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애 봐주는 ‘보모 경마장’ 가봤더니…

마사회 돈 세는 사이 노름꾼 부모는 병들고 애들은 방치돼

?[일요시사=김지선 기자] 주말만 되면 어김없이 경마공원에 발 도장을 찍는 경마장 폐인들. 개중에는 가족단위로 오는 사람들도 있다. 경기가 시작되면 아빠 손을 꼭 잡고 입구까지 함께 들어왔던 아이들이 웬일인지 눈에 띄지 않는다. 아이들은 과연 어디 있을까. 1층 로비 끝에 마련된 ‘키즈플라자’는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진 어린이 휴게소다. 부모가 아이를 그곳에 맡겨놓기만 하면 보육교사가 알아서 아이들을 돌봐준다. 부모가 경마배팅에 집중하는 동안 아이를 봐주는 ‘보모 경마장.’ 과연 마사회의 개선된 복지시설일까, 아니면 도박을 부추기는 빗나간 장삿속일까?

따가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7월의 시작을 알리는 날, 이른 아침부터 경마공원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다수 보였다. 전날 거센 폭우로 인해 전 경기가 취소되면서 마치 ‘오늘만을 기다려왔다’는 듯 중장년 남성과 여성들, 심지어 젊은이들까지 경마장 안으로 들어가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맑게 갠 주말이라서 그런지 아빠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 또는 가족소풍으로 방문한 사람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말을 구경할 기대감에 활짝 웃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한국마사회
엇갈린 명암

최근 마사회에서는 대대적인 이미지 쇄신책을 내세웠다. 그 중 하나는 도박장이라는 음성적 이미지를 탈피해 가족이 주말나들이로 즐길 수 있는 가족공원 형태로 변화를 꾀한 것이다. 경마장 내 곳곳에는 금연구역이란 현판이 여기저기 붙어 있고 실내는 물론 야외까지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여기에 더 나아가 연령대별로 어린이들이 쉴 수 있는 어린이 휴게소를 만들어 부모들의 걱정을 덜게 하는 복지시설도 마련했다.

그러나 마사회의 피나는 노력에도 도박장의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금연구역이란 현판이 붙지 않은 야외공원에서는 아직도 담배를 뻑뻑 피우는 중장년층 남성과 여성들이 즐비했다.  그들의 손에는 모두 마권이 몇 장씩 쥐어져 있었고, 뭔가 심란한 듯 연신 줄담배를 피워댔다. 아예 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경마예상지에 숫자를 적으며 배팅 전 당첨숫자를 골라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하철 출입구 앞에서 예상지를 팔고 있던 한 30대 남성은 취재기자에게 배팅숫자를 알려주겠다며 예상지를 적극 권했다. ‘10.3.4’라는 숫자를 차례대로 부르며 적으라던 이 남성은 아직 무직이지만 주말엔 경마장에 꼭 출근한다고 했다.

경마 예상지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이것을 보며 어떻게 숫자를 가려내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거 정말 어려운 거예요. 공부해야 돼. 경마장에 와서 배팅하는 사람들 죄다 박사, 정치인 시켜야 돼요”라고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는 자신이 잘 아는 형이 있다며 어느 할아버지와 할머니 옆자리에 기자를 데려다주곤 홀연히 자리를 떴다. 아마 다른 이에게도 예상 숫자를 알려주며 중간에서 돈을 조금씩 받는 듯했다. 물론 기자는 경마장에 처음 방문했다는 말에 공짜로 숫자를 얻었다.


주중엔 카지노
주말엔 경마장

당시 현금이 5000원 밖에 없었던 기자는 과감히 오천원상당의 마권을 구매하고 스크린을 통해 경기를 관람하며 숫자를 맞춰보았다. 처음에 거의 이길 것 같았던 예상마가 3위 이하로 밀리면서 기자는 아무 배당금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옆자리에 앉아있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1만원을 투자해 20배인 20만원을 벌었다고 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기자도 욕심이 생겨 한 번 더 시도하고 싶었지만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현금만 더 있었다면 아마도 계속 배팅을 했을 것이다. 도박이라는 것이 거액이 오간다고 도박이 아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돈을 딸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움에 손을 쉽게 놓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20배 이상의 배당금을 거머쥐었던 두 사람은 그 돈으로 다시 마권을 구매하면서 끊임없는 배팅을 이어나갔다. 

기자가 만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지방에 거주하는데 “4~5명 정도 그룹을 만들어 주말마다 서울로 원정 온다”고 했다. 할머니는 기자를 처음 보자마자 “어린 것이 벌써부터 여길 왜와! 인생 망치는 지름길이야. 오늘 처음 왔으니 이제부터 오지 마!”라고 호통치며 눈살을 찌푸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할아버지는 “주중에 우리는 정선에 가. 카지노 하러. 주말엔 경마장에 오지. 어제 비 때문에 서울경기 취소돼서 제주까지 원정 갔다 왔어. 오늘은 새벽차 타고 서울에 올라왔고…. 여기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어”라며 걱정하듯 말했다.

놀이문화로 정착? 아이 내팽겨 두고 버젓이 노름판에
수억씩 배팅하는 사람들…“마약보다 더 끊기 힘들어”

수많은 스크린과 마권 매표소로 가득 채워진 실내경마 배팅장에는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자리가 없어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맨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마권 구매표에 숫자를 찍었고, 경기가 시작되면 스크린과 자신의 마권을 번갈아보며 소리를 지르고 배팅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서울 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펼쳐지는 부산·제주경마까지 전국 배팅을 멈추지 않았다. 대부분 예상지를 들고 싸인펜 뚜껑을 입에 물면서 열심히 숫자를 적어 내려갔고, 허름한 차림새의 아저씨들도 다수 목격되기도 했다.      


