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상반기 드라마 라인업 분석

여풍, 웹툰, 의학…안방 노린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각종 영상 플랫폼과 콘텐츠가 늘어나고,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촬영 현장에는 찬기가 불며 일부 방송사가 월화드라마를 잠정 중단하는 등 드라마 시장이 위축되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래도 드라마는 드라마다. 시청자들은 일주일 내내 색다른 이야기로 생산되는 드라마를 즐기고 있다. 좋은 이야기와 뛰어난 배우들을 보고 있자면, 어느덧 현실을 잊고 드라마 안으로 빠져들게 된다. 여전히 매력적인 드라마는 2020년에도 다양한 키워드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칠 전망이다.
 

▲ (사진 왼쪽부터)배우 김혜수·김희선·김태희

2020년 상반기 드라마의 키워드는 ‘여풍’ ‘스타 귀환’, 웹툰 드라마와 의학의 네 가지로 압축된다. 최정상 여배우들이 오랜만에 안방을 찾으며, 대부분 여성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아울러 ‘빅네임’의 배우들이 안방을 찾아 시청자들과 소통할 전망이다. 

톱 여배우 셋
‘여풍’ 주도

스타 배우들은 물론 메가 히트작을 가진 스타 제작진도 돌아온다. 이야기의 주요 기반으로 자리잡은 웹툰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드라마화될 전망이며, 언제나 타율이 높은 의학드라마 역시 올 상반기 시장의 주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2020년에는 그간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던 스타들이 대거 귀환한다. 배우 김혜수와 김희선, 김태희가 대표적이다. 세 배우는 올해 상반기 드라마시장의 ‘여풍’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문을 여는 배우는 SBS <하이에나>의 김혜수다. 2016년 <시그널> 이후 4년 만의 안방 복귀다. 변호사들의 물고 뜯고 찢는 하이에나식 생존기를 그린 작품으로 김혜수는 돈과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변호사 정금자로 나선다. SBS <뿌리깊은 나무> <별에서 온 그대>의 장태유 PD의 신작이다. 

KBS2 드라마 <직장의 신>과 tvN <시그널>, 영화 <타짜> <차이나타운> <굿바이 싱글> <도둑들> <국가부도의 날> 등 인물이 밝든 어둡든 언제나 인상 깊고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해온 김혜수는 이번 작품을 통해 파격을 더할 계획이다. 상대 배우인 주지훈의 멱살을 잡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표정과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상처, 트레이닝 복에 정장을 걸친 패션 등 포스터를 통해 풍기는 이미지로는 그가 어떤 연기를 펼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관능적이면서도 유쾌하고, 강렬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소개된 정금자는 기존 문법에 없는 캐릭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비(정지훈)과 결혼한 뒤 방송활동을 잠정 중단하다시피 했던 배우 김태희가 2015년 SBS <용팔이> 이후 5년 만에 드라마로 나선다. 국내 대표적인 미인으로 오랫동안 군림해온 그의 복귀작은 tvN <하이바바, 마마>다. 죽은 아내가 사별의 아픔을 딛고 새 인생을 시작한 남편과 딸 앞에 다시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약 49일간의 리얼 환생 스토리다.

박보영(<오 나의 귀신님>)과 신민아(<내일 그대와>)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유제원 PD와 KBS2 <고백부부>의 권혜주 작가가 뭉쳤다. 

김태희는 아이 한 번 안아보지 못한 아픔에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엄마 차유리로 분한다. 상대 배우는 tvN <비밀의 숲>과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에서 입지를 굳힌 이규형이다.

김혜수·김희선·김태희…여풍이 분다
김은숙·노희경·연상호 스타작가 복귀

제작진에 따르면 김태희는 2006년 월드컵서 붉은 악마로 응원하다 첫사랑을 느끼는 모습부터, 풋풋한 연애를 거쳐 결혼에 골인하는 모습 등 로맨틱한 면모를 보여준다. 연기적인 측면서 다소 아쉬운 평가를 받아왔던 김태희가 결혼 후 첫 작품인 이번 작품서 기존과 달라진 연기를 선보일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제작진은 “김태희가 이규형과 함께 극중 인물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쌓아 올려나가고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국내 미인 계보서 빠질 수 없는 미모의 김희선도 판타지 장르의 <앨리스>로 나선다. 이 드라마는 시간여행을 내세운 작품이다. 과거로의 첫발을 내딛는 공항이자 시간 여행자들만 머무는 호텔로 인해 비극이 일어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김희선은 극 중 물리학자 윤태이를 맡는다. 시간여행의 비밀을 밝히게 될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형사 진겸(주원 분)과 만나 비밀을 풀어나간다. ‘방부제 미모’를 자랑하는 그는 20∼40대까지 나이대를 넘나드는 연기를 선보인다.


