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킹 프로젝트’ 전말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3.17 07:59:36
  • 호수 12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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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빠지기 전에 ‘새 피 수혈’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대권을 정조준한 모양새다. 그가 후원회장을 맡은 예비후보만 21명이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그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정치권은 이들을 잠재적 친이낙연계로 보고 있다. 이 전 총리는 자타공인의 차기 대권주자다. 더불어민주당의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기도 한 이 전 총리는 과연 총선 승리와 계파 확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대권에 가장 근접한 정치인이다. 실제로 그는 복수의 여론조사서 오랜 기간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이 전 총리에게 종로 출마를 요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전 총리는 현 시점서 민주당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이다. 

계파 외연
확장할까?

민주당 내에서 그의 위치를 잘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바로 이 대표와 함께 당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의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이해찬·이낙연’이라는 투톱 체제다. 당초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이 전 총리에게 원로들이 맡아온 ‘특별선대위원장직’을 줄 것이라 예상했다. 대한민국 ‘정치1번지’라는 종로에 출마하는 만큼, 전국 단위의 선거 지원이라는 부담을 지우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이 전 총리에게 상임선대위원장을 맡겼는데 그의 위상을 격상시키는 결정이었다. 이 대표가 이 전 총리에게 상임선대위원장을 맡기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당 내부에서는 곧바로 이 전 총리를 예우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전 총리의 주요 역할은 전국구 선거 지원유세인데 그의 전국적 인지도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지원유세가 힘든 상황서도 이 전 총리는 나름의 대책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바로 ‘온라인 지원유세’다. 


지원유세 창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이낙연TV’다. 후보자들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본인에 대한 홍보도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난 1일 그는 해당 채널을 통해 경기 용인정에 전략공천된 이탄희 전 판사를 칭찬했다. 해당 영상서 이 전 총리는 이 전 판사에 대해 “(이 전 판사는)정의로운 법조인이었고, 이제 정의로운 국회의원이 될 자격을 갖춘 분”이라며 홍보했다.

지난 10일에는 같은 당 백혜련 의원을 응원하며 “(백 의원은)대단히 강단 있는 분이다. 검사에 재직하다 검찰이 공정성, 중립성 의심을 받는 것을 보고 과감히 사표를 내고 나온, 심지가 굳은 분이다. 국회에 들어와서도 검찰 개혁의 맨 선봉에 섰다. 백 의원이 새롭게 개척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늘 기대를 갖고 있다”고 지원했다. 

21명의 후원회장…계파 확장
숙청된 기존 가신들 어쩌나∼

‘이낙연 마케팅’은 이번 21대 총선을 관통하는 흐름 중 하나다. 민주당 후보 다수가 이 전 총리와 찍은 사진을 현수막에 넣는가 하면, 지원유세를 요청하고 있다.

지난 1월22일에 열린 민주당 총선 입후보자 전·현직 의원 교육연수 현장이 대표적이다. 당시 현장에 교육을 들으러 온 다수의 입후보자들이 이 전 총리 곁으로 몰렸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는데 해당 사진들은 입후보자들의 페이스북 등에 곧바로 게재됐다. 

이낙연 마케팅은 특히 이 전 총리의 고향인 전남 지역서 강세다. 이 전 총리는 전남 영광서 태어나 전남 함평·영광·장성서 4선 국회의원으로 지낸 뒤 전남도지사로 올라섰다. 이 정도면 전남의 터줏대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 후보들의 ‘이낙연 활용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전 총리를 자신들의 후원회장으로 영전하고 있다. 앞서 이 전 총리는 현역 국회의원 다수의 후원회장을 맡았다고 발표했다. 강훈식·김병관·김병욱·백혜련·박정 의원 등이다. 
 

▲ (사진 왼쪽부터)백혜련·이개호·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배재정 전 대변인

총선에 출마하는 원외 인사들의 후원회장직도 수락하고 있다.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서울 광진을), 이탄희 전 판사(경기 용인정), 김용민 변호사(경기 남양주병), 김주영 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경기 김포갑), 김현정 전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위원장(경기 평택을) 등이 주인공이다.

그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충북 증평·진천·음성 지역구에 출마한 임호선 예비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임 예비후보는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며 “경찰청 차장 재직 당시 총리로 모셨던 인연이 있다”며 “이 전 총리가 후원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고 밝혔다. 

