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토크 대부’ 쟈니윤의 인생 이야기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3.16 11:00:31
  • 호수 12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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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토크쇼 선구자였던 자니윤이 세상을 떠났다. 국민을 울게 한 그는 한국 코미디계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일요시사>는 무명 배우서 토크쇼 MC, 한국관광공사 사장 내정설의 주인공까지, 다사다난했던 그의 인생사를 살펴봤다.
 

▲ 쟈니 윤 ⓒKBS

지난 8일 새벽,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요양병원서 자니윤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뇌출혈을 앓고 있었던 그는 숨지기 나흘 전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입원했다가 일어나지 못하고 결국 눈을 감았다. 본인의 뜻에 따라 그의 시신은 미국의 한 대학병원에 기증됐고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4년여
투병 끝에…

자니윤과 LA서 함께 봉사활동을 했고, 그의 투병생활을 돕는 등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지인 임태랑씨는 지난 10일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서 “2016년 뇌출혈 이후 4개월 만에 미국으로 건너가 4년간 투병했다. 지난 4일 갑자기 혈압이 낮아져 입원했고 나흘 만인 지난 8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며 고인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임씨는 “시신은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UC어바인에 기증됐다. 마지막까지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뜻이 있어 이미 수년 전 대학에 기증 의사를 밝혔다. 조용히 장례를 치를 것”이라며 “마지막까지 좋은 뜻이었는데 친지나 가족, 팬들 입장에서는 바로 장례를 치르고 위로하거나 할 수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자니윤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연예계 후배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가수 배철수는 지난 10일, 인스타그램에 자니윤이 사망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캡처해 올린 뒤 ‘Rest in Peace(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남겼다. 가수 조영남은 KBS 2TV 토크쇼 <자니윤 쇼>서 보조 MC로 활약했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서 “자니윤은 일상서도 유머가 넘쳤다”며 “영어를 완벽하게 하고 한국말도 되니 해외 스타들이 한국에 오면 자니윤 쇼에 출연하는 걸 최고로 알았다”고 말했다.

개그맨 권영찬도 SNS에 “‘한국 스탠딩 코미디의 별이 지다’라며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며. 하지만 그 안에서 또 행복을 찾으며. 자니윤 선생님 부디 천국에서는 맘 편히 쉬길 바란다”고 올렸다.

이홍렬, 전유성, 임하룡 등 코미디언 후배들 역시 추모의 뜻을 표현했다. 이홍렬은 “스탠드업 코미디로 한국의 위상을 떨치신 분이기에 많이 존경했다”며 “좋은 곳에 가셔서 편안하시길 바란다.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유성도 “새로운 장을 열어주신 분이고, 감사하다”며 “미국서 돌아가셨다고 들어서 많이 아쉽다. 미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빈소에 방문해 애도의 뜻을 전하고 싶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별세 소식 전해지자 후배들 추모
평범한 해군 유학생, MC로 대변신

임하룡은 <자니윤쇼>에 출연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자니윤 쇼에도 한 번 출연했었고, 한 골프 프로그램서도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며 “개인적으로 자주 연락을 취한 적은 없지만, 함께 방송활동을 했던 기억들이 생각난다”고 언급했다.

자니윤은 ‘토크쇼’라는 장르를 국내에 새롭게 구축한 인물로 평가를 받아왔다. 미국서 파트타임 가수, 뮤지컬 배우 등을 전전하다 스탠드업 코미디로 전향해 그 끼를 갈고 닦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1936년 충북 음성서 출생한 자니윤은 서울 성동고를 졸업했다. 1962년 해군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서 성악을 전공했다. 클래식으로 생업을 이어나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1964년 뉴욕으로 옮겨 리 스트라스버그 액터스 스쿨서 연기를, 모던 재즈 무용학교서 춤과 모던 재즈를 공부하며 무명 MC 겸 코미디언 생활을 시작했다.

자니윤은 자신만의 독특한 스탠드업 코미디 스타일을 개발했다. 자극적인 소재나 욕설, 폭력 등의 거친 방법을 전혀 쓰지 않으면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동양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비하, 성적 풍자, 정치 풍자 등을 하는 식으로 블랙코미디를 선보였다.
 

뉴욕의 한 카페서 코미디를 하던 자니윤이 1977년 NBC <투나잇 쇼>의 방송 진행자 자니 카슨에게 출연 기회를 얻은 일화도 유명하다. 당시 영화 <벤허>에 출연한 배우 찰턴 헤스턴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자니윤이 20분 넘는 시간 동안 쇼를 진행하며 자니 카슨에게 좋은 인상을 줬다고 전해진다. 

