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부 가상화폐·노정부 바다이야기’ 평행이론 내막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2.24 10:46:23
  • 호수 11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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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꼴이 묘하게 빼박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레임덕의 신호일까, 개인의 일탈일까. 문재인정부는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검찰수사관) 사태로 신음하고 있다. 김 수사관의 폭로는 정부·여당의 핵심 인사들을 겨냥했다. 그중 올해 초 참여정부(노무현정부) 인사들의 가상화폐 투자 동향을 파악했다는 폭로가 눈에 띈다. 청와대는 해명 도중 ‘바다이야기’를 언급했다.
 

“제2의 바다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17일 기자들에게 공지 메시지를 보내면서 한 말이다. 당시 가상화폐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할 필요성이 있었음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김 대변인은 “지난해 가상화폐 투기가 과열되며 범죄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심지어 참여정부 관련자들이 가상통화에 관여하고 있다는 풍문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BH가 직접
동향 파악

앞서 김 수사관은 <조선일보>를 통해 “지난해 말 비트코인(bitcoin) 등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여부를 두고 국민 여론이 들끓었을 때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의 지시를 받고 참여정부 인사들의 가상화폐 보유 여부를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고건 전 국무총리 아들 고진씨, 변양균 전 정책실장,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장관,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등 동향 파악 대상자의 실명까지 공개됐다. 즉 참여정부 당시 고위 공직자 및 가족들까지 그 대상이었다는 뜻이다. 김 수사관은 이들의 가상화폐 투자 동향 정보를 수집해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김 수사관은 박 비서관의 지시로 동향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반면 박 비서관은 복수 언론사와의 인터뷰서 해당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청와대 역시 “반부패비서관실은 가상화폐 보유정보를 수집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며 피해대책 수립에 꼭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다는 입장이다.


가상화폐 투기 광풍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불었다. 이 기간 ‘일확천금’을 노리고 가상화폐 투자에 ‘올인’하는 사람도 있었다.

문정부는 가상화폐 규제에 나섰다. 지난해 12월28일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열린 긴급 관계부처 차관회의서 상황에 따라 가상화폐 거래소를 강제 폐쇄하는 방안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발표가 나왔다. 정치권은 가상화폐 붕괴가 향후 문정부의 최대 ‘리스크’가 될 것이라 예견했다. 가상화폐가 제2의 바다이야기라는 얘기는 이때부터 나왔다.

참여정부 인사 가상화폐 보유 조사
전 감찰반원 폭로에 청와대 화들짝

이렇듯 별개의 두 사건이 동시에 거론되는 이유는 서로 묘하게 닮아 있기 때문이다. 바다이야기는 지난 2004년 말 ‘파친코 머신’을 차용한 사행성 게임이다. 도심 유흥가는 물론 골목 안까지 점포가 들어왔다. 2006년까지 게임기 4만5000여대가 팔리는 등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사회 전반에 한탕주의가 만연하자 2005년 말부터 게임의 사행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은 물론 자살자도 속출했다. 여기에 당첨 내용을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혼란이 일었다. 보다 못한 참여정부는 점포를 없애는 등 진화에 나섰다.
 

한탕주의의 만연으로 사회 불안이 발생해 정부가 규제에 나섰다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두 사건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정부 내부 인사가 연루된 사건이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참여정부 집권 4년 차에 정권 실세들이 바다이야기에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이를 집중 공격했다. 그러던 중 국세청 출신 권모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의 모친이 경품용 상품권 업체의 지분을 소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가·관가는 물론 폭력배까지 연결됐다는 의혹으로 번지면서 해당 사건은 정권을 흔드는 게이트로 비화됐다.

묘한 기시감
어디가 닮았나

나경원 당시 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서 “‘오염된 바다’가 단순한 정책 오류를 넘어 ‘정(가)·관(가)·폭(력배)’ 세 축이 돈과 이권을 주고 받아온 권력형 도박 게이트란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며 “대통령을 최측근서 보좌하는 행정관의 경품용 상품권 업체 지분 보유와 발행업체 선정 개입 정황, 상품권 업체 대표의 남편이 막강 권력기관인 국세청 직원이란 점, 여권 실세들을 등에 업은 조직폭력배의 상품권 유통망 장악 등 검은 커넥션이 그런 상황을 예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상화폐 역시 정부 내부 인사가 연루돼 이득을 챙긴 사건이 발생했다. 문정부의 가상화폐 대책에 관여했던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직원이 대책 발표 직전 가상화폐를 매매해 시세차익을 본 것이다. 금융 당국은 직원들에게 가상화폐 거래 금지령을 내렸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진 후였다.

문정부 인사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가상화폐에 투자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당시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정부가 지난 (1월)15일 오전 9시에 가상화폐 관련 엠바고 보도자료를 공지하고 9시40분에 엠바고를 해제했다”며 “이 40분이 작전시간으로, 시간대별 시세 변동을 분석해보면 엠바고 해제까지 시세차익이 큰 폭으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같은 시기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문정부 인사들이 가상화폐 투자에 많이 참여했다는 제보가 있었다”며 “이런 가운데 금감원 직원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자 이익을 챙기는 사건이 적발된 것을 보면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가 결코 허위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고 했다.

