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승리 클럽 버닝썬’ 성추행 막다 수갑 찬 사연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2.21 17:15:09
  • 호수 11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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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CCTV 공개 거부하고 되레 영업방해죄로 입건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승리 클럽으로 알려진 버닝썬 이사가 성추행하는 걸 목격했다. 이걸 막았다가 버닝썬의 보디가드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 현장서 즉각 경찰에 신고했지만, 수갑을 찬 건 나였다. 경찰 조사 과정서 경찰로부터 3차례 폭행과 온갖 조롱을 당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CCTV 공개를 요구했지만, 경찰 측에서 거부했다. 경찰이 ‘버닝썬을 비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지난 12월18일 버닝썬 폭행 피해자 김상교씨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상교(28)씨는 지난 18일 <일요시사>와 만나 “경찰이 클럽 버닝썬을 비호하는 과정서 자신에게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망한 영상 감독이자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페미니스트다. 올해 제17회 미쟝션 단편영화제의 공식 트레일러 영상을 제작했다. 정준영, 나인뮤지스, 서사무엘, 킬라그램, 나다 등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미술감독을 맡았다.

김씨는 올바른 페미니즘을 알리기 위해 지난해 가수 디아가 발표한 타이틀곡 ‘비행소녀’의 미술감독으로 재능기부를 했다. 또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죽어가는 홍대 골목 상권을 살리는 페스티벌에도 무료 봉사한 이력도 있다.

이랬던 김씨가 지난달 24일 영업방해 및 공무집행방해로 강남경찰서에 입건됐다. 무슨 일이 있던 걸까. 김씨의 주장을 토대로 이날 있었던 일을 재구성했다. 

지난달 24일 토요일 새벽 2시. 김씨는 지인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빅뱅 승리가 운영 중인 클럽으로 알려진 강남 버닝썬을 갔고 거기서 보드카 한 잔과 샴페인 세 잔을 마셨다. 과음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기에 정신은 맑았다. 

오전 6시50분경 버닝썬서 나오는 길에 한 여성이 급하게 다가와 김씨의 왼쪽 어깨 뒤로 숨었다. 그러자 술에 취한 한 남성이 여성의 겨드랑이와 가슴 사이를 움켜쥐며 끌어당겼다. 이 남성은 버닝썬 이사였다. 여성은 김씨를 붙잡고 버텼는데 김씨는 버닝썬 이사가 반강제적으로 여성을 대하는 것 같아 그를 막아섰다. 그러자 버닝썬 이사가 김씨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김씨는 보디가드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보디가드들은 도움을 청한 김씨를 갑자기 집단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김씨를 VIP 출구로 끌고 가 내던지는 등 구타를 멈추지 않았다. 겨우 뒷걸음질로 도망치던 김씨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7시2분에 112에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김씨는 보디가드들을 붙잡기 위해 “도망가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이들은 또다시 김씨를 구타했다. 

그로부터 8분 뒤인 7시10분경 역삼지구대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당시 경찰은 김씨가 바닥서 맞는 장면을 목격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는 “그런데 경찰은 집단폭행한 보디가드들을 다급하게 클럽 출구 안으로 밀어넣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경찰은 갑자기 김씨를 제압한 후 뒷쪽으로 수갑을 채웠다.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은 상황이었다. 경찰이 신고자이자 집단폭행당한 김씨를 체포한 것이다. 보수적으로 쌍방폭행으로 보였다면, 김씨를 폭행한 보디가드들도 함께 연행해야 하는 게 타당했는데도 경찰은 김씨만 경찰차에 태웠다. 심지어 미란다 원칙도 고지하지 않았다. 
 

▲ ▲상교씨는 역삼지구대서 경찰관들에게 폭행당한 후 본인의 모습을 직접 촬영했다.

김씨 입장에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차 안에서 김씨는 경찰들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 내가 신고자고 (경찰도)폭행을 목격하지 않았느냐?”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경찰은 “OO 좀 조용히 하고 가자”며 욕설을 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경찰차 안에서 폭행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집단폭행을 당해 갈비뼈가 아팠다. 뒷쪽으로 수갑을 채워 숨쉬기도 힘들었다. 경찰관에게 ‘수갑을 좀 풀어달라’고 하니 계속 조용하라고 욕만 했다”며 “재차 ‘아파 죽겠으니깐 좀 풀어달라’고 하니 한 경찰관이 아프다는 갈비뼈를 주먹으로 움켜쥐었다. 아파서 몸부림치자 어깨를 강하게 3대나 때렸다”고 말했다. 

