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 2위’ 국회의장 샅바싸움 막전막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5.18 10:10:40
  • 호수 12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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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다음 권력 ‘둘 중 하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대한민국 의전 서열 2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다. 승리를 거두는 사람이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맡는다. <일요시사>는 21대 국회 원구성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장 쟁탈전을 추적했다. 
 

▲ 박병석 국회부의장(더불어민주당)과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놓고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다.

맞대결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병석 의원과 김진표 의원이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직을 놓고 경쟁 중이다. 관례상 전반기 국회의장은 원내 1당이 가져간다. 21대 총선서 대승을 거둔 민주당의 몫이다.

박 6선
김 5선

박 의원은 21대 총선을 통해 6선에 성공했다. 다음달 개원하는 21대 국회를 기준으로 최다선인데 정치권이 그의 국회의장행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이유다.

박 의원의 강점은 계파색이 옅다는 점이다. 당내 정세균계로 분류되지만, 친문(친 문재인)·비문(비 문재인)을 가리지 않고 활발히 교류해왔다. 

계파색은 옅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박 의원을 신뢰한다’는 말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선 경선을 앞두고 충청권 의원 중 처음으로 박 의원을 캠프로 영입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정부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문재인정부의 철학 등을 설명한 사람도 박 의원이다. 이는 21대 총선을 통해 세 확장에 성공한 친문계 의원들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야당 의원들과도 큰 갈등 없이 관계를 원만히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당적을 내려놓고 여야 의원들을 모두 포용해야 하는 국회의장의 성격과도 들어맞는다. 일각에선 박 의원의 이런 강점을 들어 ‘전통적 의장상’과 잘 맞다는 평가도 나온다.

계파색이 옅은 점은 야당 의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 등 보수 야당은 친문 색채에 대한 반감이 크다. 21대 총선을 사흘 앞둔 지난달 12일 통합당은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여당은 친문 일색 공천으로 귀결됐다. 이런 상황서 현 정권이 이번 선거를 통해 국회마저 장악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이 나라는 친문패권 세력의 나라가 될 것”이라며 저격한 바 있다.

박 의원이 충청권 의원인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충청권은 21대 총선서 민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낸 바 있다. 이에 민주당 내부에선 ‘차기 대선을 위해서라도 충청권을 배려하는 직책 안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 의원 본인의 의지 역시 강하다. 앞서 그는 21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국회의장이라는 중책이 주어진다면 과감하게 국회를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의장 ‘3수생’라는 점도 박 의원의 손을 들어주는 요소다. 19대 국회서 국회부의장을 지낸 박 의원은 20대 국회 국회의장에 도전했지만, 정세균·문희상 국회의장에게 밀려 꿈을 이루지 못했다.

박 ‘최다선’ 김 ‘최고령’
손 편지 VS 메신저 승자는?


반면, 확실한 당내 조직이 없다는 점이 박 의원의 약점으로 꼽힌다. 확실한 당내 조직은 고정 득표, 더 나아가 확장력을 의미한다. 박 의원이 수도권에 비해 세가 약한 충청권이라는 점도 상대적 약점으로 꼽힌다.

박 의원의 경쟁상대는 5선의 김진표 의원이다. 박 의원이 국회 최다선이라면, 김 의원은 최고령이다. 74세인 김 의원은 박 의원(69세)보다 5년 위다.

김 의원 역시 의지가 강하다. 한때 민주당 내에서는 박 의원에 대한 ‘추대론’이 제기된 바 있다. 경선을 치를 경우 자칫 과열 양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열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정부여당에 180석을 몰아준 국민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김 의원의 경선 의지가 높아 추대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 문희상 국회의장 ⓒ문병희 기자

김 의원의 강점은 ‘경제 전문성’이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정통 관료 출신인 그는 자타공인 ‘경제통’으로 불린다. 현재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서 비상경제대책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 의원은 계파색이 옅은 박 의원과 달리 계파색이 상대적으로 뚜렷하다. 참여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냈으며, 문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서 위원장을 역임한 친노·친문 인사다.

