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토크 대부’ 쟈니윤의 인생 이야기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3.16 11:00:31
  • 호수 1262호
  • 댓글 0개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토크쇼 선구자였던 자니윤이 세상을 떠났다. 국민을 울게 한 그는 한국 코미디계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일요시사>는 무명 배우서 토크쇼 MC, 한국관광공사 사장 내정설의 주인공까지, 다사다난했던 그의 인생사를 살펴봤다.
 

▲ 쟈니 윤 ⓒKBS

지난 8일 새벽,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요양병원서 자니윤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뇌출혈을 앓고 있었던 그는 숨지기 나흘 전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입원했다가 일어나지 못하고 결국 눈을 감았다. 본인의 뜻에 따라 그의 시신은 미국의 한 대학병원에 기증됐고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4년여
투병 끝에…

자니윤과 LA서 함께 봉사활동을 했고, 그의 투병생활을 돕는 등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지인 임태랑씨는 지난 10일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서 “2016년 뇌출혈 이후 4개월 만에 미국으로 건너가 4년간 투병했다. 지난 4일 갑자기 혈압이 낮아져 입원했고 나흘 만인 지난 8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며 고인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임씨는 “시신은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UC어바인에 기증됐다. 마지막까지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뜻이 있어 이미 수년 전 대학에 기증 의사를 밝혔다. 조용히 장례를 치를 것”이라며 “마지막까지 좋은 뜻이었는데 친지나 가족, 팬들 입장에서는 바로 장례를 치르고 위로하거나 할 수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자니윤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연예계 후배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가수 배철수는 지난 10일, 인스타그램에 자니윤이 사망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캡처해 올린 뒤 ‘Rest in Peace(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남겼다. 가수 조영남은 KBS 2TV 토크쇼 <자니윤 쇼>서 보조 MC로 활약했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서 “자니윤은 일상서도 유머가 넘쳤다”며 “영어를 완벽하게 하고 한국말도 되니 해외 스타들이 한국에 오면 자니윤 쇼에 출연하는 걸 최고로 알았다”고 말했다.

개그맨 권영찬도 SNS에 “‘한국 스탠딩 코미디의 별이 지다’라며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며. 하지만 그 안에서 또 행복을 찾으며. 자니윤 선생님 부디 천국에서는 맘 편히 쉬길 바란다”고 올렸다.

이홍렬, 전유성, 임하룡 등 코미디언 후배들 역시 추모의 뜻을 표현했다. 이홍렬은 “스탠드업 코미디로 한국의 위상을 떨치신 분이기에 많이 존경했다”며 “좋은 곳에 가셔서 편안하시길 바란다.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유성도 “새로운 장을 열어주신 분이고, 감사하다”며 “미국서 돌아가셨다고 들어서 많이 아쉽다. 미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빈소에 방문해 애도의 뜻을 전하고 싶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별세 소식 전해지자 후배들 추모
평범한 해군 유학생, MC로 대변신

임하룡은 <자니윤쇼>에 출연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자니윤 쇼에도 한 번 출연했었고, 한 골프 프로그램서도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며 “개인적으로 자주 연락을 취한 적은 없지만, 함께 방송활동을 했던 기억들이 생각난다”고 언급했다.

자니윤은 ‘토크쇼’라는 장르를 국내에 새롭게 구축한 인물로 평가를 받아왔다. 미국서 파트타임 가수, 뮤지컬 배우 등을 전전하다 스탠드업 코미디로 전향해 그 끼를 갈고 닦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1936년 충북 음성서 출생한 자니윤은 서울 성동고를 졸업했다. 1962년 해군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서 성악을 전공했다. 클래식으로 생업을 이어나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1964년 뉴욕으로 옮겨 리 스트라스버그 액터스 스쿨서 연기를, 모던 재즈 무용학교서 춤과 모던 재즈를 공부하며 무명 MC 겸 코미디언 생활을 시작했다.

자니윤은 자신만의 독특한 스탠드업 코미디 스타일을 개발했다. 자극적인 소재나 욕설, 폭력 등의 거친 방법을 전혀 쓰지 않으면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동양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비하, 성적 풍자, 정치 풍자 등을 하는 식으로 블랙코미디를 선보였다.
 

뉴욕의 한 카페서 코미디를 하던 자니윤이 1977년 NBC <투나잇 쇼>의 방송 진행자 자니 카슨에게 출연 기회를 얻은 일화도 유명하다. 당시 영화 <벤허>에 출연한 배우 찰턴 헤스턴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자니윤이 20분 넘는 시간 동안 쇼를 진행하며 자니 카슨에게 좋은 인상을 줬다고 전해진다. 

