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빡세진’ 음주단속 현장 가보니…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7.01 11:25:11
  • 호수 12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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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2잔 마셨는데 0.076%?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한 일명 ‘제2 윤창호법’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강화된 기준으로 대대적인 단속 예고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 적발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가 그 긴박한 현장을 찾아갔다. 

▲ 음주운전 단속 중인 경찰

제2의 윤창호법이 본겨적으로 시행됐다. 경찰은 지난 25일 자정부터 음주운전 처벌기준을 강화했다. 강남경찰서는 영동대교 남단, 영등포경찰서는 영등포공원 인근, 마포경찰서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남경 앞에서 단속을 시작했다. 기자는 영동대교 남단 리베라 호텔 인근으로 발검음을 옮겼다. 

예고해도 
줄줄이 적발

자정이 되기도 전에 이미 현장엔 기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주차된 경찰차 주위에 삼삼오오 모여 사전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음주운전자가 적발되면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거나 자극하는 행위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단속이 시작됐다. 경찰은 영동대교 남단 리베라 호텔 앞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음주단속을 시작했다. 경찰봉으로 차를 정차하거나 이동시켰고, 정지된 차량으로 다가가 “음주 단속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음주 측정기를 들이댔다. 경찰은 오토바이, 택시, 버스 등 구분 없이 모든 차량 운전자의 음주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오전 0시15분경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서 흰색 아우디가 멈춰 섰다. 경찰은 운전자 서모(47)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를 측정했는데 빨간불이 켜지며 경고음이 울렸다. 경찰은 서씨를 차에 내리게 한 후, 경찰차 있는 쪽으로 데리고 갔다. 


얼굴이 붉었던 서씨는 걸어가면서도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등 확연히 술에 취한 모습이 보였다. 경찰은 입안의 알코올 성분을 제거하기 위해 서씨에게 물을 주면서 입안을 헹구라고 지시했다.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고 껌을 씹고 있던 서씨는 경찰의 지시에도 불응했다. 서씨의 태도는 반항적이었고, 기자를 향해 입안에 물을 뱉는 시늉을 하는 등 위협적인 모습까지 보였다.

음주측정을 앞둔 서씨는 “난 원래 술을 잘 못 하는데, (오늘은)소주 2잔을 마셨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서씨에게 “도로교통법 44조 1항과 2항에 근거해 음주 측정을 실시하겠습니다. 풍선 부는 것처럼 5초간 불어주시면 됩니다”라며 음주 측정 방법을 고지했다. 

서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6%. 경찰은 “선생님, 0.076으로 면허정지가 나왔습니다. 0.079%까지 면허정지고 0.08%부터는 면허취소”라고 말했다. 서씨는 경찰에게 어깨동무를 시도하는 등 위협적인 액션을 취했다. 이에 경찰은 “팔 내리세요. 지금 뭐 하자는 거에요?”라며 상황을 무마시켰다. 

조사 결과 서씨는 강남구 도산대로의 한 음식점서 회식 후 830m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됐다. 서씨는 대리운전을 부르고 집으로 가는 귀갓길서도 보조석 창문 밖으로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등 음주측정 결과에 불만을 표출했다. 

임윤균 강남경찰서 교통안전계 경위는 “소주 2잔을 먹고 0.076%가 나오긴 힘들다. 최소 소주 1병은 마셨을 것”이라며 “요즘 소주도 도수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데 두 잔 가지고 이 정도는 안 나온다”고 말했다. 

취객 상대로 맞는 일 다반사…
미리 앱으로 단속 위치 파악도


취객의 위협적인 행동에 대해 임 경위는 “음주운전 단속을 하다 보면 취객이 경찰을 위협하는 건 다반사고 맞기도 한다. 공무집행 방해로 형사 처벌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한 대 맞고 만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후 경찰들은 영동대교 남단을 지나가는 차량들에 대해 음주단속을 진행했다. 간혹 음주 측정이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음주 단속자가 단속에 걸렸다고 생각한 기자들이 몰렸다가, 정상 수치가 나오면 차량을 보내는 식의 과정이 반복됐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음주운전 단속을 하면서 박카스, 술빵, 만두, 이스트 성분이 들어있는 빵을 섭취했을 경우 물로 입을 헹군 뒤 다시 재측정을 한다”고 귀띔했다. 

