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직격 인터뷰> ‘국민 엔돌핀’ 탁재훈의 예능론

놀림 당한 사람도 웃는 ‘선 타는 개그’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국내 예능계에 소위 ‘선비 정신’을 강요하는 시청자가 늘어나면서, 다소 가학적이고 강렬한 유머가 사라졌다. 윤리적인 면이 강화되는 대신 재미를 잃었다. 이른바 ‘착한 예능’이 대세로 자리매김한 현 방송가는 유튜브에 먹거리를 뺏기는 현실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서 홀로 빛나는 유머로 방송가를 휘젓는 이가 있으니, 바로 탁재훈이다. SBS <미운 우리 새끼>서의 활약상은 과거의 영광에 못지않다. <일요시사>는 탁재훈을 직접 만나 그가 가진 유머의 철학을 들어봤다. 
 

▲ 방송인 탁재훈 ⓒ고성준 기자

1975년 영국의 한스 코스터리츠 박사는 마약인 모르핀의 200배 성능을 가진 체내 모르핀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두고 ‘엔돌핀’이라 명명했다.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닌,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 웃음이 나올 때만 나오는 엔돌핀은 스트레스에 가장 좋은 치료제라 해서 천연 진통제라고도 한다. 

‘예능의 신’
유머 철학은?

가수이자 예능인 탁재훈은 방송에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을 웃긴다. 시청자들은 물론 같이 방송하는 사람들에게마저 폭발적인 웃음을 선사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천연진통제를 제공한 인물이지 않을까. 

국내 굴지의 의사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근심을 덜어주고, 통증을 막아준 탁재훈을 최근 경기도 일산의 한 커피숍서 만났다. MBN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이하 <우다사>) 촬영 전 만난 그는 여유가 몸에 베 있었다.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한편, 빈틈이 보일 때마다 유머를 던졌다. 

탁재훈의 인생은 롤러코스터나 다름없다. 30세 넘어서까지 이름 한 번 알리지 못한 무명가수 배성우에서, 그룹 ‘컨츄리꼬꼬’로 전향했으나 무려 8개월 동안 아무런 활동 없이 보내다 뒤늦게 유명세를 얻었다. 서른 넘어 인기를 얻은 이후 음악과 예능, 연기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트리플 엔터테이너’의 창시자로 꼽혔다. 


그러다 스포츠 토토로 인해 수많은 개그맨들이 활동을 중단할 때 같이 쓸려 나갔고, 그 과정서 이혼도 경험했다. 복귀 후 적지 않은 방송에 나왔지만, KBS2 <상상플러스>, MBC <뜨거운 형제> 시절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하는 폼이었다. 그러다 최근 3년 전부터 이상민과 함께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의 ‘탁궁 조합’으로 조금씩 얼굴을 알리더니, 전체 예능 시청률 부동의 1위의 주역이 됐다. 

그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레전드로 회자 될 만큼 퍼포먼스가 독보적이다. 온라인서든 오프라인서든 그의 입담이 이야깃거리가 된다. <미우새>와 <우다사>에 고정으로 출연 중이며 MBC <트로트의 민족>에 출연을 앞두고 있다. 그를 향한 대중의 사랑이 높아지자 방송가는 물론 광고계서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 

“얼마 전에 막걸리 광고 하나 찍었어요. 요즘 사실 반응을 조금 실감하고 있어요. 이상해요. 코로나19 때문에 드라마든 예능이든 줄어드는 추세인데, 저는 일을 하잖아요. 다른 사람들 일할 때 저는 놀았고, 다른 사람들 일 안 할 때 저는 일하게 되더라고요. 요즘 많이 힘드신 것 같아요. 그런 중에 저 때문에 많이 웃었다던가 갈증이 확 풀렸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그런 말을 들으면 살아있다는 존재감도 느끼고, 그 자체만으로 기뻐요.”

“착한예능 재미없어…갈증 내가 해소”
‘악마의 재능’서 ‘천사의 재능’으로

그가 남들을 웃겨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배성우서 탁재훈으로 이름을 바꾸고, 컨츄리꼬꼬로 혜성같이 등장한 이후 그는 언제나 많은 사람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러던 그도 한때는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게스트를 소홀히 대한다고 해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적도 있었다. 

