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날림’ 황당 예산 대해부

없던 돈도 뚝딱 의원님의 세금 나르기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2019년도 예산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469조의 나라 살림은 법적 권한이 없는 소소위를 거치며 얼룩졌다. 이 과정서 여야 실세들의 지역구 예산이 배정됐다. 민생과 경제를 외치던 이들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리는 까닭이다. 시민사회 일각에선 시간이 지나도 올해 예산안 처리 과정을 잊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2019년도 예산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지난 8일 새벽 4시30분. 국회서 2019년도 예산안이 통과됐다. 법정처리 시한을 6일이나 넘긴 늑장 처리였다. 국회는 지난 2014년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후 가장 늦게 예산안을 처리했다. 예산안은 극심한 여야 갈등의 산물이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의원 스스로 법정 시한을 지키지 못한 것도 모자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더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럴 거면 법을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최장 늑장
허점 가득

법정 시한 초과 외에도 2019년도 예산안은 허점으로 가득했다. 특히 예산안 처리 과정은 석연찮은 대목으로 가득하다.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건 지난 9월3일이다. 그러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하 예결위)는 허송세월을 보냈다. 지난 9월13일 예결위 1차 전체회의가 있었지만 당시 회의는 여야 간사 선임을 위해서였다. 2차 전체회의는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있던 지난달 1일 개최됐다. 국회는 정부 예산안이 제출된 때부터 2차 회의까지 60일을 날린 셈이다.


헌법 제54조 제2항에 따르면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내년 1월1일) 30일 전(지난 2일)까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 결국 국회는 남은 한 달 동안 470조(정부안)의 예산안을 심사할 수밖에 없었다.  

예결위 전체회의는 총 11차례 열렸다. 그러나 1차 회의는 여야 간사 선임, 10차 회의는 예결위 산하 예산안조정소위원회(이하 예산안조정소위) 구성을 위해서였다. 나머지 회의에선 여야 신경전이 극심해 진행이 원활하지 않았다. 

지난달 21일 예결위 산하 예산안조정소위가 출범했지만 여야의 간극을 좁히기 어려웠다. ‘세수 4조원 파행’이 발생한 것도 이때다. 지난 1일 예결위 권한이 정지되면서 예산소위 산하 소소위원회(이하 소소위)가 열렸다. 결국 2019년도 예산안은 밀실심사의 대명사로 불리는 소소위를 거쳐 지난 8일 새벽 4시30분 의결됐다.

법정 시한 초과 부지기수, 실속도 없어
법적 근거 없는 소소위…때만 되면 활개

이번 예산안 논란의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건 소소위 이후 수정된 예산이다. 국회 심의 과정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인 대목은 보건·복지·고용 예산과 SOC 예산이다.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1조2000억원 삭감됐고 SOC 예산은 1조2000억원 증액됐다. 문제는 통상 지역구 예산으로 불리는 SOC 사업 예산이 여야 실세들의 지역구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눈길이 가는 점은 정부안에 없던 예산들이 대거 책정됐다는 것이다. 우선 예결위 간사들의 지역구에 예산이 편성됐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구)은 부산 사상구 분뇨처리시설 사업비 17억원을 챙겼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간사인 조정식 의원(경기 시흥을)은 죽율푸르지오6차 앞 선형불량도로 개선비 10억원을 확보했다. 여기에 시흥 공동형장사시설 건립비 4억9200만원을 챙겼고, 시흥 복합체육센터 건립비에도 10억원을 책정했다. 

예결위원장인 한국당 안상수 의원(인천 중구동구강화군옹진군)은 강화 황청리 추모공원 예산 8억4000만원을 챙겼고, 강화 청련사 개보수비에는 9600만원을 확보했다. 또 계양-강화 고속도로 조사 설계비 10억원, 인천 수산기술지원센터 청사 신축 예산 10억원, 강화 옥림·용정 지역 하수로 정비 예산 3억원이 책정됐다. 어유정항 접안시설 정비 예산에는 23억1000만원이 신설됐다.

한국당 함진규 정책위원회 의장(경기 시흥갑)은 시흥시 매화지구 개발 제한구역 주민지원사업 5억원을 증액했다. 

여야 지도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세종시)는 국회세종의사당건립과 세종 산업기술단지(테크노파크) 조성 사업에 각각 10억원과 5억원을 확보했다.