1990년대 찍었다 하면 화제몰이에 성공했던 김희선은 2007년 결혼 이후에도 SBS <신의> <참 좋은 시절> JTBC <품위있는 그녀> 등 출연 작품서 비교적 안정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비록 지난해 출연한 tvN <나인룸>이 주춤하긴 했으나 흥행력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한 방이 있는 배우로 평가된다.

세 작품 외에도 여성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작품들이 즐비하다. 지난해 JTBC <스카이캐슬>을 시작으로 SBS <VIP>, KBS2 <99억의 여자>, tvN <블랙독>과 같은 여성 중심의 서사를 가진 드라마가 연이어 성공하고 있는 가운데 ‘여풍’을 선도하는 작품이 제작된다.
 

▲ (사진 왼쪽부터)낭만닥터 김사부2 하이에나 아무도 모른다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배우 김서형이 단독 주연을 맡은 SBS <아무도 모른다>다. 경계에 선 아이들의 사연과 아이들을 지키고 싶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감성 추적극이다. 김서형은 형사 차형진 역을 맡아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는 최연소 광수대 경감을 연기한다. 

또 최강희와 유인영, 김지영이 삼총사로 호흡을 맞추는 SBS <굿 캐스팅>도 여성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국정원서 밀려나 근근이 책상을 지키는 아줌마들이, 우연히 요원으로 차출돼 현장으로 위장 잠입하며 벌어지는 액션 코미디 드라마로 4월 첫 방송될 예정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탄탄한 연기력에 인지도 있는 여배우들이 드라마에 대거 출연하면서 여풍이 불고 있다. 아울러 최근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 흐름과 함께 드라마서도 이러한 이야기가 공감을 받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여성 중심 서사
이어지는 시즌제

여배우들 못지않게 남자 배우들도 대거 안방 문을 두드린다. 특히 군에서 전역한 톱스타들이 눈에 띈다. 먼저 최근 군 전역한 김수현은 KBS2 <프로듀사> 이후 5년 만에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로 팬들을 만난다. 180만원 보건 의료 인력으로 살아가는 정신병동 보호자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앓는 동화 작가의 이야기다.

김수현은 정신병동 보호사 문강태를 연기한다. 훌륭한 피지컬과 탁월한 공감 능력 등 모든 매력을 갖춘 남성이다. 현재 서예지가 여주인공으로 결정된 가운데 최근 인기 급상승한 오정세도 합류했다.

배우 이민호는 김은숙 작가의 <더 킹:영원한 군주>로 복귀한다. SBS <상속자들>서 이미 한 차례 작업한 바 있는 이민호는 <더 킹:영원한 군주>서 대한제국 황제 이곤으로 분한다. <도깨비>를 통해 판타지 서사력을 입증한 김은숙 작가가 평행세계를 소재로 한 번 승부수를 던진 이 작품은 현재 촬영에 한창이다. 대한제국 황제 이곤과 누군가의 삶을 지키려는 대한민국 형사 장태을(김고은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외에도 배우 주원은 <앨리스>로 나서며, 2PM 출신 배우 옥택연은 MBC <더 게임:0시를 위하여>서 이미 얼굴을 비췄다.

스타 제작진도 올 한 해 브라운관을 달굴 전망이다.

노희경 작가는 신작 <히어>서 <미스터 션샤인>으로 스크린뿐 아니라 브라운관서도 저력을 발휘한 이병헌과 영화 <미쓰백> 이후 JTBC <눈이 부시게>, MBC <봄밤> 등에서 연기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는 한지민, <보좌관>의 히로인 신민아와 20대 배우 중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는 남주혁을 캐스팅했다.


엄청난 라인업을 구축한 이 드라마는 국제적 비영리 민간단체 NGO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다루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노 작가의 작품에 네 배우가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관심이 뜨겁다. 

김은숙 작가와 노희경 작가 외에도 명성이 자자한 연출진이 드라마 시장에 진출한다. 영화 <부산행> 연상호 감독은 직접 집필한 오컬트 장르 tvN <방법>으로 안방을 노크한다. 10일 첫 방송 예정인 이 드라마는 한자 이름, 사진, 소지품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저주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10대 소녀와 정의감 넘치는 사회부 기자가 IT 대기업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배우 성동일과 엄지원, 조민수, 정지소가 밀도 높은 연기를 선보일 전망이다. 

뜨거운 지지
입증된 흥행

연 감독은 “영화를 하면서 드라마도 하고 싶었다. 대본을 쓸 때 다른 촬영을 하고 있어 스케줄을 맞추기가 힘들었는데도 제가 너무나도 <방법>을 재밌게 쓰고 있더라. ‘다음 화는 어떻게 이야기를 풀까?’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 자체가 너무 재밌어 술술 썼다. 내가 드라마 작가에 소질이 있나 보다 싶어 다른 드라마를 써보려 했는데 안 되더라. <방법>은 제게 다시 오지 않을 드라마”라고 말했다.

