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토크 대부’ 쟈니윤의 인생 이야기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3.16 11:00:31
  • 호수 12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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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토크쇼 선구자였던 자니윤이 세상을 떠났다. 국민을 울게 한 그는 한국 코미디계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일요시사>는 무명 배우서 토크쇼 MC, 한국관광공사 사장 내정설의 주인공까지, 다사다난했던 그의 인생사를 살펴봤다.
 

▲ 쟈니 윤 ⓒKBS

지난 8일 새벽,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요양병원서 자니윤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뇌출혈을 앓고 있었던 그는 숨지기 나흘 전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입원했다가 일어나지 못하고 결국 눈을 감았다. 본인의 뜻에 따라 그의 시신은 미국의 한 대학병원에 기증됐고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4년여
투병 끝에…

자니윤과 LA서 함께 봉사활동을 했고, 그의 투병생활을 돕는 등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지인 임태랑씨는 지난 10일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서 “2016년 뇌출혈 이후 4개월 만에 미국으로 건너가 4년간 투병했다. 지난 4일 갑자기 혈압이 낮아져 입원했고 나흘 만인 지난 8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며 고인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임씨는 “시신은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UC어바인에 기증됐다. 마지막까지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뜻이 있어 이미 수년 전 대학에 기증 의사를 밝혔다. 조용히 장례를 치를 것”이라며 “마지막까지 좋은 뜻이었는데 친지나 가족, 팬들 입장에서는 바로 장례를 치르고 위로하거나 할 수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자니윤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연예계 후배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가수 배철수는 지난 10일, 인스타그램에 자니윤이 사망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캡처해 올린 뒤 ‘Rest in Peace(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남겼다. 가수 조영남은 KBS 2TV 토크쇼 <자니윤 쇼>서 보조 MC로 활약했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서 “자니윤은 일상서도 유머가 넘쳤다”며 “영어를 완벽하게 하고 한국말도 되니 해외 스타들이 한국에 오면 자니윤 쇼에 출연하는 걸 최고로 알았다”고 말했다.

개그맨 권영찬도 SNS에 “‘한국 스탠딩 코미디의 별이 지다’라며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며. 하지만 그 안에서 또 행복을 찾으며. 자니윤 선생님 부디 천국에서는 맘 편히 쉬길 바란다”고 올렸다.

이홍렬, 전유성, 임하룡 등 코미디언 후배들 역시 추모의 뜻을 표현했다. 이홍렬은 “스탠드업 코미디로 한국의 위상을 떨치신 분이기에 많이 존경했다”며 “좋은 곳에 가셔서 편안하시길 바란다.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유성도 “새로운 장을 열어주신 분이고, 감사하다”며 “미국서 돌아가셨다고 들어서 많이 아쉽다. 미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빈소에 방문해 애도의 뜻을 전하고 싶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별세 소식 전해지자 후배들 추모
평범한 해군 유학생, MC로 대변신

임하룡은 <자니윤쇼>에 출연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자니윤 쇼에도 한 번 출연했었고, 한 골프 프로그램서도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며 “개인적으로 자주 연락을 취한 적은 없지만, 함께 방송활동을 했던 기억들이 생각난다”고 언급했다.

자니윤은 ‘토크쇼’라는 장르를 국내에 새롭게 구축한 인물로 평가를 받아왔다. 미국서 파트타임 가수, 뮤지컬 배우 등을 전전하다 스탠드업 코미디로 전향해 그 끼를 갈고 닦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1936년 충북 음성서 출생한 자니윤은 서울 성동고를 졸업했다. 1962년 해군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서 성악을 전공했다. 클래식으로 생업을 이어나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1964년 뉴욕으로 옮겨 리 스트라스버그 액터스 스쿨서 연기를, 모던 재즈 무용학교서 춤과 모던 재즈를 공부하며 무명 MC 겸 코미디언 생활을 시작했다.

자니윤은 자신만의 독특한 스탠드업 코미디 스타일을 개발했다. 자극적인 소재나 욕설, 폭력 등의 거친 방법을 전혀 쓰지 않으면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동양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비하, 성적 풍자, 정치 풍자 등을 하는 식으로 블랙코미디를 선보였다.
 

뉴욕의 한 카페서 코미디를 하던 자니윤이 1977년 NBC <투나잇 쇼>의 방송 진행자 자니 카슨에게 출연 기회를 얻은 일화도 유명하다. 당시 영화 <벤허>에 출연한 배우 찰턴 헤스턴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자니윤이 20분 넘는 시간 동안 쇼를 진행하며 자니 카슨에게 좋은 인상을 줬다고 전해진다. 

