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공수처법 공멸론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5.13 10:26:11
  • 호수 1218호
  • 댓글 0개

보이지 않는 출구전략 ‘같이 죽을라’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셈법이 다르다. 우여곡절 끝에 선거법과 공수처법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를 장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각에선 두 법안이 모두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일요시사>는 일각서 제기되고 있는 선거법-공수처법의 ‘공멸론’을 추적했다.
 

▲ ‘웃고는 있지만…’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더 이상의 갈등은 없을까. 선거법-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지정 사태는 국회의 분열을 불러왔다. 육탄 저지도 불사했던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국회 대화를 거부하고 장외로 나갔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부산서 시작한 ‘민생투쟁 대장정’에 돌입한 상태다. 국회서 있었던 일련의 사태를 국민들에게 직접 알린다는 취지다.

원트랙서
투트랙으로

최근 한국당은 ‘장외투쟁’ 원트랙서 ‘장외투쟁-국회투쟁’의 투트랙으로 전환했다. 황 대표가 장외투쟁의 선봉장이라면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국회투쟁의 선봉장이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8일 새로 선출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에게 ‘선 패스트트랙 철회, 후 국회 정상화’를 제안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회서 열린 원내대표·중진의원 회의서 “공수처의 날치기 패스트트랙 지정으로 헌법이 정한 사법부 독립의 원칙이 실질적·절차적으로 손상될 우려가 있다고 문무일 검찰총장과 현직 판사, 여당 의원 등도 비판했다”며 “여야는 패스트트랙 무효를 논의해야 할 때이며, 그것이 국회 정상화와 민생 국회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 취임한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국회 정상화’라는 시험대에 올랐다. 장외로 뛰쳐나간 한국당을 어떻게든 국회로 다시 복귀시켜야 한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 8일, 취임 일성으로 “홍영표 (전) 원내대표가 너무 강력한 과제를 남겨놓고 가셨다”며 “내가 협상하지 않고 우리 의원 128명 전체가 협상한다는 마음으로 움직이겠다”고 전했다.


패스트트랙 동반 탑승, 이대로 쭉?
선거법 받았지만…서울·호남 적신호

추가경정예산안(이하 추경)이 볼모다. 한국당은 민주당의 추경 카드를 무작정 거부할 수는 없다. 한국당이 ‘일하는 국회’를 거부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추경에는 강원 산불, 포항지진, 미세먼지 등 민생 지원 예산이 다수 포함돼있어 한국당도 추경을 계속 외면하기는 힘들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당 원내대표부 측에서 민주당의 새 원내지도부에 국회로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당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7일 원내대책회의서 “새로운 민주당 원내지도부와 5월 국회서 원점서 협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당의 복귀는 패스트트랙에 대한 ‘백기투항’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한국당 내에서는 오히려 패스트트랙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는 의견이 많다.
 

이유는 정당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선거법 개정안의 핵심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정확히는 국회의원 정수 동결을 전제로 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의원 수 확대에 반대하는 여론조사가 이어지자 우선 의원 수 300석 동결 방식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확정했다.

백기투항?
자신감!

여야4당이 합의한 선거제 개혁안에 따르면 전체 의석수 300석에는 변화가 없지만, 현행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을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으로 수정한다는 내용이다. 지역구가 28석이나 줄어드는 안이다.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구의 통폐합이 불가피하다.


야3당은 선거제 개혁안에 대해 민주당보다 적극적이다. 야3당은 궁극적으로 의원 수 확대를 목표로 한다. 이는 선거제 개혁안이 지금의 모습으로 확정되기 전의 논의 과정서 드러났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과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정의당 등은 지난해 12월 의원 수를 현행보다 10% 늘려 330석으로 맞추고,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했다. 

그러자 한국당은 크게 반발하며 의원 수를 10% 줄이는 대신 비례대표를 없애자는 역제안을 내놨다. 공전을 거듭하자 야3당은 민주당과 논의를 거쳐 의원 수를 300석으로 유지하는 지금의 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야3당은 지금도 의원 수를 늘리려는 목표를 내려놓지 않았다. 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7일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의원 수 확대의 군불을 지폈다. 비례대표가 늘어 상대적으로 지역구가 줄어들면 농어촌 지역구가 가장 크게 축소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박 의원은 “처음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 논의 때도 여야가 약 30석 내지 60석 증원을 검토할 때라고 이야기했다”며 “인구 5000만명에 비해 (의원 수)300석은 적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생각은 다르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의원 수 확대는 불가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홍영표 전 원내대표는 지난 8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의원 정수는) 그렇게 쉽게 늘린다고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니다”라며 “우리 당으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동의할 수 없는 안”이라고 야3당과 다른 입장을 내놨다.