두 사람이 경선서 맞붙었을 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김 의원은 당권파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이해찬 대표가 당권을 잡은 이후 민주당 당권파의 최근 기세는 무서울 정도로 상승세다.

상승세는 최근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을 통해 뚜렷해졌다. 김태년·전해철·정성호 의원이 맞붙은 경선서 김 의원이 163표 가운데 과반 이상인 82표를 획득,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김 신임 원내대표는 친문 중에서도 이 대표와 가까운 당권파다.

민주당이 21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뒤 곧바로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서 당권파가 승리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류 친문’에 대한 견제 심리와 수평적인 당청 관계를 요구하는 경향이 높아졌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포용 리더십
경제 전문가

김태년·전해철·정성호 세 명의 원내대표 후보 중 친문은 김 원내대표와 전 의원이다. 전 의원은 문 대통령의 측근인 ‘3철’(양정철·이호철·전해철)이자, 핵심 친문 의원들의 모임인 ‘부엉이 모임’의 좌장을 맡은 ‘주류 친문’이다. 부엉이 모임은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전 의원을 민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은 김 원내대표가 전 의원을 꺾을 수 있었던 이유가 주류 친문에 대한 견제심리 때문이라 해석한다.


일각에선 당권파인 김 원내대표에 빗대어 전 의원을 ‘정권파’로 불렀다. 결국 민주당 의원들은 정권파보다 당권파를 선택, 현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신임을 전했다. 이 같은 경향은 국회의장 경선에서 당권파인 김 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김 의원의 약점은 ‘이미지’다. 관료 출신이라는 점, 과거 종교인 과세 유예를 주장한 점 등 김 의원은 개혁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러한 이미지는 개혁 성향의 초재선 당선인들의 표심을 끌어오는 데 방해요소가 될 수도 있다. 

박 의원과 김 의원은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여야가 원내대표 선출을 끝내고 나서 본격화됐다. 정치권에선 박 의원이 김 의원에게 양보를 권했다는 지라시까지 등장했다. 박 의원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물밑 구애작전이 치열하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스타일로 당선인들에게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당내 계파 역학구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초선 당선인에게 맞춤식 구애작전을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민주당 초선 당선인은 68명이다. 시민당 당선인까지 합하면 그 수는 83명으로 불어난다. 국회의장 경선의 향배를 결정지을 정도의 규모다.

박 의원은 전략은 ‘정성’이다. 앞서 박 의원은 초선 당선인들에게 두 차례 손 편지를 보냈는데 “당선 후 등원까지, 지역민들에 대한 감사 인사를 성의 있게 해야 한다” “상임위는 전공을 살피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을 권한다” 등 박 의원이 초선 당선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각종 조언을 담았다.


박 의원은 4선이던 지난 19대 국회 때부터 초선 당선인들에게 의정활동에 대한 조언을 담은 손 편지를 써온 것으로 전해진다.

손 편지 외에도 박 의원은 전화와 문자로 초선 당선인들에게 지역구 관리, 보좌진 채용과 같은 부분에 조언을 해주는 등 멘토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또 식사 자리를 마련하면서 통합형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 의원의 전략은 ‘전달’이다. 그는 SNS 메신저를 적극 활용하며, 메시지 전달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초선 표심
승패 영향

지난 8일 김 의원은 카카오톡 메신저로 의원 개개인에게 디지털 서신을 보냈는데, 메시지에는 ‘디지털 뉴딜을 선도하는 능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방역 모범국가서 경제 위기 극복 모범국가로 가는 길을 만들고 싶다’ 등의 포부가 담겼다.

김 의원은 ‘일하는 국회의장’을 캐치프레이즈로 표심 공략에 나섰다. 지난 8일 메시지서도 “국회의장이 사후적이고 절차적으로 개입하는 관행서 벗어나 책임성을 갖고 적극적으로 국회 운영에 나서야 한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국회의장 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 역시 당선인들과 오찬을 여는 등 접촉면을 늘리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 의원은 캐치프레이즈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도 내놨다. 국회의장이 주도하는 주요 현안협의체를 도입하겠다는 것.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들과 협의해 신속한 처리, 공론 수렴이 필요한 법안을 중점 안건으로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이를 위해 구체적인 법안을 이미 마련해뒀다고 밝혔다.

