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국민 조연’ 배우 오달수 “그 동안 무서웠다”

‘천만요정’의 영화 같은 일장춘몽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출연하는 작품 중 대다수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해 ‘천만 요정’이라 불렸다. 영화 내에서 대체로 유머를 이끄는 대표적인 감초 배우이기도 했다. 배우 오달수 얘기다. 그런 그가 약 3년이나 대중을 떠났다. 사실상 쫓겨난 것이다. 2018년 불거진 ‘미투 사건’ 때문이었다. 본의 아니게 ‘귀향 생활’을 했던 그가 새 영화 <이웃사촌>으로 다시 대중 앞에 섰다. 
 

▲ 배우 오달수 ⓒ리틀빅픽처스

2018년 새해가 밝자마자 ‘미투 열풍’이 불었다. 법조계, 정치계, 문화계, 스포츠계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성폭행 관련 고발이 이어졌다. 각 업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고발의 대상이었다. 거론된 인물들 대다수의 미투 폭로가 사실로 밝혀졌다. 사회적인 충격이 컸다. 

“사형 선고나
 다름 없었다”

배우 오달수도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 중 하나였다. 무려 두 명이 그에게 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오달수로부터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들은 얼굴을 공개하고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당시 두 건의 고발은 오달수 배우 인생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초동대응이 비교적 늦었다는 점과 사과문 내용이 다소간 애매했던 부분,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밝혔다는 점에서 오달수의 잘못은 기정사실화됐다. 

법적 싸움으로 이어질 사건으로 보였는데,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A씨는 고소 후 경찰 조사를 받지 않았다. A씨가 조사에 응해야 경찰도 그 진술을 토대로 오달수에게 죄를 물을 텐데,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사건은 유야무야 됐다. 결국 경찰의 내사 종결로 마무리됐다. 

JTBC <뉴스룸>과 인터뷰를 진행한 연극배우 엄모씨는 고소조차 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법적 싸움으로 치닫는 여타 미투 사건과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러 작품에 캐스팅 됐던 오달수는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약 3년 가까이의 시간이 흐른 지난 19일 영화 <이웃사촌>을 통해 만난 오달수는 담담하게 당시를 회상했다. 긴장된 얼굴에 다소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덤프트럭에 부딪힌 충격이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상상도 못했어요. 일이 그렇게까지 커져 있었던 줄 몰랐죠. 영화 <이웃사촌> 촬영 중이었어요. 영화를 보면 대교를 막아놓는 장면이 있잖아요. 보조출연자만 200~300명이었어요. 새벽에 스탠바이에 했다가, 해 뜨자마자 찍었어요. 정말 큰 신이었죠. 정신이 없었어요. 다른 데 신경을 쓸 겨를이 전혀 없었어요.”

오달수가 언급한 장면은 <이웃사촌>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장면이다. 한 신에 등장하는 인물이 상당히 많을 뿐 아니라 주요 배우들의 감정 폭도 크며, 자동차 액션도 있다. 몇 날 며칠을 집중해야 하는 큰 시퀀스다.

<이웃사촌>으로 3년 만에 복귀… 고 김대중역
“갑작스레 터진 미투, 덤프트럭에 부딪힌 충격” 

“가족들이 왜 가만히 있냐고 전화로 뭐라 했어요. 저는 ‘시끄럽다’면서 촬영해야 한다고 전화를 끊었죠.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데, 무응답했던 게 오히려 변호사들과 작전을 짠 것으로 곡해가 돼있더라고요. 초동 조치가 미흡했죠. 그리고 상황을 확인했을 땐 덤프트럭이 오는 느낌을 주더라고요. 차라리 회의라도 했으면 충격이 덜 했을 텐데요.”

사건이 있은 후 일부 촬영을 마무리한 후 부산으로 내려갔다. 아파트 주위에 모르는 사람들이 서성거렸다. 노모를 모시기엔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라고 판단했다. 형이 사는 거제도로 떠났다. 가족들은 오달수가 혹여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걱정되는 마음에 지속적으로 오달수의 주위를 맴돌았다.

