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연쇄살인마 완벽 빙의한 배우 전종서

자유로운 해석과 연기, 단 두 편 만에 각인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원석 그 자체에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배우였다.” 전 세계적인 거장 이창동 감독은 영화 <버닝>에서 함께 작업한 배우 전종서를 두고 이같이 평가했다. 화보나 광고 혹은 웹드라마, 단편 영화 등 연예계에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로 이창동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기대 이상의 자유로운 연기를 펼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혜성같이 등장한 신예 전종서는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콜>을 통해서도 그 잠재력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
 

▲ 배우 전종서 ⓒ넷플릭스

배우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 중 하나는 종교 의식과 연관된다. 자연재해를 해석할 능력이 없는 인간들은 신을 만들어 춤을 추고 노래하며 기원제를 지냈고, 이때 신을 묘사하고 찬양하는 등 기원제를 이끈 제사장이 배우의 기원이라고 한다. 이 같은 종교의식에서 연기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신내림
메소드

국내에서 ‘메소드 연기’로 인정받는 배우 김명민은 배우를 무당이라 일컬었던 바 있다. 배우란 일종의 접신을 통해 글자 속의 인물이 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그는 신내림까진 힘들더라도 그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촬영장에서 쉼없이 인물을 생각하고 고뇌하며 연기를 펼친다고 했다. 

넷플릭스에서 최근 공개한 영화 <콜>의 영숙을 연기한 전종서는 김명민의 고견을 몸소 실천한 듯하다. 사이코패스 기질이 다분한 영숙에 접신한 듯 독창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감정 소모가 큰 장면뿐만 아니라 잠시 느슨해져 주의를 놓칠만한 장면에서도 전종서는 영숙 그 자체였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라는 특이한 인물을 완벽에 가깝게 표현한 전종서와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종서는 인터뷰 중에도 남다른 느낌을 줬다. 대다수 배우가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면 곧바로 대답하는 게 일반적인데, 전종서는 모든 질문에 약 10초에서 20초 가량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다. 어떤 대답을 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가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을 때 나오는 대답은 내용이 충실했다.

인터뷰 중에도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전종서가 <콜>을 만난 건 <버닝>을 마치고 난 후 휴식 기간 중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콜> 시나리오를 받았고 단숨에 빠져 버렸다.

“이충현 감독님의 단편 영화 <몸값>을 정말 재밌게 봤어요. 독창적인 작품이라 생각했어요. 감독님께도 직접 한 말이지만, 존경한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또 <콜> 시나리오가 굉장히 재밌었어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나리오라 내용이 어려울 만도 한데 속도감 있게 읽혔어요. 단조롭지만 스피디하고 역동적이었어요.”

<콜>은 그녀가 만든 기괴한 빌런
전도연 이을 ‘연기 괴물’ 탄생 주목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이미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포인트를 주려고 했던 부분이 이미 시나리오 내에 충분히 두드러져 있었고,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을 퍼즐 맞추듯이 읽어서 더 좋았다고 한다. 그렇게 책에 반해 작품을 선택했고, 곧바로 영숙이 될 채비를 갖췄다. 

<콜> 대본을 받은 다음 날부터 촬영 전날까지 영숙이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소화할 수 없는 인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숙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신엄마(이엘 분)와 시골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신엄마의 말을 듣지 않으면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폭력을 당하고, 마음대로 밖에 나가지 못한다. 몸은 통제돼 있고 감정은 억제됐다.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신엄마로부터 파생된 듯하다. 

영숙이 살던 시대는 1999년이고, 수상한 전화기로 전화를 걸면 2019년의 서연(박신혜 분)이 전화를 받는다.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두 사람은 통화 속에서 교감을 나누게 되고, 여러 위기를 거치며 친해지지만 작은 오해로 인해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기 시작한다. 마음만 먹으면 2019년을 바꿀 수 있는 1999년의 영숙은 거침없이 행동하기 시작한다.
 

▲ 콜 스틸컷 ⓒ넷플릭스

패션부터 표정까지 속을 알 수 없는 영숙이 전종서를 통해 만들어졌다. 2020년 국내 영화 역사상 가장 기괴한 빌런의 탄생이다.

