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복’ 벗고 변호사 개업한 이영기 전 서울고검 감찰부장

“검찰은 검찰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야”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이영기 변호사는 지난 8월, 서울고검 감찰부장을 끝으로 23년6개월 동안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일요시사>는 지난 1일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 변호사로 새 출발한 그를 만나 지난 검사 생활의 애환과 변호사로서의 포부를 들어봤다.
 

▲ 이영기 전 서울고검 감찰부장이 일요시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이영기 변호사는 1969년생으로 석관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27세의 이른 나이에 제3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25기) 부산지검서 첫발을 내디뎠고, 춘천지검, 서울지검, 청주지검 등을 거쳐 대검찰청서 마약과장 검사와 조직범죄과장 검사를 지냈다. 이후 의정부지검,서울동부지검에 이어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를 거쳤고 지난 8월, 서울고검 감찰부장검사를 끝으로 사랑하던 검찰을 떠났다.

‘소리바다’ 수사
금융정보분석원

지난 1일 서초동에 위치한 사무실서 이 변호사를 만났다. 이 변호사의 방에는 그의 후배 검사들이 써놓은 편지들이 액자화돼있었다. “항상 그윽한 미소로 직원들을 격의 없이 대해 주시던 우리 차장님, 검찰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차장님은 ‘정말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셨습니다” “합리적인 일처리와 직원들을 향한 자상한 배려심, 위트 있는 말씀 등 멋진 간부님이셨습니다” “더 모시지 못한 아쉬움이 많지만 차장님을 모시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편지에는 따뜻한 이 변호사의 검사 시절 모습과, 존경하는 선배를 떠나보내는 후배들의 아쉬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소리바다 수사요. 대한민국 지적재산권 판결 중 가장 중요한 판결로 꼽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소리바다’는 2000년대 초에 전국민이 이용했던 음악 사이트다. 처음에는 사용자들끼리 음악 파일을 공유하는 P2P 프로그램으로 출발했지만, 음원을 무료로 공유할 수 있게 되자 음원 불법유통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음악은 무료라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가수·작곡가 등 음악 산업 종사자들의 수입이 대폭 하락했다. 저작권이 명백히 침해됨에도 불구, 불법 유통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규정조차 없었다.

“미국에도 ‘냅스터’라고 소리바다와 똑같은 구조로 음원을 유통하는 사이트가 있었어요. 냅스터에 대해서 미국에선 엄청난 벌금을 부과하는 판결이 이뤄졌었거든요. 이 이론을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습니다.”

한국판 ‘냅스터’ ‘소리바다’ 성공적 수사
금융정보분석원 파견 ‘핵심 컨트롤 타워’

음원을 주고받는 당사자가 아닌, 연결해주는 사람에게 음원의 불법유통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됐다. 하지만 이 판결은 1심에선 공소기각, 2심에선 무죄가 선고됐다. “거의 1년 넘게 수사를 했습니다. 1·2심 판결로 마음 고생 많이 했죠. 워낙 중요한 사건이어서 결국 대법원서 공개토론을 열었습니다.”

대법원은 결국 이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소리바다 개발자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됐고, 이 판결을 기준으로 유사 사이트들은 음원 유통을 유료로 전환했다. 저작권 침해가 횡행하던 음반시장에 질서를 형성한 결정적 사건으로, 이는 음반 제작자의 저작권 보호에 큰 전환점이 됐다.

“지금 음원 유통에 대해서는 불만들이 없으시잖아요. 음반 제작자들도 그렇고 가수 분들도 그렇고.” 이 변호사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 인터뷰 갖고 있는 이영기 변호사

2006년, 이 변호사는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파견되기도 했다. 금융정보분석원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보고받은 금전거래를 분석하고 범죄 자금이나 자금세탁과 관련돼있다고 판단될 경우, 금전 거래 정보를 사법기관에 제공해 불법자금 몰수를 추진하는 컨트롤타워다.

“금융정보분석원은 자금세탁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한 나라의 사법기관이 눈 여겨봐야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2013년 시행된 ‘특정거래정보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FIU법)’에 의해 국세청은 조세탈루 혐의 확인을 위한 조사업무 및 조세체납자에 대한 징수 업무를 위해, 금융정보분석원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현재 대기업의 현금거래, 회계 투명성에 대한 세무조사가 가능해져 고액체납자의 현금거래 추적에 활용되고 있다.

형사부 경력
검사의 기초체력

“특수부 검사는 되기 싫었어요. 특수부 검사가 하는 일이 선과 악이 분명히 구별되지 않잖아요. 특수부가 맡는 정치인을 수사하게 되면 무리한 수사를 한다는 얘기도 가끔 듣게 되고요. 전 선과 악이 분명한 걸 좋아해요. 마약사범과 조폭은 선과 악이 분명하잖아요. 그런 건 어느 분들에게 물어봐도 당연히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하시고요.”