약 1시간이 지났을까. 경찰들은 일제히 음주단속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바로 단속 위치가 음주단속 애플리케이션(앱)에 노출되었다는 것. 경찰들은 신속하게 강남 청담동 명품거리로 자리를 이동했다.
 

음주단속 앱에 관해 묻자 한 경찰은 “음주운전 단속 앱에 음주단속 위치가 노출되면 경찰들은 자리를 이동한다. 음주 운전자들이 앱을 확인하고 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 일대에 소위 ‘스팟’이라고 말하는 위치가 있다. 이 위치들은 음주운전자들이 멀리서도 보이지 않으면서도 적발 빈도가 높은 곳들이다. 영동대교 남단 리베라 호텔 앞도 코너를 돌아야 바로 경찰이 보이고, 지금 이 위치도 언덕서 올라와야 음주단속 경찰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차 세우고
대리를…

오전 1시30분 청담동 명품거리 구찌 매장 앞 음주단속 현장. 영동대교 방면으로 향하던 하얀색 재규어 한 대가 음주단속 현장을 30m를 앞두고 갑자기 인도로 방향을 틀었다. 현장에 있던 경찰들이 급히 뛰어가 차 운전석으로 향했다.

차 안에 있던 운전자 홍모씨(35·여)가 경찰이 내민 음주 측정기에 ‘후’하고 바람을 부니 ‘삐’ 소리가 나며 탐지기 불빛이 연두색서 빨간색으로 변했다. 음주 측정기서 알코올 반응이 나온 것이다.  

경찰의 인계로 자리를 이동한 홍씨는 서씨와 달리 비틀거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홍씨에게 음주측정을 앞두고 한 번만 측정한다고 강조하며, 측정 결과에 이의가 있을 경우 병원을 찾아가 피를 뽑을 수 있다고 고지했다. 

식사 시간
집중 단속

홍씨는 양주 2잔을 마시고 가글로 입안을 헹궜다고 했다. 경찰은 “가글을 했어도 물 300mL, 150mL 등을 마셨기 때문에 다 날아갔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김씨와 동일하게 음주측정을 진행했다. 홍씨의 알코올 농도는 0.110%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경찰은 “남자와 여자, 체질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술을 많이 드신 상태”라고 말했고 홍씨는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는데 오늘은 양주 두 잔을 마셨다”고 대답했다. 


윤창호법에 대해 알고 있냐는 질문에 홍씨는 “잘 모른다. 술을 잘 못 먹는 체질이라 양주 두 잔만 먹었는데도 수치가 높게 나온 것 같다. 아까 경찰이 말씀하신 것처럼 남자와 여자, 체질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 것처럼 마신 양에 비해 많이 나온 것 같다”고 변명했다. 
 

▲ 음주운전 단속 앱

경찰이 왜 차를 인도로 끌고 왔냐고 묻자 그는 “이 근처 술집서 술을 마시고 나오는 길이었다. 대리기사를 부르기 위해 큰 길가로 나왔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당황했다. 경찰을 보고 피한 게 아니라, 대로변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워놓고 대리기사를 부르려고 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찰차 보이자 가글 대리기사 콜…가글 하기도
서울서 총 21건 적발 25일 2시간동안 총 21건

음주 측정 전 가글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홍씨는 “원래 술을 못 마시니까 가글을 한 것뿐이고 가글이 (음주 측정에)도움이 되는지는 모른다”고 항변했다. 