“제가 참고한 캐릭터나 영화는 없었어요. 주로 노래에 많이 기댔던 거 같아요. 빌리 아이리쉬 곡에 특히 많이 의지했어요. 또 출처 모를 사진이나 그림을 많이 봤어요. 피가 낭자한 사진이나 샤워기에서 핏줄기가 나오고, 피로 된 폭포가 흘러내리는 사진이라든지 아주 자극적인 사진을 많이 봤어요. 사람의 형태는 아니지만, 악마 같은 사진들. 독방에 갇혀 있는 여자아이, 노란색 우비에 빨간색 가방을 메고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 그런 걸 하도 많이 보니까 모든 게 영숙 같기도 했어요. 그 시점에 사진 보는 걸 멈췄던 것 같아요.”

대본을 받은 후, 최소 수개월 동안 이러한 기괴한 사진과 음악에 자신을 집어넣었다. 기괴한 것과 어울리는 환경을 만들면서 영숙에게 빙의해나간 셈이다. 

그로테스크
빌런 탄생

“<버닝>도 마치고 칸에도 다녀오니 집에는 <콜> 대본밖에 없었어요. 거의 매일같이 이런 사진만 봤어요. 이런 식으로 영숙에게 몰두한 시간이 수개월은 되는 것 같아요.”

이 같은 노력 끝에 최고의 연기가 나왔다. 어딘가 정신이 나간 듯한 웃음소리, 반찬을 우걱우걱 씹는 근육과 생각을 읽을 수 없는 표정, 다소 불안한 걸음걸이, 평범하지 않은 대사의 리듬, 심지어 특정한 것을 바라보는 시선도 독특하다. <버닝>에서 보여준 자유로운 해미와는 또 다른 톤의 새로운 캐릭터다. 

“저는 비교적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머릿속으로 충분히 시뮬레이션하고 캐릭터의 이미지를 직감적으로 받아들이고 구체화시킨 상황에서 그 느낌만 들고 현장에 입수하는 형식으로 연기했어요. 영숙이는 이 방식으로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확 빠져들었다가 나오고, 훅 돌아버리는 극단적인 모습이 잘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감독님께서는 저를 충분히 이해해주시고 저에게 딱 맞는 디렉팅을 해주셨어요. 그런 합의 안에서 능숙하게 진행이 된 것 같아요. 스태프들이 아니었으면, 영숙은 탄생하지 못했을 거예요.”

영숙은 사람을 죽이는 데 일말의 흔들림도 없다. 인간성이 거세된 인물이다. 정이 들었을 법한 사람도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 싶으면 거침없이 돌진하며, 영숙에게 악의가 없는 사람도 불편한 존재가 되면 흉기를 든다. 전종서는 그런 영숙의 면모를 약함에서 찾았다고 했다. 
 

▲ 배우 전종서

“얼핏 보면 영숙이 강하고 독하기만 한 1차원적인 캐릭터로 보이는데, 저는 강함보다는 약함에 더 중점을 두고 연기했어요. 인간적인 부분, 모성애를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부분을 많이 파고들었어요. 파워풀하고 역동적인 영숙도 있지만, 사실은 살짝만 쳐도 깨져 부숴지는 얇은 유리 같은 이미지를 더 생각한 것 같아요.”

전종서는 현장에서도 치밀했다. <버닝> 작업 중에 이창동 감독으로부터 배운 것은 테이크가 끝나면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링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장면을 보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모든 테이크를 모니터링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시간이 많이 소모될 뿐 아니라, 배우에게도 귀찮은 작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종서는 모든 테이크를 직접 확인했다. 


육탄전
살인마

“연기하고 모니터링하는 습관이 <버닝> 때 생겼어요. 모든 테이크에서 모니터링을 했죠. 덕분에 자기 객관화가 잘 된 것 같아요. 과하거나 거슬리거나 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 고쳐서 다음 테이크에 연기했어요.”

이뿐만 아니다. 눈물을 보이는 신이 많은 서연 역의 박신혜는 감정 소모가 많았던 반면, 영숙의 감정은 주로 분노였다. 작은 것에도 쉽게 치밀어 오르고, 때론 육체를 강하게 사용한다. 가녀린 몸으로 육탄전을 벌인다.

JTBC <아는 형님>에서 전종서는 <콜> 촬영 중 몸이 안 좋아 마사지를 받으러 갔을 때 마사지사에게 “힘든 일이 있으면 친구에게라도 말하라”라고 권유받기도 했고, 영숙 분장을 한 채로 식사하러 간 음식점의 사장님이 전종서에게 몰래 다가가 “경찰에 신고 해줄까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영숙의 분장은 처절했고, 실제 온몸에는 멍이 가득했다.
 
