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경기지사 대권행보 지탄 받는 내막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7.09 10: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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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 혈세로 대권행보를?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대권행보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010년 3월21일 김 지사는 당시 한나라당 공천 신청을 불과 하루 앞두고 민선5기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이토록 망설인 이유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대선출마를 결심한 김 지사가 경기지사직 출마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루머가 나돌았다. 김 지사는 "차기대선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분명하게 선을 그었지만 대선출마설은 선거기간 내내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반복된 질문에 지친 김 지사는 "대선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며 기자들에게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요즘 보여주고 있는 대권행보는 경기도민은 물론 국민들까지 기만한 처사라는 지탄을 받고 있다.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난 4월22일 공식적으로 대권도전을 선언했다.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대선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경기지사직에만 충실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그가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입장을 바꾼 것이다.

김 지사는 출마선언문에서 '국민들의 명령' '시대적 요구'라는 다소 추상적인 단어로 출마의 이유를 설명했다. 정치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사실상 마땅한 명분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니냐"고 평가 절하했다. 또 "한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김 지사가 국민들의 명령, 시대적 요구를 들먹이는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자릿수 지지율인데
'국민의 명령?'

지난 경기도지사선거에서 김 지사는 227만여 표(52.20%)를, 유시민 당시 후보는 207만여 표(47.79%)를 얻었다. 두 사람의 표차는 19만여 표였으며 득표율 차는 4.41%에 불과했다.

또 선거과정에서 18만3000표에 달하는 무효표가 발생해 재투표 논란까지 벌어졌던 치열한 선거였다. 이러한 선거에서 만약 김 지사가 대권도전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면 결과는 반드시 달라졌을 것이라는데 이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다. 김 지사의 대권 출마를 놓고 "거짓말로 도지사직에 올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대선출마와 동시에 적당한 시점에 지사직에서 물러날 계획이라고 밝혔던 김 지사가  도지사직 사퇴 입장을 번복하면서 김 지사를 향한 비판은 점점 더 거세져 가고 있다. 김 지사는 지난 4월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후 지금까지 지사직을 유지한 채 대권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김 지사가 지사직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자 경기도 내에선 김 지사의 대선출마를 놓고 반대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주최로 지난 5월30일 열린 '현직 도지사의 대선 경선 참여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김 지사의 대선출마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대선출마선언 후 관용차 평소 2배 운행
두 번이나 믿고 뽑아준 경기도민 '황당'

참석자들은 그 이유로 ▲경기도정의 정치화 ▲공무원 조직의 선거개입 ▲경기도의회와의 대립격화 등을 꼽았다. 참석자들은 경기도정의 정치화와 관련해 "김 지사의 경선 참여로 인해 경기도의 주요행정은 도민들의 삶의 질 향상보다는 김 지사의 대선 행보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로 판단의 잣대가 바뀌어 정략적·정치적 결정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며 김 지사가 대선출마선언을 앞두고 갑자기 경기도청사의 광교신도시 이전 중단을 결정한 것이 그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또 경기도 공무원들의 선거개입 논란에 대해서는 지난 4월 경기도청 대변인실과 정책보좌관실에서 대선 홍보전략 문건이 발견되면서 검찰이 경기도청을 압수수색 하는 초유의 사건까지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김 지사가 대권을 포기하거나 지사직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민주통합당이 다수당인 경기도의회에서 김 지사와의 대립은 점차 심화될 것"이라며 "이로 인한 피해는 모두 경기도민들에게 전가되고, 경기도정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김 지사가 도민혈세를 이용해 대권행보를 펼치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일례로 경기도가 작성한 '도지사 전용차 운행일지'에 따르면 김 지사가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후 전용차 운행거리가 평소보다 두 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대선출마선언 후 사용된 주유비만 해도 350만원에 달한다. 대선출마 선언 전까지는 타 시·도 출장의 경우, 총 16번 모두가 서울이었던 반면 대선경선 출마 후에는 50일 동안 15번 타 시·도로 출장을 갔고 지역도 여수와 광주광역시, 대전 등 전국 각지였다. 사실상 도정업무와는 큰 관련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비단 관용차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경기도의 물적·인적 자원들이 김 지사의 대권행보와 관련해 쓰여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당장 경기도의회는 김 지사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민주통합당은 김 지사의 대권도전으로 인해 도정공백이 발생할 경우 법적 수단까지 동원해 김 지사의 행정력을 박탈하겠다고 경고했다. 한 민주통합당 도의원은 "도정을 책임져야 할 도지사가 경기도를 벗어나 외부일정에 매달리고 있다"며 "같은 처지인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지사직을 유지하면 도정을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는데 김 지사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지사직 사퇴거부
도정 정치화 우려

