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전원책 투트랙 청사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0.22 10:06:02
  • 호수 11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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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회창식 벤치마킹?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변신을 준비 중이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전원책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이 이끄는 변신이다. 두 사람은 연일 당이 나아갈 청사진을 제시하며 당원들을 직·간접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두 사람이 제시하는 청사진은 과거 한나라당과 닿아 있다.
 

“당헌·당규와 상관없이 전권을 가졌던 2012년 비상대책위가 ‘경제민주화’라는 진보주의 강령을 받아들이고 ‘새누리당’이라는 정체불명의 당명과 빨간 색깔로 당색을 바꿨을 때 한국당은 침몰하기 시작했다.” 

지난 15일 한국당 조강특위 외부위원 4인(전원책·강성주·이진곤·전주혜)은 ‘당원·당직자·당협위원장·국회의원 여러분에게 드리는 고언’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밝힌 핵심 내용이다.

침몰 원인
새누리당

입장문의 제목은 고언이었지만, 내용은 질책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화살은 2012년 비대위를 향해있다. 당시 비대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2012년 이전 한나라당(한국당 전신)은 정권 재창출에 적신호가 켜졌었다. 이명박정권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소고기 파동으로 지지율 7.4%까지 추락했다. 한나라당의 지지율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2009년 재보궐선거서 한나라당은 참패했다.


설상가상 한나라당은 친이(친 이명박)계와 친박(친 박근혜)계간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2010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전격 회동하면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이후 권력의 추가 친박계에 쏠리면서 친이계에 대한 친박계의 공천학살이 일어났다.

여기에 더해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수행비서관이 2011년 10월 재보궐선거서 선관위를 디도스로 공격한 사건이 발생하자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대위 체제로 전환됐다.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은 2012년 2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상징색을 파랑색서 빨강색으로 바꿨다.

잠복기에 들어갔던 친이 대 친박의 갈등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 폭발했다. 2016년 12월 친이계 중심의 비박(비 박근혜)계는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출범했다. 2017년 2월 새누리당은 지금의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2017년 3월 한국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종 파면으로 명목상 여당 지위를 잃었다.

한국당 조강특위 외부위원 4인은 지난 2012년 박근혜 비대위가 출범한 후 당 내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과정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4인은 기존의 한국당이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고 아무도 저항하지 못했다”며 “한국당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다. 원로 정치인부터 모사까지 지금 한국당을 회복 불가능한 중환자로 여긴다”고 진단했다.
 

이어 “과연 한국당은 보수주의, 자유주의에 복무했나. 자유와 책임, 도덕성에 충실했나. 미래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기나 한 것이냐”고 지적한 뒤 “한국당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 두 분을 감옥에 보내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소속 의원 몇 분이 법정에 가봤느냐. 왜 다들 피했을까. 친이, 친박 할 것 없이 처참한 보수궤멸에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쏘아붙였다.

권력자에 대한 계파의 충성경쟁에도 일침을 가했다. 


이들은 “왜 그때 아무도 저항하지 못했느냐”며 “명망가 정치, 보스정치에 매몰돼 당내 민주주의와 동떨어진 충성경쟁을 벌일 때 한국당은 무너졌다. 권력을 재창출한 뒤에는 대통령 눈치를 보거나 아부하기에 바빴다. 그러면서도 뒤편에선 ‘제왕적 대통령제’라며 탓했다. 절대권력이 무너지면 그를 공격하는 세력에 동조하기에 급급했다”고 날을 세웠다. 

외부위원 4인은 “새로운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에게 문호를 개방해 경쟁하자”며 입장문을 마무리했다.

2012년 박근혜 비대위 저격
비박 영입·친박 설득 동시에

조강특위 외부위원 4인이 한국당의 침몰시기로 2012년 비대위를 지목한 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의 혁신 좌표를 2012년 이전으로 설정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한나라당 시절로의 회귀를 뜻한다.

한국당 비대위가 연일 ‘보수대통합’을 부르짖는 일도 한나라당으로의 회귀와 맥을 같이 한다.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전원책 조강특위 위원은 바른미래당에 잇단 구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전 위원은 조강특위 출범 당일인 지난 11일 기자들에게 “(다른 정당) 일부 중진 의원에게 만나고 싶다는 의견을 통보했다. 곧 일정을 잡겠다”며 보수 단일대오 작업에 착수했음을 알렸다.

한국당 김용태 사무총장은 “비대위의 역할은 내적으로 혁신, 외적으로 보수대통합이다. 조강특위가 출범했으니 이제 보수대통합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며 “문재인정부의 폭주를 막는 대의에 동의하는 누구라도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함께하자는 제안을 하겠다”고 전했다.

한국당 비대위는 비박에게 구애를 펼치는 동시에 친박도 아우르는 작업을 잊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부정하는 태극기부대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 일이 대표적이다. 

