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아웅’ 검찰 수사 ‘돈 봉투 사건’ 의혹 넷

‘선배’라 봐줬나? ‘여당’이라서 봐줬나? “아님 뭔가 켕겨서…”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요즘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숱한 비판에도 눈 하나 꿈적 않는 모양새다. ‘돈 봉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속속 드러나는 살포 정황과 잇따른 증언에도 '피라미'만 잡고 ‘대어’들은 불구속 기소로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 지었다. 금권정치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며 세간의 시선이 쏠려있음에도 어김없이 뚝심(?)을 발휘한 것. 변죽만 울리다 종결된 검찰수사에 의혹만 더욱 증폭된 양상이다. 권력 앞에서 부러진 칼날 탓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짚어봤다.

이른바 ‘고승덕 폭로’로 정국을 뒤흔들었던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지난 21일 마무리됐다. 새해 벽두 새누리당이 수사의뢰서를 제출해 사건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배당된 지 48일만이다.

고승덕 의원은 지난달 8일 검찰에 직접 출두해 “2008년 7월 전당대회 2∼3일 전에 의원실로 현금 300만원이 든 돈 봉투가 전달됐으며, 봉투 안에는 박희태라고 적힌 명함이 들어있었다”고 폭로했다.

여기에 박희태 전 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씨가 지난 9일 한 언론사에 ‘고백문’을 보내며 돈 봉투 살포에 대한 확인사살까지 이어갔다. 하지만 검찰은 눈앞의 몸통을 제대로 지목도 못한 채 ‘허당’에 가까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되레 의혹만 증폭시키는 양상이다.

‘배달꾼’ 안병용만 구속
검찰, 윗선 봐주기 논란

검찰은 지난 21일 그간 ‘윗선’으로 지목된 박 전 의장과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을 정당법 50조(당대표경선등의 매수 및 이해유도죄)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박 전 의장과 김 전 수석이 법적·도덕적 책임을 지고 모두 공직을 사퇴한 점을 고려해 사법처리 방향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서울중앙지검 정점식 2차장검사는 “전대 직전 고승덕 의원실에 전달된 300만원은 박 전 의장 측에서 나온 돈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정 차장은 하지만 안병용 새누리당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을 통해 구의원들에게 건너간 현금 2000만원에 대해 “박 전 의장의 관여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범죄사실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의혹 1. 정황증거에도 돈 봉투 받아먹은 인물 단 한명도 못 찾아
의혹 2. 돈 봉투 살포한 ‘뿔테남’ 곽씨 외 검은돈 배달꾼 없었나?

검찰은 이봉건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과 돈 봉투 살포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박 전 의장의 비서 고씨에 대해서는 사건 개입 정도가 미미하다고 판단해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달랑 ‘검은돈 배달꾼’에 불과한 안 위원장만 구속 기소 된 채로 사건은 서둘러 매듭지어졌다.

정 차장은 “검찰총장의 말씀에 따르면 환부를 도려내는 스마트한 수사, 국민적 관심 사안을 신속히 종결 처리했다”고 자평했다. 또 현직 국회의장 기소는 헌정 사상 처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결과에 비판 여론이 빗발치는 실정이다. 정황상 상당한 개연성과 증언들이 있었음에도 핵심인물들에 대해 불구속 기소에 그치며 ‘윗선 봐주기’라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검찰이 윗선들의 솜방망이 처벌에 ‘공직사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위 공직자의 부적절한 처신에 엄격한 법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검찰은 윗선들 모두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며 ‘입맞춤’의 빌미까지 제공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돈 봉투 지시자인 ‘몸통’은 제대로 지목하지 못한 채 배달꾼에 불과한 안 위원장만 구속함으로써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점도 비판 대상이다.

이처럼 ‘속빈 강정’이 따로 없는 검찰의 수사결과에 의혹만 더욱더 무성해진 모양새다. 먼저 고 의원 외에 돈 봉투를 받은 인물은 단 한 명도 찾아내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의혹의 대상이다.

힘들게 잡은 핵심인물
‘뿔테남’ 곽씨 부실수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도 유분수’란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지난 2008년 당시 친이계로 분류된 새누리당 의원이 100여 명에 육박했던 점을 고려하면 박 의장 캠프에서 고 의원 한 사람에게만 돈 봉투를 전했을 리 만무하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검찰은 고 의원에 전달된 돈 봉투 300만원과 안 위원장이 살포를 지시한 2000만원 외에 다른 돈 봉투의 존재를 전혀 찾아내지 못한 것. 일반인들이 보더라도 다른 의원실에 돈 봉투가 뿌려졌을 것으로 볼만한 정황증거는 한 둘이 아니다.

‘뿔테남’ 곽씨에게서 돈 봉투를 직접 받은 고 의원의 전 여비서 이모씨는 쇼핑백에 같은 봉투가 여럿 들었었다고 진술했다. 앞서 고 의원은 기자회견 당시 “자신이 받은 돈 봉투와 비슷한 노란색 봉투가 잔뜩 있었다”고 말해 더 많은 검은돈이 오갔을 가능성을 열어뒀다.