김은희 작가와 김성훈 감독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로 재회한다. 역병으로 생지옥이 된 조선서, 더욱 거세진 조씨 일가의 탐욕과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돼버린 왕세자 창의 피의 사투를 담은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첫 시즌부터 팬덤을 만드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시즌에는 배우 전지현이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져 더욱 기대감을 주고 있다.
 

▲ JTBC &lt;이태원 클라쓰&gt;

<킹덤2>에 이어 시즌제 드라마가 탄생하는데, 다름 아닌 tvN <비밀의 숲2>다. 조승우와 배두나를 비롯해 이준혁, 윤세아 등이 그대로 출연하고 출연작마다 강인한 인상을 남긴 전혜진도 합류한다. 시즌 1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외톨이 검사 황시목(조승우 분)이 정의롭고 따뜻한 형사 한여진(배두나)과 함께 검찰 스폰서 살인사건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담았다. 시즌2 제작 소식과 함께 드라마 팬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다. 이수연 작가가 그대로 참여하고 박현석 PD가 메가폰을 잡는다.


언제나 그렇듯 웹툰 드라마도 올 한 해 드라마 시장의 키워드가 될 전망이다. 이미 방영을 시작한 JTBC <이태원 클라쓰>와 현재 캐스팅이 한창인 JTBC <쌍갑포차>, 이 외에도 3월 방송 예정인 OCN <루갈>, KBS2 <어서와> 등이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또 네이버 웹툰서 현재 연재 중인 동명의 인기 스릴러 웹툰 <스위트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되며, 기억을 읽는 초능력 형사와 천재 프로파일러가 함께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인기 웹툰 <메모리스트>는 오는 3월 tvN으로 찾아온다.

유료 웹툰임에도 누적 조회수 5700만뷰, 구독수 4000만명을 넘어서는 <편의점 샛별이>는 글로벌 케이블 채널 라이프타임이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SBS <열혈사제>를 연출한 이명우 PD의 SBS 퇴사 후 첫 작품으로 지창욱과 김유정의 출연이 확정됐다. 올해 1/4분기에만 편성이 확정된 드라마만 총 네 편이며, 인기를 끈 작품 대부분이 드라마 제작사와 계약을 맺는 등 웹툰의 드라마화 열기가 지속되고 있다.

1/4분기만 4편 웹툰 드라마 강세
‘흥행 보증수표’ 의학 드라마 눈길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순수 드라마 대본이나 시나리오가 점점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올 정도로 웹툰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가 힘을 받고 있다. 그림으로 영상화돼있어 웹툰이 갖는 강점은 앞으로도 드라마나 영화 쪽에서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생사가 오가는 병원서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담는 의학 드라마는 국내 드라마 시장서 ‘못해도 중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환자의 생명 앞에서 긴박해지는 상황은 물론 대형병원서 발생하는 의사들의 권력욕을 다루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올해도 의학 드라마는 드라마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할 전망이다. 지난달 6일 첫 방송된 <낭만닥터 김사부2>가 시청률 20%의 벽을 넘어서는 등 의학 드라마의 힘은 올해 시작부터 입증된 셈이다. 

그런 가운데 <응답하라> 시리즈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tvN 신원호 PD는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복귀한다. 이 드라마는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삶을 끝내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병원서 평범한 듯 특별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20년지기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조정석과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전미도 등 연기력과 대중성을 모두 겸비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빠르면서도 공감이 가고, 예측을 조금씩 벗어나는 사건 전개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우정 작가의 필력에도 눈길이 모인다. 이미 워낙 많은 히트작을 내놓은 두 사람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행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평이 많다. 
 

▲ (사진 왼쪽부터)배우 김수현·신하균·이민호·주원

오는 5월 첫 방송 예정인 KBS2 <영혼수선공>도 기대되는 의학 드라마로 꼽힌다. 2011년 의학 드라마 <브레인>으로 성공을 맛본 신하균과 유현기 PD가 9년 만에 다시 손잡은 작품으로, <쩐의 전쟁> <동네변호사 조들호>로 집필 능력을 인정받은 이향희 작가의 신작이다. 신하균은 극 중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시준 역을 맡는다.

치료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몸을 던지는 열혈 의사다. 뮤지컬계 라이징 스타 배우 한우주 역으로 정소민도 출연한다.

라이징 스타
신인 대방출

또 지난달 29일 처음 방송된 KBS2 <포레스트>는 의학 드라마는 아니지만, 특이하게도 의사가 등장한다. 조보아가 맡은 정영재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외과의사다. 극 자체는 판타지 로맨스지만 의사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큼 의학 관련 에피소드도 선보이는 등 메디컬 분야에 발을 걸쳤다. 국내 존재하는 모든 과를 다루고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숱하게 제작되는 의학 드라마가, 올해에도 강력한 경쟁작들을 상대로 승전고를 울릴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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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