이 변호사는 인천지검 강력부장과 서울동부지검 형사부장 시절, 조직범죄수사와 도박범죄수사, 성폭력사범수사 등 숱한 사건들을 담당하며 탁월한 경륜으로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특히 인천지검 강력부 부장검사 시절, 이 변호사가 맡았던 조직범죄수사는 대검 강력부 우수업무사례에 선정되기도 했다. 수사 당시, 이 변호사는 청소년 가출 소녀들을 모집해 성매매를 알선한 보도방 업주 31명과 유흥업소 업주 7명 등을 구속했다. 치밀한 내사와 팀제수사로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조직폭력배를 대거 적발해, 폭력조직 자금원 차단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서울동부지검 형사부 부장검사 시절에도 이 변호사는 두각을 보였다. 장기 미제사건으로 분류된 후 DNA 대조로 검거된 연쇄 성폭행범 ‘송파·강동구 발바리’를 구속기소, 서울동부지검 최초로 성충동 약물치료 명령을 청구했다. 아울러 범죄피해자 지원,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을 위한 부수처분을 적극 활용해 이 수사는 대검 형사부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안전한 국가가 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봐요. 밤거리에 맘 놓고 돌아다닐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 조직 범죄나 마약 범죄로부터 안전해야 하죠. 그런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가 공권력의 행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 변호사가 검사 시절 수사에 임해왔던 소신과 사명감이 묻어났다. 그가 특히 형사·강력 사건에 두각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23년 6개월
특수·형사 지휘

대한민국은 마약청정국으로 불린다. 검찰은 마약수사직렬을 신설하는 등의 검찰청법의 꾸준한 개정을 통해서 마약전문 인력을 대폭 증강했다. 강력부가 설치된 6개 지검에 는 ‘마약류사범 검찰 ·세관 합동수사반’을 편성해 외국산 마약류 밀반입에 대처 중이다.


“지금 국내엔 마약·필로폰 제조업자들이 거의 없어요.” 이 변호사는 마약수사에 일가견이 있는 검사였다. 인천지검 강력부 부장시절 한국 여성을 운반책으로 이용한 나이지리아 국제 마약밀수조직을 적발했다. 당시 한국 세관과의 공조로 나이지리아 국내 총책과 한국 여성 등 3명을 구속기소해 필로폰 3kg을 압수했다.

“사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대부분 검사들은 승진에 대한 욕구가 있잖아요. 저도 처음엔 아쉬웠지만 이제는 없습니다. 빨리 털어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거죠.” ‘검사장 자리’에 대한 아쉬움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변호사는 담담히 웃어보였다.

부산지검을 시작으로 서울고검까지 23년 6개월의 검사 생활, 부장검사 10년, 묵직한 사건들을 맡아 진두지휘한 이 변호사의 커리어와 능력은 검찰의 꽃인 검사장을 노려보기에 충분했다.

“검찰의 80% 검사들은 형사부 사건을 담당하고 특수·공안·기획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전체의 비중에 10~20% 밖에 안 됩니다. 지금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대형 사건을 다루는 특수부나 정기적으로 오는 선거철에 선거사건을 다루는 공안부, 기획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요. 실질적으로 인사에 있어서도 그분들이 잘 나가고요. 형사부 검사들이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있는데, 기본을 다루고 있다 보니 부각이 안 되죠. 그 부분에 대해서 후배 검사들이 자괴감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선악이 분명히 구별되는 ‘형사통’ 출신
“다양한 법률서비스로 고객과 소통할 것”

수사를 통해 당사자 간 분쟁을 해결하는 게 검찰 본연의 역할이다. 형사부는 검찰을 지탱하는 바탕으로, 형사부 근무 경력은 검사의 기초체력를 쌓는 가장 큰 자양분이 된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기본 책무로, 국민들의 고통을 피부로 느끼고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서기 때문이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 때부터 검찰은 일선 형사부 강화를 주장해왔다. 일각에선 형사부장 자리는 형사부 출신 검사들에게 100% 할당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아울러 형사부 출신 검사들이 형사부장이나 보직 간부들이 갈 수 있는 길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 역시 계속되고 있다. 향후 인사서도 특수·공안·기획 경험이 없는 형사부 출신 검사들의 검사장 승진도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이는 ‘검찰 개혁’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이 변호사는 최근 화두가 된 ‘정치검찰’에 대한 형사부 후배검사들의 의견도 조심스레 전했다.
 

“후배들도 호소를 많이 하죠. 매일 8시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묵묵히 일하는데 모든 국민적 관심은 다 특수부에 가 있어요. 10~20%의 검찰 모습이 전체 검찰의 모습으로 비춰져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욕은 욕대로 먹으니 자괴감이 들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재밌게 인생을 살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강한데 젊은 검사들이 많이 희생하고 있어요.”

이 변호사는 검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검찰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야 함을 짚었다.

직접수사 축소
검찰 본연에 집중

“검찰도 결국 국가기관입니다. 국민이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국가기관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서 하는 것이 필요해요. 국민들이 검찰을 정치검찰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정치적인 사건을 너무 많이 다뤄왔기 때문이잖아요. 직접수사 기능을 자제하는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가장 필요하다 봅니다. 또 모든 기관이 각자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좀 지켜볼 필요도 있어요. 법대로 하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수사가 끝날 때까지는 기다리는 자세도 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이 변호사로부터 한국을 묵묵히 지켜온 검사의 사명감과 조직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자리와 위치에 따라, 본연에 집중해야 함을 강조한 그는 변호사로서의 포부도 함께 덧붙였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의뢰한 내용에 맞춰 변론하는 직업이잖아요.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런 얘기도 나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변호’라는 서비스로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쓸 겁니다.”


<sangmi@ilyosisa.co.kr>


[이영기는?]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제35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25기
▲금융정보분석원 파견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
▲대검찰청 마약과장검사
▲대검찰청 조직범죄과장검사
▲서울동부지검 형사3부장검사
▲서울중앙지검 공판1부장검사
▲광주지검 순천지청 차장검사
▲수원지검 안양지청 차장검사
▲서울고검 감찰부장검사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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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