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대조폭 '신20세기파' 흥망성쇠 풀스토리

“형님이 감방서 고생하는데 밖에서 호강할 수 없지”

[일요시사=김지선 기자] 1980년대 부산 중구 남포동 일대 유흥가를 거머쥐었던 '신20세기파'. 수차례의 와해와 재결성을 거쳐 30년에 가까운 명맥을 이어온 부산의 대표적인 폭력조직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 개봉했던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이 이 조직의 행동대장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신20세기파 두목이 검거되고 이후 조직원들이 잇따라 자수하면서  이들의 뜻밖의 '의리'가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 부산지역 폭력조직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일요시사>는 부산 폭력조직의 탄생비화와 흥망성쇠 풀스토리를 풀어봤다.

야구방망이와 흉기를 든 폭력배 수십 명이 납골공원 장례식장에 들이닥친다. 상대 조직원을 찾아내 보복하기 위해 식당까지 난입했다. 이번엔 병원 응급실에서 건장한 체격의 청년 10여 명이 난투극을 벌인다. 부산지역 불법 오락실 운영권을 놓고 칠성파와 세력다툼을 벌여온 신20세기파 조직원들이다. 부산지검 강력부가 지난 20일 신20세기파 3대 두목 홍모(39)씨와 행동대장 황모(31)씨 등 15명을 검거해 재판에 넘겼다.

피비린내 나는
영역다툼

부산의 양대 폭력조직인 칠성파와 신20세기파는 영화 <친구>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다. 극 중에서 배우 유오성이 소속된 조직이 칠성파고 장동건이 행동대장으로 연기했던 조직은 신20세기파다.

영화 속 얘기처럼 신20세기파는 부산의 또 다른 폭력조직인 칠성파와 피비린내 나는 영역 다툼을 벌여왔다. 1980년대 후반 부산에서는 최대 조직으로 꼽히는 칠성파와 이를 견제하는 반칠성파가 성행했다. 반칠성파는 '신칠성파' '20세기파' '신20세기파' '유태파' '영토파' 등의 조직들이 합심해 칠성파를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나서면서 칠성파와 반칠성파 간의 끈질긴 악연이 시작됐다. 신20세기파의 30년 조직명맥의 풀 스토리는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흉악범죄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명명할 수 있다. 

1993년 7월 신20세기파가 세력을 확장시키려는 가운데 이를 주시하고 있던 칠성파의 조직원들이 신20세기파 행동대장 정모씨를 부산시 중구 보수동 한 노상에서 10여 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이 사건은 영화 <친구>에서 대표적인 장면의 소재로 쓰였고 이 영화로 인해 두 조직 간의 오랜 갈등이 다시 한 번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영화 <친구> 실제모델 조폭 '신20세기파' 무더기 검거
반칠성파 계열 30년간 '칠성파'와 반목하며 세력 키워

2006년 1월에는 전국을 들썩이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신20세기파와 반칠성파 연합조직원 60여 명이 회칼, 손도끼 등 각종 흉기를 소지하고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에 난입한 것이다. 이는 온라인상에서 ‘영락공원 집단칼부림’으로 불리며 사회를 충격 속에 빠뜨렸고 신20세기파를 와해직전 상황까지 몰고 갔던 칠성파와의 대 난투극 사건이었다. 게다가 이 사건은 추후 신20세기파의 일망타진에 결정적 요인이 됐다.

반칠성파가 칠성파와의 난투극을 모색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부산지역 양대산맥을 이루는 폭력조직 중 하나인 칠성파 계열의 '신온천칠성파' 소속이었던 양모씨가 이 조직을 탈퇴한 후 반칠성파 계열의 유태파로 옮기면서 잔인하게 난자돼 피살당했다. 이로 인해 친칠성파와 반칠성파 간의 질긴 세력다툼이 본격적으로 표면화돼 양세력 간 잊을 수 없는 대충돌이 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범죄단체성에 대한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반칠성파 조직원 30여 명만 폭처법위반(집단·흉기 등 상해)죄로 기소됐다.

