 것도 필요한데 (국민의힘은) 시의회의 의석수가 많지 않지만, 안 후보 당에는 시 의원이 한 명도 없지 않은가”라고 설명했다. 양 측의 단일화 승부는 후보등록 마감인 오는 19일까지 이어질 수 있다.

국민의힘에서 ‘2번’을 놓지 못하는 배경은 향후 정국 주도권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는 것도 모자라 국민의당의 4번으로 이름을 올린다면, 명색이 103석을 확보한 제1야당의 존재감이 퇴색돼서다. 4월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내년 대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 서울시장 보궐선거 플래카드 설치하는 선관위 관계자들 ⓒ박성원 기자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지난 2일 “김종인발 기호 2번 논란, 참으로 유치찬란하다”며 “지금 시점에서 기호 2번, 4번을 논하는 것이 우리 진영 전체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장 의원은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되든, 국민의힘 후보로 단일화되든, 지금 국민의힘에 더 필요한 사람은 김종인 위원장이 아니라, 안철수 후보”라고까지 말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역시 같은 날 “박완서 선생님의 <그 남자네 집>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며 “‘수술을 잘못했으면 국으로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라는 대목이 괜히 와 닿는다”고 언급했다.

뒤엉켜∼
주도권 분열

여야 모두 경선을 치른 뒤 후보까지 선정했지만 시작부터 변수와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양 진영 모두 단일화라는 의제로 뒤엉켜 있는 상황”이라며 “누가 먼저 교통정리에 나서느냐에 따라 컨벤션 효과를 비롯해 선거 레이스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탈락 또 탈락, 나경원 행보는?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연거푸 고배를 마시면서 정치생명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 전 의원은 지난해 4·15 총선에서 민주당 이수진 의원에게 패배해 낙선한 바 있다.

이어 서울시장 경선에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넘지 못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나 전 의원이 당권으로 고개를 돌릴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당심 경쟁력을 확인했다는 점에서다.

나 전 의원은 본경선 전까지만 하더라도 오 전 시장을 앞섰다.

의원들의 지지와 함께 당내 분위기도 나 전 의원쪽으로 기운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나 전 의원은 당내 1차 경선에서 20% 당원 투표에서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80%가 반영된 시민 여론조사에서는 오 전 시장에게 밀렸고, 본경선이 시민 여론조사 100%만으로 이뤄진 만큼, 강경보수 이미지에 발목이 잡혔다는 분석이다.

나 전 의원으로서는 이번 경선을 통해 당심을 확인한 만큼, 차기 당권에 도전할 입지 정도는 남겨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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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