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젯> 김광빈 감독 “마스크 벗고 영화 보는 환경으로 돌아오길…”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군입대를 앞둔 늦은 나이, 한 청년은 선배들이 찍는 촬영장의 붙박이가 된다. 출연 배우들의 대사에 다른 잡음이 섞였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동시 녹음기사로 무려 13개월 동안 몸을 섞었다. 무보수였다. 그 당시 주인공을 맡았던 5년 선배는 국내 최고의 배우가 됐고, 당시 감독은 내놓는 작품마다 호평을 받는 스타 감독 내지는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는 영화 제작자가 됐다. 배우는 하정우고, 감독은 윤종빈, 영화는 <용서받지 못한 자>다. 이 영화는 ‘칸 국제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된다. 
 

▲ ▲▲ 영화 <클로젯>의 김광빈 감독 ⓒ문병희 기자

촬영만 마치고 군대에 가서야 <용서받지 못한 자>를 케이블 채널을 통해 시청했다. “음, 굉장히 사실적인 영화였군”이라며 감탄한 채 두 사람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편집과 동시녹음 등 다양한 스태프를 하면서 영화를 착실히 준비했다. 워낙 스릴러와 공포를 좋아한 덕에 공포 장르의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그리고 2016년 친했던 형이자, 감독과 제작자로서 안목이 좋은 윤 감독으로부터 검토받기 위해 저녁식사를 한다. 그 자리에는 하정우도 왔다. 김광빈 감독의 <클로젯>은 이렇게 출발했다. 

윤 감독의 마음에 돈 한 푼 안 받고 힘든 일을 도맡아준 후배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시나리오가 훌륭했던 덕일까. 윤 감독은 키워보자는 생각에 시나리오 수정을 요청하고, 김 감독도 이에 따랐다. 대본의 지속된 업그레이드와 함께 하정우와 김남길이 캐스팅된다. 동서양과 신구(新舊), 공포와 드라마가 섞인 꽤 아름다운 공포영화를 만들어낸다.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윤 감독과 하정우 배우에게 고마움이 정말 크다”는 김 감독을 최근 만나 영화가 만들어진 여정을 들어봤다.

다음은 김광빈 감독과의 일문일답. 

-벽장이 작품의 제목이자 중요한 소재다. 어떻게 출발하게 됐나?

▲2016년 쯤이었던 것 같다. 자다가 눈을 떴는데 벽장이 열려 있었는데 무섭고 소름끼쳤던 순간이었다. 그 느낌이 시나리오로 이어졌다. 이런 소재에 제가 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상처받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때부터 글을 쓰게 됐고, 2년 정도 수정했다. 애초 드라마 라인이 있었는데, 워낙 오랜 시간 수정했고, 혼자서도 계속 수정을 많이 해서 정확한 기억이 안 난다. 당초 큰 골자는 벽장 넘어에 있는 아이들의 세계에 아이를 구하러 간다는 것이다. 물리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윤종빈 감독을 찾아간 이유가 있나? 혹시 윤 감독이 제작자로서 후배들을 잘 챙기기 때문인가?

▲친했던 선후배 사이고, 시나리오를 검토받고 싶었다. 제작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윤 감독의 회사(월광) 색깔과 달라 제작까지는 생각도 안 했다. 그런 동생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선뜻 재밌다고 하셨고, 이렇게 인연이 됐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무보수였다. 어떻게 13개월 동안 함께 했나. 

▲내가 학교 다닐 때 잘 따르는 동생이었다. 원래 영화과는 서로 품앗이 문화가 있는데 도와준 것 뿐이다. 군대 가기 전에 마땅히 할 게 없었다. 2004년에 입대를 했고, 군에서 OCN으로 완성된 영화를 봤다. ‘정말 리얼리티한 영화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때 ‘이게 말이 돼?’라는 생각이었다. 군에서 직접 체험을 하고 나니 엄청 리얼리티라고 느꼈다.

-실제로 귀신이나 안 좋은 기운은 학대를 받은 아이들이거나, 왕따를 당했거나 등 이런 충격적인 사건이 있는 사람들한테 잘 붙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 노린 건가?

▲그런 얘기는 처음 들었다. 제가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든 이유는 가해한 어른에게 아이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서 출발했다. 다큐멘터리나 이런 것을 보면서 아이들이 엄청 분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한 아이들이 그 분노가 쌓이면 많이 무서울 것 같았다. 그 아이들을 무찌르는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과 달랐다.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해 보였다.
 

▲ ▲ⓒ문병희 기자

-아동학대 관련 소재는 주로 어디서 착안했나?


▲시사 고발 프로그램서 많이 하던데 그런 걸 본 것이다. 사건들을 보면 어른들이 참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변명하기에만 급급하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이야기인데, 이걸 잘 지켜보기만 했어도 덜 일어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상원(하정우 분)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구하러 가는데, 그런 의미를 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드라마를 통한 메시지가 강하지는 않다. 스무스하다고 해야 하나. 가르치려는 느낌은 아니다.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더 길게 혹은 더 짧게도 있었다. 이 선이 적정하다고 생각했던 건 상업영화기 때문에 재미가 우선이었다. 영화를 본 뒤 가만히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느낌 정도 이길 바랐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육체가 영의 세계가 간다는 거다. 대부분 영혼만 가는데, 이 영화는 육체까지 보내버린다. 