제4경기가 무르익을 때쯤 야외관람석으로 나갔다. 거기서 기자에게 관심을 보이던 60대 할아버지는 자신을 ‘정신병자’라고 지칭하며 25년 경마장 출입 경력에 대해 후회하듯 말했다. 그는 경마노름에 온 재산을 탕진하고도 마약보다 더 무서운 경마를 끊지 못해 대단히 후회하면서도 자신의 나약한 의지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대해 비관했다.
그는 “여기 오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재산 탕진해서 주위 사람들한테 돈 빌려서 오거나 주말에 결혼식이나 장례식 있다고 가족한테 속이고 부조금 받아 탕진하는 사람들이 많아. 쓰레기통 한 번 뒤져봐. 부조금 봉투 쌓여있을 거야. 그리고 요즘에는 20~30대 젊은이들이 우리보다 더 심각해. 난 돈도 없고 해서 게임당 500원, 1000원씩 배팅하는데 걔네들은 한 게임당 5만원 이상씩 거액을 쏟아 붓거든. 하루에 15게임 정도 하니까 하루에 거의 100만원 탕진하는 셈이지”라며 젊은 세대의 도박중독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한탕’ 노리는
정신병자들

1인당 하루에 최대 10만원으로 정해져 있는 배팅금액 규율은 경마꾼들 사이에서 무참히 짓밟혀져 있었다. 마권 매표소의 직원이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한 매표소당 10만원씩 마권을 구매한 후 다음에 다른 매표소로 옮겨 구매하는 등의 얄팍한 수법은 이미 공공연히 성행하고 있었다. 또한 더러는 마권 구매기계를 이용해 하루에 수억원씩 마권을 구매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불법경마도박은 아직도 꾼들 사이에서 판을 치고 있어 이를 일일이 막기는 힘들어 보였다. 도박장의 이미지를 탈피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가족공원을 만들어 보려는 마사회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마사회에서 복지체계를 구축하려고 마련한 어린이 쉼터를 찾아가봤다. 그 큰 도박장에서 어린이 놀이방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안내데스크를 거쳐 겨우 ‘키즈플라자’라고 쓰인 어린이 휴게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두 개의 칸막이 방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방은 바깥쪽보다 이용 연령대가 더 낮아보였다.

마침 휴게소에 들어섰을 때 아이를 맡기러 온 두 명의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아이를 휴게소에 데려다 주고는 바로 배팅장으로 향했다. 그곳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은 “5세에서 7세까지는 놀이기구가 많이 비치된 안쪽 휴게소를 쓰게 돼있고 7세 이상 초등학생들은 책들이 비치된 바깥 쪽 휴게소를 쓴다. 그 이상 청소년들은 출입이 금지돼있기 때문에 유아·초등학생용 쉼터로만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입구 쪽엔 몇 대의 유모차 안에 돌이 갓 지나 보이는 아기들도 눈에 띄었다. 이어 “여기에는 보육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전문 보육교사가 아이들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님이 안심하고 경마게임을 즐길 수 있다”며 키즈플라자만의 장점을 내세워 안심시키듯 말했다.

‘도박 중독’ 방치하는 마사회? 부조금까지 경마장에
“경마장에 대한 바른 인식 심어주는 것이 먼저”

그때 놀이방 옆에 위치한 정체불명의 또 다른 방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방안에는 중장년층 남성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배팅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 노는 곳에 도박장이라니….’

그 방은 마치 아이와 동행한 부모가 아이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불안해 아이를 맡겨두고 자신들은 옆방에서 경마게임을 즐기는 용도 같았다. 마사회가 가족공원으로서 이미지 쇄신 차 만든 이 어린이 휴게소는 아이 걱정 없이 마음껏 도박을 즐기려는 부모의 마음을 대변한 ‘부모안심휴게소’로 변질돼버린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직원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 오래 머무를 수 없어 사진만 몇 컷 찍은 뒤 황급히 빠져나왔다.

올해 초까지 경마장에서 근무했다는 한 남성은 “한 사람당 10만원씩 밖에 배팅이 안 되니까 대리구매 시키는 사람들도 즐비하고, 특히 어린이휴게소가 개판이다. 부모들이 도박에 빠져서 애들을 그곳에 몰아넣고 하루 종일 방치한다”며 “특히 휴게소가 가득차거나 연령대가 맞지 않으면 더 이상 아이들을 받지 않기 때문에 겨울에는 아이들이 추위에 떨면서 밖에서 놀아야 한다. 경마에 미친 부모들 때문에 아이들만 불쌍하다”고 경마장 내 어린이휴게소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밝혔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허겁지겁 컵라면을 들이마시는 사람들, 한손에는 김밥, 다른 한손에는 싸인펜으로 마권 구매표에 숫자를 표기하며 한 경기도 놓치지 않으려 불타는 의욕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경마장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부모 도박 부추기는
어린이 휴게소      

현재 마사회는 배당금 중 세금 30%를 가져가는 식의 수익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작년에 벌어들인 수익만 약 7조원을 훨씬 넘겼다. 마사회가 도박꾼을 몰아내고 도박장 이미지를 버리겠다는 확고한 결심에도 이렇게 거액의 수익을 내고 경마장이 활발히 운영될 수 있는 건 모두 경마노름에 미친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가족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마사회. 그들이 개선해야 할 점은 어린이휴게소가 아닌 사람들의 무분별한 배팅을 멈추기 위한 강력한 제재와 경마장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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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