이 사건의 원인은 당시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온갖 유흥업소가 문을 닫게 되고 심지어 조폭들의 주요 '밥그릇'이었던 오락실마저 불법 도박업소로 분류돼 자금줄이 막히게 된 데 있다. 더불어 '마피아' '야쿠자'등 국제범죄조직들이 국내에 속속들이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조직 간 이권다툼과 자신의 구역을 지키려는 데 혈안이 돼있었다. 특히 신20세기파는 30여년간 토착 폭력배들과 집단패싸움을 벌이며 세력을 넓혀온 예 중 하나로 꼽힌다.

2009년 11월17일 신20세기파가 농협조합장선거 후보자의 선거운동을 방해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밀양 상남농협 조합장선거에 신20세기파 조직원 20여 명이 동원돼 경쟁후보의 선거운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한 것. 조직원들은 선거운동원들에게 위세를 과시하거나 출마를 선언했던 입후보자들에게 쇠망치와 각종 흉기를 휘두르는 등 비열한 방해공작을 펼쳤다.

밥그릇 뺏겨
자금줄 막히기도

또한 신20세기파와 연합관계에 있었던 '무계파' 조직원들은 경쟁후보자에게 린치를 가해 전치 8주의 중상을 입히기도 했다. 이에 상대후보자는 남은 선거운동을 마저 끝내지 못한 채 조합장선거에 낙선했고 신20세기파가 지지했던 후보가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2010년 12월 신20세기파의 조직원 한 명이 칠성파 조직원들에게 기습폭행을 당해 부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치료만 받고 끝날 줄 알았던 당시 병원 직원들은 갑작스런 난동에 충격과 피해를 같이 입었다. 입원한 조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동석한 타 조직원들이 병원 내 보안직원들을 무작위로 폭행하고 의료진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의 온갖 진상을 부린 것이다. 이 사건으로 신20세기파는 막나가는 조직이라는 오명을 다시 한 번 쓰게 됐다.   

2011년 6월 또다시 칠성파와의 끈질긴 싸움이 재개됐다. 신20세기파 두목과 조직원들은 칠성파 조직원들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기로 마음을 먹고 조직원 약 40여 명이 사시미칼, 야구방망이 등으로 완전무장을 한 채 해운대와 서면 유흥가 일대를 떼로 몰려다니면서 칠성파 조직원에 대한 보복과 칠성파의 와해를 기도하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5일 새벽 경주 지역 사찰에 야구방망이를 소지하고 있었던 건장한 남자 7명이 무작위로 난입한다. 현광사 내부분쟁에 개입했던 신20세기파는 조직원 일부를 둔기와 함께 보내 잠을 자고 있던 분쟁 중 반대파 승려들을 무차별 난타했다. 당시 그들은 “무릎 뼈를 부숴서 걷지 못하게 만들라”고 위협을 가한 후 승려들의 방에 들어가 야구방망이로 무릎 쪽을 무차별적으로 가격해 뼈가 아스러질 정도의 골절상을 입혔다. 이로 인해 현광사의 승려들은 전치 9주~15주의 치료를 요하는 중상을 입었고 조직은 힘없는 종교인들에게까지 위협을 가하면서 비난세례를 피할 수 없었다.

이즈음부터 영락공원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던 신20세기파의 주요 조직원들이 대부분 출소하며 조직은 막강한 세력으로 발전했다. 뿐만 아니라 반칠성파의 연합조직들도 신20세기파에 힘을 더하며 조직의 건재함을 새삼 실감케 했다.

또 다시 시작된
끈질긴 싸움

하지만 검찰의 수사망은 그리 허술하지 않았다. 영락공원사건 이후 신20세기파의 두목 포함, 조직원들이 30여 년동안 가담한 모든 형사사건들을 면밀히 조사하는 것은 물론 최근 동향 자료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신20세기파 주요 조직원들이 출소한 지 6개월 만에 당당히 재건할 수 있었던 활동 전모를 낱낱이 파헤칠 수 있었다.

