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추적> 버닝썬서 아레나로…더 큰 게이트 열린다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3.08 16:00:03
  • 호수 12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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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수사’ 경찰청 수뇌부의 딜레마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버닝썬 폭행 사건’에 대한 논란이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버닝썬 사건에 불똥이 튄 클럽 아레나에서는 더 큰 ‘게이트’가 열릴 조짐도 보인다. 최근 <일요시사> 취재 결과 아레나 실소유주인 강모 회장을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서 수사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경찰은 버닝썬 폭행 사건을 유착 의혹 당사자인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수사한다는 방침을 고집하다가 언론의 융단 폭격을 맞은 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이송했다. 

강남경찰서?
믿어도 되나?

강남경찰서가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은 사건 초반부터 제기됐다. 이에 대해 지난달 18일 경찰 측은 “이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강남경찰서에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었다. 굳이 이걸 서울지방경찰청으로 가져올 건 아니다. 폭력 사건이라 매우 단순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일주일 뒤인 지난달 24일 서울지방경찰청은 버닝썬 사건을 강남경찰서에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이송했다.

이와 더불어 승리의 성접대 의혹과 관련된 제보자가 수사 중인 경찰서가 아닌 국민권익위원회에 제보를 하면서 ‘경찰 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성접대 의혹’을 밝힐 카카오톡 자료를 입수하면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확인 중이다.


지난 4일 경찰은 기자간담회서 승리 성접대 의혹에 대해 “(성접대 지시) 카카오톡의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원본 확인을 못했을 뿐더러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승리의)진술을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의 3인칭 화법은 국민들의 의구심을 자아냈다. 제보자의 말은 달랐다.

최초로 승리 성접대 의혹을 보도한 <SBS funE> 기자에 따르면 제보자는 “카카오톡 내용 중에서 경찰과 유착을 의심할 만한 대화와 정황이 대거 포함돼있어 경찰이 아닌 권익위에 제출하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도 경찰 유착 의혹 수사와 관련해 혐의자들이 ‘경찰을 믿지 못하겠다’며 수사에도 협조하지 않은 상황이다. 또 경찰관 출신의 사업가 강모씨의 지시를 받고 경찰관들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했던 부하직원 이모씨가 재조사에서 진술을 뒤집으면서 경찰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검·경 수사권 조정 앞두고…
지수대 아레나 실소유주 수사 착수 

경찰 수뇌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민 여론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사도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경찰 수뇌부들의 속내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건 검·경수사권 조정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버닝썬 성폭행·마약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경찰 조직이 가장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건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라며 “경찰 윗선에선 이번 강남 클럽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수사권 조정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는 위기감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딜레마에 빠졌다. 경찰이 이번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할 경우 향후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 유착 의혹이 있는 경찰들을 발본색원해 엄단한다고 해도 경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이미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다.
 

수사가 이런 구도로 흘러갈 경우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경찰의 발언권은 검찰에 밀릴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타계할 카드로 경찰 수뇌부는 ‘아레나 탈세 사건’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는 버닝썬보다 아레나서 더 큰 비리가 나올 가능성이 짙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수의 경찰 관계자 이야기를 종합하면 지난달 25일 경찰청 본청 간부 회의서 강남경찰서에서 수사 중인 ‘아레나 260억원 탈세 사건’을 서울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이송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이에 대해 강남경찰서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답했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그런 이야기는 없다. 잘못한 게 있어야 이송되지 않겠나. 우리가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일요시사> 취재 결과 아레나 탈세 사건은 강남경찰서에서 마무리할 예정이며, 아레나 실소유주 강모 회장의 국세청 로비 사건 등은 서울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수사할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본청 관계자는 “(아레나 실소유주와 관련된 수사는 서울청 지능범쇠수사대서 수사할 계획이다. 아레나 탈세 사건은 강남경찰서에서 맡고 있고,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언급했다. 