현역 국회의원을 포함해 이 전 총리가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인사는 모두 21명이다(지난 13일 기준). 그 수는 총선이 다가올수록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후원회장직은 이 전 총리 입장서도 반길 만한 일이다. 정치권은 이 전 총리의 대권도전에 걸림돌로 당내 부족한 기반을 꼽는다. 지난 2014년 7월 전남도지사로 당선된 이후 이 전 총리는 중앙당서 멀어져 있었다. 이 때문에 20대 국회서 속칭 ‘이낙연계’로 통하는 의원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줄줄이
공천 불발

만약 이 전 총리가 후원회장을 맡은 인사들이 대거 21대 국회에 입성한다면, 이 전 총리는 든든한 ‘우군’을 다수 확보하게 된다. 일각에선 이 전 총리가 21명이나 되는 인사들의 후원회장을 자청한 이유가, 오는 2022년에 있을 대선에 미리 대비하기 위함이라고 분석한다. 즉, 대권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기존 ‘이낙연계’는 민주당 공천서 쓴맛을 봤다. 7명의 이낙연계 핵심 인사 중 단 3명만 공천장을 받았거나 경선서 승리했다. 본선에 진출한 이낙연계 핵심 인사는 단 3명이다. 부산 사상에 출마해 해당 지역 단수공천을 받은 민주당 배재정 전 의원은 이낙연 국무총리실 비서실장 출신이다. 

20대 국회서 이낙연계로 분류되는 현역인 민주당 이개호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에 단수공천됐다.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은 이 의원이 오기 전 이 전 총리가 내리 4선을 한 지역구다. 이 의원과 마찬가지로 20대 국회서 이낙연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오영훈 의원은 경선서 승리, 제주을 후보로 결정됐다. 

반면 광주 서을 지역구에 출마한 이남재 전 전남도지사 정무특보는 양향자 전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장에게 패했다. 전남 목포에 도전했던 우기종 전 전남도지사 정무부지사는 경선서 ‘박원순계’ 김원이 후보와의 대결서 고배를 마셨다. 

서울 동대문을에 나선 지용호 전 국무총리실 정무실장은 해당 지역구가 ‘청년우선전략선거구’로 지정되면서 공천서 배제됐다. 경기 의정부을에 출사표를 던진 문은숙 전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비서관도 김민철 대통령직속 자치분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과의 경선서 쓴잔을 마셨다. 
 

이들은 모두 이 전 총리와 손발을 맞춘 측근들이다. 즉 이들의 본선 진출 여부는 이낙연계의 외연 확장에 중요한 포인트였다. 결과적으로 이 전 총리 측근들의 본선 진출이 연이어 좌절됨에 따라 이 전 총리의 후원회장직 수락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낙연계 확장의 전제 조건은 이 전 총리 자신의 생환이다. 한국 ‘정치1번지’ 서울 종로에 출마한 그는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의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다. 두 사람은 복수의 여론조사서 대선주자 선호도 1, 2위를 달리는 만큼 사실상의 미니 대선이다.

첩첩산중
변수도 산적

여기에 손학규 전 대표라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등장했다. 손 전 대표는 종로와 인연이 깊다. 학창시절을 보낸 매동초·경기중·경기고·서울대(연건캠퍼스 시절)는 모두 종로에 위치해 있다. 현재 거주지도 종로로 알려져 있다. 지난 18대 총선 때 손 전 대표는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종로에 출마해 당시 한나라당 박진 후보에게 3.9%포인트 차로 석패한 바 있다.

이 전 총리와 손 전 대표는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왔다. 지난 2010년 당내 비주류였던 이 전 총리를 당 사무총장으로 임명한 사람이 바로 손 전 대표다. 손 전 대표가 민주당 대표를 역임했을 때의 일이다. 이 때문에 당시 정치권은 이 전 총리를 ‘손학규계’로 분류했다. 

손 전 대표가 전남 강진 만덕산에 칩거(2014∼2016년)할 때 그를 자주 찾은 사람이 바로 이 전 총리다. 당시 이 전 총리는 전남도지사를 역임하고 있었다.

