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의 성공 조건

칼 차고 돌아온 ‘여의도 차르’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사회주의로 비난하지 말라.” 지난달 27일 출범한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의 김종인 위원장이 대대적인 혁신을 예고하며 한 말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 앞에 산적한 과제가 만만치 않다. 과연 ‘김종인호’는 순항할 수 있을까.
 

▲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 쇄신을 책임질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7일에 공식 출범했다. 21대 총선 참패 이후 지도부 공백기가 지속된 지 42일만이다. 통합당과 김 위원장은 임기 문제에 대한 입장차를 보였으나, 당내서 총선 패배에 대한 수습이 시급하다는 절박감이 돌면서 결국 비대위가 꾸려졌다.

돌고 돌아
또 김종인

통합당은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를 열어 지난달 말 추인된 김종인 비대위의 임기를 연장하는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다. 당헌 개정으로 오는 8월30일까지로 규정한 부칙에 ‘비대위를 둘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조항을 추가해 비대위 출범의 가장 큰 과제였던 임기 문제를 해결했다.

이로써 김종인 비대위는 보궐선거가 있는 내년 4월까지 통합당의 쇄신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김 위원장은 좌우 이념에 매몰된 당을 탈피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는 국회 의원회관서 열린 전국조직위원장회의 비공개 특강서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념으로 나누지 말자. 더 이상 ‘보수’ ‘자유우파’라는 말을 강조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통합당은 여권 세력과 정책을 ‘좌파’와 ‘사회주의’로 규정하며 색깔론을 지나치게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불필요한 이념 논쟁으로 정치혐오를 부추긴 점이 21대 총선 패배의 큰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당 내부에선 새로운 실용주의 노선을 지향하고 중도층 민심을 얻어야 통합당이 쇄신할 수 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김 위원장은 “시대가 바뀐 만큼, 당의 정강·정책 등에서부터 시대정신에 맞는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정당은 국민이 가장 민감해하는 불평등, 비민주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며 탈이념을 강조했다.

통합당 비대위는 앞으로 통합당이 강조해왔던 신자유주의와 친기업적인 경제 정책 노선을 탈피해 경제적 약자를 위한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보수·진보를 막론한 정책들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과거 경제민주화처럼 새로운 것을 내놓더라도 놀라지 말라”며 “정책 개발만이 살 길”이라고 큰 변화를 시사했다.

쇄신 닻 올려…여연 개혁 과제
청년·여성 두루 발탁, 중도 확장

당시 특강서 김 위원장은 구체적으로 독일 사례를 들었다. 김 위원장은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신자유주의가 한계를 보일 때 보완을 잘했다. 배워야 한다”고 했다. 독일의 기민당은 보수정당이지만 진보 정책 등을 수용하면서 집권에 성공했다.


정치권에선 김 위원장이 독일 유학 경험을 살려 ‘기본소득제’를 도입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기민당은 보수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 지원금 확대와 같은 공약을 펼쳐 집권에 성공했다.

기본소득제는 재산, 소득, 고용 여부 등에 상관없이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성공한 전례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2년 통합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박근혜 비대위’에 합류해 정강정책을 갈아 엎고 ‘경제민주화’를 제시해, 중도 표심을 얻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특강 후 기본소득제 도입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기본소득은 여러 가지를 검토해야 한다”며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니다”라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 악수 나누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사진 오른쪽)과 주호영 원내대표

비대위는 임기 초반에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하 여연)에 대한 개혁에 본격 드라이브를 걸 예정이다. 여연은 지난 20년 동안 정책 발굴 및 당의 비전과 전략 연구, 여론조사 등에 기여하며 당의 브레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당 대표가 이사장을 겸임하기 시작한 후로부터 겸직 문제가 계속 불거지면서 당 대표 친위부대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연 원장을 맡았던 통합당 김세연 전 의원 역시 여연이 당 대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여론조사 데이터를 왜곡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이번 총선 과정서 미래한국당과 함께 과반을 얻을 것이라는 장밋빛 관측을 내세운 것은 여연 개혁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김종인 키즈
세대 교체

일각에선 여연이 해체에 들어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당 회의서 ‘여연 해체’를 거론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여연에 대해 “연구소 간판만 붙인다고 연구가 되는 게 아니다”라며 “제대로 안 되면 싱크탱크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당은 비대위 출범으로 소위 ‘태극기부대’로 지칭되는 극우세력과의 거리를 두고 중도층의 확장에 힘쓸 것으로 예상된다.

통합당 지도부는 지난해부터 여러 장외투쟁서 극우 세력들과 범여권에 대항해오면서 이들과 선을 긋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통합당은 차명진 전 후보의 ‘세월호 막말’과 같은 논란들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면서 이번 총선서 유례없는 대패를 당했다.

김 위원장은 당의 극우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비대위를 청년과 여성을 중심으로 꾸려야 한다는 의견을 당에 개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통합당이 지난 달27일 발표한 비대위 9인 중에는 여성으로는 초선의 김미애 의원·김현아 전 의원이, 청년으로는 김병민 서울 광진구갑 조직위원장·김재섭 서울 도봉갑 조직위원장·정원석 청사진 공동대표가 합류했다.

