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빡세진’ 음주단속 현장 가보니…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7.01 11:25:11
  • 호수 12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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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2잔 마셨는데 0.076%?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한 일명 ‘제2 윤창호법’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강화된 기준으로 대대적인 단속 예고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 적발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가 그 긴박한 현장을 찾아갔다. 

▲ 음주운전 단속 중인 경찰

제2의 윤창호법이 본겨적으로 시행됐다. 경찰은 지난 25일 자정부터 음주운전 처벌기준을 강화했다. 강남경찰서는 영동대교 남단, 영등포경찰서는 영등포공원 인근, 마포경찰서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남경 앞에서 단속을 시작했다. 기자는 영동대교 남단 리베라 호텔 인근으로 발검음을 옮겼다. 

예고해도 
줄줄이 적발

자정이 되기도 전에 이미 현장엔 기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주차된 경찰차 주위에 삼삼오오 모여 사전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음주운전자가 적발되면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거나 자극하는 행위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단속이 시작됐다. 경찰은 영동대교 남단 리베라 호텔 앞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음주단속을 시작했다. 경찰봉으로 차를 정차하거나 이동시켰고, 정지된 차량으로 다가가 “음주 단속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음주 측정기를 들이댔다. 경찰은 오토바이, 택시, 버스 등 구분 없이 모든 차량 운전자의 음주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오전 0시15분경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서 흰색 아우디가 멈춰 섰다. 경찰은 운전자 서모(47)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를 측정했는데 빨간불이 켜지며 경고음이 울렸다. 경찰은 서씨를 차에 내리게 한 후, 경찰차 있는 쪽으로 데리고 갔다. 


얼굴이 붉었던 서씨는 걸어가면서도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등 확연히 술에 취한 모습이 보였다. 경찰은 입안의 알코올 성분을 제거하기 위해 서씨에게 물을 주면서 입안을 헹구라고 지시했다.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고 껌을 씹고 있던 서씨는 경찰의 지시에도 불응했다. 서씨의 태도는 반항적이었고, 기자를 향해 입안에 물을 뱉는 시늉을 하는 등 위협적인 모습까지 보였다.

음주측정을 앞둔 서씨는 “난 원래 술을 잘 못 하는데, (오늘은)소주 2잔을 마셨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서씨에게 “도로교통법 44조 1항과 2항에 근거해 음주 측정을 실시하겠습니다. 풍선 부는 것처럼 5초간 불어주시면 됩니다”라며 음주 측정 방법을 고지했다. 

서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6%. 경찰은 “선생님, 0.076으로 면허정지가 나왔습니다. 0.079%까지 면허정지고 0.08%부터는 면허취소”라고 말했다. 서씨는 경찰에게 어깨동무를 시도하는 등 위협적인 액션을 취했다. 이에 경찰은 “팔 내리세요. 지금 뭐 하자는 거에요?”라며 상황을 무마시켰다. 

조사 결과 서씨는 강남구 도산대로의 한 음식점서 회식 후 830m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됐다. 서씨는 대리운전을 부르고 집으로 가는 귀갓길서도 보조석 창문 밖으로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등 음주측정 결과에 불만을 표출했다. 

임윤균 강남경찰서 교통안전계 경위는 “소주 2잔을 먹고 0.076%가 나오긴 힘들다. 최소 소주 1병은 마셨을 것”이라며 “요즘 소주도 도수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데 두 잔 가지고 이 정도는 안 나온다”고 말했다. 

취객 상대로 맞는 일 다반사…
미리 앱으로 단속 위치 파악도


취객의 위협적인 행동에 대해 임 경위는 “음주운전 단속을 하다 보면 취객이 경찰을 위협하는 건 다반사고 맞기도 한다. 공무집행 방해로 형사 처벌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한 대 맞고 만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후 경찰들은 영동대교 남단을 지나가는 차량들에 대해 음주단속을 진행했다. 간혹 음주 측정이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음주 단속자가 단속에 걸렸다고 생각한 기자들이 몰렸다가, 정상 수치가 나오면 차량을 보내는 식의 과정이 반복됐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음주운전 단속을 하면서 박카스, 술빵, 만두, 이스트 성분이 들어있는 빵을 섭취했을 경우 물로 입을 헹군 뒤 다시 재측정을 한다”고 귀띔했다. 

