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망가진’ 대기업 막전막후

‘꿈 깨!’ 사라지는 차이나 드림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기업에게 중국시장은 꿈의 무대다. 14억 인구서 나오는 충분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 나가떨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한국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일요시사>는 중국 진출의 닻을 올렸지만 쓴맛을 보고 회항한 기업들을 확인했다.
 

한국은 지난 1992년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이념적으로 달랐던 양국이었지만 경제적인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한국의 기업들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압도적인 인구서 나오는 시장에 열광했다.

한중수교 후
속속 현지 진출

중소기업과 대기업들은 국내에 있던 공장을 속속 중국으로 이전했다. 양국간 경제 긴밀도가 높아지면서 한국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다른 국가를 제치고 1위(2017년 기준)를 기록했다. 하지만 정작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결과는 ‘빛 좋은 개살구’란 평가가 나온다. 

심혈을 기울여 진출했지만 중국 시장의 정치적 불안이 경영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친 탓이다. 

경영 여건도 빠르게 변했다. 중국 투자의 매력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인 값싼 노동력은 옛말이 됐다. 2010∼2016년 연평균 임금 상승률은 9.28%에 달할 만큼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6년 기준 중국의 임금은 한국의 76% 수준까지 따라왔다. 


더 이상 공장 이전의 매력을 느끼기에 어려운 구조였다. 여기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여파와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중국 진출 기업의 불확실성이 고조됐다. 잇단 리스크에 기업이 휘청거리는 사례가 잦아지자 차이나드림을 꿈꾸던 기업들이 철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지난 15일, 더페이스샵이 중국의 모든 매장을 철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더페이스샵은 2010년 LG생활건강에 인수된 해 중국 상해법인을 설립해 시장 개척을 노렸다. 

실적이 문제였다. 지난해 더페이스샵(상해)화장품소수유한공사의 194억20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반한감정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반한감정은 LG생활건강 외에도 유통 관련 한국기업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롯데쇼핑 역시 사드발 역풍을 맞은 뒤 중국 내 사업을 접기로 했다. 롯데쇼핑은 2007년부터 중국에 진출해 마트 사업을 벌였으나 신통한 성적표를 거두지 못했다. 

특히 사드 보복으로 영업점의 영업이 중단되고 매출이 80% 가까이 감소하자 시장철수라는 카드를 꺼냈다.

사드 보복이 롯데쇼핑에 집중된 것은 사드 관련 이슈가 롯데그룹과 연관돼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 부지였던 성주골프장에 사드 배치가 결정되면서 중국 내 반 롯데정서가 매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롯데마트가 손실을 본 매출 규모는 1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 정부 당국은 중국에 진출한 롯데 계열사를 상대로 위생 점검, 세무조사 등 전방위 압박을 가하면서 경영활동을 사실상 지속하기 어려웠다.

롯데쇼핑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국 내 롯데마트 철수에 속도를 내기로 해다.  중국에 설립된 법인은 총 6개로 112개의 점포가 있다. 앞서 롯데쇼핑은 롯데마트 화동법인의 74개 점포 가운데 53개 점포를 중국 유통기업 리췬그룹에 매각했다. 
 

또 베이징 점포 21곳도 중국 유통기업인 우마트에 넘겼다. 중국 내 철수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롯데마트의 중국 내 매장 철수 계획이 알려지자 현지 중국 롯데마트 노동자 1000여명은 베이징시 롯데마트 총본부에 집결해 3일동안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롯데쇼핑은 중국에 진출한 마트 사업에 이어 백화점 사업 역시 발을 빼기로 했다. 롯데쇼핑은 2008년 베이징에 백화점 매장을 론칭하면서 중국 진출을 꾀했다. 이후 5개 점포로 확대했으나 롯데마트와 마찬가지로 사드 보복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하면서 매각 수순을 밟고 있다.

값싼 노동력 옛말
각종 리스크 부각

사드 보복은 롯데의 유통부문뿐만 아니라 수년간 공들여온 ‘청두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청두프로젝트는 중국 청두시에 1400가구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 후 호텔, 백화점, 쇼핑몰, 시네마 등의 문화 편의시설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투입되는 자금 규모만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프로젝트는 롯데그룹의 염원이 담긴 사업이기도 했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 내 롯데그룹 계열사 사업이 휘청거리는 시기에도 롯데그룹 측은 청두 사업철수 전망에 대해서 사실무근이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백화점 사업까지 철수하기로 한 지금 청두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 시각이 늘고 있다. 

중국 내 쓴맛을 본 롯데그룹이 청두 프로젝트를 밀어붙일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에는 중국 유통업계에 진출한지 20년이 된 신세계그룹의 이마트가 중국 철수를 마무리했다. 이마트는 1997년 중국에 진출하면서 중국 시장을 개척했다. 중국 진출이후 30곳까지 매장을 늘렸지만 수익성 악화로 돌아서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결국 짐을 쌌다. 
 

2012년부터 출점 매장 매각에 돌입했다. 2016년에는 당시 중국 상하이의 1호점을 폐점했다. 철수 수순은 지난해말 마무리됐다. 이마트는 상하이 매장 5개를 태국 CP그룹에 일괄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매각 허가가 나지 않아 철수가 미뤄졌다. 지난해 말에야 허가를 받으면서 철수가 사실상 종료됐다.


이랜드그룹 역시 중국 시장의 한계를 실감했다. 이랜드는 자사가 운영하는 커피빈의 중국지점을 철수할 방침을 밝혔다. 

이랜드는 2016년 중국 상하이에 커피빈 1호점을 오픈한 바 있다. 이랜드는 중국 내 1000개 이상의 매장을 늘려나간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2년 만에 ‘중국몽(夢)’서 깨야 했다. 이랜드는 중국에 진출한 다른 외식사업까지 철수하기로 했다. 