그러나 김 지사 측 관계자는 "김 지사는 사퇴의 뜻을 밝혔으나 정말 사퇴했을 경우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12월까지의 도정공백이 우려된다는 주위의 만류로 입장을 번복한 것"이라며 "그나마 지사직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도정공백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도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 도정과 관련된 행사가 아닌 곳에 갈 때는 휴가를 내거나 업무 시간 이후에 가고 있으며 관용차 이용도 자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설명에도 민주통합당은 "지사직 사퇴 후 경선에서 패배할 경우엔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소위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이라며 "그야말로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행태"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대선출마를 선언한 대부분의 후보가 현직 정치인임에도 유독 김 지사에게만 비판이 집중되는 것은 정치적 공세라는 주장도 있다. 김 지사의 대선출마가 다른 정치인들과 비교해 특별할 것이 없는데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큰 결함이 있는 것처럼 부풀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김 지사의 경우는 선거과정에서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에서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 된다. 문재인 고문의 경우 선거과정에서 상대 손수조 새누리당 후보가 "곧 지역구를 떠날 사람"이라며 공격했지만 최소한 이를 부인하진 않았다. 문 고문의 지역구 유권자들은 문 고문이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문 고문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다.

또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김 지사의 대선 출마에 대해 응답자의 54.6%가 '경기도의 최고 행정 책임자로서 무책임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지사가 출마의 이유로 밝혔던 국민들의 명령이 있었다는 주장과 상반되는 결과다. 때문에 김 지사의 대선출마는 과정도 잘못됐을 뿐 아니라 명분도 없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비단 김 지사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이 일단 선거에 출마하고 보는 관행은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우선 가장 1차적인 피해는 재보궐 선거 등으로 해마다 발생하는 엄청난 혈세 낭비다. 또 기초적인 업무공백은 물론이고 후보자들이 내세웠던 공약이행도 사실상 요원해지면서 지역발전에 큰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관행이 굳어진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치인으로서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사실상 백수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또 총선과 같은 대형이벤트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쉽게 대중에게 잊혀질 가능성도 있고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유권자들과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인지도를 높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일단 출마하고 보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선출마 안한다"더니…계획된 거짓말?
임기 중 출마관행 이유는? 사회적 비용 어쩌나

따라서 정치전문가들은 이 같은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정치인들이 임기 내에는 타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법안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번 선거 판세와 관련해 김 지사의 진짜 출마 이유에 대한 궁금증도 커져가고 있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이미 확고한 독주체제를 굳히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김 지사가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참여해 승리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경선 참여는 김 지사의 차차기 대선을 노린 포석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김 지사를 직접 만나 "경선에 참여해 정권 재창출에 기여하면 향후에 유리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김 지사가 경선에서 2위만 차지해도 차차기 대선후보로서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각인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지사직을 유지한 채 대선경선에 참여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까지 나온 마당에 김 지사로서는 '무조건 남는 장사'라는 분석이다.

박 전 위원장으로서도 경선 흥행 카드가 절실한 상황에서 김 지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비박 3인의 완전국민경선제 요구에 박 전 위원장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김 지사가 유일하게 경선 참여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도 친박계와 일종의 교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무책임한 결정
명분은 어디에?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김 지사의 대권행보에 대해 "대권 도전을 선언하고도 지사직을 유지하는 것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김 지사 스스로 지금의 행보를 당당하게 여길수록 도민들은 더욱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김 지사는 운동권으로 활동하던 시절 보안사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동료였던 심상정 의원의 거취를 끝까지 털어놓지 않은 의리의 사나이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그러한 김 지사가 고작 권력욕 때문에 자신을 믿고 지지해준 1200만 도민에 대한 의리를 쉽게 저버리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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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