약 1시간이 지났을까. 경찰들은 일제히 음주단속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바로 단속 위치가 음주단속 애플리케이션(앱)에 노출되었다는 것. 경찰들은 신속하게 강남 청담동 명품거리로 자리를 이동했다.
 

음주단속 앱에 관해 묻자 한 경찰은 “음주운전 단속 앱에 음주단속 위치가 노출되면 경찰들은 자리를 이동한다. 음주 운전자들이 앱을 확인하고 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 일대에 소위 ‘스팟’이라고 말하는 위치가 있다. 이 위치들은 음주운전자들이 멀리서도 보이지 않으면서도 적발 빈도가 높은 곳들이다. 영동대교 남단 리베라 호텔 앞도 코너를 돌아야 바로 경찰이 보이고, 지금 이 위치도 언덕서 올라와야 음주단속 경찰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차 세우고
대리를…

오전 1시30분 청담동 명품거리 구찌 매장 앞 음주단속 현장. 영동대교 방면으로 향하던 하얀색 재규어 한 대가 음주단속 현장을 30m를 앞두고 갑자기 인도로 방향을 틀었다. 현장에 있던 경찰들이 급히 뛰어가 차 운전석으로 향했다.

차 안에 있던 운전자 홍모씨(35·여)가 경찰이 내민 음주 측정기에 ‘후’하고 바람을 부니 ‘삐’ 소리가 나며 탐지기 불빛이 연두색서 빨간색으로 변했다. 음주 측정기서 알코올 반응이 나온 것이다.  

경찰의 인계로 자리를 이동한 홍씨는 서씨와 달리 비틀거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홍씨에게 음주측정을 앞두고 한 번만 측정한다고 강조하며, 측정 결과에 이의가 있을 경우 병원을 찾아가 피를 뽑을 수 있다고 고지했다. 

식사 시간
집중 단속

홍씨는 양주 2잔을 마시고 가글로 입안을 헹궜다고 했다. 경찰은 “가글을 했어도 물 300mL, 150mL 등을 마셨기 때문에 다 날아갔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김씨와 동일하게 음주측정을 진행했다. 홍씨의 알코올 농도는 0.110%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경찰은 “남자와 여자, 체질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술을 많이 드신 상태”라고 말했고 홍씨는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는데 오늘은 양주 두 잔을 마셨다”고 대답했다. 


윤창호법에 대해 알고 있냐는 질문에 홍씨는 “잘 모른다. 술을 잘 못 먹는 체질이라 양주 두 잔만 먹었는데도 수치가 높게 나온 것 같다. 아까 경찰이 말씀하신 것처럼 남자와 여자, 체질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 것처럼 마신 양에 비해 많이 나온 것 같다”고 변명했다. 
 

▲ 음주운전 단속 앱

경찰이 왜 차를 인도로 끌고 왔냐고 묻자 그는 “이 근처 술집서 술을 마시고 나오는 길이었다. 대리기사를 부르기 위해 큰 길가로 나왔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당황했다. 경찰을 보고 피한 게 아니라, 대로변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워놓고 대리기사를 부르려고 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찰차 보이자 가글 대리기사 콜…가글 하기도
서울서 총 21건 적발 25일 2시간동안 총 21건

음주 측정 전 가글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홍씨는 “원래 술을 못 마시니까 가글을 한 것뿐이고 가글이 (음주 측정에)도움이 되는지는 모른다”고 항변했다. 