거제도에서 농사를 지었다. 하루 종일 바삐 움직였다. 낮에는 노동주도 먹었고, 밤에는 하루를 기꺼이 잘 마쳤다는 기념으로 또 한 잔 기울였다. 힘든 시기를 슬기롭게 보내려고 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럼에도 연기에 대한 갈망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스틸컷 ⓒ리틀빅픽처스

“농사를 지으면서 느낀 게 그동안 참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이었어요. 활동이 중단됐던 그 기간이 결코 불행했다는 건 아닌데, 마음 한 구석에 허전한 게 있었어요. 내가 있을 자리가 어디인가라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늑골 한 구석은 항상 연기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어요.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했었구나’라는 마음도 들더라고요. 연기에 대한 특별한 이론이 변한 건 없고, 감사한 마음은 더 커진 것 같아요.”

오달수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이 <이웃사촌>도 표류했다. <이웃사촌>은 오달수의 영화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작품이다. 극 중 오달수는 1987년 민주화의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했던 시대, 야당 대표 이의식을 연기했다. 

그가 연기한 이의식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야당 총재라는 점, 가택연금을 당한 점, 이의식이 사는 곳이 신촌 인근이라는 점, 비교적 점잖은 태도를 비롯해 김 전 대통령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여의도 연설 장면 등 여러 부분에서 두 인물이 겹친다.

기존 감초 연기 대신 정극 연기를 했다. <이웃사촌>은 처음부터 오달수가 이야기를 끌고 가고 영화의 매듭도 짓는다. 

부덕의 소치
송구한 마음

“시나리오를 받고 망설였던 게 사실입니다. 워낙 유명한 분이기 때문에 누가 될까 걱정이 많이 됐어요. 사투리를 쓰느냐 마느냐에 대한 고민도 촬영 직전까지 할 정도로 특별했던 작품입니다.”

영화에서 오달수는 새롭다. 매 작품마다 웃음을 만들어왔던 그가 이번에는 웃음기를 싹 뺐다. 감정도 최대한 절제했다. 영화가 갖고 있는 감동이 더 강력하게 다가오는 건 오달수가 감정을 억누르며 연기한 덕도 크다. 여전히 김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만한 연기다. 고인을 표현해야 했던 막중한 책임감이 어느 정도였는지가 그의 연기를 통해 전달된다.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잔재주 안 피우고, 무게감 있는 모습을 보이려고 했습니다. 소소한 장면에서라도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고 했어요. 굳이 튀려고 하지 않았고, 인물을 잘 묘사하고 싶었어요. 기본에 충실한 연기를 하려고 했죠.”

아무리 연기가 좋았다 하더라도, 영화사 입장에서 핵심 주인공의 이미지가 워낙 좋지 않았기 때문에 선뜻 개봉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는 사이, 코로나19까지 발발했다. 

배급사도 바뀌었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블라인드 시사회에서 호평이 이어졌고 오달수의 문제도 법적으로 해결되면서 개봉 날짜가 잡혔다. 
 

▲ ⓒ리틀빅픽처스

“영화를 개봉하는 시기가 매우 좋지 않은 것에 무한한 책임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개봉함으로써 마음이 좀 가벼워진 점은 있어요. 사실 개봉을 안 하고 있을 때는 마음이 괜찮은 듯 하다가도 훅 무거워지고 그랬어요. 제작사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에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비록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공식 석상에 서는 것과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자리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는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이 무서웠다고 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정말 쉽지 않았죠. 가끔 영화 채널에서 제가 출연했던 영화들이 한 번씩 나오더라고요. 관객 분들은 제가 낯설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너무너무 떨려요. 떨린다는 말은 사치스러운 말 같네요. 무섭다는 말이 더 정확한 것 같아요. 겪어보니까 무서워요.”

그래도 용기를 냈다. 공식 석상에 서는 것부터 기자들로부터 매서운 질문을 받는 자리에 나서는 것 모두 고역일 수 있는데,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했다.

“농사 지으며
 많이 느꼈다” 

“무섭다고 자꾸 도망 다니면 무서움은 점점 커지겠죠.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두 눈을 보고 얘기하는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시사회나 간담회 때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서 타자 소리를 듣는 게 어제 일 같고 익숙하기도 하고 좋긴 하네요.”