▲그곳에 구하러 가서 여러 고통을 느끼면서 깨달음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과정서 명진이 막으려고 할 것이고 육체 및 정신적인 고통을 통해 역경을 겪길 바랐다.

-눈길이 남는 건 명진의 부친으로 나오는 박성우의 표정이다. 굉장히 섬뜩하다. 공을 많이 들인 장면 같다.

▲극단적으로 생각이 삐뚫어졌을 때 나오는 표정이다. 윤 감독님이 추천해주셨다. 현장서 큰 주문을 하지 않았다. 본인이 해석한 건데 정말 좋았다. ‘이렇게 살 바에 빚도 지지말고 죽는게 차라리 편할 거야’라며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데, 그 사람의 생각이 표정으로 전달되길 바랐다. 정말 그 표정이 좋았다.

-벽장은 서양, 무당과 어둑시니는 동양적이다. 촛불이나 밀집인형은 클리셰에 가까운데, 허 실장(김남길 분)이 갖고 나오는 최신식 장비는 참신하다. 공포와 드라마도 적절히 배분됐다. 여러 혼종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어디까지 의도했나. 

전체적으로 생각을 했을 때 좋아하는 영화가 딱 무섭기만 한 영화보다 무서운 와중에 어떤 이야기 또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공포 장르도 있지만, 다른 변주를 해서 색다르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를 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소품도 한가지 종교에 몰입하기 보다 다양하게 섞었다. 무속이 나오는 부분은 고증을 열심히 했다. 특히 첫 장면에 비디오 장면에서 신발이 뒤집혀져 있는데, 그게 실제로 사라진 아이를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부적도 공들여서 했고 주문도 실제로 있는 것을 인용한 것이다. EMF나 CCTV는 서양 퇴마사들이 귀신 찾을 때 쓰는 기기다. 허 실장은 이거 두 개를 동시에 하는 캐릭터다. 엄마가 무당으로서 귀신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해 무속만이 아닌 또 다른 방식을 인용한 것인데, 확실한 방법으로 명진을 찾아나선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재밌지 않나.

-귀신을 믿나?

▲잘 모르겠다. 그런 경험이 없다. 그런데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관망하는 정도다.
 

▲ ⓒ문병희 기자

하정우는 어떤 사람인 것 같나?

▲친한 형이다. 제게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배우기도 하지만 감독 선배기도 한데, 현장에서는 감독으로 대우해주셨다. 연출에 있어서 많은 팁을 알려줬다. 예를 들면 ‘잘 모르면 그냥 한 번 더한다고 해’라고 하셨다. 굳이 ‘왈가왈부하지 말고 좋은데 한 번 더 가시죠라고 하라’고 했다. 시답지 않은 이유를 대는 것보다 잘 모르겠으면 그냥 더 가자고 하라는 거다. 그러면 배우들은 간다. 오히려 이상한 말들이 배우들을 더 헷갈리게 한다는 거다. 잘 배웠다.

-김남길에 대해 말한다면?

▲김남길이 연기한 경훈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역할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사기꾼처럼 처음에 의심을 사지만 퇴마를 할 때는 진지한 그 온도 차에 관해 대화를 많이 나눴다. 퇴마 의식은 특정 종교가 아닌 다양하고 색다른 의식을 보여주고자 했다. 촬영 전부터 자료를 모아가며 소통을 많이 했다. 김남길 배우가 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했다. 진지하게 접근하고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게 잘 표현해줬다. 만화적 상상력이 좋아서 아이디어도 많이 줬다.

-상원의 딸 이나로 나오는 허율이 정말 놀랍다. 캐스팅을 정말 잘한 것 같다.

▲율이는 500대1을 뚫었다. 율이 같은 경우는 워낙 영민해서 디렉팅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 빨리 흡수하고 연기해줬다. 아역 전담 코치가 늘 상주했다. 그 선생님이 <허삼관 이야기> 때 하정우 배우 아역들을 지도해주신 분인데 본인도 아역을 하셨다. 그래서 아역들의 고충도 잘 알고, 시선을 잘 맞춰주고 원하는 바 정확하게 전달해줬다. 그러한 소통이 잘 이뤄졌는데, 율이 자체에 재능도 뛰어나니 호평을 받는 것 같다.


-사실 너무 안 좋을 때 개봉을 했다. 코로나 공포가 정말 강력하다. 데뷔 감독으로서 슬플 것 같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도 물론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다 같이 가슴 아픈 상황인 거 같다. 저 말고 다 아파하는 사람들 많으니까, 아주 극도로 힘들지는 않다. 하 배우와 윤 감독이 어쨌든 이 영화의 운명이니까 그냥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데, 인정했다. 개인적인 바람은 제 영화를 다 떠나서 잘 되면 좋고, 많이 봐주셨으면 하지만, 이런 문제로 힘든 사람들은 없었으면 한다. 시사회장에 모두 마스크를 쓰고 왔다. 정말 감사하면서 얼마나 불편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 벗고 영화보는 환경으로 돌아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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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