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06)죽음

부처의 뜻에 맡기다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고문으로부터 이미 의자왕이 당나라로 이송되었다는 상황을 보고 받은 연개소문이 은밀하게 온사문을 불렀다.

“대감, 곡차 아니 술이나 한 잔 주시지요.”

담담한 표정으로 들어 선 온사문이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그를 살피던 연개소문 역시 미소를 보이고는 수하에게 술을 들이라 지시했다.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스님.”


“소승이 고맙다고 해야지요.”

조촐한 주안상

고문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온사문을 맞이했다.

“조금만 서둘렀어도 스님께 수고로움을 끼치지 않았을 터인데.”

“어차피 지나간 일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장군.”

“자, 그런 이야기는 그만 하시고.”

연개소문이 말을 하다 말고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주시했다.


“그러시지요, 어차피 일이 이리된 이상 이제 소승이 나서야지요.”

“어떻게 구출하려오?”

고문의 이야기에 연개소문도 온사문의 얼굴을 주시했다.

“부처의 뜻에 맡기려 합니다.”

“부처의 뜻이라면?”

“자비지요, 자비.”

연개소문과 고문이 온사문의 말을 헤아리는 듯 잠시 침묵을 지켰다. 

순간 조촐한 주안상이 들어왔고 연개소문이 병을 들었다.

“스님도 한잔하시겠소?”

“당연합니다, 대감.”

답을 하며 잔을 든 온사문 이어 고문의 잔을 채우자 온사문이 술병을 받아 연개소문의 잔에 술을 따랐다.

“대감, 이 일은 전적으로 소승에게 맡겨주시지요.”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허나…….”

“말씀 하시지요.”“이 일이 당고종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연개소문의 말에 온사문이 가볍게 잔을 비워냈다.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자는 말씀이십니다.”

“딱히 그를 떠나서라도 어떻게든 당나라를 궤멸상태까지 이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연유로 여차하면 의자왕을 열반의 세계로 보내드리려 합니다.”


“열반이라면?”

고문의 반문에 연개소문이 잔을 비워냈다.

“속세에서는 그를 죽음이라 일컫지요. 하오나 불가에서는 그를 열반이라 이야기합니다.” 

“스님, 불자들의 금기 사항이 있지 않소?”

“물론 사바라이(四波羅夷)라고 하여 불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네 가지 죄인 음행, 도둑질, 살인, 거짓말 등을 금하고 있지요.”

“헌데 스님께서 어찌…….”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미…….”

온사문이 잔잔한 미소를 짓자 연개소문이 잠시 생각하다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 일로 스님과 속세의 연은 접어야겠구려.”

연개소문이 다시 병을 들어 빈 잔을 채우자 온사문이 경건하게 합장했다.

온사문이 연개소문과 여러 장군들의 배웅을 받으며 요동성을 떠나 여러 날이 지난 후 당나라 수도인 장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원법사(元法寺)에 들러 고구려와 신라에서 건너온 스님들과 만나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 과정에서 사찰을 오고가는 당나라 관리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의자왕의 행방을 알아내고는 지체하지 않고 원법사를 떠나 장안의 한 가옥에 감금되어 있는 의자왕의 거처로 찾아들었다.

온사문이 다가서자 그곳을 경비하던 당나라 군사들이 급하게 앞을 막아섰다.

“스님은 뉘시오?”

자신을 가로막는 당나라 병사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합장했다.

“백제의 폐주가 이곳에 머물러 있다 해서 이왕에 이곳까지 온 김에 잠시 영혼을 구제해주기 위해 들렀다오.”

온사문이 은근한 말투로 이야기하자 당나라 병사들이 온사문의 위와 아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온사문, 금기 어기고 의자왕 열반에 들다
의자왕, 죄인의 자세로 죽음을 받아들이다

“혹시, 원측 스님!”

한순간 한 병사가 미세한 미소를 보였다.

그 병사는 온사문을 당태종이 살아 있을 당시 직접 당태종에게 도첩을 받고 원법사에서 불경을 연구하여 장안에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던 신라의 원측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온사문이 대답하지 않고 다시 가벼이 합장했다.

“소승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자비로 어리석은 폐주의 영혼을 구제할 수 있도록 선처 바랍니다.”

당나라 병사들이 다시 온사문의 전신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당당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중압감에 잠시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가는 목탁과 염주만을 지닌 모습을 확인하고 온사문을 안으로 안내했다.

“스님은 뉘시오?”

당나라 병사들이 자리를 물리자 초췌할 대로 초췌한 모습의 의자왕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온사문을 주시했다.

“소승 연개소문 대감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찾아온 고구려의 중 온사문이라 합니다.”

“연개소문의 명이라!”

의자왕이 짧게 한숨을 토했다.

“막리지께서 전하를 구출해오라는 명을 주셨습니다.”

이어 온사문이 고구려 군사들이 의자왕을 구출하기 위해 신라의 영토로 진입했었으나 한 발 늦어 일이 어그러진 사실을 전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려.”

“연개소문 대감은 신라도 그러하지만 특히 백제를 같은 민족이 세운 나라로 생각하시고 그동안 상당히 많은 애착을 보내시었습니다.”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를 어찌 구출하려 합니까?”

“막상 구출하고자 이곳까지 왔는데 지금 전하의 상태 그리고 당나라의 경비 상태를 보니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그러면 헛걸음 하신 게요?”온사문이 침묵을 지키며 가만히 의자왕을 주시했다.

“왜 그러는 게요?”

“연개소문 대감께서 여하한 경우라도 전하를 구출하라 명을 주셨습니다. 그 이면에는 대 백제국의 왕이 당나라 오랑캐들에게 수모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헤아리던 의자왕이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죽음을 의미하는 게요.”

의자왕의 얼굴에 체념의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전하, 대 백제의 혼을 이리 허무하게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 짐을 어찌 보내주겠소?”

의자왕의 표정이 차분하게 변해갔다.

“소승이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차분한 표정

그 의미를 파악했는지 의자왕이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가지런히 하고 백제가 있던 장소를 향해 큰 절을 올렸다. 그를 살피며 온사문이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감고 염송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준비되었소.”

온사문이 눈을 뜨자 의자왕이 무릎을 꿇고 죄인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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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