지역구 예산
재미 쏠쏠∼

한국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서울 강서을)는 ‘해외 건설인의 날’에 대한 예산을 3억원 챙겼다. 건설노동자 출신인 김 전 원내대표는 해외 건설인의 날 제정 촉구 결의안을 낸 바 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서울지하철 9호선 증차 예산 500억원가량을 서울시 예산에 넣는 식으로 우회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군산 해양관광복합지구 조성에 10억원을 마련했다. 무소속인 문희상 국회의장(의정부 갑)은 망월사역 시설개선 15억원을 챙겼다.

정부안서 책정된 예산보다 증액된 경우도 있었다. 이 역시 여야 실세들의 지역구로 돌아갔다. 장제원 의원은 부산 사상공단 재생사업 시설비와 부산 사상-하단 도시 철도 건설비를 각각 10억원과 20억원을 증액했다.

안상수 의원은 강화 한겨레 얼 체험공원과 무의도 휴양림 조성에 각각 7억8700만원과 10억원을 증액했으며 국립인천해양박물관 건립비 16억7700만원을 책정했다.

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경기 구리시)은 구리 동구릉 역사경관 복원정비와 안성-구리 고속도로 건설비에 각각 5억원과 600억원, 구리시 사노동 도시계획도로 개설사업비와 구리시 인창동 새마을 도시계획도로 개설비에 각각 10억원과 4억원을 추가로 얻어냈다.

 

▲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이해찬 대표는 국립세종수목원 조성 자금에 253억원을 따냈으며 세종 지역의 위험 도로 구조 개선비 3억1300만원을 얻어냈다.

김성태 전 원내대표는 김포공항 부지 내 국립항공박물관 건립·운영과 공항개발조사(고도제한 국제기준의 김포공항 주변 적용방안연구)에 각각 48억4000만원과 5억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일, 정부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 당시 “사회안전망과 복지 안에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함께 잘살아야 한다”며 ‘포용국가’를 강조했다.

집권 여당의 수장인 이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서 승리할 당시 “대통령을 도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조화를 이루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만들어 가겠다”며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당시 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투톱을 형성했던 김 전 원내대표도 민생경제를 끊임없이 강조했다.

여야 모두 민생경제에 크게 공감한 셈이다. 여야는 지난달 열린 여야정 상설협의체서도 경제와 민생 상황이 시급하다는 것에 공감대를 표한 바 있다. 

그러나 지역구 사업으로 대표되는 SOC 사업 예산이 늘어났고,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깎였다. 여야는 지역구 예산안 확보에 있어서만큼 한마음 한뜻이었다. 예산안 처리 과정서 보여준 치열한 대립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간 여야 모두 한 목소리로 민생과 경제를 외쳤지만 결과는 달랐다. 

일자리 예산 삭감 중 주목을 받은 건 청년일자리 정책이다. 여야 모두 이구동성으로 청년일자리난 해소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 실세들의 늘어난 SOC 예산과 달리 청년일자리 예산은 감소했다.

청년일자리 정책을 대표하는 정책은 청년내일채움공제와 청년재직자채움공제 그리고 청년구직활동지원금 등 크게 3가지다.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한 청년을 대상으로 자산형성을 지원,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정책이다. 구체적으로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한 청년이 3년간 600만원을 저축할 시 정부서 매년 800만원을 지원해 3000만원의 목돈을 마련해주는 사업이다.


그러나 청년내일채움공제 예산은 403억원이 줄었다. 이로 인해 신규 가입대상자는 2만명 줄어들게 됐다.

SOC↑
복지↓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 예산 역시 감액됐다.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는 청년내일채움공제와 비슷한 사업으로 중소·중견기업에 재직 중인 청년들이 매달 12만원을 납부하면 5년 후 3000만원을 수령하게 된다. 국회는 이 사업의 예산을 180억원 줄였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은 대학 졸업 2년 이내의 구직청년들을 대상으로 6개월간 매달 50만원의 현금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이 예산 역시 437억원이 감소했고, 대상자도 2만명이나 축소됐다.

복지예산 감소와 SOC 예산 증가는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난해 국회 예산안 통과 때도 대동소이했다. 작년 예산안 처리과정에선 최대 수혜자가 ‘여야 3당 예결위 간사’라는 말이 나왔다. 또한 당시 여야 실세들 역시 지역구 예산을 실속있게 챙겼다는 지적이 있었다. 작년 예산안도 국회 소소위를 거치면서 복지예산이 1조5000억원 줄어든 반면 SOC 예산은 1조3000억원 늘었다. 
 

▲ ▲▲ 안상수 예결특위위원장(사진 가운데)과 조정식(더불어민주당, 오른쪽)·장제원(자유한국당) 간사

물론 SOC 예산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로 평가받는다. 안 위원장은 지난 11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서 이를 강조했다.