“저는 늘 똑같았거든요. 예전에는 이렇게 반응이 있지는 않았어요. 때로는 게스트 얘기를 안 들어준다고 해서 욕을 먹기도 했었어요. 게스트가 목적이 있어서 프로그램에 나왔을 텐데 그러면 놀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서 자기 얘기 안 들어준다고 뭐라 하기도 했었어요. 저는 ‘그러면 너는 나오지 마’라는 식이었죠. 그런 세월도 있었고, 한때 ‘내가 너무 독한건가?’라는 고민도 생겨 머뭇거렸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러다 <미우새>를 시작했고, 저는 하던 방식으로 투덜대고 했는데, 이제야 재밌다고 하네요. 사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이전까지 그에 대한 대중의 편견도 적지 않았다. 특히 성실 면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남들을 잘 놀리는 유머 스타일도 매력적이지만, 일부에겐 불편함을 줄 만한 요소였다. 쉼 없이 투덜대지만, 여전히 강렬한 웃음을 가진 그에게 방송계는 ‘악마의 재능’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는 탁재훈 ⓒ고성준 기자

<미우새> 이후로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고 있는 모양새다. 짜증스러운 모습은 더 많이 나오지만, 그 모든 것이 일종의 액션으로만 보인다. 이상민이 무언가를 제안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도울 뿐 아니라, 김종국과 김희철의 짓궂은 놀림에도 언제나 유연하게 받아친다. 나이와 무관하게 누구나 평등하게 대하는 태도가 <미우새>를 통해 전달된다. 웃기는 것뿐 아니라 탁재훈이라는 인간 자체가 가진 매력이 전달된다. 

이 정도면 악마의 재능이 아닌 ‘천사의 재능’이 요즘 그에게 더 어울리는 수식어이지 않을까. 날고 기는 예능인들이 그 앞에서는 웃기 바쁘다. JTBC <아는 형님>서 날아다니는 김희철도 탁재훈 앞에서는 웃는 리액션을 할 뿐이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 감각의 유머를 구사하는 그다. 

“우리 모두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잖아요. 저는 나이를 기준에 두고 만나지 않아요. 요즘도 뮤지나 유세윤 같이 어린 친구들이랑 놀아요. 걔네도 정말 재밌잖아요. 같이 깔깔대고 그러죠. 그런 생활패턴 덕분인 것 같아요. 여전히 저를 재밌게 봐주시는 건.”

아울러 요즘 방송계에는 힐링이 이어지고 있다. 요리와 여행, 부부, 집방 등 관찰예능을 중심으로 장르가 다변화되면서, 웃음보다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재미를 찾기는 어려워졌다. 

더 강하게
더 독하게

“방송을 쉬는 동안에 제가 느낀 건, 예능이 너무 재미없다는 거였어요. 시청자 관점서 예능이 너무 착해졌어요. 재미를 빼고, 무언가에 헌신하는 느낌이에요. 예능은 어차피 예능이잖아요. 사람들에게 메시지나 교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웃겨야 예능이 의미가 생기는 건데, 정말 웃기는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았어요. 요즘 예능을 아이 아니면 아이돌이에요. 사람들이 진짜 웃음에 목말라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갈증을 제가 해소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제 개그가 잠깐이나마 속을 뻥 뚫어줬다는 말씀들을 해주세요. 저는 그저 기쁘죠.”

그의 개그는 스펙트럼이 넓다. 과거의 이야기를 흡입력 있게 풀어내는 재주는 물론, 순간적인 재치를 발휘하는 드립, 선을 완벽히 지키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상대를 놀리는 개그, 약간의 연기를 곁들인 능청, 예상을 뒤엎는 아이디어까지, 다양하다. 가끔은 슬랩스틱 개그도 한다.

어떤 방식이든 폭발력이 있다. 웃기는 방면에서 무기가 차고 넘친다. 

“요즘 선 넘는 개그가 일종의 유행인데, 저는 선을 탄다고 생각해요. 선을 타는 것은 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재밌는 거예요. 놀림을 받는 사람도 웃게 되는 거죠. 공감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차이인데, 선을 넘는 개그는 ‘나도 아는 얘기를 뭐 이렇게까지 하냐’라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선을 타는 개그는 웃게 되는 거고요.”
 

