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추미애 VS 윤석열 파워게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12.16 11:37:08
  • 호수 12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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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강’ 센 남녀가 붙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전운이 감돈다. 청와대가 검찰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추미애라는 ‘칼’을 꺼내들었다. 그 대척점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기다리고 있다. 추미애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면, 곧 있을 검찰 정기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여권과 검찰이 대립하는 가운데, 두 수장의 ‘파워게임’은 불가피해 보인다.
 

▲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와대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후임으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추미애 의원을 지명했다. 조 전 장관이 가족을 둘러싼 의혹으로 사퇴한 지 52일 만이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판사와 국회의원으로서 쌓은 법률적 전문성과 정치력을 비롯해 그간 추 후보자가 보여준 강한 소신과 개혁성은 국민이 희망하는 사법개혁을 완수하고 공정과 정의의 법치국가 확립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내정 사유를 설명했다.

'조’ 가고
‘추’ 왔다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이 중단 없는 검찰 개혁을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판사 출신의 개혁성향인 추 후보자는 국회에 입성하기 전부터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 정치권의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지난 1986년 춘천지방법원서 근무하던 시절 군사정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념 서적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이후에도 소신 있는 판결을 이어가 ‘껄끄러운 판사’ ‘운동권 판사’로 불렸다.

이러한 성향은 정치권에 진출해서도 이어졌다. 제15대 대선이 열리자 김대중 후보 캠프의 유세단장으로 들어간 추 후보자는 자신의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 선거운동을 펼쳤다. 지금보다 지역감정이 훨씬 심하던 때였다. 진보 측 인사에게 돌을 던지던 행위도 서슴지 않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추 후보자는 “지역감정의 악령으로부터 대구를 구하는 잔다르크가 되겠다”며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었다. 이러한 저돌적인 모습에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추 후보자의 강단과 고집은 정치권서도 정평이 났다. 대안신당 소속 박지원 전 대표는 지난 9일 KBS1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서 추 후보자에 대해 “고집도 세고, 조 전 장관보다 더 센 분”이라며 ”검찰 개혁을 강하게 추진할 분이고 현 정부와도 코드가 맞는 분”이라고 말했다.

여야의 반응은 엇갈렸다. 범여권은 추 후보자의 지명을 반기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법무·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여망을 받들 경륜 있고 강단 있는 적임자라 평가한다”고 환영의 메시지를 전했다.

‘벼른’ BH, 조국→추미애로 정공
‘추’ 인사권 ‘윤’ 수사권 칼자루

정의당은 “율사(법률가) 출신으로 국회의원과 당대표를 두루 거친 경륜을 가진 후보라는 점에서 법무부 장관 역할을 잘 수행하리라 예상된다”며 “무엇보다 검찰개혁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고 기대했다.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당 대표 출신 5선 국회의원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한다는 것은 청와대와 여당이 ‘추미애’라는 고리를 통해 아예 드러내놓고 사법부 장악을 밀어붙이겠다는 대국민 선언”이라며 “청와대와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궁여지책 인사고, 문재인정권의 국정 농단에 경악하고 계시는 국민들께는 후안무치 인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윤석열 검찰총장

추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단 첫 출근길서 강도 높은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검찰 인사를 통한 조직 장악 가능성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이후에 적절한 시기에 말씀 드리겠다”면서도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검찰 개혁을 향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가 더 높아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가장 시급한 일은 장기간 이어진 법무 분야의 국정공백을 시급히 메우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추 후보자가 검찰 인사권 행사를 통해 검찰을 견제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검찰의 인사권은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쥐고 있다. 검찰청법 제34조 제1항은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규정한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인사권에 영향을 미치지만, 의견만 개진할 수 있다. 사실상 정권 인사에게 인사권에 대한 전권이 주어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사권 쥐고
검찰 잡나?

검찰 정기인사는 내년 2월로 예정돼있는데 추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한 뒤 현재 공석인 ‘검사장급 여섯 자리’에 대한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법무부는 앞서 지난 7월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단행한 바 있다. 윤 총장의 취임 이후 일부 검사들이 사표를 내면서 만들어진 자리다. 당시 법무부는 전격적인 인사를 단행하면서도 일부 자리를 비워뒀다.

바로 검사장급 여섯 자리다. 대전·대구·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부산·수원고등검찰청 차장검사, 법무부 연수원 기획부장이 그것이다. 이들 검사장급 여섯 자리는 차관급으로, 모두 검찰 고위직이다.

추 후보자가 이들 여섯 자리에 대한 인사권을 고리로 검찰을 압박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는 인사권이 곧 ‘권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무원 조직서 인사권은 무소불위의 힘이다. 조직서의 생사가 인사권으로 결정된다. 물론 검사도 예외일 수 없다.

추 후보자의 부상으로 최근 큰 조명을 받고 있는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지난 2011년 문 대통령(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함께 쓴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를 통해 인사권의 힘을 설명한 바 있다.
 