자니윤은 <투나잇 쇼>서 자니 카슨의 보조 역할이었지만 그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그가 풀어놓는 정치 풍자와 성적인 농담에 시청자는 환호했다. 당시 자니윤의 잠재력을 인정한 자니 카슨은 자니윤이 프로그램에 여러 번 출연할 수 있도록 힘을 썼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자니윤은 동양인 중 <투나잇 쇼> 최다 출연한 게스트 2위의 기록을 세웠다.

이후 NBC는 자니윤과 계약을 맺고 <자니윤 스페셜쇼>를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백인들이 함부로 언급하지 않았던 인종차별, 성차별 문제 등을 동양계 이민자로서 선보였다. 그의 코미디 방식은 미국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미국 스탠딩 코미디 업계서 자니윤은 이름을 날렸다. 

자신만의
블랙코미디

자니윤의 ‘자니’는 한국 이름 ‘종승’서 비롯됐는데 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하자 존(John)을 사용했고, 존의 애칭 자니(Johnny)가 그의 이름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니윤은 영화배우기도 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인 한국계 영화배우 필립 안과 함께 TV 시리즈 <쿵푸>에 단역으로 나왔으며,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MASH> <코작> 등을 거쳐 1982년 저예산 코미디 영화 <내 이름은 브루스>에선 주인공을 맡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미국식 토크쇼 형식을 빌린 <자니윤 쇼>를 진행했다. 

한국어와 영어가 섞인 자니윤 특유의 ‘느끼한’ 발음을 가감 없이 선보이며 큰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1년 만에 폐지됐다. 수위 높은 성적 유머와 정치 풍자 등이 문제였다. 당시 프로그램 클로징에 했던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라는 마무리 멘트는 전 국민의 유행어였다.

이후 SBS 개국과 함께 <자니윤, 이야기쇼>라는, 타이틀은 다르지만 유사한 형식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당대 MC 중 최고 연봉으로 계약하며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자니윤, 이야기쇼> 작가이면서 <주병진 쇼> <서세원 쇼> 등 대한민국 토크쇼서 대본을 쓴 김경남 작가는 <TV리포트>와의 인터뷰서 “<자니윤쇼>는 스타들이 서로 출연하고 싶어했다. 자니윤씨는 성적인 유머를 거의 처음 국내 방송서 선보인 사람이다. 그런 것을 유쾌하게 생각했고, 자니윤씨의 유머를 듣고 싶어하는 연예인이 많았던 것 같다. 자니윤씨가 워낙 신사다 보니 모두 좋아했다”고 기억했다.

이후 iTV 토크쇼 <자니윤의 왓츠업>, SBS골프채널 <자니윤의 싱글로> 등에 MC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KBS <승승장구>에 출연해 “당시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었고 방송서도 제한된 것들이 많아 열심히 방송해도 편집당하기 일쑤였다”며 “나는 정치, 섹시 코미디를 즐겼는데 제재를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1년 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도 “토크쇼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잘사는 나라서 발달하기 마련이다. 국민이 굶주리거나 헐벗고, 농담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나라에서는 진정한 토크쇼가 나올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후 자니윤은 2007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을 때 ‘박근혜 후원회’ 회장을 맡았다.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캠프에서 재외선거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에 발탁돼 해외동포들의 표심을 잡는 데 앞장섰다.

그런 그가 박 대통령 당선 직후 한국 국적을 취득하자 정가에선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고 결국 2014년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됐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2017년 초 박근혜정부서 첫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지낸 유진룡 전 장관의 입을 통해 드러났다.

성 유머
정치 풍자

유 전 장관은 2017년 초 ‘블랙리스트’ 재판 증인으로 출석해 “2014년 장관직을 사임한 건 자니윤을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하라는 지시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지시는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내려왔는데 낙하산 인사라고 반대하다 자리서 물러나게 됐다는 증언이었다.

또 골프장서 여성 캐디에게 골프채를 휘둘러 2주 진단 상해를 입힌 사실이 회자되며 자질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일부 언론에 알려졌으며 당시 피해자 캐디를 무료 변호했던 이재명 현 경기도지사가 페이스북에 사건의 뒷얘기를 자세히 소개하고 윤씨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올리면서 도마에 올랐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자니윤은 1989년 10월3일 지인들과 경기도 성남시 한 골프장을 찾았다. 마침 이 골프장은 캐디들이 노조 설립 문제를 놓고 사측과 분규를 겪고 있던 곳이었다. 캐디들은 사측 인사가 포함된 윤씨 일행에 대해 “비회원이 회원의 날에 골프를 친다”며 문제 삼고 사진을 찍었다. 

이 과정서 카메라 필름을 뺏으려는 자니윤과 캐디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당시 격분한 자니윤은 퍼터를 든 채 카메라를 들고 도망가던 캐디 유모씨를 쫓아갔고, 경사진 길에서 유씨를 붙잡던 중 함께 넘어져 유씨에게 전치 2주의 뇌진탕 등 상해를 입혔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합의2부는 1992년 10월 상해를 입은 유씨가 자니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및 위자료 청구소송서 “13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자니윤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그대로 확정됐다.