▲ ⓒ고성준 기자

선을 타는 개그의 예는 대략 이렇다. 엠넷 <음악의 신2>서 비서로 나온 김가은의 패션이 다소 독특했다. 속옷을 밖으로 꺼내 입은 느낌이었다. 이를 캐치한 탁재훈은 한참 뜸을 들이더니 “이런 말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너 속옷을 밖으로 꺼내 입은 것 같은데. 너 왜 이렇게 정신이 없어 화장실 가서 갈아입고 와”라고 했다.

김가은은 물론 옆에 있던 윤채경과 이수민, 김소희도 덩달아 터졌다. 

“만약 거기서 제가 가은이를 빤히 보고 그런 말을 했다면, 지적질이나 성추행처럼 보였을 수도 있어요. 근데 안 보는 척 부끄러운 척하면서 말을 해요. 말과 리액션이 상황을 묘하게 만든 거죠. 그 인위적인 모습이 개그를 풍성하게 만든다고 봐요. ‘파바바박’ 치는 게 아니라 호흡이 있으면서. 사실 제 개그에 그런 액션이 다 녹아있어요.”


또 다른 역량은 짠 개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준비된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다. 동물적으로 순간을 포착하는 짐승의 면모만 보인다. 

“그 순간을 놓치면 웃기는 타이밍을 놓치는 거잖아요. 언제나 상황에 집중해요. 경청하면서, 상대를 늘 관찰하고 주시해요. 평소에도 특이한 캐릭터가 보이면 괜히 더 말 붙이고, 그걸 체화하기도 하죠. 집중하는 덕분에 특정한 순간을 잘 잡아내는 것 같아요.”

동물적 감각 
천부적 재능

매번 이렇게 웃길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는 스스로 건강한 멘탈이라고 답했다. 건강한 멘탈의 비결은 ‘안 되면 말고’ 정신이다. 늘 최선은 다하되, 결과에 얽매이지 않는 것. 결과가 좋지 않더라고 훌훌 털어버리는 게 그의 건강한 멘탈의 비결이라고. 

“사람이 열심히 해도 결과가 안 좋을 수 있잖아요. ‘안 되면 말고’라고 말하는 사람도 속상할테 지만, 그걸 빨리 잊어야지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거예요. 안 됐다고 죽을 거예요? 아니잖아요. 멘탈 잡고 다시 열심히 해서 극복해야죠.”

그 ‘안 되면 말고’의 정신이 컨츄리꼬꼬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신정환과의 결합 자체가 못 미더웠던 그가 미루고 미루다 결성한 컨츄리꼬꼬는 무려 8개월 동안 아무런 스케줄을 잡지 못했다. 그룹도 결성하고 노래도 나왔는데,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겨우 하나 잡힌 곳이 SBS <좋은 친구들>이었다. 


“그때 컨츄리꼬꼬를 접기로 하고 나간 거였어요. 기분이 어떻겠어요. 정환이한테 ‘마지막 스케줄인데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하고 나갔어요. 녹화 켜지자마자 정말 막 했죠. ‘뭐 저런 XX들이 다 있어?’라고 하는 느낌이었어요. 방청객도 빵빵 터지고요. 그렇게 마무리하고 가는데 한 번 더 출연해달라는 전화가 왔어요. 또 가서 또 터뜨렸죠. 방송 나가고부터 다른 프로그램 섭외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사실 그때 결과에 얽매여 있었다면, 거기서 그렇게 웃기지 못했을 거예요.”

어쩌면 잃어버릴 수 있었던 레전드는 그렇게 우연한 곳에서 탄생했다. 오랜 파트너였던 신정환과 그야말로 최고의 전성기를 이룬다. 음악과 예능, 영화 등 등장하는 곳마다 관심을 끌었다. 그러던 중 동료 신정환이 도박한 후 거짓말을 한 것이 도마 위에 오른다. 탁재훈과 함께 예능 전성시대를 이끈 신정환은 현재 방송에 얼굴을 못 비치고 있다. 
 

“한 달 전에도 만났어요. 여전히 웃기고 있어요. 정환이랑 저랑 개그의 결이 가장 비슷한 거 같아요. 걔는 아직 시동이 더 필요해요. 엠넷 <악마의 재능>은 너무 다급하게 복귀하려다, 전반적으로 부족했고, <아는형님> 때는 정환이가 너무 위축된 상태로 나가서… 좀 시동도 걸리고 예열이 되면, 예전처럼 웃길 거 같아요.”