전 위원은 지난 15일, 언론 인터뷰서 태극기부대를 보수 통합 대상에 포함시킬지에 대해 “그분들(태극기부대)을 흔히 말해 극우라고 하는데 극우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가장 열렬한 지지자였던 그룹”이라며 “박 전 대통령을 비호하고 석방하라고 요구하는 시위세력을 앞으로 보수 세력에서 제외하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 비대위원장도 지난 17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역을 참배한 뒤 기자들과 만나 “(태극기부대와) 무슨 통합을 이야기하는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묶고 연결하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며 “미래의 새로운 비전을 내놓고 새로운 꿈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사회 전체를 통합해나가야지 ‘누구랑 이야기를 못 한다’ 이렇게 선 그을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계파주의
작심 저격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변호도 잊지 않았다. 변호사인 전 위원은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은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는 재판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며 재판부를 비난한 뒤 “하루 10시간씩, 일주일에 나흘씩 하는 재판에 친박, 비박 중 누가 가봤느냐. 전부 다 피해갔다. 본인에게 오물이 튈까, 따가운 시선이 꽂힐까 싶어서 피해가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비박, 친박에게 담론을 제시하는 작업도 시작했다. 전 위원은 김 비대위원장에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끝장토론을 제안했다. 박근혜정권에 대한 평가, 박 전 대통령 탄핵 등에 대한 당의 입장을 명확히 해야 정체성을 확립하고 인적청산을 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전 위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서 “한국당 모든 문제의 뿌리는 박근혜 문제”라며 “유승민 의원이 떨어져 나가고 바른미래당이 생기고 김무성 의원이 떨어져 나갔다가 돌아오고 이런 현상도 모두 박근혜 관련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친박계, 비박계의 상호 입장이 정리되지 않으면 누가 ‘칼질’을 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며 “그런 과정이 없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밝혔다.

한국당 내부서 박 전 대통령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박 전 대통령은 오랜 기간 당의 최대 주주였다. 한국당에는 아직도 친박계 인사들이 많다. 한국당의 핵심 지지층은 여전히 박 전 대통령의 ‘무죄’와 ‘석방’을 주장한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려왔다. 김 위원장 역시 탄핵에 대해 “당 안에서 의견이 아주 많이 갈린다. 그 상처가 아직도 상당히 깊다”며 명확한 답변을 피해왔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면 당의 입장을 확실하게 밝히겠다”며 대법원 선고 후로 입장 정리를 미뤘다.


끝장토론 제안에 당 내 반응은 엇갈린다.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질 뿐”이라며 반대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찬성하는 의견이 공존한다. 김용태 사무총장은 “전 위원의 아이디어인 만큼 앞으로 논의해보겠다”고 밝혔다.

끝장토론 제안
박통 파헤치자

박근혜정권 경제정책인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혁신을 이끄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며 친박, 비박 모두에게 어필했다.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은 경제민주화의 상징이라 불리는 김종인 전 의원을 영입해 총선을 승리로 이끈 바 있다.

전 위원은 입장문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한국당 몰락의 원인으로 지목한 반면, 김 비대위원장은 조강특위의 주장에 대해 “비대위 차원의 해석이라기보다 여러 가지 해석 중 하나일 수 있다”며 “(보수 위기는)역사의 큰 흐름을 놓쳤다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계파를 초월한 인재영입도 한나라당으로의 회귀를 증명한다. 한국당 비대위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대선주자급 인재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 황 전 총리는 친박계, 오 전 시장은 친이계다.

김 비대위원장은 “한 분 한 분 다 보면 소중한 분들이고 나름대로 저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경륜을 쌓아온 분들”이라며 “단점을 봐서 쳐내기에 앞서서 그분들의 장점을 볼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 영입 방침을 밝혔다.
 

지난 6·13지방선거를 통해 보수 진영의 대안으로 급부상한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영입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18일, 제주도를 찾았다. 제주대 행정대학원 특강이 표면상 이유였지만, 원 지사를 만나 보수통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협력을 요청했다. 

원 지사는 1999년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줄곧 개혁 소장파라는 평가를 받은 만큼 범보수 인사로 꼽힌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과정서 탈당해 바른정당에 합류한 후 국민의당과 합당한 바른미래당 소속이었지만, 지방선거 당시 다시 탈당해 현재 무소속 신분이다.

황교안·오세훈·원희룡 접촉
바른미래 11인도 한국당으로?

원 지사는 김 비대위원장과의 회동에 앞서 입장문을 통해 이번 회동 목적이 한국당 입당이나 보수통합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강조하며 “무소속 도지사로 도민에게 이미 약속했듯이 중앙정치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오로지 도정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했다.

만약 이들 대선주자급 인사들에 대한 영입이 성사될 경우 과거 이회창 전 총재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이뤘던 한나라당과 비견될만하다. 한국당 내에서는 지난 2000년 때 이 전 총재가 이끈 인재 영입이 역대 보수정당 인재 영입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는 평가가 있다. 

현재 보수 성향의 중진 의원 중 이때 영입된 인사들이 다수다. 대표적으로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은 2000년 2월 이 전 총재에 의해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영입됐다. 김 비대위원장의 인재 영입은 2000년 당시 이 전 총재의 성과를 재연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한국당 안팎에서는 한국당 비대위의 행보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당 내부에서는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 “손님이 주인을 내쫓고 안방을 차지하려 한다” 등의 비유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외부서의 평가는 더욱 박하다. 특히 한국당 비대위가 통합의 대상으로 지목한 바른미래당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전 위원의 보수대통합 발언들에 대해 지난 12일 “한국당은 다음 총선에서는 없어져야 할 정당이다. 결국 수구·보수로 한 쪽으로 밀려날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지난 15일에는 “한국당이 쇄신도 없이 바른미래당과 통합하자는 것은 막말로 웃기는 얘기”라며 “만약 우리 당에서 갈 사람이 있다면 수구·보수로 가라”고 날을 세웠다.

하태경 최고위원도 “태극기부대는 (헌법기관인)헌법재판소를 해체하라고 했던 집단”이라며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과 함께 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극우대통합”이라고 가세했다.

대선주자급
접촉 시도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한국당을 비난한 데는 실질적인 당내 동요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바른미래당 의원 30명 중 바른정당 출신과 일부 국민의당 출신을 포함한 6∼7명 의원들은 한국당과의 연대 또는 통합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한국당의 보수대통합 추진과 관련 지난 17일 “바른미래당서 11명이 자유한국당으로 간다는 얘기가 여의도 바닥에 쫙 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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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