자니윤은 <투나잇 쇼>서 자니 카슨의 보조 역할이었지만 그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그가 풀어놓는 정치 풍자와 성적인 농담에 시청자는 환호했다. 당시 자니윤의 잠재력을 인정한 자니 카슨은 자니윤이 프로그램에 여러 번 출연할 수 있도록 힘을 썼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자니윤은 동양인 중 <투나잇 쇼> 최다 출연한 게스트 2위의 기록을 세웠다.

이후 NBC는 자니윤과 계약을 맺고 <자니윤 스페셜쇼>를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백인들이 함부로 언급하지 않았던 인종차별, 성차별 문제 등을 동양계 이민자로서 선보였다. 그의 코미디 방식은 미국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미국 스탠딩 코미디 업계서 자니윤은 이름을 날렸다. 

자신만의
블랙코미디

자니윤의 ‘자니’는 한국 이름 ‘종승’서 비롯됐는데 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하자 존(John)을 사용했고, 존의 애칭 자니(Johnny)가 그의 이름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니윤은 영화배우기도 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인 한국계 영화배우 필립 안과 함께 TV 시리즈 <쿵푸>에 단역으로 나왔으며,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MASH> <코작> 등을 거쳐 1982년 저예산 코미디 영화 <내 이름은 브루스>에선 주인공을 맡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미국식 토크쇼 형식을 빌린 <자니윤 쇼>를 진행했다. 

한국어와 영어가 섞인 자니윤 특유의 ‘느끼한’ 발음을 가감 없이 선보이며 큰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1년 만에 폐지됐다. 수위 높은 성적 유머와 정치 풍자 등이 문제였다. 당시 프로그램 클로징에 했던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라는 마무리 멘트는 전 국민의 유행어였다.

이후 SBS 개국과 함께 <자니윤, 이야기쇼>라는, 타이틀은 다르지만 유사한 형식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당대 MC 중 최고 연봉으로 계약하며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자니윤, 이야기쇼> 작가이면서 <주병진 쇼> <서세원 쇼> 등 대한민국 토크쇼서 대본을 쓴 김경남 작가는 <TV리포트>와의 인터뷰서 “<자니윤쇼>는 스타들이 서로 출연하고 싶어했다. 자니윤씨는 성적인 유머를 거의 처음 국내 방송서 선보인 사람이다. 그런 것을 유쾌하게 생각했고, 자니윤씨의 유머를 듣고 싶어하는 연예인이 많았던 것 같다. 자니윤씨가 워낙 신사다 보니 모두 좋아했다”고 기억했다.

이후 iTV 토크쇼 <자니윤의 왓츠업>, SBS골프채널 <자니윤의 싱글로> 등에 MC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KBS <승승장구>에 출연해 “당시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었고 방송서도 제한된 것들이 많아 열심히 방송해도 편집당하기 일쑤였다”며 “나는 정치, 섹시 코미디를 즐겼는데 제재를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1년 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도 “토크쇼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잘사는 나라서 발달하기 마련이다. 국민이 굶주리거나 헐벗고, 농담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나라에서는 진정한 토크쇼가 나올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후 자니윤은 2007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을 때 ‘박근혜 후원회’ 회장을 맡았다.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캠프에서 재외선거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에 발탁돼 해외동포들의 표심을 잡는 데 앞장섰다.

그런 그가 박 대통령 당선 직후 한국 국적을 취득하자 정가에선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고 결국 2014년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됐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2017년 초 박근혜정부서 첫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지낸 유진룡 전 장관의 입을 통해 드러났다.

성 유머
정치 풍자

유 전 장관은 2017년 초 ‘블랙리스트’ 재판 증인으로 출석해 “2014년 장관직을 사임한 건 자니윤을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하라는 지시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지시는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내려왔는데 낙하산 인사라고 반대하다 자리서 물러나게 됐다는 증언이었다.

또 골프장서 여성 캐디에게 골프채를 휘둘러 2주 진단 상해를 입힌 사실이 회자되며 자질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일부 언론에 알려졌으며 당시 피해자 캐디를 무료 변호했던 이재명 현 경기도지사가 페이스북에 사건의 뒷얘기를 자세히 소개하고 윤씨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올리면서 도마에 올랐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자니윤은 1989년 10월3일 지인들과 경기도 성남시 한 골프장을 찾았다. 마침 이 골프장은 캐디들이 노조 설립 문제를 놓고 사측과 분규를 겪고 있던 곳이었다. 캐디들은 사측 인사가 포함된 윤씨 일행에 대해 “비회원이 회원의 날에 골프를 친다”며 문제 삼고 사진을 찍었다. 

이 과정서 카메라 필름을 뺏으려는 자니윤과 캐디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당시 격분한 자니윤은 퍼터를 든 채 카메라를 들고 도망가던 캐디 유모씨를 쫓아갔고, 경사진 길에서 유씨를 붙잡던 중 함께 넘어져 유씨에게 전치 2주의 뇌진탕 등 상해를 입혔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합의2부는 1992년 10월 상해를 입은 유씨가 자니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및 위자료 청구소송서 “13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자니윤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그대로 확정됐다.