철수 법인은 ‘자연별곡’과 ‘애슐리’였다. 지난 2015년 이랜드의 외식브랜드 자연별곡은 중국 상하이 와이탄 지역에 ‘자연별곡(쯔란비에구)’를 개점했다. 한식뷔페의 중국진출 사례는 처음이었다. 자연별곡 1호점은 총 660㎡ 규모에 202석의 좌석을 갖추고 손님을 맞았다. 

시작은 좋았다. 한류열풍과 맞물리면서 1개 점포서 100일동안 매출 1062위안(한화 20억원)을 기록하며서 순조롭게 사업이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여세를 몰아 2호점까지 오픈했지만 고객들의 재방문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수익이 악화돼 지난해 사업을 철수했다.

애슐리 역시 아픈 손가락이다. 패밀리 레스토랑 브랜드 애슐리는 자연별곡보다 앞선 2012년에 중국 상하이에 1, 2호점을 오픈하면서 중국 외식업계에 발을 들였다. 1호점인 상하이 푸동의 애슐리는 외식 브랜드로는 최대규모인 1530㎡로 총 400석을 확보했다. 

상하이 최대 백화점 빠바이반에 입점한 2호점은 1200㎡에 총 320석을 확보하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5개 매장까지 확대했으나 수익성은 떨어지면서 결국 중국 시장서 짐을 쌌다.


국내 의류브랜드 에잇세컨즈 역시 야심차게 중국시장에 발을 들였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지난 10일, 에잇세컨즈 브랜드를 운영하는 삼성물산 측은 중국 사드 여파와 함께 투자대비 성과가 나지 않아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한다고 밝혔다. 
 

SPA 브랜드인 에잇세컨즈는 지난 2016년 9월 상하이 쇼핑거리 화이하이루에 3630㎡ 규모의 매장을 오픈했던 바 있다. 다만 중국시장서의 완전한 철수는 아니다. 에잇세컨드는 온라인 유통 채널을 통해 중국 공략에 변화를 줄 방침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도 중국의 몽니에 불확실성이 적지 않게 부각되고 있다. 

SK가스는 2016년 중국 진출 사업을 청산했다. SK가스는 2000년 후반부터 중국내 다양한 사업들을 론칭했다. 하지만 해외 기간산업 회사에대 한 중국의 인식은 배타적이었다. 이 때문에 사업 확장에 고심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중국 내 관련 법인들은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2011년 중국 지린성 창춘시 LPG충전소를 매각하고, 2013년 축천연가스(CNG) 생산·판매업을 주력으로 하던 ‘다칭SK란치유한공사’를 청산했다.

각종 불확실성 
고조에 ‘덜덜’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중국 선전에 위치한 통신설비 공장 철수를 결정했다. 높아진 인건비에 따라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 원인이었다. 이에 따라 선전서 생산하던 물량은 인도와 베트남에 위치한 공장서 맡게 됐다. 

중국 1인 근로자에게 투입되는 인건비는 월 5000위안(80만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근로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하는 보험 등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하면 1만2000위안까지 인건비가 상승한다. 

반면 베트남 노동자의 인건비는 10분의 1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인도의 경우 중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란 점에서 현지 공장에 대한 증설이 계획됐다. 기존 운영 중이던 인도 노이다 공장에 8000억원을 투입해 증설하기로 한 것이다.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현재 노이다 공장의 생산능력은 6000만대다. 증설 완료 후에는 1억2000만대로 생산력이 늘어날 예정이다.
 

한화리조트도 중국 시장 개척에 쓴 고배를 마셨다. 2016년 야심차게 아쿠아리움 사업을 벌였지만 2년 만에 철수했다. 당시 한화리조트는 중국 부동산 1위 기업 완다그룹과 아쿠아리움 사업을 추진해 월드 클래스 아쿠아리움 난창완다해양낙원(이하 해양낙원)을 론칭했다.

해양낙원은 종합테마파크인 완다시티 내 핵심시설로 국제 규격 축구장 5개 넓이 규모였다. 한화리조트는 당초 10년간 시설, 공연, 생물관리, 마케팅 등을 비롯한 운영을 맡은 계획이었다. 

하지만 완다그룹이 재무건전화 작업에 따라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서 해양낙원이 매각되면서 한화리조트가 자연스럽게 관리 위탁 사업서 손을 떼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화리조트로서는 중국 진출의 기회서 한 발 물러서게 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중국과의 정치적 이슈에 민감한 일본 기업들도 탈중국 추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지난 6월 일본 스즈키사가 중국 자동차 생산합작 사업을 철수했다. 인도 시장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 회사 측 입장이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한 뒤의 행보라 눈길이 쏠렸다.

스즈키사는 당시 중국서 자동차 생산을 포기하고 수입 판매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즈키사와 충칭 창안 자동차와의 합자회사인 충칭 장안 스즈키 자동차는 양사의 자본이 1:1 비율로 투입돼 1993년 설립됐다.

일본 미쓰비시전자는 미중 무역분쟁이 시작되던 무렵부터 중국 다롄에 있는 제품 생산기지를 일본 나고야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일본 도시바사도 관세부과에 부담을 느끼고 생산라인을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은 기업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시장이다. SK그룹은 수년째 그룹 차원서 중국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른바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을 통해 중국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구글 역시 8년 전 중국 검색 시장에 진출에 실패한 이후 다시 한 번 진출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구글 내부의 분위기는 물론 미국 정부까지 중국 진출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재추진은 유예됐지만 언제든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대·중견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진땀

증권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의 정치 리스크가 커 한국기업들이 중국진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한다”면서도 “경쟁사가 중국 시장에 선점할 경우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경쟁자로 부각할 가능성이 있어 있어 중국 진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사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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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