“1달 동안 몸 쓰는 신을 많이 찍었어요. 촬영장에서 연기하고 집에 돌아가면 온몸이 과열됐어요. 몸이 뜨거워질 정도로 열이 높았어요. 각성된 상태라 잠이 좀 안 오기도 했어요. 몸이 굉장히 불같이 뜨거워지고 그랬는데, 2주 정도 되니까 적응이 되더라고요.”

전종서가 영숙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역할을 맡은 데 반해, 서연 역의 박신혜는 이 분노에 리액션을 하는 역할에 가까웠다. 거의 모든 무기가 과거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서연은 손발을 묶인 채 당하는 존재로 표현된다. 서연의 역습이 몇 번 있긴 하나, 대체로 수비적이다. 전종서는 박신혜가 수비적인 역할을 정말 잘 맡아줬기 때문에 자신의 연기가 영화 내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신혜 배우님은 제가 갖지 못한 걸 갖고 계신 분이에요.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내공이랄까요. 제가 포효하면 신혜 배우님은 좌절하는 포지션이었어요. 이게 핑퐁처럼 잘 이뤄져야 하는데 신혜 배우님이 정말 잘해주신 것 같아요. 서연은 사실 우는 신이 많아요. 많이 울어요. 저한테 그런 역할이 주어졌다면 정신적으로 타격이 컸을 것 같아요.”


“2주 동안 온몸이 과열…잠자기 힘들었다”
“언제나 창의적인 연기…도전 의식 강하다”

영화 <콜>은 2019년 1월에 촬영이 진행됐고, 지난 2월에 개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개봉이 연기됐다. 차일피일 연기되다 결국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콜>이 타임슬립 판타지 작품인 데다가 사운드가 중요한 공포라는 점에서 넷플릭스 공개는 일정 부분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전종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사실 진작 개봉이 돼야 했는데 코로나19가 겹치면서 딜레이가 많이 됐죠. 저 역시도 많이 기다린 것 같아요. 그래도 어떻게 보면 김장김치를 가장 맛있을 때 꺼내놓는 것과 같다고도 생각해요. 관객분들이 주말에 집에서 맥주 한 캔 먹으면서 핸드폰으로 봤다거나 노트북으로 보셨다고 해요. 빔으로 쏘아서 보신 분들도 있다고 하고요. 영화관에서 개봉했다면 누릴 수 없었던 편안함이 있었다고 봐요. 시간이나 공간적인 제약없이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다는 것만
에 기쁨을 느껴요.”
 

▲ ⓒ넷플릭스

<버닝>의 자유로운 해미에 이어 <콜>의 기괴스러운 살인마까지, 전종서는 영화 두 편 만에 자신의 재능을 완벽히 각인시켰다. 나오는 작품마다 창의적인 해석을 보일 뿐 아니라, 전종서라는 배우의 색감이 스크린을 통해 선명하게 전달된다. 그를 선택한 이유에 걸맞은 책임감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 연기에서 느껴진다.

“계속 창의적이고 싶어요. 뭔가를 만들고 싶고 그게 연기여야 해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나보고 싶어요. 주어지는 캐릭터에 저를 넣어서 신선하고 파격적이면서, 잔잔하고 은은한 느낌도 주고 싶어요. 그런 다채로운 모습을 영화의 톤에 맞춰서 보여주고 싶어요. 조바심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누구든 쉽게 하지 못했던 것을 거침없이 해보고 싶은 도전 의식이 있어요.”

현재 전종서는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아직 공개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한다. 결정을 하기엔 아직 고민이 부족하다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건 분명했다. 창의성과 신선함이다.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어요.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건 무엇을 선택하든 보시는 분들이 재밌을 뿐 아니라 신선하게 받아들이실 수 있는 연기를 보여드릴 겁니다. ‘이런 게 있었나?’라고 느끼시게요. 처음 보는 것으로 다가가고 싶고요. 그런 선택을 하고 싶고 그 선택의 영역이 더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거장 이창동 
신예 이충현

이제 겨우 필모그래피 2편을 만들었을 뿐이지만 전종서는 당찼다. 때론 당돌함도 엿보였다. 집중력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전 세계로부터 인정받는 이창동 감독과 단편 영화계를 휩쓴 파격적인 아이디어의 이충현 감독이 그를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전종서가 가진 당당함의 배경은 매 순간 책임을 다해 노력하는 열정 덕분이 아닐까. 그 열정이 많은 작품을 거쳐 누적된다면, 한국 영화계는 또 하나의 보석 같은 ‘연기 괴물’을 얻을지 모른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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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