게다가 안 위원장에게서 돈 봉투 살포를 지시받은 한 구의원이 순번이 매겨진 당협위원장 명단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19번부터 49번까지 돈 봉투를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1~18번은 다른 누군가가 전달했을 것이다”고 폭로했다.

박 전 의장 자신도 “약간 법의 범위를 벗어난 여러 관행이 있었던 게 사실이며, 많은 사람을 한곳에 모아야 하므로 다소 비용이 든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정황에도 검찰은 “다른 의원들에게도 전달됐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곽씨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직접적 증거나 진술이 없는 한 실제 수사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입장만 강조했다. 스마트한 수사를 했다고 강조했지만 결국 관련자들 ‘입’만 쳐다본 수사라는 점을 자인한 셈이다.

곽씨 외에 다른 돈 봉투 배달꾼이 있었는지도 풀리지 못한 대목이다. 다수 의원들을 대상으로 짧은 시간 안에 돈 봉투를 돌려야 했다면 분명히 다른 전달자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새누리당 의원실 한 관계자는 곽씨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3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받아 자신의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언론에 털어놓기도 했다.

게다가 검찰은 어렵게 곽씨의 정체를 밝혀냈지만 조사는 단 한 번, 그것도 3시간에 그쳤다. 진술서를 확인하는 시간 등을 빼면 검찰이 곽씨를 겨우 2시간 남짓 조사한 셈이다. 진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인정한 검찰이 정작 핵심인물인 곽씨에 대해 부실한 수사진행으로 의혹을 키운 꼴이다.

검찰이 ‘검은돈’에 대한 자금출처와 자금 조성 인물에 대해서도 밝혀내지 못한 점도 의문이다. 박 전 의장의 마이너스통장 1억5000만원, 라미드그룹 수임료라는 2억원 등이 드러났지만 검찰은 실체를 규명하지 못한 상태다.

검찰은 박 전 의장이 2008년 7월 1일과 2일 자신의 하나은행 마이너스통장에서 인출한 1억5000만원 중 일부가 고 의원실에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 의원실에 전달된 300만원이 하나은행 띠지로 100만원씩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위원장이 구의원들에게 전달한 2000만원의 경우 끝내 출처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검찰은 안 위원장 등 관련자들 모두 전달사실 자체를 극구 부인해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검찰이 핵심 관련자들에게 증거인멸의 시간을 줬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박 전 의장의 전 비서 고씨는 한 언론사에 투척한 ‘고백문’을 통해 “진실을 감추기 위해 시작된 거짓말이 하루하루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이로 인해 이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허위진술을 강요받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라고 썼다. 검찰 조사과정에서 압력에 의해 허위진술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의혹 3. 스마트·스피드 수사 자평한 검찰 검은 돈 조성배경 못 밝혀
의혹 4. 친절한 검찰 ‘윗선’에게 증거인멸과 입 맞추기 시간 줬나?

이러한 고씨의 고백이 나온 일주일 뒤에라야 검찰은 비로소 김 전 수석을 소환조사했다. 게다가 ‘박희태 캠프’의 재정·조직 담당자였던 조 정책비서관이 고씨에 대한 검찰수사가 시작된 시점에서 고씨를 접촉하고, 해외순방 중이던 박 전 의장 측과 여러 차례 국제통화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이처럼 꾸준히 ‘말맞추기’를 하려했다는 정황이 속속 포착됐음에도 이들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기는 것이 합당한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증거인멸ㆍ입맞춤 시간
제공한 ‘친절한 검찰’?

이 같은 수사결과에 야당의 비판도 거세다. 신경민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지난 21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이명박·새누리당 정권의 정치검찰에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다는 점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며 “수사팀이 국회의장 공관으로 ‘출장수사’를 가서 ‘의장님’이라고 호칭하는 수사가 제대로 된 수사였을 리 없다”고 맹공했다.

문정림 자유선진당 대변인도 “검찰의 윗선 봐주기라는 의혹을 피해가기 어렵다”며 “법정에서 돈 봉투 살포의 규모, 출처, 사용처 등이 명백히 밝혀져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갈 때까지 간 막장검찰의 고의적 직무유기를 개탄한다”며 성토했다.

정치권 돈 봉투 살포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임을 고려하면 검찰의 수사결과가 초등학생도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맹탕이라는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수사결과가 부실한 까닭에 대해 한상대 검찰총장-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이상호 공안1부장이 김 전 수석과 같은 고려대 출신이기에 예견된 결과였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검찰이 돈 봉투 살포에 대한 의혹을 뿌리 뽑지 못한 채 이제 공은 사법부로 넘어간 상태다. 법정에서 명명백백히 시시비비가 가려져 금권정치라는 정치권의 악습을 끓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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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