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지우기’ 위기의 당권파 해법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8.03 09:57:52
  • 호수 12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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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돼도 상왕정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근 들어 불만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향한 비판은 벼른 칼처럼 날카롭다. 현재 민주당 내부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그만큼 친노(친 노무현) 좌장이자 군기반장인 이 대표의 당 장악력은 철옹성처럼 굳건해 보였다. 이 대표와 한 배를 탄 당권파 역시 덩달아 위기다. <일요시사>는 기로에 서 있는 당권파의 독자생존 전략을 취재했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180석(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데는 박수를 보내야 하지만 ‘버럭’하는 것은 배우기가 그렇다.”(민주당 노웅래 최고위원 후보) “굉장히 무섭다. 이야기를 진솔하게 표현하기가 힘들고 말씀드리고 나서도 한참 혼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이원욱 후보) “이미 그분이 다 해본 길이기 때문에 새로운 상상력이나 도전에 대해서는 대부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면이 강하다.”(김종민 후보) “잘난 척까지는 아니고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만, 조금 자제하면 좋을 것 같다.”(신동근 후보)

참았던 불만
봇물 터지듯

다선 국회의원이 초선 의원을 지적하는 듯 보이는 발언이지만, 실상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평가하는 발언이다. 이 대표를 향해 쓴소리를 낸 이들 4명은 모두 이달 말에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의원들이다.

이 대표의 임기는 채 한 달이 남지 않았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오는 29일에 열린다. 이 대표의 임기는 전당대회까지다. 충분히 리더십에 균열이 생길 수 있는 시기다. 그러나 그 주인공이 이 대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대표는 친노의 좌장이자, 민주당의 군기반장이다. 그는 참여정부 시설 총리를 역임했으며, 노무현재단의 4대 이사장을 지냈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서 엄수됐을 당시 추도사를 읽은 사람이 바로 이 대표다. 친노·친문(친 문재인)이 주류를 차지하는 민주당 내에서 이 대표의 입지는 절대적이다. 


이 대표는 군기반장으로 통한다. 이 같은 이미지엔 그의 까칠한 성격도 일조한다. 참여정부 실세 총리이던 시절 그는 ‘버럭 총리’로 불렸다. 국회 대정부질의서 야당 의원들에게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자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2월 대정부질의서 ‘차떼기당 발언’을 놓고 당시 한나라당(미래통합당 전신) 홍준표 의원과 설전을 벌인 일은 유명하다.
 

▲ (사진 왼쪽부터)김종민·노웅래·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병희 기자

초선 의원이던 시절 평민당에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당화를 지적하며 탈당한 사건은 그의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을 잘 대변하는 사건이다.

이 대표는 지난 2018년 8월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강한 여당’이 이 대표가 내세운 청사진이었고, 여기에 많은 민주당 당원들이 표를 던졌다. 

이 대표는 취임 후 청와대·정부에 강한 목소리를 내며 향후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당이 쥐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취임 첫 고위당정청회의서 이 대표는 “민주당은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되므로 쓴소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군기반장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청와대와 정부 부처에 미리 경고를 날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고위원 후보들 “대표 무섭다”
‘부초서천’ 논란에 민주당 흔들

군기반장의 면모는 민주당 내부를 단속하는 과정서도 드러났다. ‘함구령’ 사건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민주당 인사들과 관련한 논란이 터질 때마다 입단속에 나섰다. 

후원금 유용 의혹 등을 받은 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논란의 중심에 서자 “일희일비하듯 사건이 나올 때마다 대응하지 말라”며 의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금태섭 전 의원 징계와 관련해서도 “논란으로 확산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금 전 의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본회의 표결 당시 ‘기권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당 윤리심판원서 징계 결정을 받았다.


잇단 함구령에 민주당 내부서도 불만이 표출됐다.

김해영 최고위원은 비공개 회의서 “금 전 의원에 대한 징계가 헌법적 판단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공개 회의서 발언하겠다”며 소신을 드러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 외에는 이렇다할 공개 비판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표의 리더십은 흔들림이 없었다. 