사실 그들은 은밀히 지속적인 수사기관의 레이더망에 잡혀 단속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20세기파는 변함없이 세대교체를 해가며 부산지역 남포동 일대를 근거지로 오락실 운영과 퇴폐업소 섭렵으로 자금줄을 확보했다. 약자를 상대로 한 금품갈취 또한 상당했으며 일반인 상대 청부폭력도 개의치 않고 진행했다. 조직의 세력 확장을 위해 새벽녘에도 난투극을 벌이는 극악범죄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신20세기파 세대교체의 주요 타깃은 고교 시절에 야구, 복싱, 레슬링, 유도, 태권도 등 운동선수 출신의 운동신경이 뛰어난 자들과 소위 일진세력에 속해있는 사람들로 구성됐고 인위적으로 그들에게 접근해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원들은 조직 재건을 위해 미성년자에게까지 손을 뻗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졸한 영입을 이어왔다. 

그 중에 프로야구 선수출신 위모씨도 포함돼 있었는데 그는 ‘남포동 대가리’라는 별칭으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면서 고교싸움의 일인자로 불렸다. 위씨는 2007년 SK와이번스로 입단해 고교야구 유망주 중 한 명으로 주목받기도 했으나 5년 전 그가 퍽치기 범행의 전과를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네티즌들 사이에 일파만파로 퍼지며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는 바로 임의탈퇴 명을 받고 구단을 떠났다. 군대를 다녀온 후 위씨는 곧 신20세기파 조직원으로 활동하며 조직의 세력을 넓혀가는 데 일조했다.

알짜 오락실 옆 조폭 이권 따라 혈투…밥그릇 챙기기
조직원들 ‘조폭의리’로 줄줄이 자수…조직 사실상 와해

한편 부산지검 강력부는 이번에 신20세기파의 와해를 목적으로 치밀하게 증거확보에 돌입했는데, 그 이유는 칠성파의 최근 동향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칠성파는 아직도 부산의 최대 범죄조직으로 자리를 확보하고 있지만 지난 2010년 두목 이강환을 검거한 이후 조직 활동을 세분화 시켰다. 당시 두목 이씨는 부산의 모 건설업체 대표를 위협함과 동시에 4억원 상당의 금품갈취와 납치폭행 혐의로 구속됐는데, 다름 아닌 시민의 제보로 검거됐다.

부산의 대표폭력조직인 칠성파의 두목이 검거되자 검찰은 자연스럽게 경쟁조직 중 대표인 신20세기파 두목을 그 다음 타깃으로 삼았다. 검찰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신20세기파의 흉악범죄 증거사례들을 차례로 확보해 올해 1월부터 6개월 동안 두목 홍씨의 검거에만 힘을 쏟았다. 이후 두목 홍씨가 검거되자 서로 짜기라도 한 듯 주요 간부급 조직원들이 줄줄이 자수를 감행해 사실상 부산의 거대조직중 하나인 신20세기파의 와해가 성립됐다. 이것은 검찰이 남은 토착 폭력조직들 또한 좌시하고 있지 않겠다는 경고를 대신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이는 올해 초 개봉했던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봤듯 과거처럼 거리에 활보하고 다니기는커녕 검찰의 손바닥 안에서 요리조리 몸을 숨기며 발붙일 곳을 찾아 헤매는 폭력조직들의 현재 모습이다. 심지어 칠성파도 부산지역 곳곳에 소두목을 두고 관리하는 형태로 시스템을 바꿔 검찰의 단속을 조금이라도 피하려 애쓰고 있다. 아직도 뒤에서는 더욱 진화된 방법으로 경찰과 검찰의 눈을 피해 범죄를 일삼는 어둠의 조직들이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숨통도 그리 오래가진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대교체하며
조직세력 넓혀

검찰은 이번 수사 이후 “파악된 첩보를 근거로 전통적인 폭력조직의 자금줄인 불법오락실, 퇴폐업소에 관해서도 비정기적인 단속을 실시해 조직 활동이나 세력 확장을 위한 자금 마련을 차단할 것이다. 가능한 수사역량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결집하고 지속적인 수사로 대형범죄조직의 와해를 위해 조직원 검거에 충실할 것이다”라고 강력한 선전포고를 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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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