강화된 음주 기준 처벌에 대해서도 홍씨는 “전혀 모른다. 난 원래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다. 10번이면 10번 대리기사를 부른다. 대리기사님에게 ‘우리 집’이라고 말하면 알 정도로 자주 부른다. 그래도 운전석에 앉은 게 잘못”이라고 과오를 시인했다. 

경찰은 “월요일 오전 이 시간대에는 음주단속이 많이 적발되지는 않는다. 클럽이 열리는 다음 날 아침 시간대인 오전 5시서 7시 사이가 특히 많이 적발된다. 특히 수요일이나 주말에도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임 경위는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명피해나 건물 사고를 줄이기 위해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해 특별단속을 시행했다”며 “아침 시간대인 7시 이전과 점심에 반주하는 시간대, 저녁에 술 한 잔하는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단속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오늘부터 시행된 음주운전 측정 치수가 0.03%이기 때문에 술 한 잔이라도 했다면 핸들을 잡지 마시고 대중교통 이용을 하시거나 대리기사를 이용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숙취운전
처벌 가능성↑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25일 오전 0시부터 2시까지 서울 전역서 음주운전 단속을 벌인 결과 총 21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05~0.08% 미만은 6건,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08% 이상은 총 15건이었다. 
 

강화된 ‘윤창호법’이 시행되고 경찰이 대대적인 음주운전 단속에 나선 결과다. 기존에는 혈중알코올농도 0.05%~0.1% 이상이면 각각 면허정지, 취소 처분이 내려졌지만, 개정 후 면허정지 기준은 0.03%, 취소는 0.08%로 강화됐다. 이는 몸무게 65㎏ 성인 남성이 소주 1잔만 마셔도 나오는 수치다. 

음주운전 기준이 강화되면서 출근길 ‘숙취 운전’도 처벌 가능성이 커졌다. 전날 마신 음주로 인해 음주단속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혈중알코올농도를 계산하는 위드마크 공식에 따르면, 체중 60㎏ 남성이 자정까지 19도짜리 소주 2병을 마시고 7시간이 지나면 혈중알코올농도는 약 0.041%가 된다. 자정에 술을 마시고 아침 7시에 운전을 할 경우 면허정지 처분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창호법 뭐길래?

지난해 9월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윤창호씨의 이름을 딴 윤창호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및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음주운전 처벌과 기준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 25일부터 시행된 제2 윤창호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음주운전 적발기준을 기존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0.03% 이상으로, 면허취소 기준은 0.1% 이상~0.08% 이상으로 강화됐다.

음주운전 처벌 상한도 현행 ‘징역 3년, 벌금 1000만원’서 ‘징역 5년, 벌금 2000만원’으로 높아졌다. 음주운전 적발로 면허가 취소되는 횟수 역시 기존 3회서 2회로 강화됐다. <환>

 

<기사 속 기사> ‘음주단속 앱’ 믿어도 되나?

음주단속 기준이 강화되면서 단속을 피할 수 있는 ‘음주운전 단속 앱’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도에 실시간으로 음주운전 단속 구간을 표시해주는 음주운전 단속 앱은 윤창호법 시행과 함께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다운로드 건수가 100만건에 달한 것도 있었다.

실제 음주운전 단속앱을 실행하면 사용자의 위치와 그에 맞춰 춘천, 원주, 강릉 등 각 도내 지역별 경찰 단속 현황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별도의 가입 절차 없이 누구나 쉽게 GPS 위치정보 기능 등을 통해 이용이 가능하며 경찰의 음주단속 위치를 앱 사용자들이 실시간으로 제보하는 방식이다.

사용자 위치를 기준으로 반경 3·5·10㎞ 내 경찰 위치 제보와 집중지역 통계 정보를 제공, 춘천지역은 157곳(2000건 이상), 43곳(5000건 이상)이 단속 집중지역으로 분류돼있다.

최근 음주운전 처벌 수위가 높아지고 경찰 단속이 강화되면서 해당 앱 누적 사용자만 400만명에 달하고 있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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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