안 위원장은 증액된 예산의 상당 부분이 지역 SOC 사업에 투입돼 ‘지역구 예산 늘리기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우리나라 국정운영서 중요한 것이 지역의 균형발전”이라며 “시장, 군수, 혹은 시도지사들과 협의해 나온 예산이 지역으로 내려간다. 그분들의 요구를 들어주며 정부서 짠 예산과 접점을 찾는 것은 상당히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민생 시급 이구동성…속내는 다르다?
거대양당 VS 야3당, 대결 구도 치열

이어 “중앙정부서도 예산안을 만들 때 (지역 예산을) 어느 정도 감안해 예산안을 짜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예산안이 통과된 이후 각 당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예산안을 정기국회 내에 마무리 짓게 돼 다행”이라며 “문재인정부가 일하고자 하는 예산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한국당 김 전 원내대표는 “역대 가장 어려운 예산처리였다”며 “무분별한 예산을 삭감해서 경제활성화 분야, 지역경쟁력 강화서 예산 증액이 이뤄졌다”고 소회를 밝혔다.

반면 예산안과 선거제 개혁의 동시 처리를 주장하던 야3당은 크게 반발했다. 바미당 손학규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예산안 처리 강행을 비판하고, 선거제 개혁을 촉구하면서 단식에 돌입했다. 

정의당 김용신 정책위의장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과 한국당 실세의 SOC 예산을 ‘나쁜 증액’으로, 무분별하게 줄인 복지·청년 예산을 ‘나쁜 감액’으로 선정했다. 바미당 김수민 원내대변인도 “취약계층, 청년 등 약자들을 위한 새 정치의 새싹까지 먹어치워 버린 ‘더불어한국당’의 만행”이라고 쏘아붙였다.

더불어한국당?
야3당의 비판

김 대변인은 “돼지우리만도 못한 국회를 만든 그들에게 국민의 심판이 있기를 바란다”며 수위를 높였다.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도 “이번 예산 파동서 ‘적폐 본진’ 한국당만 신이 났다”며 “더불어한국당은 민생을 위한 고용보험과 쌀 직불금을 줄여 더불어한국당 의원들의 지역사업에 퍼부었다”고 날을 세웠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예산안 통과, 문의 평가는?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오후 청와대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했다. 문 대통령은 6주 만에 열린 수보회의서 “법정 시한을 넘겼지만 늦게라도 통과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국회 심사 과정서 청년 구직활동 지원금, 청년 내일채움공제 등 청년 일자리 예산 6000억원이 감액된 부분은 아쉽지만 대체로 정부안이 유지됐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2019년도 예산에는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라는 정부의 국정 철학이 담겨있다”며 “사회안전망 확충과 함께 경제 활력과 역동성 제고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이어 “가계소득을 올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노력에 큰 비중을 둬 민생 개선과 복지 사각지대 해소 등 포용국가를 향한 비전을 담은 예산들이 시행되면 국민들의 어깨가 가벼워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 하위 소득 계층 지원 사업과 같이 시급을 요하는 사업들은 조기 집행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 달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와 여야 간 소통과 협력으로 협치의 좋은 성과를 보여준 국회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예산안과 선거제 개편의 연동을 주장하는 바미당과 평화당 그리고 정의당은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사실상 민주당과 한국당의 협치를 언급하며 고마움을 드러낸 것이다. 야3당이 주장하는 ‘야합’ ‘날치기’와 상반된 반응이다. 

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지난 12일 “문 대통령이 양당 날치기를 협치의 좋은 성과물이라고 했다. 아연실색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이 예산안 처리를 평가한 지난 10일은 손 대표와 이 대표의 단식이 5일째 되던 때다. <수>

<기사 속 기사> 예산전 치른 여야 다음 전장은?

예산안 처리 과정서 발생한 극심한 갈등은 선거제 정국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야3당이 본회의 참석을 거부한 상태서 예산안 처리를 강행했다. 예산안과 선거구제 개편을 연동했던 야3당에겐 선거구제 개편이란 카드 한 장만이 남아있다. 여야는 선거제 개편을 두고 외나무다리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여야의 선거제 합의가 극적으로 이뤄진다 하더라도 향후 정국은 여러 차례 삐걱거릴 공산이 크다. 여야의 갈등은 정치적 갈등을 넘어 서로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출구 전략 없이 단행된 바미당 손 대표와 정의당 이 대표의 단식이 이를 대변한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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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