그러면서 신정환에게 전한 복귀 시나리오를 전했다. 

“사실 걔가 죄를 짓는 과정서 웃음 포인트가 너무 많았어요. 뎅기열 사진에 누워있는 모습도 그렇고, 공항서 입은 패딩도 웃기잖아요. 뭐 그런 걸 입어서. 정환이한테 말했어요. 공항 장면을 그대로 만들라고요. 기자들도 세팅해서 플래시 터트리고, 그때처럼 포토라인서 인사를 하라고요. 인사를 90도로 하면 모자가 내려오는데 거기서 칩이 후드득 쏟아지는 거예요. 그럼 정환이는 그 칩을 주섬주섬 줍는 거예요. 그거 한 방이면 끝난다고 했어요. 아마 그 짤은 영원할 거예요.”

그러면서 조심스레 신정환의 복귀에 대한 진심을 전했다. 

그가 전한 신정환 복귀 시나리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싶고 싶다”

“팔이 안으로 굽는 얘기이긴 할 텐데, 정환이가 잘한 건 아니지만 누구 등쳐먹으려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잘못한 게 있고, 그게 알려지는 게 두려운 상황서 한 거짓말이잖아요. 잘한 건 아니지만, 이해되는 부분도 조금은 있잖아요. 이런 상황이 더 오래가지 않았으면 하는 게 형으로서 바람이에요.”

이른바 ‘돌아온 싱글’의 대표주자인 그에게 방송가는 연인을 붙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MBN <최고의 한 방>서도 소개팅을 주선했고, 본격 연애 방송인 <우다사>의 터줏대감인 그다. 시즌3부터는 오현경과 돌싱편 ‘우리 결혼했어요’를 찍고 있다. 

“사실 연애는 잘 모르겠어요. 신경 잘 안 쓰는 편이에요. 연애라는 게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잖아요. 시간도 그렇고 저는 나이도 있으니까 돈도 좀 써야죠. 사실 저는 혼자 있는 거에 익숙한 편이에요. 지금은 생각이 많지 않지만, 누군가와 스파크 튀기면 잘 될 수도 있겠죠. 아직 적극적으로 꽂히려고 하지 않아요. 정신이 너무 멀쩡해요. <우다사>서 오현경씨와는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매력적이고요. 아직 촬영 초기고, 카메라가 있어서 진짜로 뭐가 튀긴 건 아니지만, 현경씨가 좋은 사람인 건 분명해요.”

웃기는 것 뿐 아니라 노래에도 소질이 있는 그는 새로운 음반을 준비 중이다. 썩히기엔 너무 아까운 재능이라는 게 그의 속내다. <미우새>서 이상민에게 프로듀싱을 부탁하는 장면도 나왔다. 
 

“현재 준비중이기는 한데, 구체적으로 나온 건 없어요. 이 나이에 댄스를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발라드나 느린 템포가 될 것 같기는 한데, 트로트가 워낙 강세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이상민이 직접 프로듀싱은 안 해요. 그건 설정이에요.”

아직도 재능이 넘치는 그이지만 최근 들어 갱년기에 대해 고민이 있다고 털어놨다.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도 그렇고, 가끔 울적함에 빠지기도 한다고. 

“텐션이 예전처럼 높지 않아요. 저의 삶의 루틴을 바꿔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계속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싶은데, 기운도 점점 떨어지고 그래요. 남들한테 티를 내지는 않지만, 분명 힘든 점이 있거든요. 이걸 잘 관리하고 극복하고 싶어요.”

무려 20년 동안 국내 예능계의 정점에 있는 그다. 지금도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고 있는 그의 삶의 철학은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살기’다. 

건강한 멘탈 
안 되면 말고∼

“독하고 나쁜 애들이 잘사는 게 세상이더라고요. 정말 착한 애들은 사고가 나거나 일찍 죽어요. 진짜 그렇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나쁜 인간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남한테 피해 주면서까지 뭘 차지하고 싶지 않아요. 결국 그렇게 욕심부려봤자, 다 똑같더라고요. 그런 믿음을 갖고 살아요요. 나쁘게 살면 벌 받는다는 것. 저는 정말 착하게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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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