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이 겨냥한 역린 풀스토리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1.21 10:39:40
  • 호수 12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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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만큼 참았다…내전 폭발전야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비문(비 문재인)의 반격이 시작된 것일까.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 비문계 의원들이 문재인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했다. 정권교체 이후 잠잠했던 친문(친 문재인) 대 비문의 계파갈등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비문이 겨냥한 역린(군주의 분노 또는 군주가 분개할 만한 그의 약점)은 무엇일까.
 

▲ 문재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작심하고 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지적했다. 지난 11일 한국원자력산업회의가 개최한 ‘원자력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 재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다.

탈원전 재검토
작심발언 토해

그는 이 자리서 “오래된 원자력과 화력을 중단하고 신한울 3·4호기와 스와프(교환)하는 방안도 검토될 필요가 있다”며 “신한울 3·4호기 문제는 다시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원자력산업 생태계가 발전하고, 다가올 원전 해체 시장서도 대한민국 원자력산업이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게 관심을 가지고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직접 겨냥한 듯한 발언도 내놨다. 그는 “원자력업계가 문정부 들어와서 탈원전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힘이 빠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집권여당의 현역 의원이 정부의 핵심정책에 속도조절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민주당 내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전임 원내대표인 우원식 의원은 “시대의 변화를 잘못 읽은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며 “송 의원의 발언에 대해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지도부와 청와대도 우 의원의 지적에 힘을 실어줬다. 사태가 자칫 여당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으로 읽힌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된 것이기에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검토는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했으며,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금 쉽게 정책을 전환하면 안 된다”고 거들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원전 문제는 사회적 공론화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정리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논란 차단에 나섰다.

그러나 송 의원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검토가 필요하다는 기존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 15일 “화력발전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과정서 안정적인 에너지원인 원자력 발전은 장기간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해찬 대표의 비서실장인 김성환 의원까지 나서 “석탄발전소의 대안으로 원전을 지어야 한다는 논리는 마치 고속도로서 갑자기 끼어드는 차를 피하려고 중앙선을 넘는 것과 같다”고 송 의원을 비판했다. 여기에 여러 의원이 탈원전 논란에 가세하면서 당 내 갈등은 봉합이 아닌 확전 양상을 띠게 됐다.

문정부 상징 탈원전에 일침
당 지도부 합의사안도 지적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난 15일 청와대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 도중에도 나왔다. 그러나 당시 문 대통령은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한 원전 신규 건설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지난 15일에는 때아닌 ‘순혈주의’ 논란이 불거졌다. 발단은 무소속 손금주·이용호 의원의 입당 불허 결정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두 사람에게 입당 불허가 결정된 이유는 '친문계의 반대'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 탈원전 재검토를 주장하고 나선 비문(비 문재인)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영선 의원이 나서 두 사람의 입당 불허가 민주당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다. “과거 로마의 번영은 개방에 있었다”고 말한 박 의원은 “순혈주의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축적되면 때때로 발전을 저해할 때도 있다. 민주당은 순혈주의를 고수해야 할 것인지 개방과 포용을 해야 할 것인지 겸손하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상호 의원도 “이용호, 손금주 의원의 입당을 불허한 근거가 순혈주의 때문인지 우려된다”며 거들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정성호 의원은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의원 정수를 360명까지 늘리자는 주장이 거세지만 지금 국회 현실을 보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며 “의원 250명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난해 12월, 민주당 홍 원내대표가 도입에 ‘원칙적 합의’ 입장을 밝혔으며, 현재 민주당 지도부가 야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과 협상 중인 사안이다.

앞서 한마디씩 내놓은 박영선(4선)·송영길(4선)·우상호(3선)·정성호(3선) 의원은 민주당 중진 의원이자 비주류인 비문계로 분류된다. 이들이 당청 입장과 다른 목소리를 내자 문 대통령의 당선 이후 독주하던 친문계에 대한 비문계의 반격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발언권 있는
중진 나섰다

문정부 3년 차에 비문계 중진들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이에 정치권은 ‘집권 3년 차 징크스’를 거론하고 있다. 집권 3년 차에 들어서면 당청 사이에 불협화음이 커진다는 속설이다.

역대 정권은 예외 없이 집권 3년 차 징크스를 겪은 바 있어 속설이지만, 법칙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명박정부는 집권 3년 차였던 지난 2010년 친이(친 이명박)계와 친박(친 박근혜)계가 세종시 수정안에 이견을 보이면서 극렬 대치했던 바 있다.

박근혜정부 3년 차였던 지난 2015년 최고의 키워드는 ‘배신의 정치’였다.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은 국회 대표연설에 나서 박근혜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일침을 날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 대통령은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고 사실상 유 의원을 겨냥한 발언을 내놔 큰 파장을 낳기도 했다. 

이처럼 역대 정권서도 집권 3년 차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이에 따른 구심력 약화 현상은 반복돼왔다. 문정부 집권 3년 차인 올해도 상황이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서 “정부 정책이 수립되면 ‘원팀’이 돼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하루가 지난 뒤 송 의원은 문정부 탈원전 정책과 배치되는 발언을 내놨다. 
 

▲ 이용호·손금주 무소속 의원의 입당 불허에 대해 우려 입장을 나타냈던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해찬 대표가 지난 13일 기자회견서 “인위적 이합집산은 없다”고 말하고 이틀이 지난 15일 박영선·우상호 의원이 순혈주의 논쟁에 불을 지폈다. 

즉 집권 3년 차에 원심력이 구심력을 앞서는 현상이 현 민주당 내부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은 문 대통령 지지율의 하락과 다가올 21대 총선의 상관관계를 언급한다.