인터뷰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지만, 오달수 입장에서 날카롭게 받아들일 만한 질문도 적지 않았다. 특히 사건으로 억울했는지에 대한 질문, 고발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없냐는 내용의 질문도 있었다. 오달수는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이제 말해서 무엇하나 싶어요. 하려면 그때 했어야죠. 지금 그 부분에 대해 말하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당시에는 충격이 너무 커가지고 두 달 정도는 정신을 못 차렸어요.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도 말씀 드렸지만, 제가 덕이 없어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합니다. 부덕의 소치지… 남한테 왜 그랬느냐고 말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는 ‘부덕의 소치’라는 말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억울한 점은 존재한다. 오달수에게는 사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피해자들과 접촉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통화를 하거나 만난 적이 없죠. 서로 기억이 있기 때문에, 만약 제가 불쑥 나타난다면 그 분들도 얼마나 충격이겠습니까. 저는 저대로 충격 때문에 두 번이나 입원했으니까요. 저는 조용하게 살았고, 그분들도 일상을 잘 보내시길 바랄 뿐입니다.”

사건이 있기 전, 오달수는 말 그대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연극계에서 유명한 인사였던 그는 영화 <올드보이>를 통해 혜성같이 등장해, 각종 영화에 출연해 인상 깊은 연기를 보였다. 대중은 그의 재기발랄한 연기를 사랑했다. 

<도둑들> <암살> <베테랑> <국제시장>은 1000만을 넘겼고, 50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영화 관계자들은 오달수를 더 좋아한다. <도둑들>과 <암살>의 최동훈 감독은 “오달수와 함께했기 때문에 1000만을 넘겼다”고 말한 바 있고, <베테랑>에서 호흡을 같이한 배우 유해진은 취재진 앞에서 인간 오달수를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털어놨었다.

“대중 앞에 다시 서는 건 용기, 무서웠다”
“오랜만에 나선 연기 ‘이 맛이야’ 싶었죠”

혹자는 오달수는 극도로 자유로운 영혼이며, 누군가에게 해를 가할 근력 자체가 없다고도 말했으며, 언제나 변함없는 좋은 사람으로 여긴다. 쉬는 동안 이 모든 것이 오달수에게는 일장춘몽처럼 다가왔다고 한다. 

“천만요정… 마음이 무겁네요. 예쁜 별명 지어주셨는데. 그런 것들 모두가 허망하더라고요. 부와 명예는 한 순간에 왔다가 사라지는 거라고 말했는데, 이제 요정에서는 벗어난 것 같아요. 이제는 사람 대접 받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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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의 개봉으로 대중 앞에 섰지만, 다시 예전처럼 연기활동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도 그에 대한 반감이 있는 대중이 적지 않기 때문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그를 캐스팅하기 주저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오달수는 복귀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상업영화 제작사로부터 섭외의 손길이 닿지 않는 동안 독립영화 <요시찰>을 찍기도 했다. 약 2년 만에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제가 영화를 하면서 두 달 이상 쉰 적이 없었어요. 실컷 쉬다가 해보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독립영화는 간만에 아침 9시에 나와서 새벽 1시까지 촬영을 했는데, 하루도 안 쉬고 일주일 정도 찍었어요. 스태프들이랑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예산이 크지 않은 영화다 보니까 옹기종기 모여서 도시락을 먹고 그랬어요. ‘그래, 이 맛이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정말 재밌었어요. 힘든 줄 모르고 재밌게 잘 찍었습니다.”

그를 응원하는 관객도 있는 한편, 여전히 그의 무혐의 자체를 의심하는 대중도 적지 않다. 배우로서 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오달수에겐 그 자체가 장벽이 될 수 있다.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물리적으로 제가 그분들의 마음을 돌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저에게 반감이 있는 분들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뭐가 있겠습니까. 전혀 없지 않겠습니까. 그저 영화 보시고 좋게 평가해 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연기 복귀?
간절히 원해

평소 술자리에 자신의 막걸리를 들고 갈 정도로 애주가다. 최근 들어 술맛이 달라졌다고 한다. 마음이 힘들 때는 독이었는데, 이제는 약이 되는 느낌이라고. 작품이 개봉을 하면서 서서히 다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에 술맛도 변한 듯하다. 낙차 큰 파도를 경험한 그는 더욱 성숙한 연기를 펼친다면, 대중의 마음도 돌아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과연 그 기대가 실현될 수 있을까. <이웃사촌>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유지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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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