경찰은 아레나 세무조사 축소 의혹을 수사 중이다(<일요시사> 1201호 ‘클럽 아레나 유흥대부 돕는 전관들 막전막후’ 참조). 아레나 실소유주로 지목되고 있는 강모 회장이 국세청에 로비를 시도했는지 여부를 추적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강 회장은 류덕환 전 강남세무서 서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과정서 5만원권 현금이 든 쇼핑백을 류 전 서장에게 전달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경찰 수사 과정서 강 회장은 “서류봉투였다”며 돈 전달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류 전 서장은 쇼핑봉투를 강 회장에게 돌려줬다며 상이한 주장을 했다. 이날 강 회장과 동행한 또 다른 목격자는 “돈이 든 쇼핑봉투가 전달된 것으로 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 경찰은 류 전 서장의 휴대전화서 세무당국 관계자들과 접촉한 정황을 확보했다. 경찰은 이미 두 차례 아레나 세무조사를 했던 국세청 관계자를 조사한 바 있다.


이 외에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경찰은 아레나가 관할 공무원들에게 상납한 것으로 의심되는 ‘리스트’도 확보해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 장기화
악화된 여론 

경찰청 본청은 강남경찰서가 아레나 탈세 사건을 수사하기 버겁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찰청 본청 회의에 참석한 수사국 고위 관계자들은 “이 사건은 서울청 지능범죄수사대나 광역수사대서 맡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고 한다. 물론 그 반대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아레나 탈세 사건의 수사는 답보상태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말 아레나 실소유주로 지목되고 있는 강모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검찰에 신청했지만, 보강수사를 이유로 영장은 기각됐다. 지난해까지 수사관 한 명이 사건을 담당했으며, 최근에서야 수사 인력이 충원됐다. 

현재 의혹의 중심에 있는 강남경찰서에서 해당 사건을 수사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강남경찰서에서 수사 중인 버닝썬과 클럽 관련 사건·사고는 모두 광역수사대에 이송된 상태다.

경찰 고위 간부회의서도 아레나 탈세 사건을 적극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현재 경찰청 범죄정보과가 움직이고 있다. 


강남 유흥업소 유착 의혹 제기 
제보자 “경찰 못 믿겠다” 패싱

경찰 수뇌부는 버닝썬 사건의 불똥이 결국 아레나로 번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버닝썬 핵심 관계자들 대부분이 아레나 출신이기 때문에 불법의 양상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더욱 커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어서다.(<일요시사> 1203호 ‘클럽 투톱’ 버닝썬-아레나 강남 커넥션 의혹 참조)

애초 유흥업계 관계자들은 “버닝썬은 개업한 지 이제 막 1년이 된 클럽이었다. 털어서 나올 게 많이 없다. 강남 유흥업계 탈법과 불법의 근원은 아레나”라고 입을 모았다. 
 

아레나 탈세 사건은 수사 초기부터 경찰청 본청의 주요 관심 수사였다. 지난해부터 경찰청 본청은 아레나 탈세 사건과 관련된 수사 보고를 직접 받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강남경찰서 서장이 경찰청 본청에 보고할 수사 보고서를 직접 보완·수정할 정도로 챙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강남경찰서 서장은 아레나 탈세 사건 이송을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버닝썬 사건이 불거지면서 일선 정보경찰(IO)들에게 아레나 관련 정보 수집을 강화하라는 경찰청 본청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 4일 기자간담회서  “현재도 감찰 요원들에게 (경찰 유착 관련)첩보 수집을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감찰 요원들에
첩보 수집 지시

경찰 내부에서는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경찰이 더 이상 국민적 지탄을 받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경찰 수뇌부는 아레나 사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레나 탈세 사건서 뻗어나온 국세청 로비 의혹 등을 제대로 수사해 그동안의 실책을 만회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강남 클럽 수사가 버닝썬서 아레나로 전선이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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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