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김무성 카드' 만지작거리는 내막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8.20 09: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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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 다녀온 그에게 '선대본부장'을?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지난 14일 유럽배낭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김무성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향해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가 새누리당 전당대회 이후 박근혜 대선경선후보 캠프의 선대본부장을 맡게 될 것이라는 입소문 때문이었다. 오랜 여행 때문인지 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그는 이 같은 질문에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라면 문지기라도 하겠다"며 각오를 다졌지만 확답은 피했다. 지난 4·11 총선 불출마 선언을 계기로 한동안 정치권에서 멀어져 있던 그가 단숨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유는 뭔지 들여다봤다.

김무성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한때 대표적인 친박(親朴)인사였다. 거구의 김 전 원내대표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패배하자 엉엉 눈물을 흘릴 정도로  온 마음을 다해 박 후보를 지지했었다. 김 전 원내대표가 '친박계의 좌장'이라 불렸던 이유도 이 같은 충직함 때문이었다.

은둔자의 삶

그러나 2009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과 관련 박 후보와 입장을 달리하면서 대표적인 탈박(脫朴)인사가 됐다. 당시 박 후보는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고 일침을 놓으면서 둘은 완전히 결별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서 치러진 지난 4·11 총선 당시 공천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친박'이라는 이유로,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탈박'이라는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했으니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이후 김 전 원내대표 주변에서는 신당 창당설이나 무소속 출마설 등이 떠돌았으나 결국 불출마 백의종군이라는 의외의 선택을 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내가 무소속 출마 같은 선택을 하면 '새누리당은 박살나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도 날아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러면 전부 야권이 차지하는 것 아니겠나. 다시 생각하니 역사의 죄인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백의종군하겠다고 최종 결정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일로 박 후보와의 화해의 싹이 텄다. 이후 탈당 도미노사태가 진정됐고 당 외곽의 신당 창당은 동력을 잃었다. 박 후보는 전화를 걸어 김 전 원내대표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총선은 새누리당의 과반 압승이었다. 총선 직후 그는 당에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온갖 제의를 뿌리치고 전라도와 미국, 유럽 등지를 배낭여행하며 은둔자의 삶을 살았다.


지난 달 27일부터 전직 동료의원 3명과 함께 재정위기 상황을 둘러보기 위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던 김 전 원내대표는 당초계획보다 일찍 귀국하면서 전당대회를 앞둔 박 후보 측이 김 전 원내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이 아니냐는 항간의 소문에 더욱 힘이 실렸다. 일각에선 김 전 원내대표가 박 후보 캠프의 선대본부장을 맡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 전 원내대표도 본선 캠프에 합류할 뜻을 내비쳤다. 입국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 전 원내대표는 "전당대회 결과가 나오면 새누리당 당원으로 정치인생 마지막을 걸고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박 후보와 손잡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아직 경선도 안 끝났다"면서도 "이번 선거에서 우파정권 재창출을 위해 온몸을 던지겠다"고 말했다. 애써 에둘러 표현했지만 현재 새누리당 대선경선은 박 후보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본선에서 박 후보를 돕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표적 탈박 인사, 보수대연합 위한 포석
김무성 카드 놓고 당내 갈등 본격 현실화

'김무성 중용론'을 놓고 박 후보의 선거캠프 내에서는 첨예한 의견대립이 펼쳐지는 양상이다. 박 후보 측은 탈박계이면서도 친박계와 두루두루 친하고, 비박주자들과도 관계가 원만한 김 전 원내대표가 김문수 후보 등 비박주자들을 포용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박 후보 선거캠프의 한 관계자는 "김 전 원내대표가 박 후보가 원하는 '보수대연합'의 기치를 걸고, 이들을 다독이며 본선에 대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며 "특히 대표적인 탈박인사인 그의 중용은 박 후보의 포용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주변 인사들이 박 후보에게 제대로 조언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어 대선캠프 재편 시 '예스맨'이 아니라 박 후보에게 할 말은 할 수 있는 김 전 원내대표가 더욱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캠프 내부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캠프 내 개혁파들은 '김무성 카드'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헌금' 사태로 친박계 인사들의 '2선 후퇴론'까지 나오는 마당에 과거 친박계의 좌장이라 불렸던 핵심 친박인사가 선대위에 합류할 경우 '도로 친박계'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또 이번 공천헌금 파문으로 부산지역 총선 과정에 비리가 속속 포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PK 대표 중진을 기용하면 위험부담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게다가 김 전 원내대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제주해군기지 논란 등에서 보수적 색채가 너무 짙어 박 후보의 득표 면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최근까지 속편하게 배낭여행을 다녀온 인물을 갑자기 선대본부장으로 기용한다니 조금은 황당하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김 전 원내대표가 선대본부장을 맡게 될 것이라는 주장에 점점 힘이 실리자 정치권에서는 박 후보가 처음부터 기획한 일이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정치권 인사들은 "김 전 원내대표가 4·11 총선에서 반박인 듯 행세하다 돌연 백의종군 선언을 하며 자신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던 비박, 반박 의원들을 주저앉힌 것 아니냐"며 "실제로 박 후보의 좌장이었던 김 전 원내대표가 단지 세종시 문제에 대한 이견 하나로 박 후보를 떠났다는 사실에 많은 전문가들은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었다"고 말했다.

'탈박' 김무성 중용론

김 전 원내대표의 배낭여행 또한 "박 후보와 자신이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며 "실제로는 김 전 원내대표가 그동안 여당 인사들과 끊임없이 접촉하며 정계 복귀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후보 선거캠프의 한 인사는 "이 같은 음모론은 다소 황당하다"면서 "김 전 원내대표의 캠프 합류는 당내 입지나 격전지 부산에서의 영향력 등을 고려해 논의 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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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