정개특위 여당 간사인 김종민 의원도 지난 8일 “우리 당은 현재 정원서 최대한 개혁 방안을 찾자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특히 의원정수 확대는 여야5당 합의는 물론 국민의 동의가 전제돼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두 개의 법안
하나의 운명

집권 여당으로서 국민의 의견에 반하는 의원 수 확대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내년 총선이 예정된 상황서 야3당의 의견을 수용한다면 자칫 주도력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지역구가 줄어드는 현행 선거법 개정안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현재 선거법 개정안대로라면 호남 의석수가 줄어드는 일은 자명하다.

정개특위 소속 한국당 김재원 의원이 지난 1월 인구 현황을 기준으로 지역구 225석을 예상한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 10석(서울 7석·경기 3석), 영남권 7석, 호남권 6석, 충청권 4석, 강원 1석이 각각 감소한다.
 

여당 내에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수도권과 호남은 민주당의 근간이다. 국회에선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정당으로 민주당과 한국당이 꼽힌다.

선거법 개정안만 해도 정당 간 함수가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여기에 공수처 설치법까지 더해져 고차방정식이 성립된다. 

민주당은 공수처법 통과에 사활을 걸었다. 공수처법은 문재인정부 사법개혁의 핵심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공수처법과 함께 검경 수사권 조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 검찰개혁에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공수처>선거법’ 민주당 셈법
속셈 다른 정치권, 수틀리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공수처법을 선거법 개정안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의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조 수석은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도 경찰도 입법 절차서 자신의 입장을 재차 제출할 수 있으나 최종적 선택은 입법자(국회)의 몫”이라며 “그것(입법자의 선택)은 검찰이든 경찰이든 청와대든 존중해야 한다. 검찰도 경찰도 청와대도 국회가 아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민주당이 공수처법 통과를 위해 야3당과 선거법을 고리로 거래를 했다고 주장한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22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서 “선거법과 공수처법의 밀실거래·야합정치는 4월 국회뿐 아니라 20대 국회를 마비시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민주당이 공수처법 통과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야3당과의 합의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민주당은 바미당이 갑작스럽게 자신들의 공수처법을 들고 나오자 ‘원안 고수’ 대신 ‘동시 상정’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조 수석은 이를 ‘의회주의적 타협의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당·청이 공수처법의 국회 본회의장 통과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증거다.

과연 선거법과 공수처법이 모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야3당의 도움이 필수불가결하다. 선거법의 통과를 위해 야3당의 도움을 받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야3당이 원하기 때문이다. 반면 공수처법과 관련해서는 야3당의 도움을 장담할 수 없다.

통과될까?
장담 못해

한국당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7일 <일요시사>를 통해 “난 절대 두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며 “선거법의 경우 지역구가 없어지는 문제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두 법안은 본회의장서 무기명 투표로 진행된다. 민주당 내에서도 분명히 반대표가 나올 것이다. 바미당과 평화당 내에서도 반대표가 나올 수 있다. 선거법이 무너지면 다음은 공수처법이다. 두 법안은 운명공동체다. 결국 두 법안은 공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4당은 두 법안을 본회의서 표결할 때 ‘선거법→공수처법→검경 수사권 조정법’의 순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의원 목줄 쥔 검경, 왜?

선거법과 공수처법의 패스트트랙 지정 사태가 낳은 여야 고소·고발전이 검경의 손으로 넘어갔다. 서울남부지검은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 등으로부터 이송받은 고소·고발 건 중 13건 162명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넘겼다.

검찰 관계자는 “국회법 위반, 공무집행방해, 재물 손괴 등 폭력 관련 사건은 사실관계 확정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경찰에 수사지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단 검찰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이 사보임되는 과정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가 없는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 검찰 측은 사보임 절차를 검찰이 수사하는 이유에 대해 “국회법이나 직권남용 등에 대한 법리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치권은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과정서 몸싸움을 펼쳤다. 이는 대규모 고소·고발전으로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정의당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등을 국회법 위반과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대거 고발했다. 한국당 역시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을 ‘공동상해’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한국당은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모욕혐의로, 한국당 임이자 의원은 문희상 국회의장을 모욕과 폭행, 성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이외에도 국회사무처가 한국당 소속 의원들과 당직자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여야 의원 다수가 얽혀 있다는 점에서 이번 수사가 내년 총선까지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진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