방정식은 상당히 복잡해졌다. 손 전 대표의 등장으로 이 전 총리, 황 대표 중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 예상하기 힘들다. 일각에선 이 전 총리가 황 대표보다 중도층서 우위를 보이는 만큼 손 전 대표가 이 전 총리의 중도층을 일부 흡수, 황 대표가 유리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손 전 대표가 바른미래당 대표를 역임하던 시절 꾸준히 ‘문재인정부 심판론’을 제기해온 만큼 황 대표의 핵심 지지층을 일부 흡수, 이 전 총리가 유리해질 수 있다고 전망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이 전 총리는 자신의 생환뿐 아니라 민주당의 총선 승리라는 중책을 짊어지고 있다. 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의 또 다른 직책은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장’이다. 코로나19를 저지하느냐, 못하느냐는 이 전 총리뿐 아니라 민주당의 명운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전 총리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연일 강도 높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1일 국회서 열린 제2차 코로나19 대응 당정청 회의에 모습을 드러낸 이 전 총리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코로나19 추가경정예산안(이하 추경)만으로는 현장의 위기가 진정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추경 이상의 추가적인 대책 마련 계획을 시사한 것으로 읽힌다.

지원 유세로 영향력↑
종로 선거 변수는?

이 같은 강단 있는 모습은 총리직을 역임하던 시절에 빛을 발했던 바 있다. 이 전 총리는 지난 2018년 정부서울청사에서 있은 국무회의에 참석해 가짜뉴스에 대한 전방위적 대응을 지시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가짜뉴스가 창궐한다. 유튜브, SNS 등 온라인서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며 “개인의 사생활이나 민감한 정책현안은 물론, 남북관계를 포함한 국가안보나 국가원수와 관련한 턱없는 가짜뉴스까지 나돈다”고 지적했다.

기자 출신으로 평소 정제된 표현을 해왔던 이 전 총리는 이날만큼은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사회의 공적’ ‘공동체 파괴범’ ‘나와 다른 계층이나 집단에 대한 증오를 야기해 사회통합을 흔들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민주주의 교란범’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가짜뉴스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소신 있는 발언도 이 전 총리의 존재감 부각에 한몫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임명에 “문제가 없다”는 청와대 발언에 대해 “아쉽다”고 평가하는 등 균형 잡힌 언행을 보여줬다.
 

▲ 이탄희 전 판사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 때는 서울 아파트값 폭등과 관련해선 “그동안 많이 올랐던 곳은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정기국회 때마다 야당 의원들의 집중 공세에 막힘없는 답변을 해 ‘사이다 총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비례대표용 연합정당’은 이 전 총리가 짊어진 숙제로 꼽힌다. 민주당은 지난 8일,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에 대응하기 위한 비례대표용 연합정당에 참여할지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당시 이 전 총리는 “비난은 잠시지만, 책임은 4년 동안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 미래한국당에 대한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지난 11일 자신의 발언과 관련해 이 전 총리는 “그 앞에 더 중요한 얘기를 했는데 그 얘기는 다 빠졌다”며 한 걸음 물러섰지만, 연합정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 전 총리도 공감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찬반 극명
존재감 부각

민주당의 연합정당 참여 여부는 당 의원들 사이서도 여전히 ‘갑론을박’이다. 찬성론자들은 미래통합당의 제1당 저지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지금 상황서 선거를 치른다면 비례대표서만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의석 수가 20석 가까이 차이가 날 것이란 위기감이 깔려 있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민심의 역풍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민주당이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 창당을 ‘꼼수’라고 비판했던 바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히 수도권 중도층의 민심이반을 우려 중인데 어떤 결과가 나오든 민주당의 총선 승리와 맞물려 이 전 총리의 대권가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경선 탈락’ 금태섭

당내 ‘소신파’로 분류됐던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서울 강서갑 경선서 탈락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대한 비판은 물론 윤석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서 거짓말 논란에 대해 윤 총장의 사과를 요구한 바 있다.

‘조국 사태’ 때는 공정성 가치 훼손을 이유로 조국 법무부장관에 대한 임명을 반대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 극렬 지지층으로부터 ‘문자 폭탄’을 받는 등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민주당은 금 의원이 경선에서 탈락하는 과정에 찜찜한 뒷맛을 남겼다. 앞서 민주당은 후보자 공모가 끝난 서울 강서갑에 이례적으로 추가 공모를 결정한 바 있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당에 쓴소리를 내온 금 의원을 찍어냈다고 해석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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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