▲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그는 책에서 “내가 법무부에 가서 자리를 잡은 것은 인사를 통해 힘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중략) 인사권을 행사하고 검찰총장보다 장관이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니 검찰이 완전히 충성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마음대로 개혁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문 대통령과 김 교수 역시 책에서 “검찰의 인사는 검사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고, 법무부장관이 검찰 행정과 검찰 개혁을 추진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무기이기도 하다”며 “자존심이 강한 공무원일수록 인사에 민감한데 검사들은 특히 그렇다”고 설명했다.

검찰 수사
BH 겨냥

청와대·여권에게 ‘인사권’이 있다면, 검찰에게는 ‘수사권’이 있다. 법조계 안팎에선 검찰이 추 후보자가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조 전 장관 일가 수사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 의혹에 대한 수사 강도와 속도를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은 최근 이들 의혹들과 관련해 친정부 인사들을 소환조사하고 있다. 딸의 입시비리 등 가족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조 전 장관은 지난 12일 피의자 신분으로 세 번째 소환조사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서도 검찰은 조 전 장관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조 전 장관 외에도 다수의 친정부 인사가 검찰청을 오가고 있다. 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 지난 10일 민주당 임동호 전 최고위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또 검찰은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사무실과 집 등을 압수수색한 당일(지난 6일) 송 부시장을 소환했다. 압수물품을 분석하지 않고 관련자를 소환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감찰 무마 의혹과 관련해서도 검찰은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최근 소환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실장은 문 대통령의 ‘그림자’로 불리는 최측근 인사다.

윤 총장 역시 추 후보자와 비교해 결코 밀리지 않는 강단을 보여준 바 있다. 추 후보자가 ‘추다르크’라면 윤 총장은 ‘적폐 청산의 칼’로 불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과 탄핵으로 이어진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의 일등 공신이자, 문재인정부 집권 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 수사 등을 주도했다.

친정부 인사 줄소환돼
이해찬 강력 대응 예고

고민정 대변인은 윤 총장을 지명했을 당시 브리핑을 통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탁월한 지도력과 개혁 의지로 국정 농단과 적폐 청산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검찰 내부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아왔다”며 “윤 내정자(현 검찰총장)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를 뿌리 뽑음과 동시에, 시대적 사명인 검찰 개혁과 조직쇄신 과제도 훌륭하게 완수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소개했던 바 있다.

이에 많은 이들이 ‘강 대 강’ 대치를 예상하고 있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총장의 발언은 그가 장관의 힘에 눌리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기수문화’서도 마찬가지다. 앞서 윤 총장은 문무일 전 검찰총장 후임으로 지명 받았을 당시 문 전 총장보다 사법연수원 5기수 아래였다.
 

▲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검찰 내 파장은 컸다. 15명이 넘는 검사장들이 줄지어 사퇴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검찰이 ‘기수파괴’에 반발해 윤 총장을 흔들 것이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검찰은 윤 총장 임명 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윤 총장이 추 후보자보다 9기수 후배임에도 현재의 수사를 흔들림 없이 진행할 것이라 예상되는 이유다.

청와대·여권 대 검찰의 뒤가 없는 갈등은 이미 전조를 보이고 있다. 앞서 검찰은 청와대를 압수수색, 갈등이 최고조에 오른 바 있다. 지난 4일, 청와대에는 검사와 수사관이 탄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드나들었다. 고민정 대변인은 즉시 “비위 혐의가 있는 제보자(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의 진술에 의존해 검찰이 국가중요시설인 청와대를 거듭해 압수수색한 것은 유감”이라고 성토했다.

민주당은 검찰에 즉각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설훈 의원을 필두로 ‘검찰 공정수사촉구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이해찬 대표는 특정 검찰 간부의 정치 개입이 적발될 시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경고했다.

후퇴 없는
전면전?

이 대표는 지난 11일 국회 본청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서 “엄중 대응하겠다. 검찰 간부들이 우리 당 의원들에게까지 와서 여러 개혁 법안에 부정적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그런 활동을 한다면 실명을 공개하겠다”며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라, 난 단호한 사람이다. 다시 와서 그런 행위를 한다면 정치 개입한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같은 듯 다른 강금실-추미애 운명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역대 두 번째 여성 법무부장관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앞서 2003년 강금실 전 장관이 첫 번째다.

두 사람은 모두 판사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검찰개혁이라는 과제를 안았다는 점에서도 같다.

차이점은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됐을 당시의 경력이다. 강 전 장관은 40대의 젊은 나이에 비교적 짧은 판사·변호사 경력을 갖고 장관직을 시작했다. 그러나 추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에 당대표를 지낸 거물 인사다.

강 전 장관은 검찰의 수사권 독립 토대를 마련하고, 인사시스템의 변화, 검찰청법 개정을 통해 상명하복 규정 삭제 등 검찰 개혁의 초석을 닦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핵심 과제인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에는 실패했다.

추 후보자가 이를 완수할 수 있느냐가 검찰 개혁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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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