금 전 의원 징계 논란에 대한 함구령이 내려진 시기는 지난 6월이다.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현 시점서 이 대표의 리더십에는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복수의 전당대회 출마자들이 강한 어조로 그간의 이 대표의 발언 등을 지적하고 나섰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해찬 리스크’를 언급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 대표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빈소를 방문했던 지난달 10일, 박 전 시장의 ‘미투 의혹’을 묻는 질문에 욕설을 한 일이 결정적이었다.
 

▲ 최고위원회의서 발언하는 박주민 최고위원 ⓒ문병희 기자

이 대표는 박 전 시장의 빈소서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예의가 아니다. 그런 걸 이 자리서 얘기라고 하나. 최소한 가릴 게 있다”고 말한 뒤, 기자를 노려보며 “XX자식 같으니”라고 쏘아붙였다.

당시의 대응 논란은 일마만파로 퍼졌다. 한국기자협회는 이 대표에게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결국 민주당 강훈식 수석대변인은 해당 언론사 측에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버럭총리
군기반장

이 대표가 당시 빈소서 보여준 격앙된 반응은 이후 민주당 의원들의 ‘2차 가해’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 대표가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에게 사과하기 전, 그가 박 전 시장의 업적을 기리며 추모하는 모습은 민주당 내부 의원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했다.

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사자 명예훼손에도 해당할 수 있는 얘기”라고 했다.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지낸 민주당 윤준병 의원 역시 “고인은 죽음으로, 당신이 그리던 미투 처리 전범을 몸소 실천했다. 고인의 명예가 더는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 논란을 불렀다.

이후 이 대표를 비롯해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였던 의원들이 사과했지만,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로부터 2주 뒤 ‘천박한 서울’ 논란이 터졌다. 이 대표는 지난달 24일 세종시청 여민실서 열린 ‘세종시의 미래, 그리고 국가균형발전의 시대’ 토론회서 “서울 한강 배를 타고 지나가면 저기는 무슨 아파트, 한 평에 얼마 그걸 쭉 설명해야 한다”며 “한강 변에 아파트만 들어서가지고 단가 얼마라고 하는데, 이런 천박한 도시로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민주당 부산시당서 개최한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서 부산을 ‘초라하다’고 말한 이후 두 번째 지역 비하 발언이다. 야권에서는 ‘부초서천’(부산은 초라하고 서울은 천박하다)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이 대표와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다.


천박한 서울 발언 논란에 이어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이 대표는 다른 지도부와 엇박자를 냈다. 이 대표는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의 수도를 세종으로 한다’는 규정을 세우면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깨끗이 해결된다는 입장이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지난달 24일 세종시청서 열린 토크콘서트서 이 대표는 “개헌할 때 대한민국 수도를 세종시에 둔다는 문구를 넣으면 위헌 결정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를 비롯해 여권 내 기류는 ‘여야 합의를 바탕으로 한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방향이다. 김 원내대표는 행정수도완성추진단(이하 추진단) 첫 회의서 “대선까지 시간 끌지 않고 그 전에 여야가 합의할 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추진단 단장인 민주당 우원식 의원 역시 여야 합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해찬 리스크
“총기 잃었나”

민주당 단독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을 때의 정치적 역풍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헌 논의 등으로 소비되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어서다.