 

▲ ▲발언하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바다이야기는 참여정부를 모태로 한 현 정부의 트라우마다. 한명숙 당시 총리는 “사행성 오락을 바로잡지 못했다”며 사과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방송에 나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어수선한 BH
칼 빼들어

청와대는 가상화폐 관련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했다고 강조한다. 반면 보수야권은 이를 현 정부의 민간인 사찰로 본다. 고건 전 국무총리 아들 고진씨, 변양균 전 정책실장 등은 김 수사관이 동향을 수집할 당시 이들의 신분이 민간인이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7일 국회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박관천 사건’ 당시 비서실의 국기 문란이라고 주장했고, 후보 시절에는 불법사찰을 막겠다고 했다. 이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적폐청산을 강도 높게 수사하겠다라고도 했다”며 “앞에서는 칼을 들이댔지만 뒤로는 청와대 감찰반원이 민간인 사찰을 하면서 새로운 적폐를 쌓아가는데 ‘내로남불’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나경원 원내대표도 “(박관천 사건과) 다르지 않다. 데자뷰를 보는 것 같다”며 “한국당은 이 사건을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하고 조속히 국회 운영위를 소집해 이 부분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사실을 밝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운영위는 청와대를 소관기관으로 한다.


한국당은 논평을 통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이미 인사검증 실패, 민정수석실 소속 직원들의 불법 행위, 특감반 관련 논란으로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불가능해진 조 수석을 반드시 경질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김도읍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특감반 정권 실세 사찰 보고 묵살 및 불법사찰 의혹 진상조사단’을 구성할 계획이다.

한탕주의→사회혼란→정부규제
내부정보 이용해 부당이득 챙겨

바른미래당은 논평을 통해 이번 사건과 관련한 청와대 대응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종철 대변인은 “‘미꾸라지’라느니, ‘법적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느니, ‘법무부에 추가 징계를 요청하겠다’느니, 진실 규명의 성실한 노력보다도 내부고발자에 대한 모욕과 엄포에 총력을 쏟고 있다”며 “국민의 의문을 깔아뭉개거나 동문서답만 할 게 아니라, 앞뒤 맞는 설명이든 해명이든 제대로 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정책수립에 필요한 기초자료 수집을 사찰로 규정할 수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대변인은 “이런 것(정책수립에 필요한 기초자료 수집)을 민간인 사찰이라고 한다면 무엇으로 정책을 만들 수 있겠나”라고 야권의 공세에 즉각 반박했다.
 

▲ 청와대

김 대변인은 추후 기자들에게 공지 메시지를 통해 민간인 사찰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라며 대법원 판례를 전달했다. 대법원은 지난 1998년 7월24일 판결서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공무원이 법령에 규정된 직무 범위를 벗어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평소의 동향을 감시·파악할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개인의 집회·결사에 관한 활동이나 사생활에 관한 정보를 미행·망원활용·탐문채집 등의 방법으로 비밀리에 수집·관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민간인 사찰?
“절대 아냐”

김 수사관의 폭로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까지 흔들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조사하고 20일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의 12월3주차 국정수행 평가’를 보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포인트 내린 46.5%로 집계됐다. 이는 취임 후 최저치다(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참여정부 말기를 뒤흔들었던 바다이야기 사태가 재연되려는 조짐이다. 이에 청와대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명의로 김 수사관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는 등 엄중 대처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특감반 비위 문제와 관련해 조국 민정수석에게 특감반 개선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과기부 사무관 만취 추태 전말

국회 본관 앞에서 술에 취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무관이 현금을 뿌리는 소동을 벌였다. 지난 17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45분께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 밑에서 과기부 내 서울 지역 전파관리소 소속 사무관 이모씨가 주취상태로 외투를 벗고 조끼만 입은 채 소리를 지르면서 현금 5만원권 20장가량을 뿌렸다.

이모씨는 1분 뒤인 9시46분께 국회경비대의 제지를 받고 9시54분께 외곽 3문으로 퇴장했다. 국회경비대 측은 현장에 떨어진 돈을 모두 회수해 A씨에게 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모씨는 폭력 등 범법행위는 저지르지 않아 경찰에 입건되지는 않았다. 국회 관계자는 “이모씨가 국회 내 마땅한 흡연 장소가 없어 화가 난 것 같다”고 말했다.

여의도지구대 관계자는 “신고 들어온 건이 없다”며 “폭력을 행사했다거나, 도로에 돈을 뿌려서 교통을 방해하는 등 제3자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현장서 마무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과기부는 이와 관련 “해당 사무관은 본청 소속이 아닌 서울 지역 한 전파관리소 사무관으로 병가를 내고 질병치료를 받아 오던 중 소동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정확한 경위를 파악 중이며, 그 결과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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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