3년 차 징크스
왜 이런 일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소폭 반등했지만, 지난 1년간 뚜렷한 하락세를 보여왔으며 최근의 반등세도 1주 만에 하락세로 꺾였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14∼16일 사흘간 전국 성인남녀 15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17일 발표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결과, 지지율은 49.4%로 집계됐다. 이는 전주 대비 0.2%p 하락한 수치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21대 총선은 2020년 4월에 열린다. 올해 농사가 사실상 선거 결과를 좌지한다고 보면 된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비문계 입장서 공천 적신호이자 주류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명분이다. 

비주류는 총선서 언제나 ‘컷오프’ 대상에 오를 우려를 안고 있다. 대통령 입장서 집권 반환점을 넘긴 시점에 당정청의 합의된 메시지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자칫 메시지에 혼선이 생길 경우 레임덕에 걸려 집권 후반부에 대통령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문도 이 같은 정치공학을 잘 알고 있다. 때마침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2년 차 중반 때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해 50% 이하로 진입했다. 비문 입장에선 회생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역린은 ‘탈원전’이다. 탈원전은 정계·재계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 사이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서명 참여자가 이미 3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12월13일 서명운동이 시작되고 한 달여 만에 벌어진 일이다.


비문계 입장에선 탈원전이 도박을 걸어볼 만한 ‘빅 카드’인 셈이다. 여기에 탈원전을 반대하는 야권의 든든한 지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 야당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에 관한 이해관계자들의 공론화와 탈원전 정책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추진한다.

목소리 높이는 비문, 왜?
계파 역학관계 뒤바뀌나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국회에 예쭝광 대만 칭화대 교수를 초청해 가진 조찬간담회서 “(신한울) 3·4호기 공사가 공론화 과정 없이 중단돼 매몰 비용이 적게는 4000억서 많게는 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등 졸속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그동안 탈원전 반대 서명을 30만명에게 받았는데 이제는 바른미래당 등과 함께 국민 공론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서 “정부의 국가 에너지 정책 철학·기조가 바로 서 있지 못하다”며 “공론화와 국민투표를 위한 범사회적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한국당은 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전환할 시 그 내용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게 하는 에너지법 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의 중점 법안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보수 야당뿐 아니라 민주당과 뿌리가 같은 민주평화당도 탈원전 정책 재검토에 힘을 실어줬다. 민주평화당의 최대주주인 박지원 의원은 지난 15일 송 의원의 발언을 지지한다며 “이러한 소신을 대통령 정책에 반하더라도 밝힐 수 있는 문정부가 돼야 성공한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 김경진 의원도 지난 17일 “송 의원의 발언을 지지한다”며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국민 의견을 수렴해 더욱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형구 수석부대변인도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청와대의 갑질이 도를 넘었다”며 “송 의원의 발언에 당내 십자포화가 쏟아지고 있다”고 거들었다.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당내 비주류인 비문계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정치권은 ‘친문 대 비문’의 계파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여러 차례 계파 갈등으로 홍역을 치른 선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정치권의 키워드는 ‘친문패권주의’였다. 그해 안철수 전 의원은 친문패권주의에 반대한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안철수 신당을 창당했다. 박지원·주승용·김동철·문병호·황주홍·유성엽 의원 등 친문패권주의 반대에 뜻을 같이하는 호남 국회의원 다수가 안철수 신당으로 넘어가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친문패권주의라는 단어는 올해 또다시 등장했다.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은 지난 14일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의 민주당 탈당에 대해 “친문패권주의에 대한 경고”라며 “비핵화·일자리·탈원전 등 문정부의 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김 이사의 말을 국민 대다수는 찬동할 것”라고 평가했다.

주류·비주류
바로 바뀔까?

반면 비문계 중진들의 목소리 내기를 친문 대 비문의 대립 구도로 보는 시선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비문이 문정부 집권 3년 차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는 해석은 비약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비문계의 한 의원실 보좌진은 지난 15일, 순혈주의 논란이 불거진 것과 관련해 “우리의 목표는 총선승리 단 하나뿐”이라며 “지금 논란도 고언을 하는 과정서 불거진 것이지 총선모드로 전환되면 원팀이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기탁금 1위 정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지난해 국민이 기탁한 정치자금 20억5000여만원을 여야 각 정당에 지급했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가장 많은 기탁금을 받은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6억4000만원을 받았다. 2위는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으로 6억3000만원을 기록했다. 이어서 바른미래당이 4억6000만원,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이 각각 1억2000만원, 민중당이 4000만원, 대한애국당이 100만원을 지급받았다.

2017년에는 한국당이 1위였다. 당시 한국당은 12억9000만원을 받았다. 1년 새 기탁금이 반 토막이 난 것이다. 당시 2위였던 민주당은 12억6000만원을 지급받았다. 민주당 역시 1년 새 기탁금이 반 토막 났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해 기탁금을 낸 국민은 총 2만2054명이었다. 이 중 99.8%에 해당하는 2만2013명이 10만원 이하의 소액 기탁자였다. 특히 4분기에 한 해 기탁금의 대부분인 20억700여만원이 모금됐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연말정산을 앞두고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정치자금 기탁금도 연말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탁금은 연말정산 시 10만원까지 전액 세액공제된다. 10만원 초과 시 해당 금액의 15%, 3000만원 초과 시 25%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기탁금은 국민이 선관위에 기탁하는 정치자금이다. 국회의원후원회나 중앙당후원회 등에 기부하는 정치 후원금과 다르다. 공무원이나 사립학교 교원 등 국민 누구나 기탁금을 낼 수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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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