김병민 위원은 1982년생으로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다 이번 총선서 영입인재로 발탁돼 서울 광진갑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김재섭 위원은 1987년생으로 청년 정당 같이오름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이번 총선서 퓨처메이커로 발탁돼 서울 도봉갑에 출마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정원석 위원은 청년단체 청사진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이번 총선서 당 중앙선거대책위 상근대변인 역할을 수행했다.

김병민 위원은 “비대위원의 면면을 보면 당연직을 제외하고 물리적 나이를 3040으로 맞췄고, 수도권, 중도층의 민심을 무겁게 청취하고 국민이 원하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는 쪽으로 비대위원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치사를 돌이켜보면, 선거서 패배한 당은 어김없이 비대위를 꾸려왔다. 통합당만 해도 이번 김종인 비대위까지 합치면 8번째 비대위다. 하지만 비대위 체제는 대부분 실패에 그쳤다. 임시직에 불과해 짧은 기간 선거 패배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김 위원장이 비대위 출범 전 무기한 전권을 당에 요구했던 이유기도 하다.

대선 후보
어디 없나

김 위원장은 여러 차례 자신의 역할은 다음 대선서 당이 선거를 치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승리를 이끄는 것이라고 밝혔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대선 후보가 나올 수 있도록 당 시스템 구축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야권의 마땅한 대선 후보가 없다. 당 내부에서는 전국 단위 선거를 4번 연속 패배한 상황서 다음 대선까지 패배하면 당이 그대로 무너질 것이라는 절박함이 감지되고 있다.
 

▲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열린 미래통합당 제2차 전국위원회서 구호 외치는 주호영 원내대표

한국갤럽서 실시한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권 후보들이 큰 강세를 보이는 반면 야권서 선두를 달리던 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도 지지율이  1%까지 떨어진 상태다.

통합당 안팎의 대선주자들이 비대위에 우호적이지 않은 점 역시 김 위원장에게 큰 부담이다. 김 위원장이 차기 대선 후보로 ‘1970년대생 경제전문가’를 내세운 것이 첫 화근이 됐다. 김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70년대에 출생한 사람 중 비전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국가적 지도자로 부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통합당 홍준표 전 대표는 “대한민국을 이끌 만한 능력과 자질이 되는가 살펴보는 게 우선”이라며 “30대, 40대가 그만한 정치적 역량이 있는 세대는 아니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홍 의원은 김종인 비대위에 대해 “당을 제대로 혁신해 국민에게 다가가는 정당으로 만들어주면 좋겠다”면서도 ‘대선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김 위원장으로부터 야박한 평가를 받았다. 김 위원장은 오 전 시장의 면전서 “무상급식을 주민투표 한 건 참 바보 같다”고 했다.

지난 2011년 오 전 시장은 무상급식을 시행할지를 주민투표에 부쳤다. 33.3%에 미달하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는데, 투표율이 25%에 그쳐 그는 사퇴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오 전 시장은 “수긍한다”며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이념 정책 “사회주의로 비난 말라”
2년 남은 대선 ‘강한’ 리더십 변수

김종인 비대위를 반대해왔던 의원들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중진 의원들 사이서 민주당과 통합당을 왔다갔다 한 김 위원장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은 데다, 대대적인 정책 노선 수정으로 인해 당내 반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은 이들에 대한 공천권이 없어진 만큼 이전 비대위 만큼 칼날이 예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 위원장의 강한 리더십이 통합당과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 지도 미지수다.

정치권에선 그를 ‘여의도 차르(전제군주)’라고 일컫는다. 김 위원장이 지난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로 전권을 휘두르며, 친노(친 노무현)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 물갈이를 했던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당의 전권을 쥐고 있던 그는 중요 결정들을 독점해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고 당내 주요 인사들 공천을 탈락시키는 등 전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 미래통합당 청년인재 회동에 앞서 대화 나누는 참석자들

친노 세력의 공천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김 위원장은 당시 자택 칩거에 들어가면서 독단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김종인 비대위는 앞으로 통합당의 이념, 정책 등 모든 것을 대대적으로 혁신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은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않으면 국민의 관심을 가질 수 없다”며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세상 변화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정당이 되자”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종인 비대위는 6월 첫날부터 임기를 시작해 여러 정책들은 당내 논의를 거치며 구상을 구체화하고 단계적으로 공개할 전망이다.

닳고 닳아
무딘 칼날?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SNS에 김종인 비대위의 성공 조건을 “반성 없는 정당의 극복”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그야말로 상상 이상의, 아니 상상조차 못할 정도의 근본적 변화와 대혁신이 아니면 국민들의 야당에 대한 비호감을 바꿀 수 없다”고도 했다. 이어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통합당의 환골탈태와 근본혁신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 과제”라며 “어물쩍 혁신하는 모양만 갖추거나 대충 변화하는 시늉만으로는 민주당에 헌납하는 야당이 반복되고 말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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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