만약 속도가 나지 않을 경우 마지막 카드로 개헌을 꺼내든다는 것이 민주당 내부의 중론이다. 이 대표가 주장하는 개헌과 추진단서 주장하는 특별법 제정 사이에는 갭이 크다. 민주당 지도부가 우왕좌왕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이 대표가 총기를 잃은 것 아니냐는 평가가 민주당 내부서 들려온다. 일각에선 퇴임을 앞두고 긴장이 풀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레임덕이라는 평가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문제는 이 대표의 발언이 민주당의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조사하고, 30일에 발표한 7월4주차 주중 잠정집계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서울 지역서 3.9% 포인트, 충청권서 4.9% 포인트 하락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 역시 서울 지역서 4.8% 포인트, 대전·세종·충청 지역서 4.5% 포인트가 하락했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과 이 대표의 천박한 서울 발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9주 연속 하락세를 멈추고 지난주보다 1.2% 포인트 오른 45.6%를 기록했음에도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다(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이해찬 책임론’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지는 않다. 최고위원 후보들이 이 대표의 발언에 일침을 가했지만, 사퇴 등으로 번지지는 않는 모습이다. 어차피 교체될 지도부라는 이유에서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민주당 송갑석 대변인은 천박한 서울 논란과 관련해 “모든 것은 뒷전이고 그런 이야기(집값)를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천박한 상황을 말한 것”이라며 “한 달 정도 있으면 은퇴를 하시는 분이다. 너무 긴장하지 않고 받아들여 주셔도 좋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친문 당권파의 수장이다. 김태년 원내대표와 윤호중 사무총장, 김성환 당 대표 비서실장이 이 대표와 가까운 친문 당권파로 통한다. 당내 이해찬계로 분류돼 속칭 ‘이해찬 당권파’로도 불린다. 

“어차피 나갈 것” 쉬쉬
친문 건재하다지만…

이들은 이 대표 퇴임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 이낙연 의원, 김부겸 전 의원, 박주민 최고위원이 차기 당권에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이 중 박 최고위원이 친문 당권파로 분류된다. 

박 최고위원은 이번 당 대표 선거의 주요 변수다.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한 이 의원과 김 전 의원의 양강 구도가 전망됐었다. 박 최고위원은 후보 등록 마지막 날 갑작스레 출마를 선언했다. 

앞서 박 최고위원은 서울시장 출마가 유력하게 거론됐었다. 이 때문에 그의 막판 출사표가 뜻밖이라는 반응이 민주당 안팎서 들려온다. ‘체급 올리기’ ‘플랜B’ 등 박 최고위원의 출마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쏟아진다. 

체급 올리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박 최고위원이 결국 서울시장 출마를 고려해 당 대표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해석한다. 이낙연·김부겸과의 대결로 체급을 올린 뒤 내년 4월에 열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도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플랜B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만약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여성을 낙점했을 때를 대비해 박 최고위원이 당 대표로 방향을 틀었다고 본다. 불확실한 서울시장에 도전하기보다 조금 더 명확한 당 대표로 급선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최고위원이 당 대표로 당선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높은 인지도와 호감으로 많은 친문 표심을 가져갈 것으로 전망되지만, 다른 두 후보에 비해 정치적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박 최고위원의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서 친문 당권파들이 그에게 마냥 힘을 실어주기는 힘들다.

퇴임 이후 이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해석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앞서 이 대표 상왕설이 정치권서 불거진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사단법인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변수 등장
선택 기로

동북아평화경제협회는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과의 경제교류 및 상호협력관계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민간단체다. 사무실은 여의도 국회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다. 이 대표와 가까운 친문 당권파들은 당의 요직(김 원내대표, 윤 사무총장, 김 비서실장)에 포진해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 대표가 퇴임 후 ‘상왕정치’를 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첫 당 대표 후보 토론회 승패는?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출사표를 던진 이낙연·김부겸·박주민 후보가 맞붙었다. 지난달 29일 첫 TV 토론회서 후보들은 행정수도와 대표 임기 문제 등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김 후보는 이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입장이 몇 번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호남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이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입장을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이 후보는 “행정수도 건설 자체에 반대했다기보다는 비수도권 지방과의 불균형이 생기는 경우에 대해 보완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취지였다”고 반박했다. 

당 대표 임기 문제를 놓고도 공방을 벌였다. 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임기 7개월 만인 내년 3월에 사임해야 한다. 내년 4월 재보궐선거가 예정돼있는 와중에 지도부 공백이 불가피하다.

이 후보는 “책임 있게 처신하겠다”며 에둘러 입장을 내놨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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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