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당원명부 유출' 이유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8.15 09: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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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취업준비생 당원들 "나 떨고 있니?"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민주통합당의 당원명부가 한 이벤트 대행업체 사무실에서 발견됐다. 새누리당의 당원명부는 당직자에 의해 헐값에 팔려나갔고 통합진보당의 당원명부가 담긴 서버는 검찰에 압수되기도 했다. 유출 원인과 규모는 제각각이지만 원내 제1, 2, 3당의 당원명부가 유출되는 사건이 불과 두 달여 사이에 연이어 발생한 것이다. 개인 신상정보가 모두 담긴 당원명부가 유출됐다는 사실에 당원들은 왠지 찜찜한 기분이다.

'정당의 심장'이라는 당원명부가 수난을 겪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지난 5월21일 검찰이 비례대표 경선 부정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당원명부를 압수하려 하자 한밤중임에도 수백 명의 당원과 당직자가 당사로 집결해 온몸으로 막았다.

당의 심장?

당시 강기갑 통합진보당 의원은 "당원명부는 우리 당의 심장"이라며 절규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있은 후 불과 20여 일 만인 지난 6월14일 새누리당에선 한 당직자가 무려 220여 만명의 당원명부를 고작 400만원에 팔아넘기는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한 명당 2원꼴도 안 되는 헐값이었다.

이를 맹비난하던 민주통합당도 지난 8월6일 서울의 한 이벤트대행업체 사무실 컴퓨터에서 민주당 당원 2만7000명의 명단이 발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 민주당 자체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모 당직자는 해당 명부가 들어있는 7개 파일을 인터넷 가상저장소에 보관해왔으며, 이씨와 함께 일을 하는 이벤트회사 박모 이사가 업무파일을 다운로드 받는 과정에서 해당 명부까지 같이 다운로드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유출됐다는 7개 명부는 전당대회 관계자들이라면 대부분 취득할 수 있는 공개적인 명단이고, 현재까지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통합진보당처럼 특수한 사례는 제외하더라도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 번호, 집주소 등 개인 신상정보가 모두 담겨 있는 당원명부가 이토록 허술하게 관리되고 유출될 수 있다는 사실에 당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원명부 유출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전당대회나 경선과 같은 당내 선거에서 당원명부 없이 선거 치르는 사람이 있으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면서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각 선거캠프에서도 따로 당원명부를 관리하고 있으니 유출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관행이 당연시 되다보니 일부 당직자들이 당원명부를 일반 서류뭉치처럼 여긴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당원명부 유출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지금 이슈가 된 사건은 사실 빙산의 일각"이라며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가 돈으로 거래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부 당직자들은 개인적으로도 당원명부를 가지고 있고, 누군가에게 팔아넘긴다고 해도 흔적이 남는 것도 아니니 당연히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개당 2원에 팔린 당의 심장…"안일한 인식에 경악"
재발방지책은 '나 몰라라'…개인적 비리 선 긋기

한편 이처럼 각 당의 당원명부가 대규모로 유출되면서 당원들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우선 가장 우려되는 것은 당원명부가 범죄자들에 의해 이용되는 경우다. 당원명부에 기록되어 있는 신상정보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이메일 주소, 직업, 직장 주소, 활동지역위원회 등 10가지가 넘는다. 범죄자들이 범죄에 악용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보이스피싱, 금융사기, 이메일을 이용한 해킹, 신분증 위조 등 수많은 범죄에 이용할 수 있다. 당원명부 유출을 통해 각 당의 당원들이 범죄에 노출된 것이다.

또 현직 공무원이나 군인, 취업준비생들은 정당 가입사실 때문에 불이익을 받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현행 정당법과 정치자금법은 공무원이나 군인 등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재향군인회 등 14개 보수단체 연합으로부터 '통합진보당에 가입한 공무원과 군인 등을 찾아 처벌해 달라'는 취지의 고발장을 접수받아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검사 변창훈)에 배당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찰은 일단 사건배당은 했으나 정치적 탄압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수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당원들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선관위는 잇따라 발생한 당원명부 유출로 불안해하는 취업준비생들에게 "일반 사기업은 물론이고 정부기관이라고 해도 당원명부에 대한 조회는 가능하지도 않고 법적으로도 불법"이라며 "취업 불이익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들은 "이미 헐값에 당원명부가 유출되어 온라인 공간에 떠돌고 있을 텐데 그러한 설명을 믿고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냐"며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당원명부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특히 진보적 성향을 띈 정당 가입자들은 기업에서 배척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사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각 당의 안이한 대응방식도 문제다. 새누리당은 이번 사건을 당직자 개인의 비리로 치부하며 선을 그었다. 민주당은 "이벤트업체가 갖고 있던 명부는 1·15전대에서 경선후보 측에 공개 교부한 대의원 명단(2만3000여명)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광역·기초의원 명단 등 모두 공개된 자료들"이라며 "당원 명부가 유출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범죄악용 우려

하지만 이러한 명단들이 과연 이벤트업체에 공개되어도 될 자료인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단순실수였다고 주장하지만 왜 하필 이벤트업체에 실수로 들어갔는지도 의혹이고, 실수로 유출될 만큼 허술하게 관리되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임에도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한 정치전문가는 "각 당은 이번 사건을 개인적 비리로 치부하며 넘어가려고 하는데 사실 누구나 쉽게 당원명부를 빼낼 수 있는 현 관리체계가 더 큰 문제다. 한 개인보다 각 당의 잘못이 더 크다는 것이다"며 "이러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유출사고 후 각 당이 내놓은 대책이라는 게 사실 직원들에 대한 교육강화가 전부다. 근본적인 관리체계의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구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일반 국민들의 정당참여 의지조차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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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