자니윤은 <투나잇 쇼>서 자니 카슨의 보조 역할이었지만 그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그가 풀어놓는 정치 풍자와 성적인 농담에 시청자는 환호했다. 당시 자니윤의 잠재력을 인정한 자니 카슨은 자니윤이 프로그램에 여러 번 출연할 수 있도록 힘을 썼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자니윤은 동양인 중 <투나잇 쇼> 최다 출연한 게스트 2위의 기록을 세웠다.

이후 NBC는 자니윤과 계약을 맺고 <자니윤 스페셜쇼>를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백인들이 함부로 언급하지 않았던 인종차별, 성차별 문제 등을 동양계 이민자로서 선보였다. 그의 코미디 방식은 미국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미국 스탠딩 코미디 업계서 자니윤은 이름을 날렸다. 

자신만의
블랙코미디

자니윤의 ‘자니’는 한국 이름 ‘종승’서 비롯됐는데 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하자 존(John)을 사용했고, 존의 애칭 자니(Johnny)가 그의 이름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니윤은 영화배우기도 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인 한국계 영화배우 필립 안과 함께 TV 시리즈 <쿵푸>에 단역으로 나왔으며,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MASH> <코작> 등을 거쳐 1982년 저예산 코미디 영화 <내 이름은 브루스>에선 주인공을 맡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미국식 토크쇼 형식을 빌린 <자니윤 쇼>를 진행했다. 

한국어와 영어가 섞인 자니윤 특유의 ‘느끼한’ 발음을 가감 없이 선보이며 큰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1년 만에 폐지됐다. 수위 높은 성적 유머와 정치 풍자 등이 문제였다. 당시 프로그램 클로징에 했던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라는 마무리 멘트는 전 국민의 유행어였다.

이후 SBS 개국과 함께 <자니윤, 이야기쇼>라는, 타이틀은 다르지만 유사한 형식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당대 MC 중 최고 연봉으로 계약하며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자니윤, 이야기쇼> 작가이면서 <주병진 쇼> <서세원 쇼> 등 대한민국 토크쇼서 대본을 쓴 김경남 작가는 <TV리포트>와의 인터뷰서 “<자니윤쇼>는 스타들이 서로 출연하고 싶어했다. 자니윤씨는 성적인 유머를 거의 처음 국내 방송서 선보인 사람이다. 그런 것을 유쾌하게 생각했고, 자니윤씨의 유머를 듣고 싶어하는 연예인이 많았던 것 같다. 자니윤씨가 워낙 신사다 보니 모두 좋아했다”고 기억했다.

이후 iTV 토크쇼 <자니윤의 왓츠업>, SBS골프채널 <자니윤의 싱글로> 등에 MC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KBS <승승장구>에 출연해 “당시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었고 방송서도 제한된 것들이 많아 열심히 방송해도 편집당하기 일쑤였다”며 “나는 정치, 섹시 코미디를 즐겼는데 제재를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1년 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도 “토크쇼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잘사는 나라서 발달하기 마련이다. 국민이 굶주리거나 헐벗고, 농담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나라에서는 진정한 토크쇼가 나올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후 자니윤은 2007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을 때 ‘박근혜 후원회’ 회장을 맡았다.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캠프에서 재외선거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에 발탁돼 해외동포들의 표심을 잡는 데 앞장섰다.

그런 그가 박 대통령 당선 직후 한국 국적을 취득하자 정가에선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고 결국 2014년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됐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2017년 초 박근혜정부서 첫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지낸 유진룡 전 장관의 입을 통해 드러났다.

성 유머
정치 풍자

유 전 장관은 2017년 초 ‘블랙리스트’ 재판 증인으로 출석해 “2014년 장관직을 사임한 건 자니윤을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하라는 지시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지시는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내려왔는데 낙하산 인사라고 반대하다 자리서 물러나게 됐다는 증언이었다.

또 골프장서 여성 캐디에게 골프채를 휘둘러 2주 진단 상해를 입힌 사실이 회자되며 자질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일부 언론에 알려졌으며 당시 피해자 캐디를 무료 변호했던 이재명 현 경기도지사가 페이스북에 사건의 뒷얘기를 자세히 소개하고 윤씨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올리면서 도마에 올랐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자니윤은 1989년 10월3일 지인들과 경기도 성남시 한 골프장을 찾았다. 마침 이 골프장은 캐디들이 노조 설립 문제를 놓고 사측과 분규를 겪고 있던 곳이었다. 캐디들은 사측 인사가 포함된 윤씨 일행에 대해 “비회원이 회원의 날에 골프를 친다”며 문제 삼고 사진을 찍었다. 

이 과정서 카메라 필름을 뺏으려는 자니윤과 캐디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당시 격분한 자니윤은 퍼터를 든 채 카메라를 들고 도망가던 캐디 유모씨를 쫓아갔고, 경사진 길에서 유씨를 붙잡던 중 함께 넘어져 유씨에게 전치 2주의 뇌진탕 등 상해를 입혔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합의2부는 1992년 10월 상해를 입은 유씨가 자니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및 위자료 청구소송서 “13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자니윤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그대로 확정됐다.