7시15분경 김씨는 역삼지구대로 연행됐다. 김씨가 경찰관을 향해 “어떻게 경찰이 신고한 사람을 때리냐. 내가 신고한 사람”이라고 외치자 한 경찰이 “이 OO가 조용히 하라니깐. 아직도 떠드네”라며 김씨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후 구둣발로 얼굴을 3차례 찼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서 김씨는 유리문에 얼굴을 부딪혀 입 안과 코에 출혈이 발생했다. 그는 한 시간가량 역삼지구대서 수갑이 채여진 채 입과 코에 출혈이 나고 있는 상태로 방치됐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경찰이 버닝썬 관계자들을 숨겨주고 있다는 심증과 수갑을 채운 채 폭행할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꼈다. 어렵게 수갑을 찬 채로 모친에게 연락해 당시의 상황을 알렸다. 

약 한 시간 뒤인 8시20분경 김씨 모친이 역삼지구대에 도착했다. 당시 피를 흘리고 있는 김씨를 목격한 모친은 “여기서 조사를 받으면 안 될 것 같다”며 119와 112에 다시 신고했다. 15분 뒤에 도착한 119 구급대원들은 김씨의 상태를 보고 “응급환자다. 급히 검사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 측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병원에)보내줄 수 없다고 막았다. 

김씨는 앞서 역삼지구대에 들어오는 과정서 입 안과 코에 출혈이 발생했는데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지켜본 경찰관들은 “저 OO 가래침 뱉는 거 동영상 찍어라. 공무집행 방해로 넣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때 경찰관 4명이 자신의 동영상을 찍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는 “경찰들은 동영상을 찍으며 나를 조롱했다. 찍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멈추지 않았다. 난생 처음 모욕감과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8시45분경. 김씨는 강남경찰서에서 조사 받기 위해 수갑을 풀었다. 김씨는 동영상 촬영을 주도한 경찰에게 “이건 침이 아니고 당신들이 폭행해서 나는 피”라며 진술서에 피를 뱉고 경찰을 향해 던졌다. 당시 해당 경찰은 “저 OO, 다시 잡아”라고 했으며, 10여명의 경찰이 김씨를 다시 제압했다. 이 과정서 김씨에겐 2차 출혈이 발생했고 다시 수갑이 채워졌다. 역삼지구대는 김씨에 대해 공무집행방해죄로 이날 오전 10시까지 추가 조서를 꾸몄다. 

그 후 김씨 모친이 직접 경찰에 다시 신고해 역삼지구대서 강남경찰서로 사건을 이관해 다시 조사가 시작됐다. 수사관들은 김씨가 술을 많이 마셔 취했던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수사관은 “거짓말 하면 너 고소할 거야”라고 압박했다. 김씨는 “네, 제가 거짓말을 했으면 고소하시고요. CCTV만 확인하면 될 일이잖아요, 제발 좀 확인해주세요”라고 사정했다.
 

▲ ▲▲ 경찰과 버닝썬 관계자에게 폭행을 당한 뒤 모친의 신고로 구급대원들이 역삼지구대로 출동해 상교씨를 검진하고 있다.

수사관들은 김씨를 폭행한 버닝썬 보디가드와 대질 심문에 들어갔는데 그는 어느 순간 주폭이 돼있었다. 버닝썬 보디가드들은 “김씨가 반강제적으로 여자에게 스킨십을 했다. 만취해 술병을 깨고 쓰레기를 던지며 행패를 부렸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버닝썬 보디가드의 진술에만 의존해 편파수사를 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경찰은 김씨에게 수차례 사건 경위서를 다시 쓰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조사는 이날 오후 2시30분까지 이어졌다. 김씨는 몸이 아파 경찰 측에 병원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 측은 “당신은 가해자라서 48시간 동안 못 나간다”며 김씨에게 ‘공무집행방해’라고 적힌 종이를 내보였다. 

모친이 경찰 측에 사정한 끝에 3시경, 겨우 경찰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김씨는 병원서 갈비뼈 골절 전치 4주, 횡문근융해증(근육이 녹아 혈액에 스며드는 증상) 진단을 받았다. 

이후 김씨는 경찰 측에 당시의 상황이 담긴 CCTV 공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당시의 상황을 확인하지 못했다.

김씨는 변호인을 통해 법원에 증거보존을 신청했고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법은 경찰에 버닝썬, 역삼지구대, 경찰차의 블랙박스를 제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김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과 유흥업소서 일어난 사건·사고가 흐지부지 덮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들었다. 실제로 그들이 용의주도하다고 느꼈다. 잘못된 공권력 행사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는 걸 막고 싶다”고 말했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사건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다”면서도 “당사자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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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