과연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이라는 영광을 차지하는 사람은 누가 될 것인가. 국회 선진화법으로 국회의장이 가진 권한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입법부의 수장이라는 상징성은 여전하다.
 

▲ 국회의장단에 첫 유리벽을 깰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의장 경선은 오는 25일 열린다. 후보 등록은 오는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 진행된다. 이후 의장 후보는 10분의 정견발표를 한다. 만약 의장단 후보로 한 명만 등록하면 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된다. 

두 명 이상 후보가 경선을 치러 동률이 나오더라도 결선 투표는 진행하지 않는다. 이렇게 당선된 후보는 오는 6월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서 무기명 투표를 진행, 재적의원 과반 이상의 득표로 당선이 결정된다.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 역시 25일 윤곽이 드러난다. 부의장은 총 2명이다. 여당과 야당이 각각 1명씩을 추천해 표결을 거친다. 

당권파 표심 어디로…
최초 여성 부의장 도전

통합당이 야당 몫 부의장 1명을 가져간다. 통합당에서는 정진석 의원이 경선 없이 추대될 전망이다. 경쟁자로 거론되던 서병수 당선인이 부의장 경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서병수 당선인은 지난 13일 “국회부의장이 과연 내게 주어진 사명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일하는 국회 본연의 모습은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께서 통합당을 외면한 것은 반대만 했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반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제대로 반대하는 야당부터 만드는 것이 일하는 국회의 첫걸음이라 믿는다. 이게 내가 다시 정치를 시작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통합당 최다선들 사이서 교통정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통합당 최다선은 5선으로 4명이다. 부의장 추대가 유력한 정 의원을 비롯해, 주호영 의원, 조경태 의원, 서 당선인이 그들이다. 앞서 주 의원은 통합당의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나머지 조 의원과 서 당선인은 차기 전당대회 출마가 유력하다.

정 의원은 기자 출신 국회의원이다. 5선 의원을 하는 동안 국회사무총장과 국회의장 비서실장, 국회 운영위원장·정보위원장·규제개혁위원장 등을 거쳤다. 이번에 부의장으로 추대되면, 사실상 국회의장을 제외한 국회의 모든 요직을 경험하게 된다.

민주당 몫 부의장 경선에서는 최초의 ‘여성 부의장’ 탄생 여부로 뜨겁다.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여성 의원 모임인 ‘행복여정’은 여성 최다선(4선)인 김상희 의원을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제헌국회 이래 여성이 의장단에 들어간 사례는 전무하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까지 7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의장단에) 여성이 없었다. 이는 정치가 지금까지 남성의 영역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라며 “이는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장·부의장은 대개 다선이 하는데, 그동안은 여성 다선 의원이 굉장히 부족했다”며 “의장단에 한 번도 여성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대의민주주의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국회서의 상징성이 부족한 것”이라고 밝혔다.

부의장도
치열하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부서도 최초의 여성 부의장 탄생이라는 명분이 힘을 받고 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의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자당 남성 의원들에게 여성 부의장 선출에 동의해달라는 서명 요청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김 의원이 부의장이 되기에 선수가 낮다는 지적도 있다. 상대로는 이상민(5선), 변재일(5선) 의원이 유력하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낙연 세력 확장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이 세력 확장에 나섰다.

21대 총선 기간 자신이 후원회장을 맡았던 당선·낙선인과 잇단 회동을 가졌다.

이 위원장은 지난 15일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민주당 총선 당선인 20여명과 오찬을 열었다. 모두 당선자들로 21대 국회 초재선이다.

김병관·김병욱·백혜련·정춘숙 의원은 물론 이탄희·홍정민·김용민·고민정·이소영 당선인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이 위원장은 지난 7일 후원회장을 맡았던 후보 가운데 낙선인 15명과도 비공개 오찬을 가졌다.

이 위원장 측은 “후원회장으로서 인사 차원서 갖는 모임”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도전을 고민하고 있는 이 위원장이 본격적인 세력 확장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위원장은 당권의 걸림돌로 당내 기반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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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