유씨의 변호를 맡았던 이재명 도지사(당시 성남시장)는 당시 페이스북을 통해 ‘당시 캐디들이 너무 억울하다고 해서 치료비 배상소송을 무료 변론했는데 자니윤은 배상 판결을 받고도 돈을 지급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 돌아갔다’며 ‘윤씨가 3년여 뒤 다시 방송 출연을 위해 귀국한다기에 출연료 압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윤씨 측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배상금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건강상에 문제가 있었던 자니윤은 2016년 4월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자니윤 뇌출혈 입원에 대해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자니윤이 치료를 잘 받고 회복 후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고 전했다.

미국서 인종·성차별 문제로 유머
뇌출혈·치매 등 쓸쓸한 노년 보내

하지만 2017년 12월에 치매에 걸려 미국 캘리포니아 헌팅턴 요양원에 다시 입원하게 됐다.

치매의 영향으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도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쓸쓸한 노년을 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상황서도 그가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는 기억한다는 걸 보면, 자신의 인생서 가장 빛나던 순간만은 기억한 것으로 보여 씁쓸함을 더했다.

자니윤은 1999년 18세 연하인 줄리아 리와 결혼했지만 2010년 이혼했다. 줄리아 리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난폭함에 결국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혼 후에도 헌신했다고 언급했다. 줄리아 리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서 “선생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이혼했다”며 “안 그랬던 분인데 갑자기 화를 많이 내기 시작하더니 사람을 너무 난폭하게 대하더라”고 전했다.

당시 줄리아 리는 자니윤이 조울증인 줄 알고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2010년 8월 이혼했고, 그 후 자니윤이 뇌경색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줄리아 리는 경제적인 이유로 자니윤과 결혼했다는 루머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줄리아 리는 “생활비 한 번 받아본 적 없다. 그래도 (자니윤에게)돈 벌어오라는 소리 안 하고, 지갑에 돈 없으면 기죽을까봐 넣어드리곤 했다”고 회상했다.

한국에 온 이유에 대해선 “자니윤을 돌보다 쓰러져 목 디스크가 걸렸고, 이를 치료 차 잠시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자니윤을 돌볼 것이냐는 질문에 “내가 죽을 때까지 돌보겠다고 약속했으니 지키겠다”며 “아기 같고 유리 같은 분이다. 수단이 없어 돈도 많이 못 벌고 사셨을 거다. 내가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답했다.

지난 10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선 “얼마 전에 한국에 수술을 받으러 나왔다. 올 때만 해도 선생님이 멀쩡하셨는데, 갑자기 운명하셨다”며 침통한 마음을 전했다.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해 한국서 수술을 받았다는 줄리아 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퇴원 후 방역 당국의 권고로 자가 격리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사다난
파란만장

줄리아 리는 “멀리 떨어져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영상통화로 고인의 임종을 지켜봤다”며 “의사 말로는 정신이 혼미해도 청각은 듣는다고 하더라. 영상통화로 선생님에게 기도하고 ‘좋은 데서 고통받지 말고 계시라’고 했더니 눈을 한 번 뜨시더라. 그걸 화상으로 다 봤다. 아들이 영상통화를 얼른 걸어줘서 아들과 같이 마지막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이 많이 아프다. 가실 때 손을 잡아 드리기로 했는데 당장 별 도리가 없어서 화상통화로 선생님 운명하시는 걸 보고, 평상시 유언대로 해드렸다”고 덧붙였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설의 ‘자니윤쇼’는?

<자니윤 쇼>는 KBS 2TV서 방송됐던 토크쇼 프로그램으로 메인 진행자는 자니윤이며, 보조 진행자는 조영남이었다. 1989년 3월8일에 첫 방송이 시작됐고, 그 후 1990년 4월5일에 종영됐다.

그 뒤에 1991년 12월9일 SBS가 텔레비전 방송을 개국한 이후로 주말에 <자니윤, 이야기쇼>를 방영한 바 있었으며 자니윤은 이 프로그램 이후 브라운관서 자취를 감췄다가 2002년 7월14일 첫 회가 나간 iTV <Whats up>이 2002년 11월10일부터 <자니윤 나이트쇼>로 제목을 변경해, 2003년 1월 26일까지 일요일 오후 10시30분에 방영했다.

그해 2월8일부터 4월5일 마지막 회까지 진행을 맡았으며 <자니윤 쇼> 보조 MC였던 조영남이 첫 회 초대 손님으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외설적인 내용으로 일관해 시청자들의 큰 반발을 샀으며, 1990년 3월 계약 만료로 프로그램이 막을 내렸다.

1989년 10월18일 방영서 비속어 남발뿐 아니라 특정업체를 간접으로 선전해 방송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기도 했다. <구>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