강화된 음주 기준 처벌에 대해서도 홍씨는 “전혀 모른다. 난 원래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다. 10번이면 10번 대리기사를 부른다. 대리기사님에게 ‘우리 집’이라고 말하면 알 정도로 자주 부른다. 그래도 운전석에 앉은 게 잘못”이라고 과오를 시인했다. 

경찰은 “월요일 오전 이 시간대에는 음주단속이 많이 적발되지는 않는다. 클럽이 열리는 다음 날 아침 시간대인 오전 5시서 7시 사이가 특히 많이 적발된다. 특히 수요일이나 주말에도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임 경위는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명피해나 건물 사고를 줄이기 위해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해 특별단속을 시행했다”며 “아침 시간대인 7시 이전과 점심에 반주하는 시간대, 저녁에 술 한 잔하는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단속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오늘부터 시행된 음주운전 측정 치수가 0.03%이기 때문에 술 한 잔이라도 했다면 핸들을 잡지 마시고 대중교통 이용을 하시거나 대리기사를 이용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숙취운전
처벌 가능성↑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25일 오전 0시부터 2시까지 서울 전역서 음주운전 단속을 벌인 결과 총 21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05~0.08% 미만은 6건,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08% 이상은 총 15건이었다. 
 

강화된 ‘윤창호법’이 시행되고 경찰이 대대적인 음주운전 단속에 나선 결과다. 기존에는 혈중알코올농도 0.05%~0.1% 이상이면 각각 면허정지, 취소 처분이 내려졌지만, 개정 후 면허정지 기준은 0.03%, 취소는 0.08%로 강화됐다. 이는 몸무게 65㎏ 성인 남성이 소주 1잔만 마셔도 나오는 수치다. 

음주운전 기준이 강화되면서 출근길 ‘숙취 운전’도 처벌 가능성이 커졌다. 전날 마신 음주로 인해 음주단속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혈중알코올농도를 계산하는 위드마크 공식에 따르면, 체중 60㎏ 남성이 자정까지 19도짜리 소주 2병을 마시고 7시간이 지나면 혈중알코올농도는 약 0.041%가 된다. 자정에 술을 마시고 아침 7시에 운전을 할 경우 면허정지 처분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창호법 뭐길래?

지난해 9월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윤창호씨의 이름을 딴 윤창호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및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음주운전 처벌과 기준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 25일부터 시행된 제2 윤창호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음주운전 적발기준을 기존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0.03% 이상으로, 면허취소 기준은 0.1% 이상~0.08% 이상으로 강화됐다.

음주운전 처벌 상한도 현행 ‘징역 3년, 벌금 1000만원’서 ‘징역 5년, 벌금 2000만원’으로 높아졌다. 음주운전 적발로 면허가 취소되는 횟수 역시 기존 3회서 2회로 강화됐다. <환>

 

<기사 속 기사> ‘음주단속 앱’ 믿어도 되나?

음주단속 기준이 강화되면서 단속을 피할 수 있는 ‘음주운전 단속 앱’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도에 실시간으로 음주운전 단속 구간을 표시해주는 음주운전 단속 앱은 윤창호법 시행과 함께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다운로드 건수가 100만건에 달한 것도 있었다.

실제 음주운전 단속앱을 실행하면 사용자의 위치와 그에 맞춰 춘천, 원주, 강릉 등 각 도내 지역별 경찰 단속 현황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별도의 가입 절차 없이 누구나 쉽게 GPS 위치정보 기능 등을 통해 이용이 가능하며 경찰의 음주단속 위치를 앱 사용자들이 실시간으로 제보하는 방식이다.

사용자 위치를 기준으로 반경 3·5·10㎞ 내 경찰 위치 제보와 집중지역 통계 정보를 제공, 춘천지역은 157곳(2000건 이상), 43곳(5000건 이상)이 단속 집중지역으로 분류돼있다.

최근 음주운전 처벌 수위가 높아지고 경찰 단속이 강화되면서 해당 앱 누적 사용자만 400만명에 달하고 있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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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