유씨의 변호를 맡았던 이재명 도지사(당시 성남시장)는 당시 페이스북을 통해 ‘당시 캐디들이 너무 억울하다고 해서 치료비 배상소송을 무료 변론했는데 자니윤은 배상 판결을 받고도 돈을 지급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 돌아갔다’며 ‘윤씨가 3년여 뒤 다시 방송 출연을 위해 귀국한다기에 출연료 압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윤씨 측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배상금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건강상에 문제가 있었던 자니윤은 2016년 4월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자니윤 뇌출혈 입원에 대해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자니윤이 치료를 잘 받고 회복 후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고 전했다.

미국서 인종·성차별 문제로 유머
뇌출혈·치매 등 쓸쓸한 노년 보내

하지만 2017년 12월에 치매에 걸려 미국 캘리포니아 헌팅턴 요양원에 다시 입원하게 됐다.

치매의 영향으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도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쓸쓸한 노년을 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상황서도 그가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는 기억한다는 걸 보면, 자신의 인생서 가장 빛나던 순간만은 기억한 것으로 보여 씁쓸함을 더했다.

자니윤은 1999년 18세 연하인 줄리아 리와 결혼했지만 2010년 이혼했다. 줄리아 리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난폭함에 결국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혼 후에도 헌신했다고 언급했다. 줄리아 리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서 “선생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이혼했다”며 “안 그랬던 분인데 갑자기 화를 많이 내기 시작하더니 사람을 너무 난폭하게 대하더라”고 전했다.

당시 줄리아 리는 자니윤이 조울증인 줄 알고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2010년 8월 이혼했고, 그 후 자니윤이 뇌경색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줄리아 리는 경제적인 이유로 자니윤과 결혼했다는 루머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줄리아 리는 “생활비 한 번 받아본 적 없다. 그래도 (자니윤에게)돈 벌어오라는 소리 안 하고, 지갑에 돈 없으면 기죽을까봐 넣어드리곤 했다”고 회상했다.

한국에 온 이유에 대해선 “자니윤을 돌보다 쓰러져 목 디스크가 걸렸고, 이를 치료 차 잠시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자니윤을 돌볼 것이냐는 질문에 “내가 죽을 때까지 돌보겠다고 약속했으니 지키겠다”며 “아기 같고 유리 같은 분이다. 수단이 없어 돈도 많이 못 벌고 사셨을 거다. 내가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답했다.

지난 10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선 “얼마 전에 한국에 수술을 받으러 나왔다. 올 때만 해도 선생님이 멀쩡하셨는데, 갑자기 운명하셨다”며 침통한 마음을 전했다.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해 한국서 수술을 받았다는 줄리아 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퇴원 후 방역 당국의 권고로 자가 격리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사다난
파란만장

줄리아 리는 “멀리 떨어져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영상통화로 고인의 임종을 지켜봤다”며 “의사 말로는 정신이 혼미해도 청각은 듣는다고 하더라. 영상통화로 선생님에게 기도하고 ‘좋은 데서 고통받지 말고 계시라’고 했더니 눈을 한 번 뜨시더라. 그걸 화상으로 다 봤다. 아들이 영상통화를 얼른 걸어줘서 아들과 같이 마지막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이 많이 아프다. 가실 때 손을 잡아 드리기로 했는데 당장 별 도리가 없어서 화상통화로 선생님 운명하시는 걸 보고, 평상시 유언대로 해드렸다”고 덧붙였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설의 ‘자니윤쇼’는?

<자니윤 쇼>는 KBS 2TV서 방송됐던 토크쇼 프로그램으로 메인 진행자는 자니윤이며, 보조 진행자는 조영남이었다. 1989년 3월8일에 첫 방송이 시작됐고, 그 후 1990년 4월5일에 종영됐다.

그 뒤에 1991년 12월9일 SBS가 텔레비전 방송을 개국한 이후로 주말에 <자니윤, 이야기쇼>를 방영한 바 있었으며 자니윤은 이 프로그램 이후 브라운관서 자취를 감췄다가 2002년 7월14일 첫 회가 나간 iTV <Whats up>이 2002년 11월10일부터 <자니윤 나이트쇼>로 제목을 변경해, 2003년 1월 26일까지 일요일 오후 10시30분에 방영했다.

그해 2월8일부터 4월5일 마지막 회까지 진행을 맡았으며 <자니윤 쇼> 보조 MC였던 조영남이 첫 회 초대 손님으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외설적인 내용으로 일관해 시청자들의 큰 반발을 샀으며, 1990년 3월 계약 만료로 프로그램이 막을 내렸다.

1989년 10월18일 방영서 비속어 남발뿐 아니라 특정업체를 간접으로 선전해 방송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기도 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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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