유씨의 변호를 맡았던 이재명 도지사(당시 성남시장)는 당시 페이스북을 통해 ‘당시 캐디들이 너무 억울하다고 해서 치료비 배상소송을 무료 변론했는데 자니윤은 배상 판결을 받고도 돈을 지급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 돌아갔다’며 ‘윤씨가 3년여 뒤 다시 방송 출연을 위해 귀국한다기에 출연료 압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윤씨 측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배상금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건강상에 문제가 있었던 자니윤은 2016년 4월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자니윤 뇌출혈 입원에 대해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자니윤이 치료를 잘 받고 회복 후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고 전했다.

미국서 인종·성차별 문제로 유머
뇌출혈·치매 등 쓸쓸한 노년 보내

하지만 2017년 12월에 치매에 걸려 미국 캘리포니아 헌팅턴 요양원에 다시 입원하게 됐다.

치매의 영향으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도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쓸쓸한 노년을 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상황서도 그가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는 기억한다는 걸 보면, 자신의 인생서 가장 빛나던 순간만은 기억한 것으로 보여 씁쓸함을 더했다.

자니윤은 1999년 18세 연하인 줄리아 리와 결혼했지만 2010년 이혼했다. 줄리아 리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난폭함에 결국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혼 후에도 헌신했다고 언급했다. 줄리아 리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서 “선생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이혼했다”며 “안 그랬던 분인데 갑자기 화를 많이 내기 시작하더니 사람을 너무 난폭하게 대하더라”고 전했다.

당시 줄리아 리는 자니윤이 조울증인 줄 알고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2010년 8월 이혼했고, 그 후 자니윤이 뇌경색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줄리아 리는 경제적인 이유로 자니윤과 결혼했다는 루머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줄리아 리는 “생활비 한 번 받아본 적 없다. 그래도 (자니윤에게)돈 벌어오라는 소리 안 하고, 지갑에 돈 없으면 기죽을까봐 넣어드리곤 했다”고 회상했다.

한국에 온 이유에 대해선 “자니윤을 돌보다 쓰러져 목 디스크가 걸렸고, 이를 치료 차 잠시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자니윤을 돌볼 것이냐는 질문에 “내가 죽을 때까지 돌보겠다고 약속했으니 지키겠다”며 “아기 같고 유리 같은 분이다. 수단이 없어 돈도 많이 못 벌고 사셨을 거다. 내가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답했다.

지난 10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선 “얼마 전에 한국에 수술을 받으러 나왔다. 올 때만 해도 선생님이 멀쩡하셨는데, 갑자기 운명하셨다”며 침통한 마음을 전했다.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해 한국서 수술을 받았다는 줄리아 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퇴원 후 방역 당국의 권고로 자가 격리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사다난
파란만장

줄리아 리는 “멀리 떨어져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영상통화로 고인의 임종을 지켜봤다”며 “의사 말로는 정신이 혼미해도 청각은 듣는다고 하더라. 영상통화로 선생님에게 기도하고 ‘좋은 데서 고통받지 말고 계시라’고 했더니 눈을 한 번 뜨시더라. 그걸 화상으로 다 봤다. 아들이 영상통화를 얼른 걸어줘서 아들과 같이 마지막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이 많이 아프다. 가실 때 손을 잡아 드리기로 했는데 당장 별 도리가 없어서 화상통화로 선생님 운명하시는 걸 보고, 평상시 유언대로 해드렸다”고 덧붙였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설의 ‘자니윤쇼’는?

<자니윤 쇼>는 KBS 2TV서 방송됐던 토크쇼 프로그램으로 메인 진행자는 자니윤이며, 보조 진행자는 조영남이었다. 1989년 3월8일에 첫 방송이 시작됐고, 그 후 1990년 4월5일에 종영됐다.

그 뒤에 1991년 12월9일 SBS가 텔레비전 방송을 개국한 이후로 주말에 <자니윤, 이야기쇼>를 방영한 바 있었으며 자니윤은 이 프로그램 이후 브라운관서 자취를 감췄다가 2002년 7월14일 첫 회가 나간 iTV <Whats up>이 2002년 11월10일부터 <자니윤 나이트쇼>로 제목을 변경해, 2003년 1월 26일까지 일요일 오후 10시30분에 방영했다.

그해 2월8일부터 4월5일 마지막 회까지 진행을 맡았으며 <자니윤 쇼> 보조 MC였던 조영남이 첫 회 초대 손님으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외설적인 내용으로 일관해 시청자들의 큰 반발을 샀으며, 1990년 3월 계약 만료로 프로그램이 막을 내렸다.

1989년 10월18일 방영서 비속어 남발뿐 아니라 특정업체를 간접으로 선전해 방송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기도 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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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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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